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열제 부루강림기-234화 (234/305)

제234화 방송도 전쟁이다.

* * *

철저한 경호를 받으며 차량을 타고 이동중인 판도라 멤버들과 이승배 그리고 광호는 말없이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침식 당시에도 이미 도심이 파괴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갔던 일을 직접 경험해 보았던 그들이었다.

그러나 그때와 지금의 충격은 또 달랐다.

하늘모르고 치솟아 있던 랜드마크들은 흉물이 되어 무너져 내렸고, 한강을 가로지르던 다리도 삼분지 일이 끊어져 있었다.

“사상자가 많았나 봅니다.”

“예. 테러나 마찬가지였으니까요.”

함께 탑승해 있던 기동대원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래도 대침식때에 비하면 좀 낫지 않을까요?”

“글쎄요.”

기동대원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전국이 완전히 전시체제에 들어가 있던 상황이었다.

대침식 이후 도시 곳곳에 만들어져 있던 방공호들은 인근 시민들이 제2의 집으로 인식할 정도로 익숙해져 있었다.

대침식이 아니어도 전쟁준비라면 이골이 난 국민성 덕에 빠르게 적응을 한 덕이었다.

그렇기 때문인지 랜드마크가 무너지고 다리가 꺽여 나가는 상황에서도 피해는 대침식에 비한다면 나은 편이긴 했다.

실제로 방송에선 도표까지 동원해서 피해가 적다고 선전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분위기는 마치 찬물을 끼얹은 것과 같이 변해 있었다.

사실 대침식 당시는 미지의 적에 대한 공포에 대한 충격이 더 컸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충분히 막아 낼 수 있다고 자신하던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수십 수백만발 이상의 포탄을 일시에 쏟아내며 국토 수호의 의지를 보여주었다.

마물에 지나지는 않았지만, 수만의 마물들을 일거에 소거 시킨 첫 전투는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기에 충분했다.

거기에 본격적인 전쟁 전에 벌어졌던 침식 균열등 국뽕을 동원해서 자신감을 심어주기에는 충분했었다.

그러나 이번 테러와 같은 사건들은 더는 위협이 전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어쩌면 이는 대침식때와 비슷하기는 했지만, 또 다른 게 그들의 전투 행태였다.

균열이 벌어지고 마물이 쏟아지면 군대가 출동해서 국민을 보호하며 싸운다.

그게 대침식 당시의 전쟁이라면 지금은 갑자기 건물이 무너지고 죽었던 사람들이 되살아나서 적이 되었다.

심리를 완벽하게 흔든 공포였다.

심지어 그 상황에서 인터넷 상에 숨은 대원길드의 잔존 세력은 끊임없이 공포를 전달해 나갔다.

이쪽에서 인터넷과 방송을 무기로 삼았다면 그들은 지워도 지워도 올리는 영상과 댓글로 공포를 키워 나갔다.

이 상황에서도 그들이 올린 것들을 재생산해서 다시 퍼트리는 관종은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희망을 건든 것이다.

차량 내부에 설치된 모니터에서는 전 세계적으로 이번 사건에 관한 내용이 쏟아지고 있었다.

전 세계의 마천루들이 마치 도미노처럼 무너지는 장면.

콜롯세움이 무너지고 개선문이 쓰러졌으며 자유의 여신상이 드러누웠다.

중국과 일본도 마찬가지.

그에 비하면 아직 한국은 최소한의 피해로 막아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저걸 위안이라고…….”

한쪽에 있던 전창걸 대표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는 잠시 집안 식구들이 걱정된다며 가 있었다가 이번 사건에 휘말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판도라 멤버들이 공격을 받자 가장 먼저 달려왔다.

그뿐이 아니었다.

“뭐 그런 거 아니겠소? 우리가 당한 건 정말 잘 막은 거다. 그러니 걱정 말아라. 뭐 이런 말 하고 싶은 거지 뭐.”

육의찬 감독이 옆에서 구시렁거리며 대꾸했다.

사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이번 습격에서 육 감독과 액션스쿨의 배우들이 꽤나 선전을 해주었었다.

이들로써는 억울했지만, 을지부루가 이들을 마치 호위무사로 생각했는지 정말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개처럼 굴렸던 것이다.

그 덕에 송가은 작가를 구해낸 것도 그들이었고, 판도라 멤버들을 구출하기 위해 가장 먼저 길을 뚫은 것도 이들이었다.

물론 그 덕에 반절 이상이 지금 응급차량에 누워서 실려 갔지만 말이다.

“다른 거 봅시다. 보다 보니 거북하네.”

육 감독이 채널을 돌리다가 순간 멈칫했다.

“어?”

“어?”

“앗!”

동시에 차량 내부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놀람 섞인 비명을 던졌다.

“저, 저 양반이 왜 여기서 나와?”

화면 안에는 고진천이 말을 달리고 있었다.

* * *

“어? 이걸 방송해 준다고?”

고빈은 신기한 얼굴로 화면을 보고 있었다. 그 옆에선 임병화가 흥분한 얼굴로 외치고 있었다.

“이, 이건 감독판이다!”

“이건 못 구한 건데!”

“하악!”

그간 갑주 입고 말을 달리며 무게란 무게들은 죄 잡던 이들이 마치 방구석 덕후마냥 하악거리고 있었다.

“어우야!”

“이거 후반작업 다시 한 건가?”

“글세?”

그들이 보고 있는 것은 바로 태왕기였다.

고진천이 등장했던 전설적인 비운의 명작.

왜 이게 비운이냐면 서울 테러 사건 이후 싹 다 자취를 감추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인터넷 세상이기에 영상을 소지한 이들은 어디나 존재했다. 그중에서 전신길드는 진성 팬들이었고 말이다.

“난 저거 봤는데.”

빈의 말에 다들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어, 어떻게.”

“판도라요.”

“아!”

판도라라는 말에 다들 이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이거 금지 아니었나?”

“그러게? 이걸 왜 틀어주지?”

“어차피 수배도 다 빠졌는데요. 뭘.”

수배가 빠졌다는 말에 다들 고개를 돌렸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수백명이 죽어나간 사건이다.

물론 죽은 이들이 범죄자와 해외의 용병들이었다지만, 폭탄 테러가 아닌 냉병기로 학살을 벌인 것은 현대에서는 유일한 기록이었다.

당연히 고진천과 그 일행들에게 수배가 떨어지는 것은 당연했다.

당시 판도라 멤버들과 인연이 있던 이들이 얼마나 고생했었는가.

분명 모두가 지켜보는 상황에서 마치 마법처럼 사라져갔다지만, 수배기록을 남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게 사라졌다는 말에 다들 놀란 것이다. 하지만, 몇몇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세계의 구원자급으로 떠오른 이가 바로 을지부루다.

그가 모시는 이가 바로 고진천인데 그를 수배때린다는 것이 말이나 되겠는가.

아마 눈치 보느라 알아서 없앴을 것이다.

다만 이게 이렇게 방영되는 일은 전혀 다른 상황이다.

“사실 저때 논란도 많기는 했지만, 꽤나 충격을 크게 주기는 했죠.”

“그렇지. 영상도 그렇지만, 마지막에 남기신 말도 그렇고…….”

다른 채널을 돌려보던 이들이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대충 알겠네요. 다른 쪽에 불사의 이순신에다가 청산리 전투에 어우.”

이름만 들어도 이해할 수 있었다. 다들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아무리 국난극복이 취미라는 소리를 듣지만,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방송을 틀어주냐.”

“그러게 말입니다.”

지금 방송은 딱 두가지다.

뉴스와 국난극복을 주제로 만들어진 드라마와 영화들이다.

심지어 인디펜던스 데이까지 나오지……. 이로써 메시지는 충분했다.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그러니 이번에도 잘 해봅시다.

이런 노골적인 메시지였지만, 다들 욕하기보단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해야지.”

“안 하면 망하니까 당연한 거잖아요.”

“이 새끼가!”

육 감독의 중얼거림에 승배가 구시렁거리다가 결국 모가지를 제압당했다.

그렇게 대한민국은 국난극복을 강요하고 또 강요 받았다. 그럼에도 익숙한 듯 하루하루를 준비해 나갔다.

* * *

“What the f**k!”

존 레너드 대통령의 입에서 격렬한 욕설이 튀어나왔다.

사방에 건물이 무너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당해서가 아니었다.

그 와중에 벌어진 무정부 상태에 열이 뻗친 것이다.

“일단 주 방위군들이 수습을 하고 있으니…….”

저번 테러 때문에 미 국무위원의 공석들을 채운 새로운 얼굴들이 이마에 진땀을 빼며 답하자 레너드 대통령이 거칠게 말을 이었다.

“지금 마물들이 쏟아지고 사방에는 테러를 자행하는데 지키고자 하는 나라의 국민들은 상점을 털고 이웃에게 총질을 해 대는 이 지랄 같은 상황에 미처 버릴 것 같다는 말이네!”

“그, 대원길드에서 세뇌를 감행했던 이들의 경우를 보았을 때 지금 벌어진 일들에도 연관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 그럴 수 있겠지. 저 빌어먹을 마족인가 마왕인가 하는 놈이 명령을 내려서 ‘그래! 상점을 불태우고 보석과 텔레비전을 강탈해!’라고 명령을 내렸을 거야. 그렇지?”

“그…….”

“Oh! Shit! 그러고 보니 90년대의 폭동도 놈들이 미리 사전작업을 했을 수도 있겠군! 또 경관들을 사주해서 인종 간 문제도 터트리라 하고. 지니어스! 자넨 천재야! 아무도 몰랐던 놈들의 음모를 알아냈어!”

그 광경을 지켜보던 케인 스미스 국장이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더 하시면 제가 직접 담당의에게 진정제를 탈취해와 대통령님의 목덜미에 박아버릴 수밖에 없습니다만…….”

“후우. 차라리 그래 주게.”

스미스 국장의 말에 레너드 대통령이 이마에 손을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며칠간 잠을 제대로 못 주무셔서 더 그런 듯 합니다.”

“잘 수가 있어야 자지 않겠나.”

“사실 이건 우리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중국과 일본, 그리고 유럽에도 마찬가지로 벌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심지어 한국에도 소요가 벌어졌다고 합니다.”

“그래. 그중에 일등은 우리군. 역시 세계를 선도하는 국가야. 그리고 한국 이야기는 나 웃으라고 한 건가?”

“어찌 되었든 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소요사태는 벌어지고 있다는 의미로 보고드린 겁니다.”

“위로는 안 되지만. 알겠네.”

스미스 국장의 보고대로 지금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이대로 가다간 군벌정치가 부활할 지경이었다.

심지어 새로운 질서를 부르짓는 놈들이 생겨나기도 했다.

이 상황에서 저 마물들을 몰고 온 놈들이 새로운 메시아라고 떠드는 광신도들마저 있으니 할 말은 다했다.

물론 이 부분은 세계 공통이다.

어쩌면 이렇게 하다 보면 목숨만은 건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에 기대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때였다.

“메, 메시지가 왔습니다.”

“메시지? 어딘가?”

“그, 그게…….”

“전국으로 송출되고 있습니다. 우리뿐 아니라 다른 나라들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뭐?”

* * *

“Shit…….”

방송국 송출실로 보이는 곳에는 사방에 피가 뿌려져 있었다.

이 사달을 벌인 이들이 마지막 절차로 스스로의 머리에 총을 당긴 것이다.

“그래도 다시 한 번 머리통에 총을 당길 필요는 없으니 다행인 건가.”

시신을 수습하던 군인 중 하나가 씁쓸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난리가 나겠습니다…….”

“……저건 정치하는 양반들이 알아서 할 일이니까.”

지휘관으로 보이는 이가 애써 무덤덤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때 군인 하나가 멍하니 화면을 보고있었다.

“뭐하나? 빨리 움직이지 않고.”

“그런데 저거 진짜일까요?”

“……닥치고 이 시체나 옮겨.”

“예.”

질문을 던졌던 군인이 다시 움직이는 사이 지휘관이 자신도 모르게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여기에서 자신의 머리통에 총을 당기고 죽은 이들이 이미 송출해 버린 화면이 재생되고 있었다.

* * *

-다른 세계와 달리 이곳은 단순한 장악만을 목적으로 두고 있습니다.

이는 엄청난 특혜입니다.

어차피 세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이 상황을 끝내고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해왔듯 출근해 일하고 퇴근해서 술 한잔 기울이면 됩니다.

화면에는 한 남자가 차분한 얼굴로 말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는 오기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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