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6화 하늘에서 뿌려진 것은?
* * *
고빈이 마족병 대열을 향해 맹렬하게 달려가는 모습을 본 장웨이는 등줄기가 축축해졌다.
출정전에 부루가 그에게 늑대를 타 보지 않겠느냐는 말에 굳이 그럴 생각 없다고 했다.
사실 말이 아닌 늑대는 보긴 좋지만 타기에 좋은 개체는 아니었다. 뛰는 것이 말과 다르기 때문이었다.
그때 부루가 입맛을 다시는 것을 스치듯 지나쳤는데, 만약 자신이 그걸 탔으면 아마 저기 있는 빈의 옆에서 생사를 오갔을 것이 분명했다.
“무슨 강림자가 소환자를 사지로 밀어넣…….”
부루의 천인공노할 역발상에 고개를 내젓던 그에게 듣고 싶지 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니보라.”
“예?”
부루였다.
장웨이는 자신도 모르게 다시 공손해지는 것을 느꼈다.
연구동에 있을 때 진절머리나게 당해서 아마 조건반사처럼 튀어나온 행동일 것이다.
“가야디 않네?”
“전 아직 실력이 모자라서 말입니다. 군자는 스스로의 모자람을 창피해 하지 말아야 합니다.”
“기래? 그럼 너라도 가라우.”
그때 부루가 뒤쪽을 보며 말했다. 그의 행동에 장웨이는 피식 웃었다.
그의 뒤쪽에 누가 있겠는가.
바로 여포 봉선이다.
그의 애마인 적토를 타고 그의 뒤를 든든하게 지켜주는 영웅 여포다. 빈과 달리 충성스런 강림자인 여포는 그의 명령이 아니면 절대 움직…….
끼히히히힝!
“내가 바로 여포니라아아아!”
“왕빠단!”
여포가 미친놈처럼 달려나갔다.
장웨이는 버림 받았다.
“으하하하!”
그 곁을 산적같은 강림자가 탄 오프로드 차량이 지나쳐갔다. 특이하게도 운전자가 울고 있었다.
“아…….”
연구소에서 봤던 이였다.
“다들 미쳐가는구나.”
장웨이는 인생 다산 노인네의 표정을 하고 말을 달렸다.
어차피 지면 세상 끝은 맞으니까. 어쩌면 저렇게 미치는 것도 속 편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 * *
-이래야지. 큭큭큭!
게르하이오 폰 기오르그가 어깨를 들썩이며 웃음을 흘렸다.
그가 해왔던 침략전쟁은 항상 재미가 없었다.
처음에는 당당히 나서다가, 종국에는 보이지도 않는 곳에 똘똘 뭉쳐서 버티다가 멸망의 수순을 밟았다.
그런데 이번엔 꽤나 재미있다.
식민지로 삼기로 하지 않았으면 크게 후회할 뻔 했을 정도였다.
-그래도 군주의 자리를 차지한 자이니까요. 그래서일지도 모릅니다.
마켈그로이언의 말에 기오르그가 여전히 즐거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럴까? 아니면 저자가 특별히 유별난 것일 수도 있고. 아니지 이쪽이 유별난 족속들만 모인 곳인가?
기오르그의 말에 마켈그로이언이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왜? 체면이 구겨져서 그런가?
-좀 면이 안 서긴 합니다.
마켈그로이언이 씁쓰레 웃으며 대답했다.
회유와 교언의 군주.
교묘한 언어로 혼동을 일으키고 배신을 택하게 만드는데 탁월한 존재가 바로 그였다.
마족임에도 이명이 있을 정도로 특출난 존재.
그렇기에 기오르그의 아래에 있는 최상위 마족들을 배제하고 그를 군주의 자리에 앉을 기회를 주었다.
그런 그가 이곳에서는 꽤나 재미를 보지 못했다.
이 세상의 다른 지역은 꽤나 투닥거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인간이 인간을 불신하는 세상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공통의 적을 향해 겨누어야 할 무기를 동족에게 내밀고 있는 상황.
물론 이곳도 비슷한 반향이 일어나기는 했었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꽤나 작은 편이었고, 또 오래가지도 못하고 사그라들었다.
-그러고 보니 예전 광신도들의 세상과도 비슷하겠어.
신관이 왕이자 교황이 황제였던 세상이 있었다. 법칙은 오로지 신의 경전뿐.
그곳에서도 비슷한 현상은 있었다. 물론 당시에는 회유와 교언의 군주가 없을 시기였지만, 그 흔한 분열도 없었다.
그저 교의 명령에 돌진하는 광신도뿐이었다.
오히려 당시에는 수월했다. 모조리 부나방처럼 뛰어들어 죽었으니까.
다만 그 와중에 명령을 내린 최고위들이 숨어다니던 탓에 시간이 좀 더 걸렸을 뿐.
-이곳도 비슷한 집단들이 있긴 합니다. 게다가 이쪽은 해괴한 특성이 있다더군요.
-그건 뭔가?
-그 무슨 뽕이라던데.
“구, 국뽕입니다.”
한쪽에 시립해 있던 오기원이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음?
“그저 이상한 민족성이라 보시면 됩니다. 원래 이 땅의 종교에 의존하는 비율이 높기도 하고, 그걸 떠나서 외부에서 두들기면 뭉치는 특성이 있어서…….”
기원의 말에 기오르그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뭐, 나름 재미있는 세상이야. 무너트리는 재미가 있어서 다행이지.
기오르그는 멀리서 다가오는 적들의 대열을 바라보며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완성이 다가오고 있구나.
오랫동안 비어있던 왕의 대관식이 머지않아 보였다.
* * *
[투하를 시작하라.]
“카피.”
조종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부조정석을 바라보자 그가 옆의 버튼을 눌렀다.
그와 함께 고고도를 날아가던 항공기들이 일제히 무언가를 투 하하기 시작했다.
마치 2차대전 이후에 재래식 포탄을 쏟아내는 것마냥 커다란 쇳덩이들이 뿌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수를 헤아릴 수 없는 항공기들이 무언가를 잔뜩 뿌리고는 다시 기수를 뒤로 돌리기 시작했다.
* * *
삐유우우우우!
“크워억!”
-뭐지?
하늘에서 무언가 바람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천천히 진군하고 있던 마족병과 마수들은 위를 바라 보았다.
지금까지 시끄럽게 만들던 그 매케한 것들이 다시 날아오는가 싶었다.
마력 방어막이 약하거나 겉 표면에 머무르는 수준의 마물들은 이미 거진 죽어 나자빠졌다.
지금 남은 것들은 마족병이나 중대형 마물들이다.
직격을 당한다 해도 쉽게 죽지 않는 이들만 남아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 하늘에 점점이 보이는 것들을 바라보는 마족병들의 표정은 무덤덤했다.
이제는 익숙해진 듯 마족병들이 자신들의 권능을 이용해 마도구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방패를 들어올리자 그 방패로부터 보랏빛 막이 펴졌다.
마력장이 펼쳐지는 것이다.
그들의 위로 몇몇 비행형 마수들이 이리저리 떨어지는 것들을 피해내며 앞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비행형 마수들을 스치고 계속해서 그것들은 떨어져 내렸다.
키에에엑!
순간 허공에서 찢어지는 비명이 터져나왔다.
-엇!
순간 마족병들의 눈이 휘둥그렇게 커졌다.
날아가던 비행형 마수의 몸뚱이가 토막 토막 잘리며 추락하고 있었다.
한 두 마리가 아니었다.
분명 떨어지는 것에 맞지도 않았음에도 몸통이 잘려져 나가고 있는 것이었다.
-조심하라!
순간 무언가 알 수 없는 위험에 긴장한 마족병들의 지휘관들이 외쳤다.
동시에 마족 마법사들이 일제히 마력장을 펼처 방어막을 형성했다.
그 위로 그것들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콰작! 콰쾅!
순간 보랏빛으로 가득한 하늘이 출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큰 소음과 함께 구멍이 숭숭 뚫리기 시작했다.
-아까의 것과 다르다! 조심하라! 놈들이 쏘는 무기와 같은 종류다!
마물과 마족의 뼈를 갈아 섞어서 마력을 흐트러트리는 금속과 섞은 투사체였던 것이다.
그것들이 쏟아져 내렸던 것이다.
꽤 많은 수가 빠르게 떨어져 내리고 있었지만, 마족들은 더는 동요하지 않았다.
피하면 그만이기 때문이었다.
몇몇 멍청한 마물들이 아니라면 가능했다.
그렇게 하늘에 펼쳐진 마력 방어막을 뚫고 떨어진 것들이 사방에 처박히기 시작했다.
먼저 쏘아졌던 메케하고 시끄러운 것들과 달리 이것들은 그저 떨어져 내리는 바위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들이 간과한 것이 있었다.
그것들을 피한 비행형 마물들이 왜 토막이 되어 떨어져 내렸는지를 말이다.
-어…….
크에에에!
-히, 히익!
마족병들과 마물들이 비명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칠미터에 달하는 거대 마물이었다.
꾸어어어엉!
기다란 비명과 함께 거대 마물의 팔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이내 몸통이 마치 수직으로 잘려서 나뉘어 쩍하니 벌어졌다.
콰콰쾅!
주변으로 잘려나간 몸뚱이가 처박혔다.
곁에있다가 쏟아진 피와 내장에 마족병들이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차라리 그들은 나았다.
적지 않은 숫자의 마족병과 마물들이 비슷한 상태로 팔다리가 잘리거나 몸통이 잘리며 그대로 나자빠졌기 때문이었다.
옆에 있던 아군에게 벌어진 참상에 마족병들은 당황하고 있었다.
-어, 어떻게 된 거지?
-마법인가?
-아니야! 별다른 마력 흐름은 없었…… 어?
툭.
순간 패닉에 빠졌던 마족병들 중 하나의 다리에 뭔가가 걸렸다.
-줄? 쇠줄?
그것은 바로 가느다란 쇠줄과 같은 것이었다.
무기로 그것을 들어올려 보니 몸통을 자르고 간 마족병의 몸뚱이까지 주욱 연결되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한쪽에 땅에 깊이 박힌 낙하물에 연결되어 있었다.
-이런 빌어먹을!
정체를 확인한 마족병들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 * *
차준우 사령관이 영상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바둑판 같군.”
“효율이 아주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충분히 써먹을 만합니다.”
“지금은 효율을 따질 때가 아니지. 그리고 솔직히 이 정도면 효율이 낮다고 할 수 없잖나. 옛날에 벌어진 전쟁 때는 포탄 포함 십만발에 한명 죽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까.”
차 사령관의 말에 작전장교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당시에는 참호나 벙커 그리고 산악지형의 특성이 있기에 그런 결과가 나오기는 했지만, 정말 비효율적인 비율이기는 했다.
“그러고 보니 이 인근도 엄청난 격전지였지요?”
“그러게.”
주변을 돌아보며 차 사령관이 다시 말을 이었다.
“백년도 채 지나지 않아 또다시 셀 수 없는 탄이 쏟아졌지.”
“백년이 뭡니까. 그 이전에도 이 지역에서 벌어진 전쟁이 한두 번이었겠습니까.”
작전장교의 말에 차 사령관이 고개를 내저었다.
아마도 틀린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한강을 중심으로 해서 그 지역을 차지하기 위한 고대에서의 전쟁뿐 아니라 지금의 서울을 노리고 밀고 내려오던 적들과의 전쟁 등…… 셀 수 없을 것이다.
“그물 작전은 일단 성공했으니 부루장군님이 돈좌되거나 할 걱정은 덜었습니다.”
“그래. 이렇게라도 도와야지. 그래야…….”
차 사령관은 뒤엣 말을 잇지 않았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이들은 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한명이라도 더 살아오겠지 하는 그 말을 떠올렸을 것이다.
* * *
“허, 왜 저걸 빌려달라고 했는지 이제야 알겠군.”
닉 레너드 미 대통령이 감탄한 표정으로 혀를 찼다.
한국군이 폭격기들을 빌려달라고 해서 빌려줬을 때에는 그저 포탄을 쏘는 것처럼 재래식 포탄을 쏟아 부을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써먹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하루하루가 급박한 상황에서 뭘 만들어 쏘는 것을 일일이 서로 보고하거나 공유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또, 실험을 해 볼 시간도 없으니 어쩌면 의미없는 짓을 하는 것일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마도 포탄 형태의 투사체에 대 마물용 금속을 코팅한 쇠줄을 연결해서 뿌린 것 같습니다.”
“봤으면 뭐하나? 우리도 빨리 뽑아서 지금 투입하게! 왜? 저작권 때문에 그러나! 후불로 주면 되잖아!”
레너드 대통령의 호통에 다들 고개를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