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열제 부루강림기-239화 (239/305)

제239화 사망테크

* * *

“대통령님.”

“말하지 말게. 난 지금 너무 쪽팔려서 얼굴을 들기도 싫으니까.”

닉 레너드 대통령은 책상에 얼굴을 묻은체 손을 내저었다.

“……예.”

다들 슬슬 눈치를 보며 뒤로 물러섰다. 그때 누군가가 정보국의 케인 스미스 국장 옆구리를 쿡 찔렀다.

그가 입을 벙긋했다.

‘Why!’

그는 억울했다. 그저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소요를 물리친 방법에 대한 첩보 사실을 알렸을 뿐이다.

하지만, 그도 레너드 대통령의 심정은 이해가 갔다.

오죽 그도 답답했으면 저렇겠는가. 일국의 대통령이 늑대 몇 마리 구걸하다가 욕설을 퍼먹은 거다.

그것도 미 합중국의 대통령이.

물론 그냥 늑대는 아니긴 했다. 마수와 늑대는 종부터가 다르니까.

문제는 그만큼 지금 상황이 급박하다는 것이었다.

지금 이 시점에서 더 시간을 끌다간 지구가 두 동강 날 판이었다. 항복하자는 이들과 끝까지 저항하자는 이들로 말이다.

처음에는 그저 소요사태로 시작되었지만, 번져가는 속도가 처음과 달랐다.

“미치겠군.”

“더는 어쩔 수 없습니다. 시간을 주면 오히려 반군들의 덩치가 더 커질 수 있습니다.”

“반군?”

“이제는 인정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스미스 국장의 말에 레너드 대통령은 한숨을 내쉬었다.

“연결고리는?”

“안타깝게도 없습니다. 자발적으로 형성된 세력입니다.”

반란을 꾸미는 세력들이 마족이나 대원길드쪽의 끄나풀이 연결되었나를 확인했던 것이다.

답변은 아니라는 것이다.

“러시아쪽은?”

“다행히 그쪽은 상황이 좋습니다.”

“이럴 땐 그쪽이 부럽군.”

러시아쪽에서도 초반에도 이런 소요가 있었지만, 그쪽은 과감하게 진압을 했다.

미국 쪽은 그 타이밍을 놓쳤고 말이다.

물론 주별로 나뉘어 진 미국의 정치체계도 이 상황의 원인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어쩌시겠습니까.”

“빌어먹을. 어쩌긴. 자국 국민이기를 포기한 이들까지 지켜가며 이 전쟁을 수행 할 수는 없는 법 아닌가?”

결단을 내렸다.

“알겠습니다.”

내부의 적과도 전쟁을 시작해야만 했다.

“빌어먹을 그러고 보면 제너럴 을지의 말대로 되어 가는군.”

더는 시간을 끌지 않고 최후의 일전을 벌이겠다는 말.

상황이 그렇게 만들어지고 있었다. 지금은 그들을 믿는 수밖에 없었다.

* * *

을지부루가 헬기에서 내리는 고빈을 맞이하며 물었다.

“잘 다녀온 거간?”

“예. 뭐 쌍욕만 늘었네요.”

“씹어먹어도 모자랄 놈들이디.”

그들의 앞에 끝도 없이 늘어선 차량들이 보였다.

“와, 바퀴 달린 건 다 동원됐나 봐요.”

빈이 주변을 돌아보며 한마디 하자 정비를 위해 뛰어다니던 정비사들이 어색하게 웃음을 흘렸다.

대한민국의 오프로드 차량은 전부 동원된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선두에는 흔히 불도저라 불리는 중장비들이 늘어서 있었다.

길을 뚫기 위한 것이었다.

제일 선두에는 며칠 만에 꽤 모양을 갖춘 전차들이 줄을 지어 서 있었다.

물론 괘도형 차량 외에 5톤 트럭 위에 포신을 올린 것도 더 많아져 있었다.

“아무리 찍어낸다 해도 이게 가능해요? 포신만 해도 어디 쇠파이프 잘라쓰는 것도 아닐 건데.”

“기존 전차에서 포신만 떼낸 거니까.”

그 말을 하고 다가온 것은 강문호 중령이었다.

“전차요?”

“전차도 있고 노후된 견인포도 있고. 포만 떼다가 뭐 이렇게 했다는데 전문가는 아니라서 나도. 저 중에 일부는 러시아나 중국에서 공여해온 것도 있고.”

“그쪽이요? 하긴…….”

이 와중에 니꺼 내꺼 따지는 게 더 웃긴 일이긴 했다.

“아마 불안했겠지.”

“우리가 깨지는 거요?”

“그건 아니고. 다른 것 때문에.”

강 중령이 뒤를 슬쩍 돌아보니 김창진이 무장을 하다가 시선을 느끼고는 히죽 웃었다.

“아저씨도 끼어요?”

“야. 너랑 나랑 얼마나 차이난다고 꼬박 꼬박 아저씨냐.”

“예. 행님. 됐죠? 그런데 왜 무장을 하고 계셔요?”

“내 할 일은 끝났으니까 이제 방아쇠라도 당겨야지.”

정보국 소속의 김창진이 하는 일은 이들과 연관된 일들이 전부다. 그 일이 끝났다는 말에 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싸울 일만 남았으니까. 그때 창진이 다시 말을 이었다.

“뭐 어디 뜬 소문이라도 들은 모양이더라고?”

“뜬 소문이요?”

“아다시피 지금 아예 대놓고 정보원들이 득시글거리잖아.”

“그렇죠. 난 처음에 그 아저씨들 기잔 줄 알았어요. 원래 첩보원들이 그래요?”

“설마.”

빈의 말에 창진이 쓴 웃음을 머금었다.

최근에 빈의 주변으로 벌떼처럼 달려와서 질문을 퍼붓던 이들의 절반 이상이 알고 보니 첩보원들이었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딱히 숨기는 거 없이 돌직구를 던지는게 을지부루다 보니 대놓고 따라다니는 것이었다.

이 와중에 뭘 숨기고 캐내고 하는 건 시간도 없고 의미도 없는 일이다 보니 이젠 아예 대놓고 질문을 퍼붓는 게 첩보원들의 일이었다.

원래는 그들을 상대하는 게 창진이었는데 그것도 나중에는 손을 놔버렸다.

가끔 선을 넘는 질문을 던지면 부루가 직접 아구창에 은총을 내려주다 보니까, 그게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무슨 소문이에요?”

빈이 다시 질문을 던지자 창진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뭐 막말로 우리나라가 전세계 대신 총대매고 맞짱뜨러 가는데 이 와중에 이거저거 따지고 하다 보면 뭐…….”

“그러다 보면요?”

“그냥 제일 먼저 저쪽 손잡고 세계통일에 나설지도 모르는 일 아니냐는 뭐 그런 소문?”

“무슨 말도 안되는……. 와 이 형 사기꾼이네.”

“에해이. 난 아니라니까. 어디 술자리에서 새어나갔겠지.”

창진이 너스레를 떨며 대꾸하자 빈이 고개를 끄덕이며 지금 상황을 이해했다.

“그래서 가시는구나. 일단 질러는 놨으니까, 쫓아오지 못하는 곳으로?”

“뭐, 까딱 잘못하면 영원히 쫓지 못할 곳이긴 하지.”

창진이 장비를 툭툭 치며 대꾸했다.

“창진아. 그래가지고 마물 하나라도 잡겠냐?”

그때 서준모 경무관이 다가오며 한마디 툭 던졌다.

“서 형사님도 가요?”

“뭐. 다행히 우리 가족은 우선적으로 배편으로 이동이 가능해서.”

“그거야 이번 전투에 참여하는 병력의 직계가족이면 다 받는 혜택이잖아요. 뭐, 그걸 혜택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지만.”

어차피 이들이 지면 끝나는 일이다.

배를 타고 떠나봐야 시간문제일 뿐이다. 그럼에도 그렇게라도 하면 마음이 놓이나 보다.

오히려 이번 일전에 지원하는 병력들이 늘어서 탈이다.

“그런데 어머니는 안가시나 보더라?”

“예? 엥?”

서 경무관이 고갯짓을 하자 이쪽으로 뛰어오는 여인이 하나가 빈의 눈으로 들어왔다.

“엄마?”

“꼬비니! 너 이새끼!”

빈의 엄마인 마지연이었다. 그녀는 눈에 불이라도 붙은 것 마냥 달려왔다.

그러더니 바로 셔텨를 누르기 시작했다.

찰칵! 찰칵! 차르르르!

“……엄마 뭐해.”

“나중에 돈 될 거 같거든. 부루 아저씨 김치!”

“김치!”

이곳에 있는 이들을 사진으로

남기고 있는 그녀를 보며 빈은 어이없다는 시선을 보냈다.

“왜 여기 있냐고!”

“닥쳐! 꼬비니!”

“아, 쫌! 엄마가 기자는 아니잖아!”

“그러니 더 예술적으로 찍잖니. 사진 작가니까. 아이돌 전문이니까 더 이쁘게.”

그 말 때문인지 서 경무관은 나름 고개를 이리저리 꺽어가며 부루 주변에서 폼을 잡았다.

“내 말이 그게 아니잖아! 여기가 어딘데!”

“어디긴 얼마전까지 내가 던져 주는 사진 수정하며 근근히 먹고 살던 하나뿐인 아들놈이 뒈질지도 모르는 곳에 기어들어간다는 곳이지.”

“…….”

순간 빈은 할 말을 잃었다.

사실 일이 하루하루 급박하게 변해가다 보니 그녀와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시간도 없었다.

그녀는 덤덤한 시선으로 빈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서방도 없는 년이 자식도 없이 어쩌라고. 그러니 하고 싶은 거나 신나게 하련다.”

“나, 아직 살아있는데…….”

“그래. 멀쩡해서 다행이네. 여하간 이거 찍은 건 니가 수정해라.”

“뭐?”

“꼭.”

“…….”

여전히 카메라 파인더에 눈을 고정하고 셔터 누르기에 집중인 그녀의 옆모습이 빈의 시야에 비춰졌다.

하는 일이라곤 사진 수정하라고 파일을 던져주거나 등짝 터지라고 두들기는게 전부였던 엄마였다.

짜증 부리거나 화내거나 술 잔뜩 먹고 전화해서 세상이 뭐 같다며 하소연하던 게 전부였다.

깡패?

어쩌면 그 이미지와도 비슷했다.

그런 사람이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다.

말을 하면서도 아들을 보지 못하고 셔터에 얼굴을 박고 있었다.

“얼마 줄 건데.”

“전보다 더 쳐줄게.”

“내가 몹값이 더 올라서. 내가 수정했다고 하면 더 비싸게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좋고.”

여전히 셔터를 누르는 그녀의 뒤로 다가간 빈이 카메라를 잡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그녀의 어깨를 잡아 당겨 옆구리에 안았다.

“그러고 보니 우리 사진 찍은 지 좀 됐지?”

“그런가?”

빈은 마지연의 얼굴을 보지도 않은채 그대로 카메라를 거꾸로 들고 한 팔을 쭉 뻗었다.

“자, 김치.”

빈의 말에 지연이 웃음을 머금었다.

빈도 웃었다.

찰칵!

셔터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다녀오면 합방 하나 하자. 여기서 찍은 사진 올리면서 방송하면 형님들 후원도 많이 들어올 거야.”

“……그래.”

왠지 답변이 한타임 늦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빈은 그대로 카메라를 그녀의 손에 들려주면서 비로소 얼굴을 마주했다.

“쯧. 우리 마여사 눈 및이 왜 이리 자글자글해졌냐.”

“……백수였던 아들놈이 쓸데없이 유명해지고 중요해져서.”

마지연은 애써 웃으며 대답했다.

“뭐, 이젠 백수 아니니까. 소원은 풀지 않았나? 나름 공무원이나 마찬가진데.”

공무원이라기에는 이미 빈의 입지가 너무 커졌다.

다만 그걸 체감할 시간도 여유도 없이 상황이 눈덩이처럼 굴러져 갔을 뿐.

“그러게.”

“나 가요.”

빈은 그대로 뒤돌아서서 일행들에게 걸어갔다.

“어. 다녀와.”

마지연은 고빈의 뒷모습을 보다가 이를 악물며 고개를 내렸다.

그리고는 카메라 뒤편의 액정으로 시선을 보냈다.

조금 전 빈이 찍은 사진 한 장이 액정에 떠 있었다.

“와, 이걸 어떻게 보정하니.”

사진을 보던 마지연은 피식 웃고는 있는데 눈물 콧물이 다 삐져나와 있었다.

반면 빈은 밝게 웃고 있었다.

마치 걱정 말라는 듯.

액정 위로 눈물 방울이 하나 둘씩 떨어져 내렸다.

그래도 고개를 올리지 못했다. 그랬다가는 멀어져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고 당장이라도 달려가 붙잡을 것 같으니까.

그렇게 그녀가 서서 어깨를 떨고 있었다.

“괜찮은 거간?”

“괜찮아야죠. 사진 수정 하려면.”

“길티.”

고빈의 어깨를 두들겨 준 을지부루가 말을 이었다.

“알아서 잘 살아 남으라우. 기거이 효도하는 거이니까네.”

“보통 이런 땐 내가 지켜줄테니 걱정말라우 뭐 이런 말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각자도생이란 좋은 말 있다 않네?”

“프흐흐흐.”

부루의 넉살 좋은 말에 빈이 웃음을 흘렸다.

“그러나 저러나 아저씬 좋겠어요.”

“뭐이가 말이네?”

빈이 걸어가며 말을 이었다.

“당장 놓고 갈 식구가 없으니까요.”

식구라는 말에 부루가 머리를 긁적였다.

“여기엔 없디. 기런데 말이야.”

“예.”

“내래 꿈을 꿨어야.”

“무슨 꿈이요?”

“생전에 함께 말달리던 이들과 만나는 꿈.”

“헐? 그거 보통 사망테큰데.”

“이 깍 깨물라우.”

끝내 매를 버는 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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