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5화 격돌
콰콰콰콰콰!
현대전에서 느낄 수 있는 포연과 파편 그리고 화약 내음은 존재하지 않았다.
대신, 마치 SF라 불리는 영화에서나 볼 법한 광원들이 서로를 향해 오가고 있었다.
빛줄기와 빛줄기가 서로 만나며 마치 섬광탄이라도 터지는 듯한 강렬한 빛을 남기고 증발했다.
나름 기세 좋게 반격을 시작했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이다.
처음부터 숫자에서 밀리는 쪽은 이쪽이었다. 크고 작은 마력탄들이 이쪽을 향해 쏟아져 나왔다.
그나마 이것들은 이쪽의 마법사들이 막아낼 만한 정도의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말을 타고 불쑥 튀어 나갔다.
누가 봐도 누군지 알 수 있는 뒷모습이었다.
말고삐를 잡고 한 손에는 거대한 대부를 쥔 남자.
바로 을지부루였다.
“멀거니 있다 다 뒤질 일 있간! 달리라우!”
부루의 쩌렁쩌렁한 외침이 폭음을 뚫고 터져 나왔다.
그 뒤를 따르는 또 한 명의 기마.
“젠자아앙! 왜 또 선두냐고요오오오!”
울먹임과 짜증이 가득한 외침.
그 뒷모습을 보며 누군가가 물었다.
“저런 강림자도 있었습니까?”
“몰랐냐? 쟤 빈이잖아? 고빈.”
“아, 비니…….”
“그건 파프리카나 너튜브에서나 쓰는 이름이고.”
“요, 용감하네요.”
“끌려 나가는 거지. 앞으론 지겹게 볼 거다.”
선두 열의 군인들의 대화가 오가는 사이 그들의 주변으로 기마들이 질주하며 스치듯 나아갔다.
“아…….”
마치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사극을 보는 듯한 복장의 기마들이었다
“개, 개마무사다…….”
개마무사. 고구려의 중장기마대가 질주를 시작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가자아아아!”
“이랴아아!”
단단하게 기합이 든 외침을 터트리며 그 뒤를 이어나가는 이들은 바로 임병화가 이끄는 전신 길드원과 그들의 강림자였다.
마찬가지로 고구려 시기의 강림자들이 주 소속이어서인지 마치 어색함 없이 보였다.
그들을 필두로 각양각색의 기마들이 그 뒤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여기서부터는 역사관 파괴의 현장이었다. 백제, 신라, 가야, 거기에 등자도 없이 달리는 기마도 있었다.
조선과 고려의 복색을 한 이들도 있고 심지어 조랑말을 타고 달리는 허름한 복색의 이들도 있었다.
“Go! Go! Go!”
“Move!”
조금 떨어진 방향에선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외침이 울려왔다.
인디언과 고대 중세의 기사들의 복장을 한 이들.
그리고 반대편에선 마치 중국 역사극을 떠올리게 하는 이들도 나아가기 시작했다.
“와, 여포다…….”
선두는 역시 장웨이와 여포였다.
그때 차량 한 대가 미친 듯이 대열을 관통하며 뒤따라 나왔다.
“으하하! 나 잡아보아라!”
“……저거?”
“얼래? 다시 소환되셨나 보네?”
“맞죠? 꺽정이?”
“입에 사탕 물고 달리는 거 보면 모르냐.”
“운전병이 고생하네요.”
특이하게 임꺽정은 장갑을 덕지덕지 바른 오프로드 차량 위에 서서 호탕한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운전병은 아니고 소환자.”
“아…… 요즘 소환자들 개고생이라더니.”
그렇게 노닥거리던 그들의 스피커로 명령이 떨어졌다.
[우리도 돌입한다!]
그 말에 잠시나마 분위기를 환기시키던 고참병들이 안전고리를 옮겨 달았다.
지금부터는 진짜 위험했다.
날아가고 나자빠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이쪽도 대응해야 했다.
차량에 안전벨트에 의존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였다.
“각 사수 자리로!”
사수들이 각자 좌석에 앉았다. 그리고는 다시 벨트를 채웠다.
차량 운전석 위로 내밀어져 있는 정면의 사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긴장한 사이 차량은 더욱 속도를 높였다.
포연이 조금씩 걷히며 적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조준구로 그 모습을 보던 사수가 당황한 음성을 흘렸다.
“헐?”
상상하던 마물들의 모습이 아니었다.
일렬로 가지런히 선 마족병들이 눈에 들어왔다.
한 손에는 방패. 그리고 다른 한 손에는 제각각의 무기들을 들고 있었다.
마치 영화에서의 야만족과 같은 모습이었다.
그 앞으로 포연을 뚫고 살아남은 마물들이 마치 풀려난 투우마냥 미친 듯이 이쪽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중형 이상의 거구들이다.
그 질릴 법한 모습에 모두가 이를 악물었다. 어차피 더는 도망갈 곳은 없으니까.
을지부루가 활을 집어 들고 빠르게 시위에 화살을 쟀다.
뒤따르던 이들도 마찬가지.
마치 한 몸처럼 동시에 시위를 걸었다. 명령도 없었다.
그저 부루가 먼저 시위를 놓자 화살이 맹렬하게 날아갔고 그 뒤를 따라 수많은 화살이 하늘을 뒤덮었다.
한 발. 두 발. 그리고 세 발.
첫 번째 화살이 적진에 닿지도 않았지만, 그렇게 연달아 연사를 하고 난 뒤 부루는 활을 안장에 달아놓고 다시 손도끼를 들었다.
그리고 훅하니 눈앞으로 다가온 마물들을 향해 손도끼를 날렸다.
쾌래래랙! 쾌래랙!
마치 살수들이 표창을 던지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손도끼들이 불쾌한 소리를 만들어내며 날아갔다.
그렇게 손도끼들이 날아가는 순간 먼저 쏘았던 화살들이 하나둘씩 목표를 향해 내려꽂히기 시작했다.
퍼어억!
화살 한 대.
거대한 몸집에 비하면 마치 젓가락 하나가 박혀든 것 같았다. 그러나 그 하나의 파괴력은 달랐다.
사 미터의 거구가 달려오다가 그대로 뒤로 퉁겨져 날아갔다.
그렇게 퉁겨져 날아가던 거구의 마물이 갑자기 바닥으로 끌어당겨지듯 추락했다.
퍼퍼퍼퍽!
그 위로 떨어져 내린 화살들이 그 거대한 몸뚱이를 땅바닥으로 끌어 내린 것이었다.
콰콰쾅!
사방에서 맹렬하게 달려들던 마물들이 대동소이한 모습으로 바닥에 나뒹굴었다.
비명도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절명한 것들이 태반이었다.
그나마 화살을 피한 일부 마물들은 뒤따라 날아드는 손도끼에 마찬가지로 팔다리가 찢기며, 엎어지고, 자빠지면서 바닥에 널브러졌다.
그런데도 마물들은 많았고 뒤의 마족병들은 여전히 두려움 없이 내달려오고 있었다.
그 두려움 없는 돌진에 을지부루가 제동을 걸었다.
와그적!
퓨켈을 타고 달리던 부루가 스치듯 지나며 대부를 휘두르자 오 미터에 달하던 마물의 척추가 그대로 잘려 나가며 몸뚱이가 허공으로 치솟았다.
달리던 하체는 휘청이다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이대로 백두까지 가는 거이야!”
부루의 호쾌한 외침에 모두가 함성을 내질렀다.
투투툭! 콰칵!
4미터가 넘어가는 기다란 삭(기병용 창)이 능청이었다.
그 끝에는 마물의 가슴팍이나 몸통만큼 커다란 머리통에 틀어 박혀 있었다.
기우뚱하며 뒤로 자빠지는 곁을 스치며 삭을 내던지고 환두대도를 든 가우리의 묵갑귀마대 일부가 다시 한번 몸통을 갈라주었다.
-케에에!
-캬악!
소름 끼치는 괴성이 연달아 울렸지만, 그건 단발마에 불과했다.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그 느낌은 대동소이했다.
죽기 전에 내지르는 외침.
그들은 마물의 비명을 배경음악 삼아 달렸다. 그 뒤를 따르는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찌르고 쳐내고 베어내며 내달려 갔다.
그때 전방에서 팔뚝만 한 보랏빛 작대기 같은 빛줄기들이 쏟아져 왔다.
달리던 마족병들이 무기를 휘둘러 쏘아낸 것들이다.
마치 이쪽에서 활을 쏘듯 도끼를 던지듯 날려 보낸 것이다.
물론 화살도 쏟아지기 시작했다.
앙상한 나뭇가지나 뼈를 갈아 만든 것들이 부루와 기마들을 향해 쏘아진 것이다.
“이딴 거에 맞아 떨어지디 말라! 쪽팔리니까네!”
부루의 외침에 곁을 달리던 천유화가 누군가를 집어 올리며 외쳤다.
“벌써 하나 떨어졌는데요?”
“뭐이야? 어떤 반푼이가!”
그 말에 천유화가 집어 올린 반푼이를 자신의 말 안장 위에 올렸다.
“전 사실 면허가 없어요.”
“이엠병!”
반푼이의 정체는 고빈이었다.
무면허라는 것을 마치 변명이라도 되는 듯 말하며 어색하게 웃는 빈을 보며, 부루는 속을 터트리며 날아드는 마족병들의 화살과 마법 공격들을 막아내었다.
아우우우우우!
그때 뒤쪽에서 마수들의 피어가 울려 퍼졌다.
강림자들의 사이로 뒤섞여 달려오던 마물 중 고빈이 나름 애용하던 거대 늑대형 마물이 천유화의 곁으로 내달려왔다.
그 위로 천유화가 짐짝 던지듯이 빈을 던져올렸다.
덥썩!
“악!”
그런 빈을 거대 늑대가 입에 물더니 그대로 등 뒤로 던졌다.
“야! 침 범벅이잖아!”
상체가 입안으로 들어왔다가 나온 덕인지 빈의 머리는 마치 뽀마드 기름이라도 바른 것처럼 번들거렸다.
그나마 다행히 늑대의 등 뒤에 안착한 빈은 미리 채워져 있던 안장에 올라탔다.
“와이씨! 이거 탑승감 똥망이야!”
말과 다른 형태로 달리는 늑대이기에 계속 출렁이는 듯한 탑승감에 빈이 투덜거렸지만, 지금은 이것으로 족해야 했다.
말과는 달리 이놈은 알아서 피하기도 해주니까.
사실 무면허자인 빈에게 이보다 좋은 탈 것은 없었다.
물론 무면허여도 잘만 이거저거 타고는 다녔지만 말이다.
안장과 허리를 연결하는 안전고리를 채운 빈은 그대로 대부를 휘돌렸다.
쩌억!
체고가 높은 늑대형 마물이기에 중대형 마물이라도 충분히 머리통을 날리기 좋은 높이였다.
“이거 하난 좋네!”
이제는 제법 전사라 불릴 수 있는 빈이 유니크급 탈것을 타고 부루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가라!”
그때 부루가 정면을 가리키며 외치자 빈이 당당하게 소신을 밝혔다.
“미쳤어요?”
앞쪽은 맹렬하게 달려오는 마족병들의 대열이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일부는 창을 들고 마치 고슴도치마냥 세우며 뛰어오고 있었다.
달려들면 아마도 몇 군데에 구멍이 숭숭 날듯했다. 그때 부루가 살짝 뒤를 돌아보며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비니 네놈에게 한 말이 아이디.”
“아아악! 빌어머그으으을!”
부루의 곁을 스치고 나아가며 빈이 울부짖었다.
부루의 명령을 받은 거대 늑대가 뛰쳐나가고, 뒤이어 다른 마수들도 마족병 대열을 향해 들이쳐 갔다.
“제엔자아아앙!”
마수들 사이에서 빈의 절규가 다시금 울려 퍼졌다.
* * *
이쪽에서 돌격을 시작하며 쏟아지던 미사일과 포탄들이 멈추었다. 그러자 포연이 걷히며 적진이 제대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허…….”
상황실에서 숨을 죽이고 그 광경을 바라보던 양현재 대통령이 맥이 탁 풀리는 듯한 소릴 내뱉었다.
그 광경을 함께 보던 이들은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그저 입을 떡 벌리거나 혹은 그런 입을 자신의 손으로 탁 막거 나였다.
“엔드게임이 차라리 났네.”
예전에 개봉했던 어벤져스 시리즈의 마지막 장면이 차라리 귀엽게 느껴질 정도였다.
수없이 펼쳐진 병력들이 을지부루의 앞에 펼쳐져 있었다.
물론 이쪽도 만만치는 않았다.
내달리는 전차들과 차량들은 정말 이쪽에서도 짜내고 짜낸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왜 단일 군단으로 기동 7군단이 세계에서도 손꼽히는지 알려주는 모습이었다.
물론 그 7군단에 더하고 더한 행렬이었기에 규모만큼은 뒤지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허실은 이들이 더 잘 알았다.
선두의 일부를 제외하면 모두가 일반인의 신체에 그저 대 마물용이랍시고 쥐어준 무기가 전부라는 것을.
그나마도 적재량의 한계가 있어 탄이 다 떨어지면 후퇴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나도 미친 것 같습니다. 이 작전을 허락하다니 말입니다.”
양 대통령의 말에 국방부 장관이 쓴웃음을 지었다.
“허락하신 건 아니잖습니까.”
정확히는 을지부루가 간다고 했고 양 대통령은 그저 알겠다고 한 게 전부다.
그에 맞춰서 전력을 끌어올린 것이고 말이다. 허락하고 자시고가 의미 없다.
“……젠장.”
양 대통령은 그저 입술을 깨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