소설리스트

강철의 열제 부루강림기-248화 (248/305)

제248화 희망 대신 절망

* * *

“코드명 창기병. 투입합니다.”

-빨리! 부탁해! 우리도 숨은 쉬어야 할 거 아냐!

통신스피커에서 폭음과 비명을 배경으로 현장 지휘관의 악다구니가 들려왔다.

“죄송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하지만, 이쪽도 사정은 있었다. 오퍼레이터로 보이는 군인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짧게 대답한 후 뒤를 돌아보았다.

그 뒤에는 벌써 십수시간째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앉아 있는 이들이 있었다.

드론 운용병들이었다.

“인원교대!”

교대라는 말에 그제야 피폐한 얼굴을 한 청년들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한숨 눈을 붙이고 온 이들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때 방송이 울렸다.

[기병대 교체 투입합니다! 기병대 교체 투입합니다!]

방송이 울리자 자리에 착석한 이들이 입을 모아 외쳤다.

“한발에 한 놈씩!”

그리고는 피곤해 보이는 얼굴이지만 집중해 나가기 시작했다.

* * *

바아아앙!

바앙!

흔히 아는 형태의 드론이 아닌 작은 모형항공기 모습을 한 드론들이 조명탄 아래에 모습을 드러냈다.

“창기병 투입합니다!”

작전장교의 외침에 차준우 사령관이 기름때에 찌든 얼굴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낮게 날아드는 드론들이 눈에 들어왔다.

낮의 드론들과는 다른 종류의…….

위이이잉!

그렇게 아군의 머리 위를 스치고 지나간 무인비행기들이 그대로 적진으로 향했다.

위이잉!

케륵?

마치 왜 죽으러 오는가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린 마물들의 몸통에 날아온 그것들이 틀어박히기 시작했다.

퍼퍼퍽!

키에에엑!

-커억!

마족들 역시 예외는 없었다.

마력방패를 들어 올렸음에도 연달아 날아드는 드론들을 막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문제는 그 드론의 끝에는 마치 송곳과 같은 창날이 달려 있다는 점이었다.

마력장벽이 사방에서 솟구쳐 올랐다. 그때 뒤에서 마력탄들이 쏟아져 나왔다.

일부 구간에 집중되듯 말이다. 그러자 보랏빛 섬광과 함께 일부 장벽에 구멍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날아들던 무인비행기들은 그곳이 매워지기도 전에 빠져나갔다.

일부는 그대로 상승하여 장벽을 넘어 내리 꽂히기 시작했다.

마치 옛날 검과 창의 시대에 창을 들고 적진을 향해 내달리는 창기병들처럼 말이다.

밤의 또다른 공세였다.

* * *

마물들의 숫자는 꽤 많이 줄었다. 마물 역시 생명체였기에 그 숫자에는 한계가 있었다.

상위 포식자인 마족병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족은 전투를 통해 상위 개체로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하기에 개체수를 늘리는 것에는 관심이 없는 종족이다.

그래서 모자란 숫자를 마물들로 채운다. 그런데 이번 전투에서 그 마물의 피해가 너무 컸었다.

소형 마물의 피해는 두말 할 것 없었다.

원래도 빠르게 불어나는 만큼 빠르게 소모되는 것이 바로 소형 마물이다.

반면에 중대형 마물은 강력한 반면 그 숫자에 한계가 있다.

그것이 지금 전쟁이 이어지면서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그들이 자연보호를 하는 종족은 아니다.

그렇지만 필요한 마물이 줄어든다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물론 그것 때문에 이번 목표를 힘을 키우는 침식의 대상이 아닌 식민화를 목적으로 삼은 이유이기도 했다.

몇십억이나 되는 별은 드문 발견이었다.

거기에 전부 인간형.

비록 개개의 개체는 그 힘이 약한 편이지만, 언데드로써의 활용도가 높다는 측면에서 게르하이오 펜 기오르그의 입맛에도 맞았다.

그 외의 동식물도 풍부했고 말이다.

그런데 침식화때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문제가 지금 드러나고 있었다.

-꽤 성가시지만…….

그들이 활용하는 기계문명이 바로 그 문제였다.

침식지에서는 기계문명이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침식지의 역할은 해당 문명의 이기를 약화시키는데에 목적이 있다.

그 덕에 전자기기는 먹통이 되기 일수였기에 아날로그 방식의 기기만을 동원할 수 있었다.

그때는 마물만으로도 충분히 재미를 볼 수 있었다.

그래서 과소평과를 한 부분도 있었다. 문제는 그 여파가 이제야 느껴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침식의 권능은 그 별의 에너지를 모조리 빨아들이는 목적성을 가진다.

즉 침식지가 넓어질수록 해당 별의 에너지가 그들의 힘으로 치환된다는 의미.

마치 암세포와 같은 것이다.

식민화 할 때는 그것을 쓰면 안 되는 이유다.

어쩌면 일종의 법칙이기도 했다. 별과 별의 대결 양상에서 선택하는 법칙.

의외로 그 법칙에서 마계는 자유롭지 못한 존재다.

문제는 그 과소평가했던 기계문명이 침식지라는 제약을 벗어나자 꽤 강력하게 다가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기오르그는 미소를 지었다.

-더 탐이 나는군. 차후에 침식을 통해 다른 별을 집어삼킬 때 무작위 균열을 통해 쏟아붓기에 좋겠군.

다양한 활용 방식이 떠올랐다.

심지어 그 활용 방식에 대해서 상대방측이 예시를 보여주기도 했다.

마수의 군주 휘하의 일족과 군주의 소멸로 그 소속이 사라져 항복을 한 마룡의 일족들이 상대방 측에 합류했다.

이쪽에 비하면 미미할 수밖에 없는 숫자. 그러나 그 미미한 숫자가 저쪽의 기계와 과학으로 대변되는 문명과 합쳐지니 그 시너지가 크게 다가왔다.

그것을 보니 오히려 흥미가 더 당기는 것은 당연했다.

심지어 밤이 늦어지자 저쪽은 재미있는 공격을 해왔다.

-드론이라 했지? 그 날파리 같은 것들. 만들어 내는 것인만큼 한계가 있을 것인데?

기오르그의 질문에 오기원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그렇긴 합니다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이곳이 주 전장인 만큼 앞으로 어마어마한 숫자의 물자들이 이곳으로 날아올 것입니다.”

-흐음.

“미국과 중국이 있기에…….”

그 후 짧지만 천조국이라 불리는 미국과 세계의 공장이라 불리는 중국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이거 머릿수 말고 정말 가치가 많은 종족들이군. 내것으로 삼게 된다면 더 많은 것들이 재미있겠어.

오히려 기오르그는 기분 좋은 미소를 머금었다.

-뭐 전술의 기본이기는 하지. 앞에선 싸우고 뒤에선 물자를 실어 나르고.

기오르그의 입에서 전술이야기가 나오자 기원은 속이 답답해졌다. 지금까지 전술과는 동떨어진 행동을 보여온 그들의 행보 때문이었다.

그나마 그의 군주인 마켈그로이언이나 그의 조언을 이용한 후방 흔들기는 있었지만, 그 외에는 그저 닥치고 돌격에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기원은 전황이 이렇게까지 될 줄 몰랐기에 점점 불안에 빠져들었다.

그런 상황이었지만, 기오르그는 여전히 태평이었다.

그때 기원의 머릿속으로 마켈그로이언의 음성이 들려왔다.

-의심치 말라.

그 음성에 기원은 마음이 들키기라도 한 듯 찔끔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어쨌든 얼마나 쏟아 부을 수 있는지 구경하기에는 지루하니 정리하도록 하지.

기오르그의 명에 한쪽에 있던 최상위 마족중 일부가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왕의 명대로.

그리고는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던 그들이 몸을 띄우기 시작했다.

그들이 멀어져가자 이번에는 마켈그로이언을 향해 입을 열었다.

-다른 곳에 고개를 돌리지 못할 정도로 정신없게 해 줄 필요가 있겠지?

기오르그의 말에 마켈그로이언이 웃으며 답했다.

-왕의 명대로.

마켈그로이언이 웃음을 머금었다.

* * *

화면을 보던 이들이 환한 얼굴로 외쳤다.

“잡았다!”

“여기도!”

드론 운용병들이 여기저기서 함성을 내질렀다.

창기병대라 명명한 드론을 활용한 전술은 자폭공격이나 마찬가지였지만 그 효과는 남달랐다.

일단 인명피해가 극도로 줄어든다는 점이었다.

소비되는 드론의 숫자야 기하급 수적으로 늘어나기는 하지만, 이쪽에는 중국과 미국이라는 든든한 보급창이 있었다.

천조국과 세계의 공장이 만나자 쏟아내는 물량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했기 때문이었다.

무한정이라 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저기 깔린 마물과 마족병을 상대하기에는 모자람이 없었다.

그게 이 세상의 저력이었다.

그때 운용병들이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당황하기 시작했다.

“어?”

“헛!”

“리, 링크가 끊어졌습니다!”

“격추되었습니다!”

“뭐야! 왜이래!”

거의 모두가 당황한 표정이었다. 그러자 현장 지휘관도 당황하며 외쳤다.

“혀, 현장 확인해봐!”

“정찰드론도 모두 떨어졌습니다!”

“위성! 위성 요청해!”

“아, 알겠습니다!”

* * *

잠시나마 환호성이 터졌던 상황실에 다시 침묵이 감돌았다.

“미국 측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뭐라던가.”

“위성들이 빠르게…….”

“…….”

“소멸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 말에 양현재 대통령이 두 손으로 마른세수를 하듯 얼굴을 비볐다.

“러시아 측에서 마지막에 보내온 영상입니다.”

화면에 우주로 보이는 배경이 비춰졌다.

그곳에 뼈다귀만 남아있는 언데드 비행체가 위성을 그대로 물어뜯고 있었다.

우주방어 계획중 하나였는지 레이저가 조사되어 일부 언데드 비행체를 떨구었지만, 그도 잠시.

화면을 보여주던 위성도 무언가 덮치는가 하더니 연결이 끊어져 버렸다.

“놀림 당하는 것 같군.”

양 대통령이 쓴 웃음을 머금었다.

이쪽에서 무언가를 쏟아내면 마치 재미있다는 듯 저쪽에서 받아쳤다.

희망을 가지려 하면 마치 헛된 것이라고 알려주듯 도로 빼앗아 간다.

그 반복이었다.

“미국과 러시아 그리고 중국측에서 배치한 위성들이 전부 망실 되었습니다.”

짧은 답변과 함께 현장을 알려 주던 항공영상들이 전부 검은 화면만 비추고 있었다.

그 검은 화면이 마치 이 세상의 미래처럼 먹먹하게만 보였다.

* * *

“방어선이 무너지고 있다고 합니다.”

“231연대측 연락이 두절 되었습니다.”

“러시아쪽 병력이 맡은 곳과 연락도 두절입니다.”

“3선에 적들이 몰려오는 모습이 포착되었다고 합니다.”

미 대통령 닉 레너드가 머리를 감싸쥐었다.

“왜 갑자기…….”

말 그대로다.

갑자기 잘 버티고 있던 전선이 무너지고 있었다.

탐을 포위한 채 수많은 물자와 생명을 담보로 막아내고 있던 그 방어선이 말이다.

그 시작은 역시나 화면이 꺼지면서다.

위성이 떨어지고 한국과 마찬가지로 날렸던 드론들이 마치 살충제라도 맞은 양 떨어져 내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상황에서 들려오는 보고들.

“최소한 군주급이 직접 나선 것으로 보인답니다.”

“최상위 마족이라 명명된 이들도 몇 개체가 등장했다고 합니다. 하, 한국에 투입된 소환자와 강림자들을 복귀 시켜야…….”

“그러면?”

레너드 대통령이 쓴 웃음을 머금으며 물었다.

주어가 빠진 질문이었지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었다.

“막을 수 있고?”

그의 질문에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그때 또 다른 이가 입을 열었다.

“한국군의 목표점 중 일부가 북진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방어를 전담하던 중국과 연합군 병력이 무너졌다고 합니다.”

다시 침묵이 감돌았다.

화면도 보이지 않았다.

그 가운데에 레너드 대통령이 허탈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장님이 된 기분이군. 잠시나마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진 게…… 마치 죄라도 된 것 같고.”

절망이 그들을 감싸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