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1화 반드시 이기는 법
셔터가 사방에서 번쩍거리는 가운데 공항을 빠져나오던 장웨이는 혀를 내둘렀다.
“여긴 왜 이래?”
“뭐가 말입니까?”
“배 띄워서 다 탈출시키고 그런다더니…….”
중국 현지에선 대한민국이 최후의 결전을 준비하며 전 국민을 소개시킨다며 연일 떠들어 대고 있었다.
일부 무개념 유저들과 언론들은 이참에 군대를 진주시켜서 반도를 회복하자는 소리를 떠들었고 말이다.
물론 그들의 글은 순삭되었다.
언론은 철퇴를 맞았고 말이다. 이전이라면 상상하기 힘든 조치였다.
왜냐면 모르는 척 방치하거나 크게 키우던 게 이전의 모습이었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그게 불가능한 상황이다.
있는 땅도 지키기 힘든 상황에 집어삼키긴 뭘 삼키겠는가.
심지어 순망치한이라는 고사가 지금은 가장 잘 어울리는 상황이었다.
막말로 대한민국이 무너지면 그 다음은 백 퍼센트 중국이다.
그렇다면 중국은 어떻게 되겠는가.
절대 못 막는 다가 정설이었다.
미국도 쩔쩔매고 러시아도 쩔쩔 매는 상황이었다.
막말로 중국이 그동안 애지중지하던 장웨이 등의 핵심 소환자들을 내놓은 이유는 단순했다.
대한민국이 첫날 보여 준 것처럼 무조건 방어만을 유지하는 것.
그러다가 저쪽 마족들이 그럼 일단 위로 올라가서 편한 놈들부터 처리하자고 방향을 트는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이 두려운 것이었다.
그걸 막을 자신이 없었다.
그건 장웨이가 중국에서도 가장 잘 알았다.
대한민국의 강림자들과 함께했고, 또 을지부루를 곁에서 직접 바라보았기에 그가 얼마나 강한지 그 수하들이 어떤 괴물들인지 알고 있었다.
심지어 대한민국은 국토가 좁고 긴 형태였다.
그게 방어전에서는 절대적인 장점이었다.
심지어 반백 년 이상을 대치하던 국가이니만큼 전선이 잘 준비 되어 있었기에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었다.
반면에 땅이 넓은 중국은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는 큰 약점이었다.
대침식 시기를 거치며 이런 환란에 유리한 건 땅이 넓지 않으면서 인구는 높고 전투병과가 압도적으로 풍부한 곳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그런 곳은 한 곳뿐이었다.
바로 대한민국.
하지만 중국은 넓어도 너무 넓은 땅덩이 때문에 대침식 때 속절없이 당한 곳들이 많았다.
오죽했으면 사방에서 소수민족 국가들이 독립하는 것을 수수방관만 했겠는가.
물론 이 시기가 지나면 다시 다 점령하면 된다고 떵떵거렸지만, 정확히는 전부 막아내는 게 불가 능이었기에 손을 놓은 것이다.
그렇기에 대한민국이 무너지면 중국도 무너진다.
또는 대한민국이 막기만 하다가 마물과 마족들이 밀고 올라오면 그 역시 중국의 몰락이다.
그게 가장 두려웠기에 이런 결단을 내린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을 자극하는 행동은 절대 해서 안 되는 상황이었다.
어찌 되었든 그렇게 비장한 마음으로 도착했건만 엑소더스가 벌어지고 있다던 대한민국 공항에는 뭔 놈의 기자들이 이리 많은지 신기할 정도였다.
“전에 입국했을 때보다 더 많은 느낌입니다.”
“그러게.”
장웨이를 보좌하던 중국의 당원이 질린 얼굴로 고개를 내저었다. 실제 그가 출국할 때에 중국 현지는 그야말로 정적밖에 없었다.
등 떠밀려 나온 기자들이 좀 있을 뿐.
그런데 여긴 변한 게 없었다.
무엇보다 표정이 달랐다.
“확실히 배짱 좋은 나라야.”
“예?”
“그거 알잖아.”
장웨이의 말에 당원이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여기 인간들이 우릴 뭘로 부르는지.”
“그야 중국인?”
“쯧. 중국놈.”
순간 당원의 안색이 굳어졌다.
하지만 장웨이의 입은 멈추지 않았다.
“굳이 그런 표정 지을 필요 없어. 우리만 아니라 미국은 미국놈 일본은 일본놈. 러시아는 러시아 놈 그렇게 부르니까.”
“그야…….”
“공통점이 뭔지 알아?”
장웨이의 말에 당원이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누가 봐도 강국이라 알려진 곳들입니다.”
“그래. 그래선가? 표정들이 오히려 독기가 보여.”
“아…….”
그제야 장웨이가 한 말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이런 건 부럽지 않아?”
“우리도 충분히…….”
“그만하지.”
장웨이가 착잡한 얼굴로 고개를 내저으며 공항을 빠져나갔다.
그 뒤로 각국에서 몰려온 소환자와 강림자들도 속속들이 나오고 있었다.
* * *
미국 국방성 요원들은 러시아 소환자들과 강림자들을 맞이하며 묘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그때 인솔 책임자인 데이빗이 익숙한 얼굴을 맞이하며 나아갔다.
“이고리. 미합중국에 온 것을 환영하네.”
“데이빗 잘 있었나?”
“거참. 이런 날이 올 줄이야.”
“푸흐흐.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이지.”
그들은 러시아 군용기에서 내리는 소환자 강림자 그리고 일부 대마물 전용병기로 무장한 소수의 병력을 보면서도 어이없다는 웃음을 흘렸다.
한때는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이었던 사이였던 러시아와 미국이었다.
그게 아니어도 항상 두 나라는 서로의 대척점에 있었고 말이다.
그런데 그 나라들이 이렇게 서로 손을 잡는 날이 올 줄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어찌 되었든 힘이 돼 주어 고맙지.”
“이게 최선이니까. 싸워도 우리끼리 싸워야지 어디서 온 것도 모르는 것들에게 뺏길 수는 없지 않은가?”
이고리의 말에 데이빗은 진한 웃음을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다만 이 상황이 좀 아쉽긴 하군.”
“무엇이 말인가?”
“세계에서 한때 최강을 겨루던 나라들이 손을 잡았지만, 결국 조연에 불과하다는 것이 말이야.”
이고리의 말에 데이빗은 쓴웃음을 머금으며 대답했다.
“영화는 영화고 현실은 현실이니까.”
“그러게. 뭐 그래도 우린 한국을 응원한다고. 꽤 의리 있는 친구들이니까.”
이고리의 말에 데이빗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러시아에서의 한국의 이미지는 의리 있는 나라였으니까.
“우린 혈맹이라네.”
왠지 지고 싶지 않아서인지 데이빗은 영구적 동맹을 입에 거론 했다.
“그런 것 치고는 한국 친구들은 항상 불만이지 않았나? 뭐 이런저런 제한 문제로 말이야.”
아픈 구석을 건드리자 데이빗은 너털 웃음을 흘리며 답했다.
“원래 친구끼리 다툼도 있고 하는 법이지. 그래도 우린 누구처럼 총과 탱크를 들려 보낸 역사는 없으니까.”
“쯧, 이래서 양키들은.”
“뭐라는 거야 이 곰탱이가.”
왠지 두 사람의 눈빛에서 불꽃이 튀는 듯하자 뒤쪽에 있던 한 남자가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두 분. 우리는 여기서 함께 싸우기 위해 온 것이지 서로 싸우기 위해 혼 것이 아닙니다.”
백악관에서 나온 보좌관의 말에 둘은 서로 안으며 대꾸했다.
“원래 우리가 친해서 격의 없는 겁니다.”
“그렇지. 친구. 안 그래도 자네 주려고 보드카를 가져왔다네.”
둘은 언제 싸웠냐는 듯 보좌관을 보며 활짝 웃고 있었다.
그렇게 러시아를 비롯해 일부 국가들이 제2의 전장인 미국으로 슬슬 입국하고 있었다.
* * *
차량들이 달리는 가운데 장웨이는 거의 방어기지화 된 도심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꽤 사람이 많습니다?”
장웨이의 질문에 한국군 군인이 입을 열었다.
“당장 모든 국민들이 빠져나가기는 힘드니까요. 거기에 이 와중에 빠져나갈 곳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왜 굳이?”
“그냥 싸우는 사람들 맘이라도 편하자고 하는 겁니다.”
그 말에 장웨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싸워도 가족은 안전하다.
뭐 이런 느낌일 것이다.
“그런 것 치고는 꽤 병력이 많습니다만.”
“원래는 예비군까지만 남기려 했는데 민방위에 또 재입대를 요청하는 분들이 많아서요.”
“재입대?”
“민방위 끝난 일반 국민들로부터 청원이 몰렸습니다.”
“…….”
군인의 말에 장웨이는 헛웃음을 흘렸다. 그때 옆에 있던 중국 당원이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그럼 지금 병력이 얼마나…….”
“예비군과 정규군이 남북한 합쳐서 천백만 정도인데…… 민방위에 추가 지원이 있어 약 이천만 가량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딱히 비밀도 아니기에 덤덤하게 대꾸했지만 이야기를 들은 장웨이와 당원의 얼굴은 해쓱해졌다.
통일이 되었다지만, 이렇게까지 무지막지한 병력이 있을 줄은 그들도 몰랐던 것이다.
“그리 놀라실 건 아닙니다. 그저 총만 쓸 줄 아는 분들이 대부분이라서요.”
“…….”
아무것도 아니라고 대답하는 한국군 장교의 답변에 당원은 질린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미친 그게 문제란 말이다!’
그때 차량이 멈추었다.
“도착했나?”
“그런 듯합니다. 사실 축하식사 자리라도 만들고 싶지만…… 그 말 했다가 쌍욕을 먹어서 말입니다.”
그의 말에 당원이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하려 했다.
“뭐 대한민국 대통령님 입장에서야 당연히…….”
“아뇨. 쌍욕을 먹은 건 대통령님이십니다.”
“…….”
“한 건 을지부루 장군이시고요. 옆에 있었는데 아, 이런 게 육두문자구나 싶었죠.”
그 말에 장웨이와 중국에서 온 이들은 대한민국 대통령도 참 힘든 자리구나 생각했다.
문이 열리자 광활한 대지에 엄청나게 늘어선 차량과 군인들이 눈에 들어왔다.
“허…….”
장웨이가 내려서며 혀를 내둘렀다. 영상으로 본 것과 현실은 또 달랐다.
그때 반파된 차량이 레카에 끌려 뒤로 이동하는 모습들이 연이어졌다.
“벌써 시작한 겁니까?”
“국지전은 원래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장교의 말에 장웨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오기 직전까지 전투를 벌이다 왔으니까.
다만, 자신이 있던 쪽은 치열하다기보다는 산발적인 전투에 가까웠다.
한쪽에는 연기가 매캐하게 올라오고 있었다.
“응?”
“저쪽은 화장장입니다. 뭐…… 어쩔 수 없으니까요.”
그 말에 장웨이의 얼굴에 쓴웃음이 머금어졌다.
딱히 중국도 별다르진 않았다. 다만 연기의 굵기나 규모가 남달라 보인다는 게 차이점일 뿐.
그때 큰 목소리가 들려왔다.
“구경난 거간? 안 띠네!”
외침이 들려오는 순간 장웨이의 등줄기가 축축해지며 머리카락이 곤두섰다.
동시에 그는 뛰기 시작했다.
“자, 장웨이 님!”
그뿐만이 아니었다.
한국에 와서 훈련을 받았던 경험이 있는 소환자와 강림자들은 일제히 달리고 있었다.
그 선두에는 여포가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한국군 장교가 감탄하듯 중얼거렸다.
“이야. 역시 선착순도 여포구나.”
“…….”
왠지 이 상황이 익숙하다는 듯 중얼거리는 장교를 보며 홀로 남은 당원은 얼떨떨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가시죠. 걸리적거리면 쌍욕 먹습니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전투에 참여하십니까? 아니면…….”
“저, 전 업무 지원차 온 겁니다!”
“예. 그럼 눈에 안 띄시는 게 좋습니다.”
그 말에 중국에서 온 당원은 빠르게 한국군 장교의 뒤를 따라 이탈했다.
자신은 이 전장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이곳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알았던 것이다.
“오! 여포다!”
“졸라 빨라!”
“저 아저씨들이랑 선착순 하면 일등은 매일 뺏기겠네.”
각국에서 온 소환자와 강림자들이 달리는 모습에 군인들이 저마다 신기한 듯 한마디씩 했다.
그때 우루루 몰려온 강림자들과 소환자들이 한쪽에 서서 대열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 앞에는 저승사자…… 아니 을지부루가 그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간만에 얼굴 보니 좋구만기래. 명령은 간단하니까네. 잊지 말라.”
그 말을 들은 군인들이 조용히 부루의 말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뒈지지 말고, 죽이기만 하라우!”
“뒤지지 말고, 죽이기만 하라우.”
“킥킥!”
이어진 말.
“기럼 이 전쟁 이기는 거이야! 쉽디?”
부루의 말에 모두가 벙찐 얼굴을 하고 있었고 기존 군인들은 키득거리고 있었다.
“우리 밥 장군님. 전쟁 쉽지.”
왠지 붓 들고 그림 참 쉽지 않냐고 말하던 밥 아저씨가 연상되는 부루의 명연설이었다.
정말 단순하지만 쌈박한 필승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