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4화 빛의 기둥이 하늘을 가르고
모니터를 바라보던 젊은 청년이 욕설을 내뱉었다.
“씨파!”
“집중해!”
집중하라고 말을 뱉은 청년도 젊고 젊었다. 그리고 그의 얼굴도 욕설을 뱉은 이와 마찬가지로 일그러져 있었다.
모니터 속에는 마물을 잡아낸 직후 날아든 화염을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허공에서 폭발하는 아군 헬기의 모습이 비춰지고 있었다.
물론 그 하나뿐만이 아니었다.
이리저리 곡예비행을 하던 경비행기 하나도 화염에 휩싸여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그나마 그쪽에선 용케 사출좌석도 없는데에도 낙하산을 펴서 내려오고 있었다.
그러나 전쟁은 비인간적인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비행형 마물 한 마리가 마치 먹잇감을 낚아채듯 입으로 덥석 물고 다시 오르고 있었다.
타타탁! 타탁!
욕설 대신 키보드 소리가 더욱 빨라졌다.
* * *
위이이잉!
빠르게 이동해 온 드론이 드디어 경비행기와 헬기들의 사이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투투투퉁!
마치 곡예라도 부리듯 방향을 틀며 날아든 드론들이 연달아 대 마물용 탄을 쏟아내었다.
부우우우우웅!
“저거 드론이네?”
정신없던 공중전 양상이 조금이나마 바뀌기 시작했다.
드론들이 이리저리 휘젓기 시작하자 일단 숫자에서부터 압도적으로 변했다.
거기에 드론들은 말 그대로 무인이다.
그래서인지 더욱 아슬아슬한 비행과 공격을 시도해 나갔다.
-드론들은 소구경 탄이 한계다. 뭐하나! 제압 사격해!
그때 무전을 통해 명령이 떨어지자 순간 이 정도면 우린 빠져도 되겠지 생각을 했던 조종사가 얼굴을 구기며 비척거리는 마물들을 향해 나아갔다.
그 와중에도 마물들은 마치 분풀이라도 하듯 사방으로 화염과 보랏빛 마력탄을 쏘아내었다.
비행형 마물 하나를 제압했던 조종사는 날아다니는 구체들을 피해 이리저리 동체를 뒤틀었다.
“제에엔장!”
그러나 무차별적으로 날아드는 것들을 모두 피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미안하다아아!”
조종사는 뒤에 탄 군인에게 결국 미안하다는 소리를 외쳐야만 했다.
퍼어엉! 펑!
순간 폭음이 울렸다.
“미, 미안하시면 술 사세요, 형님.”
“어, 어라?”
꼼짝없이 당하나 싶은 순간 지근거리에서 무언가가 터져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바, 방금 뭐였냐?”
조종사의 질문에 잠시 저승 구경을 했던 병사가 뒤에서 대답했다.
“드론이요! 드론들이 주변에서 편대 비행을 하고 있는데요?”
“하아……. 누군지 참 기가 막히게 막았네. 술이라도 한잔 사야겠다.”
그들뿐 아니라 다른 기체에도 서너 대씩 드론들이 마치 호위라도 하는 것마냥 붙어 있었다.
그게 이들에게는 여분의 목숨이 된 것이다.
“다시 간다. 제대로 쏴라!”
“맡기십쇼!”
목숨을 구한 기체가 다시 사지를 향해 뛰어들었다.
* * *
“머, 먹혔습니다!”
“제대로 먹히고 있습니다!”
순간 사방에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복장으로 보아 전형적인 엔지니어 차림의 사내들이었지만, 정확히는 AI연구팀과 드론 엔지니어들이었다.
드론은 두 종류였다.
편대를 운용하는 조종형 드론과 AI를 기반으로 하는 것들.
그중에 AI를 기반으로 하는 것들은 기본적으로 다시 두 가지 형태로 나뉘었다.
능동방어형 드론과 일반 공격형 드론.
능동방어형은 지금처럼 출동해 있는 기체의 주변을 날아가 날아드는 공격에 대신 피격되는 형태를 말한다.
일종의 방패 역할을 의미했다.
물론 이게 만능은 아니다.
소위 브레스라 불리는 화염을 뿜어내는 식의 범위 공격은 막지 못한다.
대신 구체를 날리거나 물리적인 공격을 날리는 것들에 한해서는 최소한의 방어력을 보여 주었다.
그것만 해도 어딘가.
운용도 간단했다.
지금 출격해 있는 모든 비행형태의 아군기에는 드론들과 마찬가지로 아군 식별을 위한 장치들을 달고 있었다.
즉 사람이 타고 있는 유인기는 AI로 조종되는 드론 무리의 군주처럼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능동방어형 드론은 여분의 목숨 역할을 하고 다른 일부의 공격형 드론들은 마치 편대기의 좌우익을 맡는 보조기 역할도 했다.
그것만으로도 지금 전황에서 충분히 하늘을 제압할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저 좋은 것을 침식지에서는 써먹질 못했으니.”
“어쩌면 그래서 놈들이 예상 못 했을 수도 있습니다.”
기술자들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전자기기가 먹통이 되는 침식지의 경우에는 저 좋은 것을 쓰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오죽했으면 크랭크 축을 손으로 돌리는 형태의 차량을 운용했겠는가.
하지만, 이곳은 침식지가 아닌 엄연히 인간의 앞마당이었다.
“생산력이 좀 따라주면 좋겠는데.”
“일부 불량은 어쩔 수 없지만, 최대한 중국 쪽에서 수량을 받아 온 것이 있어 아직은 괜찮습니다. 어차피…… 천년만년 전투를 하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그 말에 피식 웃음을 흘렸다.
“맞아. 아끼다 똥되지. 한번 다 쏟아 넣어 보자고.”
책임 연구원이 이를 악물며 현장 모니터를 노려보았다.
그때였다. 순간 화면이 하얗게 물들며 수 십여 개의 모니터들이 일제히 먹통이 되었다.
“뭐, 뭐야!”
순간 잠시나마 화기애애했던 분위기가 다시 나락으로 떨어져 내렸다.
* * *
“아…….”
조금 전까지만 해도 공중전을 보며 응원을 보내던 군인들이 할 말을 잃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마냥 괴수와 비행기 그리고 드론들이 가득하던 하늘의 한쪽이 마치 지우개로 밀어버린 것 마냥 깨끗해져 버렸다.
그나마 그들이 존재했다는 것을 인증이라도 하듯 하늘에서 눈 내리듯 그 잔해들이 쏟아져 내리고 있을 뿐이었다.
“방금 그거…….”
누군가가 멍한 얼굴로 입술을 여는 순간 운전석 뒤에 달린 외부 스피커로 경고음이 울려퍼졌다.
[모두 꽉 잡으십시오! 산개 기동합니다!]
동시에 너나 할 것 없이 손잡이를 잡았다. 몇몇은 차량에 고정되어 있는 자신의 안전띠를 잡아당기며 확인했다.
“브레스…….”
하얗게 질린 누군가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상급 마족들이 쓴다던 권능의 일종이었다.
차량이 미친 듯이 이리저리 방향을 틀며 내달리는 순간에도 하늘을 향해 보랏빛이 감도는 빛의 기둥이 솟구쳐 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지나간 곳에는 아군이고 적군이고 할 것 없이 남아 있는 게 없었다.
오로지 소멸뿐이었다.
미친 듯이 달려 나가는 차량 위에서는 그저 숨 막힐 듯한 침묵만이 흐르고 있었다.
* * *
“뒤로 빼! 뒤로 빼라고!”
공군 참모총장이 악다구니를 썼다. 사실 그의 명령이 아니더라도 현장 지휘관이 빠르게 명령을 내렸는지 공군을 뒤로 빼내기 시작했다.
마찬가지로 적들도 비행형 마물들이 빠르게 고도를 높이거나 뒤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 사이로 여지없이 브레스의 권능이 스치고 지나갔다.
“빌어먹을! 빌어먹으으을!”
공군 참모총장이 분통을 터트리듯 주먹을 말아쥐며 부르르 떨었다.
방금 사라진 이들 중 태반은 예비역이거나 혹은 지원한 민간인들이었다.
사실 마물과의 전쟁에서는 전투기보다는 이쪽이 더 유리하다는 판단하에 지원을 받았던 것이다.
그리고 다행히 많은 민간항공기들이 지원을 했다.
군인이 전쟁터에서 죽는 건 서글픈 숙명이다. 하지만 지켜야 할 대상인 민간인들은 달랐다.
물론 그들은 전장에 나서며 스스로를 민간인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예비군이 끝나고 또 민방위가 끝이 났음에도 다시 찾아 입은…… 혹은 사제를 사서 입고 입대하는 마음으로 스스로 모인 이들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을 사지로 밀어 넣었던 지휘관의 입장에선 그들 하나하나의 희생이 더없이 괴로움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또 하나.
전투가 시작된 이후 애써 의식하려 하지 않았던 식별번호 하나가 생존을 의미하는 녹색이 아닌 붉은 색으로 변해 있었다.
전사 혹은 기체망실.
입술을 꾹 깨물은 공군 참모총장의 붉게 물든 눈자위가 서럽기 그지없었다.
‘아버지 전 취미로 비행하는 게 더 좋아요.’
굳이 공군을 마다했지만, 결국 전장에 나아간 아들이 언젠가 했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아직 입대할 나이도 되지 않은 대학 초년생 특유의 활기찼던 음성.
그 음성 위로 붉은색 숫자가 가슴아프게 박혀왔다.
“드론을 대체하고 최대한 안전권 범위로 빼고 대기 시킨다.”
그는 붉게 물든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것도 모르는지 태연한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 애써 담담한 목소리로 현장 지휘관을 향해 정해진 방법대로 수습을 명했다.
침묵 속에서 오퍼레이터들의 목소리만 조심스럽게 울려퍼졌다.
“나,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오겠네.”
“……예.”
그렇게 아들을 잃은 수많은 아비 중 하나가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이끌고 잠시 자리를 비웠다.
적어도 화장실 안에선 아비로서의 슬픔을 터트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 * *
하늘을 향하던 브레스가 이번에는 지상을 향하기 시작했다.
자욱한 포연을 뚫고 뻗어진 광선이 달리던 차량들을 향해 쏘아져 나왔다.
콰콰콰콰!
하늘에서의 위력과 달리 장갑이 충실한 전차들이 전면에 나선 덕인지 그 여파는 수십여 미터에 그쳤지만, 그럼에도 십여 대의 차량이 그대로 폭발하며 나뒹굴었다. 뒤따르던 차량이나 인근에서 방향을 전환하던 전차와 차량들도 부서져 날아온 아군의 잔해에 부딪히거나 맞아 이리저리 뒹굴었다.
그럼에도 익숙한 듯 잔해를 피해 계속 내달려 갔다.
그 와중에 일부 마족 마법사들이 방어마법을 펼쳤지만, 딱히 의미는 없었다.
적들이 쏘아내는 브레스는 상급 마족의 권능이었기 때문이었다.
반면에 이쪽의 마족 마법사들은 중하급 마족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부루의 선택을 받은 헤게루이안이 상급 마족으로 각성하기는 했지만, 그래 봐야 조족지혈이었다.
그때 이쪽에서도 보랏빛 광원이 쏘아져 나갔다. 이쪽으로 날아든 것과는 다르게 선명하고 강력한 브레스였다.
-크아아아아!
오랜만에 본체를 드러낸 마룡족 군단장 출신이자 이제는 을지부루의 수하가 된 카르탈마니어였다.
그간 삼사등신 정도의 크기로 몸을 줄여 생활하던 것과 달리 난 원래 이랬다는 듯 십여 미터에 달하는 덩치를 자랑하며 브레스를 뿜어내고 있었다.
브레스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비록 카르탈 마니어와 같은 압도적인 덩치는 아니지만 오 미터에 육박하는 마룡족 출신 전사들이 일제히 브레스를 뿜어내며 대항하기 시작한 것이다.
콰콰콰콰콰!
마치 폭포수가 흐르는 듯한 굉음과 함께 쏘아진 브레스는 날아드는 적의 브레스를 분쇄하며 그대로 적진으로 날아가 박혔다.
콰콰콰쾅!
그와 동시에 포연을 뚫고 비산하는 마물과 마족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감히! 마룡의 일족 앞에서 브레스를 논하는가!
카르탈 마니어가 가슴을 펴며 외쳤다.
비록 카르탈마니어와 몇을 제외한 상당수 마룡족이 중급에 해당하지만, 그들 역시 브레스를 쏠 수 있었다.
사실 브레스 하면 드래곤의 전유물이기도 했다. 그 피를 나눈 마룡족 역시 마찬가지의 권능을 지니고 있었고 말이다.
그 때문인지 중급에 지나지 않더라도 브레스를 쏘아낼 수 있는 능력은 있었다.
물론 진짜 마룡의 브레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적어도 적들이 쏘아내는 것보다는 선명하고 위력에서 뒤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자 화답이라도 하듯 광구들이 포연을 뚫고 솟구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