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3화 고요한 새벽의 나라
기원의 질문에 고위 마족이 그를 슬쩍 보더니 피식 웃었다.
별것을 다 걱정한다는 듯.
-마지막 발악 같은 거요.
“마지막 발악?”
-우리가 이쪽 차원을 넘기 위해서는 신의 힘이 멀어졌기에 가능한 일이지.
“그건 들어서 압니다만.”
-신의 힘이 멀어졌다는 거야 뭐 홀로서기가 가능한 세상이기도 하고 또는 버림받은 세상이기도 한데…… 이곳은 홀로서기 쪽에 가깝다고 봐야겠지. 어찌 되었든 우리가 침공을 하며 법칙을 어겼을 때 발생한 대항마가 바로 별의 파편 혹은 조각이라 불리는…….
“강림자?”
강림자를 그리 부른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소. 그 흔적이 의외로 꽤나 많이 남기는 했지만. 어찌되었든 우리가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많은 수의 마족과 마물들이 넘어 온 만큼 반작용도 발생한다는 의미요. 그게 별의 공명이란 것인데……. 사실 큰 의미는 없는 것이오. 그저 파편보다 모자란 스펙터? 뭐 그 수준의 존재들이 깨어날 거란 의미일 뿐.
“좀 더 자세히…….”
-의미 없다지 않았소?
말을 자르는 고위 마족의 행동에 기원은 궁금함을 더는 표현하지 못했다.
합류하고 나서 보니 마족도 계급이 다양했다.
그중에 마켈그로이언의 은총을 받은 기원의 경우는 중급 마족에 해당하는 힘을 얻은 것이 전부.
이곳의 마족들은 모두가 고위급 마족이었다.
즉 상급이나 최상급 마족들이라는 의미였다. 그러니 중급 마족에 불과한 기원이 제대로 된 대접을 받는 건 사실 불가능했다.
그나마 이제는 군주가 된 마켈그로이언이 이곳에서 처음으로 받아들인 마족이며 또 길잡이이기에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아직도 굴러들어온 돌이나 마찬가지인 마켈그로이언에 불만을 가진 최상급 마족들이 있으니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어쩌면 그들이 가질 수 있는 군주의 자리를 마켈그로이언이 차지한 것이니 말이다.
더는 궁금증을 해결하지 못한 기원이 이를 갈았다.
‘젠장, 뭐든 알아야 대처를 하는 것이 기본인데. 이 새끼들은 대체…….’
자신들은 상위 차원의 존재라고 자부하지만, 기원의 입장에선 한숨만 나왔다.
문화란 존재하지 않는 그저 약육강식의 세계가 전부인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하다못해 중세쯤 되면 모를까 그것도 아니었다.
문화는 없고 힘과 포식만 있는 세상.
‘그래도 내 선택은…….’
그럼에도 기원은 자신의 선택이 맞았다 생각했다.
결국 세상은 포식자가 지배하는 법이니까. 사실 이곳도 별반 다르지 않는 세상이었다.
권력이든 금력이든……, 결국 힘의 형태만 세분화되었을 뿐이다. 결론적으로 강한 자가 모든 것을 누리는 세상인 것은 마찬가지라 생각되었다.
‘어쩌면 더 낫지. 어설픈 배려따윈 필요 없으니까.’
기원은 서늘한 표정을 지었다.
가진 자가 나누지 않으면 질시의 눈을 보내는 패배자들 따위는 없는 세상이니까.
그거 하나만큼은 마음에 들었다.
가진바 지위에 걸맞게 누리고 살 수 있으니까.
‘어차피 난 이 세상만 통치하면 된다.’
기원의 목표는 그것이었다.
오로지 이 세상을 쥐고 흔드는 것. 어차피 마계에는 뜻이 없다.
아무리 파괴되었다지만, 결국 문명은 남기 마련.
그들에게는 마물과 같이 기르는 가축이겠지만, 오히려 그 편이 기원에게는 편하다.
저쪽 편에서 있을 때에도 가장 짜증나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으니까.
가축과 같은 것들이 자신과 동등하다 생각하는 게 가장 기분이 더러웠다.
‘얼마 안 남았다.’
기원의 눈가에 탐욕이 맴돌았다.
덕분에 궁금하던 것도 머릿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 * *
미사일과 포탄들이 쏟아지는 곳들은 진격로에서 살짝 벗어난 지역들에 한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크레이터가 생기면 이쪽 기동력에 영향이 있기 때문이었다.
차량을 타고 이동하는 인원들의 시선에 마물들의 모습이 점점 선명해졌다.
그 포화를 뚫고 나오는 모습에 두려울 만도 했지만, 며칠이지만 그 모습을 질리게 목격했던 한국군들은 딱히 그 모습을 보고 놀라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들의 위로 경비행기들이 먼저 지나치기 시작했다.
“경비행기까지 동원할 필요가 있나?”
장웨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어차피 비행기 하나도 병력 하나로 쳐야 하니까.”
“뭐?”
“숫자 싸움이란 거지. 그리고 막말로 뭐라도 해야 하고. 중요한 건 경비행기만 동원한 건 아냐.”
그 말을 하며 임병화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 시선을 바라봤지만, 딱히 보이는 건 없었다.
“뭔데?”
장웨이의 질문에 병화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세계최고의 프로들이 뒤에 준비하고 있지.”
“응?”
“우리 일이나 신경 쓰자고.”
병화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장웨이가 인상을 찌푸렸지만, 그의 말마따나 지금은 눈앞의 적들이 더 중요했으니까.
그때 허공에서 괴성이 울려퍼졌다.
캬아아악! 캬악!
“비, 비행형이 저렇게 많다니!”
지평선을 채운 것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 위로 날아오르는 마물들의 숫자도 무시 못할 수준이었다.
“와, 영화네 영화.”
“문젠 이게 현실이란 거지.”
장웨이가 영화라고 중얼거리는 말에 병화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그제야 경비행기까지 동원한 이유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웨애애앵!
“이거 무슨 2차대전도 아니고.”
경비행기를 모는 남자가 헛웃음을 흘렸다. 그러자 뒤에 개조된 좌석에 있던 남자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왜요. 로망 있구만.”
“잘 쏘기나 해. 날개 쏘지 말고.”
“에이 각도를 미리 조정해 놔서 거까지 돌아가진 않아요.”
“끙.”
“여하간 내 목숨 좀 부탁합니다.”
“그럽시다.”
2인승 경비행기를 모는 남자가 긴장을 애써 숨기며 대답했다. 그러자 뒤의 현역병이 가스압축식 기관포를 전방으로 겨누며 숨을 골랐다.
동원된 건 경비행기뿐만이 아니었다.
헬기들도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종류도 다양했다.
전투 목적 헬기뿐 아니라 소방 헬기까지 모조리 동원되어 날아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날아드는 적 비행체 마물에 비하면 모자라기만 해 보였다.
“저거 너무 많은데?”
“그러게요. 저렇게 많이 뜰 줄은 몰랐는데요.”
“하, 미치겠네.”
“그래도 이쪽도 쪽수 맞춘다고 준비해 놨다던데요.”
그 말에 헬기 옆을 열고 대 마물 기관총을 붙잡고 있던 사수가 걱정된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걸 믿고 싸우라고?”
그 말에 부사수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강 중사님.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말을 말자.”
부사수의 근거 없는 자신감에 사수를 맡은 강 중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 순간 경비행기들과 헬기들이 급격하게 기동하기 시작했다.
“젠장! 온다!”
화염구들이 그들을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다.
전투가 시작된 것이다.
“시작합니다!”
수많은 모니터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그게 상황실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그 모니터 앞에는 키보드와 마우스를 집은 남자들이 모두 헤드 셋을 차고 있었다.
“중계기 문제없습니다!”
“충전 문제없습니다!”
현장요원들의 외침이 모든 준비가 이상없다는 것을 알리고 있었다.
“그럼 출격합니다!”
동시에 남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각자의 모니터에 집중되고 있었다.
위이이이잉!
달리던 거대한 컨테이너 차량이 마치 날개를 펴듯 한쪽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ᄀ’자 형태로 벽면이 열리자 이내 벌떼 같은 소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우웅!
열려진 직경 일 미터에 달하는 드론들이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그 아래에는 하나같이 쇠파이프 같은 것들을 달고 있었다.
부아아아앙!
그 한 대뿐만이 아니었다. 뒤쪽에 달리던 모든 컨테이너 차량이 마찬가지로 드론들을 뱉어내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거대한 트레일러 차량위에 거치된 콘테이너들도 일제히 문이 열리며 드론들이 쏟아져 나갔다.
그걸 보며 주변을 호위하던 군인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씨바. 게임의 민족인데 한번 보여 줘 봐라.”
이때만큼은 게이머들을 응원하는 군인들이었다.
* * *
“먹힐까요?”
“어차피 도박입니다. 그리고 실전에서 드론이 유용하다는 건 이미 데이터가 있습니다.”
물론 그 데이터는 중동이나 동유럽쪽의 전쟁터 이야기기는 했다.
“게다가 전부 프로 아니겠습니까?”
상황실에서 보고를 올리는 문체부 장관의 답변에 양현재 대통령이 피식 웃었다.
맞다.
저것들을 운용하는 주축은 프로가 맞았다.
전 현직 프로게이머들.
그들을 최대한 써먹기 위해 드론을 최적화하고 준비했다. 이어 그들은 그동안 꽤 오래 연습을 하며 손발을 맞춰 왔다.
물론 프로그램을 활용해서 드론을 운용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자원은 한계가 있기에 이 방식을 활용했다.
게다가 드론은 부서지면 다시 날리면 되니까.
다만 이게 얼마나 유용할지는 아직 아무도 몰랐다.
그러나 지금은 그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그저 가능하다는 판단이 들면 모두 동원하는 것뿐이었다.
“믿으십시오. 고요한 새벽의 나라는 전쟁기술을 통달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문체부 장관의 말에 양 대통령이 의아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누가 그런 소릴 했습니까?”
고요한 새벽의 나라면 보통 한국을 말하기는 했다. 하지만 저런 금칠을 하는 말은 처음 들어본 것이다.
그때 문체부 장관의 옆에 있던 병사가 조심스럽게 답했다.
“블리자듭니다.”
“응?”
“이거 스타 한국 서버 소개글입니다.”
병사의 대답에 문체부 장관이 어색하게 웃었고 양 대통령이 피식하니 함께 웃음을 흘렸다.
“그래. 어차피 뭐라도 동원해야 하는 상황. 믿어 봅시다.”
* * *
부우아아앙!
“크윽!”
경비행기가 몸을 뒤틀자 뒤에 타고 있던 군인이 피가 거꾸로 솟는 것을 느꼈다.
“뭐해! 쏴! 쏘라고!”
“예! 쏩니다!”
투투투투퉁! 투투투퉁!
순간 사선을 놓쳤던 사수가 마물이 표적에 들어오자 연신 대마물 탄을 날렸다.
순식간에 수십 발이 쏘아져 날아갔지만, 그들을 추격하는 마물은 여전히 멀쩡했다.
“빌어먹을 2차대전 때는 이걸로 어떻게 맞췄지?”
“조심해!”
사수의 망연자실한 음성이 끝나기도 전에 조종수의 외침이 들려왔다. 또다시 비행기가 옆으로 방향을 틀었다.
동시에 사수가 비명을 내질렀다.
“어억!”
자꾸만 이리저리 트는 게 적응이 안 되었기 때문이었을까.
사수의 얼굴이 순간 파래졌다.
“웁!”
“토하지 마 새꺄!”
“웁! 죄, 죄송합니다!”
경고가 먹혀들었는지 사수의 목울대가 살짝 움직였다.
어쩌면 반쯤 넘어온 것을 다시 삼킨 것일지도 몰랐다.
콰콰쾅!
그때 한쪽에서 굉음이 울려퍼지며 불길에 휩싸여 떨어지는 헬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을 보는 순간 이를 악물은 사수가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뒈져 버려라아아아!”
투투투투투퉁!
키에에에엑!
그가 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쪽에서 쏜 것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방금 아군 헬기를 격추시킨 비행형 마물이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으로 추락했다.
“잘했어!”
“아싸!”
사수가 주먹을 불끈 쥐는 사이 그들의 동체가 화염으로 뒤덮였다.
콰콰콰콰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