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2화 짧을수록 좋은 것은?
차준우 사령관이 마이크를 잡았다. 마이크를 입에 가져갔지만, 굳게 다물려 있던 그의 입은 선뜻 열리지 않았다.
그의 표정에는 깊은 고뇌가 깔려 있었다.
마치 무엇을 말해야 할지.
또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선뜻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 출발하면 되돌아올 생각은 없었다. 이 전진이 막히는 순간이 전쟁이 끝나는 때다.
적어도 지금 차 사령관의 생각은 그랬다.
그 결과가 승리가 되든 패배가 되든.
“사령관님…….”
그런 그의 복잡한 심경을 아는지 옆에 있던 작전장교가 조심스럽게 그를 불렀다.
그의 표정을 본 차 사령관이 피식하니 웃었다.
자신이 너무 무게를 잡았나 싶었던 것이다. 최소한 주변에 든든하게 보였어야 할 스스로가 모자란 모습을 보였다는 마음에 고개를 끄덕여 주며 입을 열었다.
“전군에 알린다.”
[전군에 알린다.]
사전에 주파수를 맞춰 놓은 각 차량들의 스피커들을 통해 차준우 사령관의 목소리가 동시에 흘러나왔다.
[이제부터 우린 북진한다.]
누군가가 침을 꿀꺽 삼킨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
누군가는 그저 어릴 적 들었던 교장선생의 훈시쯤으로 생각했던 출정 연설이었지만, 막상 울려퍼지는 목소리를 들으니 긴장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 끝에 가면 중국 친구들이 잔치를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푸흐흐.”
누군가 바람 빠지는 듯한 웃음을 흘렸다.
지금 대한민국과 중국 사이에는 마족군단이 장악하고 있기에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날 모두가 함께 배 터지게 먹고 즐기자.]
덤덤한 음성에 모두가 다시 조용해졌다. 그런데 더 이상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대신 누군가의 음성이 끼어들었다. 작전장교의 음성 같았다.
[저…… 끄, 끝이십니까?]
“응?”
[음? 아! 이상. 끝. 뭘 더 말하나. 세상에서 짧을수록 좋은 건 결혼식 주례랑 교장선생님 훈화 말씀인 거 모르나?]
“큭큭큭!”
“오! 역시 좀 알아!”
순간 사방에서 비슷한 웃음소리가 들려나왔다. 이어 차준우 사령관의 외침이 마지막으로 들려왔다.
[자! 모두 닥돌!]
“닥치고 돌격하랍신다!”
“엔진 시동 걸어!”
“가즈아아아!”
사방에서 공포를 누르듯 그 어떤 때보다 쾌활한 목소리들이 울려퍼졌다.
[간 단차대 별로 엔진 시동 거십시오!]
무전에서 명령이 들려오자 수십만 대의 차량이 일제히 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 * *
“시작했습니다.”
“작전은 첫날과 같다. 모두 위치로!”
행렬의 뒤쪽에 있던 포병들이 신호를 기다렸다.
동시에 무언가가 하늘을 가르는 궤적이 보였다.
중단 거리 미사일들이 하늘을 가르고 날아가는 모습이었다.
이어서 뒤에서 벌떼소리가 들려왔다.
개조된 경비행기들이었다. 그리고 조금 낮은 위치로 헬기들이 특유의 로터음을 울리며 이동을 시작했다.
이어 뒤쪽에서부터 포성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발사!”
동시에 대기하던 포병들에게도 명령이 떨어졌다.
콰콰콰콰쾅!
더는 사람의 목소리 따위는 들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포병들은 목이 찢어져라 외치고 있었다.
각자 부대의 방식대로.
포탄이 발사되었음을 알렸다.
* * *
양현재 대통령은 묵묵히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모두가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이 진격이 어디에서 멈출지는 아무도 몰랐다.
사실은 멈추지 않아야 한다.
멈추는 순간이 패배를 의미하는 것임을 모두가 알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개전 첫날은 부담이 덜했다.
전선을 형성하기 위한 작전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번 전쟁은 오로지 북진만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시간은 이쪽 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대지를 내달리기 시작한 행렬을 바라보던 상황실에 누군가의 다급한 목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부산에 균열 발생!”
“강원도 쪽에도 3개소 관측되었습니다!”
“서울에 5개소 균열 징후 포착되었습니다!”
“경기도 인근 군부대에 습격이 이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이쪽의 진격을 기다렸다는 듯 사방에서 균열과 습격사실이 전달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양 대통령은 침묵을 지켰다.
어차피 이 전쟁은 저들이 결정 짓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마지막 전쟁의 시작이었다.
* * *
콰콰콰쾅!
“[email protected]!”
잠시 하늘을 날았던 전차가 땅바닥에 처박히며 굉음이 울려퍼지자 주변의 미군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욕설을 내뱉었다.
적어도 이 상황에서 패닉에 빠지는 이들은 없는 것으로 보아 이들 역시 오랜 기간 전투를 벌여온 정예임을 알 수 있었다.
투투투퉁! 투투퉁!
그 와중에 한쪽에서 미군과는 다른 복식의 전투병들이 다가와 전차를 집어던진 대형 마물을 향해 대마물용 대구경 탄을 쏟아부었다.
그들은 마치 옛날 영화 고스트 버스터와 같은 배낭을 메고 있었는데 그건 압축가스가 담긴 탱크였다.
“러시아 친구들의 뒤를 받혀!”
사방에서 폭음이 울려퍼지는 가운데에 지휘관의 명령에 미군들도 정신을 차리고 화력을 쏟아부었다.
“멈춰! 멈춰!”
그때 누군가가 손을 휘젓자 거짓말처럼 쏟아지던 탄환이 멈추었다.
대신 그 자리를 강림자들이 채웠다.
말을 달려나가는 기병의 모습이 마치 그 옛날 코사크 기병을 떠올리게 했다.
이어서 말을 탄 인디언과 중세 갑주를 입은 기마가 내달려갔다.
십여 미터에 달하던 대형 마물은 두 다리가 난도질당해 비명을 내지르며 엎어졌다.
엎어지는 순간 바이킹을 연상시키는 덩치들이 몰려와 단숨에 머리통을 떼어내고는 다시 뒤로 우루루 몰려갔다.
러시아와 북유럽 연합에서 온 강림자들과 미국의 강림자들이 그렇게 버텨내며 전선을 유지해 나갔다.
“이길 수 있을까요?”
그때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불안한 소릴 했다.
“지금 무슨 소리야! 이 정도 병력이 충원되었는데! 당연히 버텨야지!”
“아니 한국 쪽 말입니다.”
“아…….”
순간 화를 냈던 지휘관이 입을 다물었다.
지금 이쪽 탑에서 쏟아져 나오는 마물의 숫자는 대략 오만이 넘어가고 있었다.
물론 대한민국이 첫날 한 것처럼 쟁여 놓은 재래식 포탄을 쏟아부은 다음에 전투를 벌이는 방식으로 대응하며 실제 밀려드는 숫자는 2-30%가 줄어든 정도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대부분이 중형 마물 이상이기에 버티는 것만 해도 기적에 가까웠다.
그러나 대한민국 쪽은 지금까지 파악한 숫자가 삼십만이 넘어가는 마물과 마족병들이 대치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바 있었다.
“그쪽 신경 쓸 여유가 있나?”
“죄, 죄송합니다!”
“닥치고 자리나 지켜! 우린 우리 전투에 신경이나 써!”
지휘관의 고함소리에 질문을 던졌던 병사는 헐레벌떡 자신의 자리로 뛰어갔다.
“후우.”
그러나 그 병사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지휘관의 마음은 착잡하기 그지 없었다.
그 병사의 질문이 애써 다잡은 마음을 흔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때였다.
크라락!
허공에서 괴성이 울리는가 싶더니 날아다니던 헬기가 뼈만 남은 도마뱀 비슷한 놈에게 꼬리 로터가 작살이 나며 빙글빙글 돌면서 추락했다.
“허억!”
빌어먹게도 떨어지는 방향은 지휘본부가 있는 쪽이었다.
“다 이탈해!”
다행히 미리 알아차렸는지 다들 황급히 빠져나가고 있었다.
지휘관 역시 내달리며 욕설을 내뱉었다.
“빌어먹을 내 걱정이나 하자.”
그는 조금 전 병사에게 한 말을 스스로에게 반복하며 몸을 날렸다.
* * *
“저건 거북선인가?”
장웨이가 달리는 차량 위에서 황당하다는 듯 질문을 던졌다.
조금 떨어진 방향에 트럭 한 대가 달리고 있었는데 그 위에는 마치 거북이 등껍질같이 생긴 것이 올려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창날이 올라와 있으니 누가 봐도 땅 위를 달리는 거북선이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전신길드장 임병화가 대신 대답해 줬다.
“아니. 유럽연합에서 온 강림자들이야. 정확히는 로마군단병을 태운 트럭.”
“…….”
“알잖아. 팔랑크스전술인가 하는 거.”
“그걸 왜 달리는 차에서…….”
장웨이가 황당하다는 듯 말을 하자 병화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습관이라던데? 알잖아. 강림자들은 생전의 습관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거.”
“그럼 저건 건설 노예냐?”
장웨이가 다른 쪽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쪽에는 허름한 한복을 입은 사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그쪽을 본 병화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우습게 보지 마라. 짱돌 맞아 봤냐?”
“뭐?”
“석전꾼이다. 저번에 비행형 마물 날아들다가 땅에 떨어질 때 즈음에는 형체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작살 나 있더라.”
“석전? 돌싸움? 그게 뭐기에?”
“뭐 예전에 동네마다 모여서 서로 돌 던지며 싸우는 시합이 있었다더라.”
“그런데 옷들이 다 다르네?”
“저쪽은 고려팀인가 본데?”
“고려?”
“고구려 팀도 있고 뭐 조선 팀도 있고…….”
병화의 말에 장웨이는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뭐든 쓸모가 있으면 다행이었다.
“그런데 최소한 근접병력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기왓장으로 마물 대가리 깨는 양반도 있는데 뭘.”
장웨이는 병화의 말에 헛웃음을 흘렸다.
이들을 보호하듯 정면에는 전차들이 내달리고 있었다.
그 사이로 가장 많은 것은 오프 로드 차량들이었다. 큼직한 가스 탱크를 차에 적재하고 달리는 모습이 꽤 든든해 보였다.
그 위에도 강림자가 있었다.
등패로 보이는 방패와 환도를 든 병력이다.
그때 장웨이가 정면을 바라보았다.
점점 굉음이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빌어먹을.”
시선을 돌린 장웨이가 그대로 얼어붙어 버렸다.
“What the hell…….”
망원경으로 전방을 바라보던 멧 할러데이 중장이 고개를 내저었다.
지평선이 죄 먼지구름이었다.
포탄이 떨어지고 또 떨어지고 있었다. 크고 작은 화약구름이 연이어 만들어지고 있었다.
문제는 그 사이를 뚫고 이쪽으로 달려오는 마물들의 숫자다.
보는 이로 하여금 질리게 만들 정도였다.
“젠장 미국은 애들 놀이터였군.”
“그러게 말입니다.”
다들 복잡한 표정으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곳에 와서 바로 전투에 투입된 적도 있었지만, 이 정도로 몰려오는 걸 본 것은 처음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달려오는 마물들을 바라보던 중에 전차들이 대열을 박차고 내달리기 시작했다.
“이제 시작이군.”
“위대한 미국을 위하여!”
“이 친구 영화를 너무 많이 본 거 아냐?”
그렇게 서로 애써 웃으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때 멧 중장이 천천히 가슴을 펴며 중얼거렸다.
“그래. 지금 이 순간만큼은 미국을 아니 인류를 위하여지.”
사명감 바로 그것이 그들의 마음을 채우고 있었다.
그때 대지 위로 희미한 빛들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미처 먼지구름에 다들 눈치채지는 못했지만, 이들의 대열을 따라 빛무리들이 조금씩 번져 나가기 시작했다.
* * *
-제법 기세가 좋습니다.
회유와 교언의 군주 마켈그로이언의 말에게르하이오 폰 기오르그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군. 꽤 재미있는 한 판이 되겠어.
-다만 이쪽의 병력이 투입이 되며 별의 공명이 시작된 모양입니다.
-별 의미 없지 않나? 이 좁은 땅덩이에서.
기오르그의 말에 마켈그로이언이 빙긋 웃으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때 오기원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게 무슨 말인지 처음 들었던 것이다.
기원은 곁의 마족에게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별의 공명이란 것이 대체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