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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열제 부루강림기-247화 (247/305)

제247화 강철의 피로 열어가는 길

* * *

쇠그물망을 이용한 폭격의 효과는 오래 가지 못했다.

마족들 뒤쪽에 있던 지휘관들이 하늘을 향해 무기를 휘두르자, 보랏빛 반월 같은 섬광이 솟구쳐 올랐다.

“빌어먹을 지들이 무슨 소드맛스터야!”

그 모습을 본 이들이 허탈함을 토해내었다.

비록 어마어마한 효과는 아니었지만, 충분히 밀집대형을 무너트릴 수는 있었다.

방금 섬광 때문인지 더는 마물이나 마족들이 잘려 나가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어차피 더는 폭격이 이어지지 못했다.

몇몇 수송기와 폭격기들이 하늘로 솟구친 섬광에 당해 그대로 폭발했다. 마치 대공미사일을 연상케 했다.

거기에 더 쏟아부을 게 없는지 폭격을 마친 아군이 선회하고 있었다.

이제는 육지의 시간이었다.

“젠장! 가자아아아!”

잠시 멈추었던 기갑이 다시 돌진을 시작했다.

퉁! 투투투퉁!

저마다 대마물 포탄을 쏘아내며 내달리는 모습이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그렇게 기갑이 내달린 뒤에는 적제함이 비어있는 트럭들과 고물상에서나 쓸 법한 집게 손을 단 크고 작은 포크레인 들이 따라붙기 시작했다.

“염병! 우리도 갑시다!”

바아아앙!

마물들의 비명과 연달아 울려오는 폭음.

코끝을 찌르는 비릿한 마물의 혈향.

어디선가 파괴된 아군에게서 흘러나오는 오일 냄새.

그리고 탄 고기 냄새.

그 와중에 뒤따라 달려온 트럭이 멈추자 재빨리 다가온 포크레 인이 마물의 사체를 그대로 집게로 집어 트럭의 빈 적제함에 담기 시작했다.

끼에엑!

개중에는 아직 살아있는 놈들이 있는지 비명을 내질렀지만, 트럭의 보조석에서 내린 중년인이 그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투투투퉁!

이내 자지러지는 비명을 내지르던 마물이 고개를 떨구었다.

지금 이들이 마물과 마족의 사체를 수거하는 이유는 대 마물용 탄과 포탄등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만드는 방법은 단순했다.

오로지 뼈와 은을 녹여 만든 것은 대전차용등에 활용되고 나머지 부산물은 그대로 용광로에 은과 함께 녹여 총탄등으로 활용되었다.

효율이 떨어지지만 내제된 에너지는 충분히 쓸 만했다.

마물과 마족의 사체에 흐르는 마력은 일종의 방어기제다. 그것을 증폭효과가 있는 은에 녹여 합성하면 마찬가지로 마력이 담긴다. 즉 마력의 막을 상쇄시킬 수 있는 탄환이 된다.

“이, 이것도 담습니까?”

그때 중년인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괴수와 같은 형태의 마물과 달리 마족들은 그 형태가 인간형인 경우가 많았다.

그러자 이 사체수거작전을 지휘하던 군인이 씁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담으세요. 지금 거의 바닥이 나서 이거저거 가릴 때가 아닙니다.”

“그래도 사람 모습인데…….”

“예. 이 사람 모습을 한 놈들이 같은 사람의 고기를 가지고 잔치를 벌이더군요.”

“…….”

“씨펄.”

그 말에 잠시 꺼려하던 모습을 보이던 중년인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지휘관들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마도 이 전쟁이 만약에 아주 만약에 승리로 끝나더라도 수많은 이들이 그 후유증과 싸우게 될 것이다.

“배부른 소리다.”

그때 지휘관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때 섬광이 그들이 있는 자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콰콰콰쾅!

사체를 가득 채우고 떠나던 트럭이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포크레인도 그 육중한 체구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나뒹굴며 굴러갔다.

그리고 빛에 휩쓸린 사람들은 시체조차 찾지 못했다.

“박 중위님! 중위님!”

“쿨럭”

조금 전까지 회한어린 목소리를 흘리던 박 중위는 흐릿한 눈으로 시선을 돌렸다.

왼쪽 어깨부터 해서 사선으로 시선을 따라가 보니 허리 아래로는 남은 게 없다.

그가 피를 게워내며 허탈하고 중얼거렸다.

“여, 역시 배부른 소…….”

결국 그는 마지막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그렇게 포화속에서도 트럭들은 마물들의 사체를 담아 후방으로 내달렸다.

콰자작!

을지부루의 대부가 마치 커다란 나무를 자르듯 스치고 지나가자 어른 몸뚱이 두께의 다리가 기우뚱했다.

“흐읍!”

이어 부루가 다시 몸을 맴돌리며 방금 빠져나온 대부를 연이어 휘둘렀다.

그러자 반대편 다리도 역시 둔탁한 소리와 함께 기울어졌다.

-크워어억!

“목청 좋구나 야!”

두 다리가 잘린 상급 마족이 창대를 지팡이처럼 짚었지만, 부루는 그마저 잘라 버렸다.

콰콰콰쾅!

거대한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엎어진 상급마족의 뒷덜미로 다시 부루의 대부가 내리찍혔다.

“이제 좀 조용하구만 기래.”

머리가 둥실 떠올리며 더는 소리를 지르지 못하는 상급 마족을 보며 부루는 다시 퓨켈의 고삐를 당기며 말을 몰았다.

“이탈하라우!”

부루의 명령이 쩌렁하게 울려퍼졌다.

그 명령과 함께 적진의 선봉을 무너트린 기마들이 마치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빠르게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자리를 기갑이 차지하기 시작했다.

수도 없이 쏘아 보내는 대마물 용 전차탄들이 대열이 무너진 마족병들을 향해 날아들었다.

퍼퍼퍼펑!

그것들 정면으로 막아섰다가 그 운동 에너지에 의해 뒤로 날아가는 마족들부터 미처 막지 못해 몸뚱이의 일부가 아예 날아간 놈들까지 다양했다.

전차들의 포탄은 주로 덩치가 있는 놈들을 노렸다. 그러나 달려드는 것들은 전차뿐만이 아니었다.

그 뒤를 이어 내달려온 오프로드 차량과 트럭들이 연신 마족병들을 향해 총탄을 쏟아 부었다.

-키익!

마족병이 한손으로 마력방패를 형성하고 버텼다. 그 반투명한 막 위로 총탄이 쉴새없이 쏟아져갔다. 그러자 그 반투명한 방어막이 마치 위태롭게 점멸했다.

투퍼퍼퍽!

허벅지에 보랏빛 피가 튀며 휘청였다.

마력 방패로 막지 못하는 다리를 맞은 모양이었다.

그렇게 휘청이며 마력방패가 흔들리는 사이 마족병의 온 몸으로 총탄이 틀어박혔다.

비명은 없었다.

마치 영화에서 난사 당하는 깽단원처럼 몸을 이리저리 뒤틀다가 뒤로 나자빠졌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마족병들은 동료의 죽음에도 두려움 없이 내달려왔다.

콰앙!

그대로 마력방패를 들고 돌진하자 달려오던 오프로드 차량이 충돌을 못이기며 옆으로 고꾸라졌다.

“크윽!”

“이, 이탈하십시오!”

기동하는 도중에 밖으로 튕겨나가지 말라고 연결해 놓은 덕에 날아가 처박히는 비극은 피했지만. 더는 달리지 못하는 차량은 극도로 위험했다.

그들이 차량을 탈출하기도 전에 달려든 마물들이 그들을 상대로 화풀이를 했다.

“끄아아악!”

우둑! 부우욱!

산 채로 뜯기고 부러지는 거묵한 소리와 함께 비명이 이어졌다. 비명은 짧았고, 몰려들었던 마물들과 마족병들의 흥미는 더 빠르게 식었다.

콰앙!

그 잔해를 밟고 뛰어오른 마족병이 십여미터는 날아가 그대로 달려오던 전차의 위로 내려 앉았다. 그리고는 그대로 전차의 개패구를 잡아 뜯어내었다.

투투투투퉁!

안쪽에서 총탄이 솟구쳐 올랐지만, 마치 통조림 뚜껑을 따듯 따 버린 마족병은 거침없이 안으로 뛰어 내렸다.

전차는 멈추고 비명은 연이었다.

마치 공원 분수마냥 뜯겨나간 상부의 개폐장치위로 핏물이 솟구쳐 올랐다.

-크크큭!

만족스런 웃음을 흘리며 온몸을 피로 뒤덮은 마족이 개폐장치 위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퍼억!

날아든 대마물 포탄에 웃음짓던 마족병의 상체가 그대로 날아갔다. 지키지는 못했지만, 복수는 이룬 셈이었다.

전차들의 돌진은 빠르게 멈추고 있었다.

대형 마족이나 마물에게는 위력적인 전차 포탄이었지만, 2m가 조금 되지 못하는 마족병들을 잡기에는 굼뜨기만 했다.

더욱 무서운 것은 그 작은 덩치의 마족병들도 전차를 방금처럼 와해시킬 수 있는 괴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때 기동대가 기동을 멈추고 있는 전차들 사이로 끼어들기 시작했다.

투퉁! 투투퉁!

오프로드 차량과 마치 2차대전에서의 독일군처럼 보조석을 단 바이크가 사이사이를 질주하며 연달아 탄을 날렸다.

그 사격에 전차를 향해 달라 붙던 마족병들이 뒤로 퉁겼다.

그 곁으로 바이크를 몰고가던 기동대원이 한 손에 일미터가 조금 안되는 길이의 야삽 형태의 무기를 휘둘렀다.

쩌억!

둔탁한 소리와 함께 비틀 거리던 마족병의 머리통이 그대로 날았다.

“이 씨부럴 놈들아아!”

기동대원들은 눈에 핏발이 선 채 그렇게 아군의 잔해들 사이를 누비고 다니며 마족병들과 일전을 벌였다.

그렇게 벌어준 시간 덕에 전차들이 재정비를 갖추기 시작했다.

* * *

날이 저물기 시작했다.

핏빛인지 노을인지 구분이 안 가는 붉은 빛이 대지위로 내리던 것도 잠깐.

어둠이 천천히 대지 위에 흐른 피들을 감추기 시작했다.

퉁! 투퉁! 퉁!

어둠을 향해 쏘아 올려진 것들이 다시 세상을 하얗게 비췄다.

조명탄들이 천천히 낙하하며 인세에 펼쳐진 지옥을 다시 비추었다.

전투가 시작된 지 벌써 여덟시간이 지났음에도 아직 어느 누구 하나 멈추지 않고 있었다.

“…….”

영상을 보는 양현재 대통령의 표정은 침통하기만 했다.

그때 참모총장이 먹먹한 음성으로 보고를 올렸다.

“현 시간부로 가동 가능한 전차는 없습니다.”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조명탄 아래로 비추어진 대지는 강철의 피로 만들어낸 길이 올곧게 뚫려 있었다.

그 사이로 불이 붙어있는 전차와 수많은 차량들…… 그리고 구난전차에 의해 뒤로 끌려가는 것들뿐이었다.

그 사이로 강림자와 소환자 그리고 군인들이 어우러져 침략자 들과 싸우고 있었다.

하늘을 날아가던 군용기가 이번에는 조명탄을 투하했는지 적진의 머리 위쪽 하늘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번쩍…….

결국 조명탄을 쏟아붓던 군용기들은 마지막 밝음을 선사한 채 화염에 휩싸여, 되돌아오지 못하고 떨어져 내렸다.

적들의 숫자는 아직도 헤아릴 수 없었다.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던 양 대통령이 입을 열었다.

“무모한 일전이었을까요.”

자책이 담긴 음성.

“선택지는 없었습니다. 그래도 지금이 아니면 이 정도의 전력을 끌어낼 수 없었을 겁니다.”

시간이 갈수록 무너지는 것은 이쪽이라는 걸 모두가 알고 선택 한 길이었다.

“만약 항복 했다면 좀 나았을까요?”

양 대통령이 그답지 않은 생각을 내뱉었다.

“저들에게 우리는 가축 그 이상이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저들이 밀어넣는 마물과 같은 존재. 그게 식민지의 운명이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잘한 선택일까요?”

양 대통령의 중얼거림에 더는 답하지 않았다.

지금 그의 중얼거림은 해답을 바라고 내뱉는 것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지독한 무게.

나라를 대표하고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는 국가의 수장으로써의 무게에 짓눌린 이의 읊조림일 뿐이었다.

아마도 시간을 되돌린다 해도 비슷한 결정을 내렸을 것이다.

“이제 잠시 후면 미국과 러시아 그리고 중국에서 들어온 개조 전차들이 투입될 예정입니다.”

그래 봐야 수천 대.

지금은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다만, 최소한 그 시간 만큼은 하루종일 전투에 몸을 담갔던 이 땅의 전사들에게 잠시 한숨을 돌릴 시간은 만들어 주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질 뿐이었다.

이쪽도 멈추지 않고 저쪽도 멈추지 않는 전쟁에서 꿀맛 같이 느껴질 휴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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