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8화 빌려주세요
그간 사람이 없어 문제였던 수많은 섬들은 지금 외지인들로 넘쳐흘렀다.
하늘을 나는 마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숫자로 계산하면 대응할 만한 정도다.
그래서인지 섬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적지 않았다.
한때 대침식 이후 섬에 벙커형 전원주택이 인기를 끌었다가 시들해졌었다. 그런데 그게 침식균열 이후 다시 인기가 폭증한 것이다.
하지만, 최근의 상황은 그것과 달랐다.
난대 없는 텐트촌이 깔리기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 일부에는 가건물들이 차곡차곡 쌓여 가기 시작했다.
심지어 대규모 방공호 공사까지 이어지는 곳도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환경파괴니 뭐니 떠들었을 단체들도 지금은 침묵하고 있었다.
지킬 환경은 물론이고 세상까지 망하기 직전인데 떠드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저건 다 뭐 하는 거여?”
“단체로 캠핑 오는갑지.”
멀거니 주인 없는 텐트촌들을 바라보며 주거니 받거니 말을 나누던 이들을 본 이장이 혀를 내차며 다가왔다.
“쯧, 생선 배때지 터지는 소릴 하고 자빠졌어.”
“뭔데?”
“거 사람들 대피 시설 미리 짓는 거라자너.”
대피시설이라는 말에 다들 텐트 촌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아직까정 괜찮다 하지 않았나?”
“모른다잖어. 망할지도.”
이장이 착잡한 목소리로 말을 뱉자 노인들이 하나 둘씩 모여 들었다.
“그럼 저기 군부대 들어온 거도?”
“하늘 날아 댕기는 것들 잡을라고 하는 거지.”
“헤엄치는 건 아직 없는갑지?”
“모르지.”
다시 대화가 끊어졌다.
“땅값은 오르것네.”
누군가가 실없는 소릴 하자 다들 피식거리며 웃음들을 흘렸다. 그러자, 이장이 코웃음을 치며 중얼거렸다.
“헹, 다 망한 뒤에 땅값은 무슨.”
아무도 그 말에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저 착잡한 얼굴로 텐트촌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 * *
“대체 어디로 간다는 거야?”
“일단 항구 쪽이랑 남쪽으로 순차적 이동을 한다던데.”
“한두 명도 아닌데?”
“뭐 알아서 하겠지. 예비군 5년차까진 남기고 뺀다는데.”
“예비군은 국민 아니고? 염병 성비 하난 확 바뀌겠네.”
“이미 남자 성비가 떨어진 지 좀 됐잖아.”
저마다 방송을 보며 입을 열고 있었다.
“그런데 대체 섬으로 가서 어쩌자는 거야?”
“그게 해외로 이동하기에는 무리가 있잖아. 일이천 명도 아니고.”
“그건…… 그런데. 저게 가능해?”
다들 고개를 저었다.
가능하지 않다는 건 그들도 잘 안다.
자그마치 육천만 인구다.
현역병 그리고, 예비군과 확장된 징집 병력을 빼도 말이다.
“지금처럼 거점 방어하면서 버티는 건 안 한다는 거야?”
처음에는 혼란이 컸지만, 최근은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배급제로 접어드는 일상에도 적응해 가고 있었고 말이다.
“거점 방어는 예비군이 맡는다더라고. 어차피 퇴거나 이동에는 시간이 막대하게 걸릴 거니까.”
“우선순위 나온다!”
방송에는 이주 우선순위가 나왔다.
[어린아이들을 최우선으로 하여…….]
다들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어린아이들과 노인이 우선이었다. 일각에선 노인을 배제해야 한다는 말이 있었지만, 오히려 노인이기에 초반에 이주를 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육아 보조를 위해서 말이다.
거기에 아이의 엄마들.
아빠들은 졸지에 생이별을 하게 생겼지만, 다들 침묵했다.
이게 최선인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삐이이이이!
그때 사이렌 소리가 울리며 내부 스피커로 방송이 들려왔다.
[상황 해제되었습니다. 질서를 유지하면서 각자 집으로…….]
방공호 문이 열렸지만, 상당수 인원들은 내부에 설치된 대형 텔 레비전의 방송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일차적으로 섬으로 이주 후 순차적으로 국외로 이주 선단을 구성하여…….]
그 아래로 이주를 예상하는 국가나 지역명들이 나왔다.
한숨만 길게 이어질 뿐이었다.
* * *
퍼퍼펑! 펑!
화염병이 날아들고 있었다.
그 사이로 한동안 사라졌던 최류탄이 날아들었다.
“젠장, 저런 건 어디서 구한 거야?”
하지만 최류탄은 이전과 달리 별로 맥을 쓰지 못했다.
화염병을 던지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물안경과 방독마스크를 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물대포가 제 역할을 할 뿐이었다.
과격한 시위인 만큼 여기저기에서 부상자가 속출하고 있었다. .
“계엄령에 시위라니 갈 때까지 갔구나.”
진압을 위해 장비를 차고 나온 경찰들이 허탈한 음성을 내뱉었다.
지금 시위자들은 일종의 반 국가 단체였다.
전국민을 상대로 떨어진 대피령에 반발하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항복을 요청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났다.
심지어 기존 소수 정당 중 일부들이 이를 틈타 세를 불리고 있었다.
물론 계엄하이기에 해당 정당은 해산 명령을 받았지만, 국민을 방패로 길거리에 나와서 이 짓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었다.
“저건 또 뭐야?”
“대원그룹 로고잖아.”
“미친!”
그들이 휘두르는 깃발 중에는 대원그룹 로고로 만든 것들이 꽤나 있었다.
“마치 ‘우리는 살려 주세요’ 하는 거 같네.”
“실탄 사격 명령은 안 내려온대?”
“지금이 오공화국 시대냐?”
“미국이나 중국은 미사일도 날린다던대?”
“미국은 총기 소지가 가능한 나라라 그런 거고, 중국은 군벌이 들고 일어난 거니까.”
하지만 그들의 대화는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뭔가가 그들 주변으로 날아와 터진 것이다.
퍼어어엉!
화염병과 인화물질을 엮어 만든 사제폭탄이었던 것이다.
잠시 휴식을 취하던 진압경찰들 대여섯이 그대로 널브러져 불타고 있었다.
다행히 터지는 순간 정신을 잃거나 빠르게 죽어 버린 모양이었다. 살아서 불길에 뒹굴지 않아도 되니 다행은 다행이었다.
그때 한쪽에서 하울링이 들려왔다.
아우우우우우!
“으, 으아악! 늑대다!”
“히익!”
그때 한쪽에서 울려오는 하울링 소리에 시위대가 혼비백산했다.
경찰 진압대를 상대로 용맹하게 싸우던 모습은 온대간데 없었다.
“우리는 아군이야! 아군이라고!”
그때 한 사내가 대원그룹 깃발을 흔들며 거대한 늑대 앞에서 외치고 있었다.
덥썩!
“도망가!”
“으아아아!”
사방에 더 큰 비명이 터지며 사람들은 그대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 아군임을 밝히며 외치던 사람이 늑대의 아가리 속에 한입에 들어가 버렸기 때문이었다.
도주하는 시위대를 바라보던 고빈이 늑대의 곁으로 다가와 입을 열었다.
“먹지 마. 입맛 버린다.”
빈의 말을 알아들은 듯 거대 늑대형 마물은 방금 입에 넣었던 인간을 옆으로 튀하니 뱉어내었다.
털푸덕.
침으로 범벅이 된 사내는 똥과 오줌을 지리며 바닥을 뒹구르고 있었다.
“여기 좀 잡아가세요.”
“아, 예.”
빈의 말에 얼떨떨한 표정을 짓던 진압경찰들이 몰려와 그를 일으켰다.
죽지 않았는지 확인까지 한 그들은 거대한 늑대가 무서운지 얼른 실신한 사람을 끌고 멀어져갔다.
아우우우!
크허어엉!
여기저기에서 마수들이 목소리를 뽐내며 소리를 내지르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며 빈이 한숨을 내쉬었다.
“염병. 시간도 없는데 여기까지 와서 내가 뭔 지랄이냐.”
서늘한 눈으로 도주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던 빈이 옆에 서 있는 마수의 다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니들이 차라리 낫다.”
이런 빈의 말에 마수는 입안까지 들어왔다가 뱉어 버린 음식에 대한 미련 때문인지 혀를 날름거릴 뿐이었다.
* * *
“시위대가 빠르게 와해되고 있다고 합니다.”
“영상은 확보했습니까.”
상황실 요원의 보고에 양현재 대통령이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경찰청장이 화상으로 보고를 했다.
[인근 카메라를 비롯해서 모든 것을 동원해 채증은 해 두었습니다. 거기에 이번에 동원되며 오간 문자들을 모두 채증해 두었습니다.]
“만약, 이 전쟁이 승리로 끝나면 확실하게 정리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경찰청장은 양 대통령의 말에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이거 괜찮을까요?”
마수들이 날뛰는 사이 사방에서 흩어지듯 도주하는 사람들 중에 사상자가 속출하고 있었다.
“그럼 총이라도 씁니까?”
“그건…….”
어쩌면 그건 상대편이 원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특공대가 시위 주동자와 그 일행들을 확보했습니다.”
“먼지까지 전부 탈탈 털어서 얼마나 개처럼 살았는지 방송에 공개 하세요.”
“아직은 조사가 원활할 수가 없어서…….”
“저런 놈들 치고 멀쩡하게 산 놈들 없을 겁니다. 독립투사도 아니고 나라 팔아 처먹겠다고 설치는 놈들입니다.”
“철저히 털겠습니다.”
계엄이니까 가능한 일들이었다. 그나마 계엄치고는 유순한 대응이기도 했다.
“사상자 때문에 아무래도 반발이 염려됩니다만.”
“직접 따지러 오라고 했으니 그대로 알려 주십시오.”
“…….”
이 모든 일의 원흉은 양현재 대통령이 아니었다.
물론 그가 직접 재가를 한 것은 맞았지만, 그건 재가라기 보단 통보에 가까운 방식이었다.
“만만한 건 정부 아니겠습니까?”
“그러라고 하든지. 까짓 을지부루장군 옆에서 꼬리라도 치지요. 그럼 어쩔 겁니까.”
“하, 하하…….”
을지부루의 명령이었다.
뒤에서 시끄러운 놈들부터 조지라는.
시위 상황을 본 을지부루가 어이없어 하며 늑대밥이라도 써먹어야겠다며 마수들을 보낸 것이다.
물론 정말 식사 대용은 아니었고, 일종의 역발상이었다.
마물에게 아무리 꼬리를 흔들어도 아군이 아니라는 것 말이다. 물론 동원된 것은 을지부루의 수족인 마수들이었지만, 방송을 활용해 사실을 뭉뚱그리기로 했다. 물론 마수들을 알아 볼 사람은 많았지만 진실은 이후에 알리면 된다.
지금은 이런 공포도 활용해야 했다.
그 덕에 물리적인 타격이 먹히지 않는 마수들이 시위대를 훌륭하게 해산시킨 것이고 말이다.
“젠장. 그래도 사형은 안 받겠지.”
양 대통령이 쓴웃음을 머금으며 중얼거렸다.
그에게도 이 일이 꽤나 부담이었던 것이다.
“저…….”
그때 외교부 차관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무슨 일입니까?”
“그, 미국 쪽인데…….”
“왜요? 맷 중장 이야기는 끝난 것으로 아는데. 혹시 수송선단에 차질이 생겼답니까?”
“아니요.”
양 대통령의 질문에 외교부 차관이 어색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 늑대형 마수 좀 빌릴 수 없냐고…….”
“…….”
양 대통령을 비롯해 다들 할 말을 잃었다.
양 대통령이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그쪽은 우리나라 모니터링이라도 한답니까? 대한민국 라이브 방송도 아니고, 이거 뭔…….”
어이없을 뿐이었다.
그러나 외교 채널은 이제 시작이었다.
갑자기 늑대를 찾는 국가들의 통신이 빗발치기 시작했다.
한숨을 내쉰 양 대통령이 입을 열었다.
“전부 화상 통신 연결해.”
“어떻게 하시려고 합니까?”
“늑대 주인에게 직접들 물어보라고 합시다.”
“예에?”
“우린 거기까지. 염병 이 짓도 못해 먹겠네.”
양 대통령의 말에 다들 헛웃음을 흘렸다.
* * *
“지랄 말라우. 저거이 무슨 동네 똥개 새낀 줄 아는 거간?”
“헉!”
양현재 대통령이 권한 밖이라며 연결해 준 연합국 수반들의 통화에서 을지부루가 대차게 질러 버리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