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3화 붉은 선
-크아아!
순간 검붉은 스켈레톤이 주인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는 것 때문인지 꺽정의 등판을 꿰뚫고 관통한 검을 그대로 내리그었다.
그 사이로 피분수가 솟구치며 이내 그것은 빛무리로 변해 하늘로 솟구쳐 올라왔다.
“꺽정!”
그 모습에 놀란 광호가 그를 불렀지만 꺽정은 그대로 환도를 뒤로 휘둘렀다.
서걱!
검붉은 스켈레톤의 머리통이 하늘을 날았다. 하지만 관통된 칼 때문인지 꺽정이 풀썩 하고 무릎을 꿇었다.
그의 상처를 중심으로 빛무리가 점점 짙어지기 시작했다.
-이거야 원 개망신이로군.
칼마인이 한쪽 잘려진 다리를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의 몸이 천천히 떠올랐다. 마법을 이용해 몸을 띄운 것이다.
꺽정이 몸이 꿰뚫리는 것을 무시해 가며 애써 다리를 잘라내었지만, 그 행동이 의미없게 되어버린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좀 쉬어야겠군.
무심한 듯 그가 손을 뿌리는 순간 그의 손에서 짙은 보랏빛 화 살들이 만들어져 판도라 멤버들을 향해 날아갔다.
그 앞을 광호와 승배가 가로 막았다.
콰창!
처음 두 발은 광호와 승배가 어거지로 막아내었다. 부루에게 시달린 것이 의미없는 일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판도라 멤버들을 향한 화살은 두 개가 전부가 아니었다.
그때 한쪽에서 노트북이 날아와 또 하나의 화살을 막아내었다.
막았다기 보단 날아온 노트북이 대신 부서진 것이다.
그러나 그 폭발로 인해 세인과 제이 그리고 레이니가 뒤로 나자빠지며 칼마인이 쏘아낸 화살들이 그녀들을 스쳐지나가 버렸다.
-쯧. 귀찮게 구는구나.
칼마인이 인상을 찌푸리며 노트북이 날아온 방향을 바라보았다.
“어, 언니!”
노트북을 던진 것은 송가은 작가였다.
그녀의 옷 여기저기가 찢어지고 거뭇한 검뎅이 묻은 게 꽤나 고생한 모양이었다.
“세인아!”
그녀는 그대로 달려와 판도라 멤버들을 얼싸 안았다.
“왜 와!”
제이는 그녀에게 고맙다는 말대신 왜 위험한 곳으로 뛰어들었냐 타박했다.
-그러게 왜 왔을까. 의미 없을 것인데.
칼마인이 그런 그녀들을 보며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다시 손을 들어올렸다.
-걱정 말아라. 내 특별히 깔끔하게 되살려서 우리 군단의 선봉에 세워 줄 터이니.
칼마인의 말에 그녀들은 절망대신 적개심 가득한 눈빛을 그를 향해 보냈다.
주변에 주운 군용 대검따위를 들고 칼마인을 향해 내밀었지만, 의미 없어 보였다.
“쿨럭! 도, 도망가!”
한쪽에 널브러진 승배와 광호가 그녀들을 향해 외쳤지만 의미없었다.
주변의 군인들은 그녀들을 보호하기 위해 다가오려 했지만 난전이 벌어져 있는 상황이었기에 여의치 않았다.
“이노오오옴!”
-시끄럽구나.
꺽정이 비틀거리며 다시 몸을 일으켰지만, 칼마인이 손을 뻗자 폭음과 함께 다시 뒤로 나자빠졌다.
“크윽!”
그 와중에 승배와 광호가 기다시피 그녀들에게로 다가왔다.
그 모습을 보며 칼마인이 웃음을 지어주었다.
-재미있는 것 같구나. 죽을자릴 피해야 하는 것이 정상이건만. 뭐 나쁠 것 없지.
칼마인의 손에서 강렬한 빛이 만들어졌다.
동시에 그녀들의 눈에 절망이 어렸다.
“씨파!”
그런 그녀들을 마지막까지 보호하려는 듯 승배와 광호가 온몸으로 네 여인들을 감싸안았다.
모두가 마지막을 직감한 듯 서로의 손을 다잡았다.
누구하나 피하려 하지 않았다.
여기서 더 피한다는 것이 의미 없다는 것을 알아서인지 몰라도 말이다.
-자 더 시간 끌지 말자꾸나.
칼마인이 그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비틀거리며 다시 몸을 세웠던 임꺽정이 무릎이 다시 풀리며 주저앉았다.
“우라질!”
작게 욕설을 뱉으며 손에 들려 있는 환도라도 집어던졌다. 하지만 그 환도는 칼마인의 몸을 뚫지 못하고 도로 튕겨 나갔다.
마지막 몸부림마저 의미 없어진 그때 꺽정의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선이 보였다.
연기인가 싶었다. 하지만 연기처럼 희미한 그것은 붉은 빛을 띠고 있었다.
함께 뭉쳐있는 세인과 승배등 그들의 몸에서 한 가닥씩 흘러나와 있었다.
그 희미한 붉은 선들이 한쪽으로 엉키듯 하나로 뭉쳐지고 있었다.
그 희미한 붉은 선의 끝에 붉은 그림자 같은 것이 뭉쳐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칼마인의 앞에 어른거렸다.
분명한 것은 그게 칼마인이 만들어낸 것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랬다면 칼마인의 동공이 저렇게 커졌을 리는 없었으니까.
이어서 빛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콰아앙! 굉음과 함께 칼마인이 만들어낸 광구가 터져나간 것이다.
그 후폭풍으로 칼마인 주변에 있던 모두가 밀려 나가며 뒤로 나자빠졌다.
한데 엉킨 채 밀려 쓰러진 그녀들이 눈을 떴다. 이내 그녀들을 몸을 던져 막아낸 승배와 광호를 살폈다.
-이…….
칼마인의 경악에 찬 얼굴이 세인의 눈에 들어왔다.
그 주변으로 붉은 안개가 흩어지고 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는 몰라도 하나는 정확했다.
칼마인의 위협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 말이다.
왜냐면 그의 상체가 사선으로 미끄러져 내려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어 허공에 띄우고 있던 그의 상체와 하체가 바닥으로 동시에 떨어져 내렸다.
-이, 이런 어이없는…….
칼마인이 허무한 듯 한 말을 남기곤 그대로 화르륵 불타오르며 이내 검은 재로 변해 버렸다.
“무, 무슨 일이야?”
그때 광호가 비틀거리며 몸을 돌리다가 꺽정의 환도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것을 던진 듯 한자세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꺽정이가 눈에 들어왔다.
“아!”
광호는 그대로 비틀거리며 꺽정에게 달려갔다.
점점 빛으로 변해가는 꺽정을 보며 광호가 그를 보듬었다.
“고, 고맙다…….”
시일이 지나면 다시 되돌아올 강림자다. 하지만 이순간 광호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희생이란 건 그런 거니까.
빛으로 변해가던 꺽정이 입술을 떼었다.
“귀신인가…….”
“뭐?”
“뿔이 여러개인…….”
하지만 꺽정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그는 그대로 빛의 알갱이로 변해 허공으로 흩어졌기 때문이었다.
“아…….”
광호가 안타까움에 그 빛의 알갱이들을 바라보는 사이 지휘관을 잃고 난동을 피우던 언데드들을 처리하며 군인들과 기동대원들이 그녀들을 향해 달려왔다.
그 모습을 본 광호가 안도하며 그대로 까무러쳤다.
지금까지 버텨왔던 것도 한계였던 것이다.
그렇게 쓰러진 광호 주변으로도 군인들이 달려왔다.
그러는 사이 광호와 판도라 멤버들 등 그들의 사이를 연결하던 희미할대로 희미해진 붉은 선들이 허공에 흩어지고 있었다.
아무도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 * *
-흐음?
대군주이자 사자의 대공인 게르하이오 폰 기오르그의 미간이 살짝 꿈틀거렸다.
-이거 참 재미없구나.
-무슨 일이시옵니까.
-칼마인이 소멸되었다.
기오르그의 말에 회유와 교언의 군주인 마켈그로이언이 놀란 눈을 했다.
칼마인이면 사자의 대공 휘하 마족들 중에서도 꽤나 이름있는 최상위 마족이었다.
-재미있자고 한 짓인데 망신살만 뻗혔구나.
기오르그가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중요한 인물이기에 호위가 두터웠던 모양입니다.
-그랬나? 하지만 뭔가 희미하군. 마지막 무언가 상념을 보내왔는데 그 형태가 모호해.
-그렇습니까?
마켈그로이언의 질문에 기오르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실패한 일에 의미를 둘 필요는 없지.
그렇게 말을 하는 기오르그의 앞에 오기원이 바짝 쫄아 엎어져 있었다.
‘뭔가 또 숨겨져 있던 건가?’
그녀들을 보호하는 병력에 대한 추측은 그가 했다.
대략적으로 유명한 강림자들의 위치를 파악하고는 그녀들의 주변 호위강도가 그리 높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던 것이다.
그런데 또 실패.
공을 세워도 모자랄 판에 뭔가가 자꾸 어그러지는 지금 상황이 자신에게는 악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저들은 그런 실패에도 그리 큰 의미를 두지 않는 느낌이라는 것이 다행이었다.
-쯧. 재미없어졌구나.
기오르그가 살짝 얼굴을 찡그리며 투덜거리자 주변 마족들이 허리를 조아렸다.
그때 그가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그래도 슬슬 내 힘이 거의 다 전이된 느낌이니, 더는 장난질을 칠 필요가 없겠지.
순간 그의 존재감이 사방으로 뻗어져 나갔다.
보랏빛 기운이 그를 중심으로 동심원을 그리벼 뿌려지자 다들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이, 이건!’
기원은 마켈그로이언의 권속이었다. 하지만, 마켈그로이언도 따지면 대군주인 기오르그의 권속이기 때문인지 그에게도 그의 힘이 전달되고 있었다.
고양감.
‘이, 이게 진짜 대군주의 힘인가?’
인간으로써는 느끼지 못했던 힘이 온몸에 넘쳐흐르는 것 같았다.
-병력을 정비하라. 장난은 이제 그만 해도 될 듯 하구나.
기오르그의 말에 모두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마치 충성을 맹세하듯 말이다.
* * *
“뭐, 다들 괜찮은 거이간?”
을지부루가 얼굴이 벌게진 채 흥분한 기색을 보였다.
“예. 그 과정에서 이승배씨와 광호씨의 강림자분들이 역소환을 당했지만, 다들 무사하시다고 합니다.”
“방비를 어케한 거이간!”
부루가 버럭 소리를 내지르자 주변의 장교들이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가 세인과 송가인 작가를 애지중지 여기는 것은 다들 아는 사실이었다.
그의 주군이었던 고진천과 연이 닿은 이들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녀들을 떠받들었다는 건 다들 아는 사실이었다.
그런 그녀들이 죽을 뻔 했다는 사실은 그가 분노하게끔 만들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납치하려 한 거래요?”
고빈의 질문에 참모중 하나가 고개를 내저으며 입을 열었다.
“그게…….”
그가 부루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제대로 이어가지 못하자 부루가 윽박지르듯 말했다.
“어버하지 말고 날래 말하라우.”
“어, 언데드로 만들려 했답니다.”
“뭐? 기게 뭔 소린거이네?”
참모는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어 나갔다.
“이쪽이 분노하는 모습을 보려고 한 듯 하답니다. 재미 운운했다고…….”
콰앙!
부루가 들고 있던 대부를 바닥에 내려찍자 바닥이 움푹 패였다. 동시에 사방으로 숨막힐 듯한 살기가 풍겨졌다.
몇몇 장교들은 그대로 주저앉아 오줌을 지렸다.
“미틴…….”
퉁방울만한 눈이 부릅떠져 있는 것이 모든 이들에게 두려움을 가져다 주었다.
“이, 일단 안전한 곳으로 모시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닥치고 이리 모셔오라우.”
“예?”
“귓구녕이 막힌거간? 이리 모셔오라 했디않아!”
“하, 하지만, 여긴 최전선이라…….”
장교들이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그때 빈이 나서며 말을 이었다.
“거긴 보호가 모자라서 이번 일이 생겼나요? 그냥 데려와요. 그게 나을 거 같아요. 사실…….”
빈이 부루와 주변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여기가 가장 위험하기도 하지만, 가장 안전하기도 한 곳이니까요. 막말로 지금 전방과 후방이 의미가 없어진 상황이기도 하고…….”
빈의 말에 장교들이 입을 열었다.
“이, 일단 보고부터 올리겠습니다.”
“예. 그러셔요.”
그제야 다들 도망치듯 밖으로 뛰쳐나갔다.
“내래 가만 안 두갔어.”
부루가 이글거리는 눈동자로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