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2화 달달한 게 당기는 날
그저 재미있을 것 같아서 이런 짓을 한다는 말에 한편으로는 분노를 일으키고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쪽이 이렇게 전력을 쏟으며 하는 전투를 저들은 이렇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수많은 마물을 죽이고 또 성공적으로 막아내었다는 마음에 잠시 들뜨던 감정도 금방 사그라진 것이다.
-사방에서 뭐가 많이 몰려오는군. 더 놀면 좋겠지만, 군주께서 시키신 일은 마무리해야겠지.
그 말과 함께 그의 시선이 한쪽으로 향했다.
그 끝엔 판도라 멤버들이 있었다. 자연스럽게 광호와 승배가 그녀들을 가로막고 섰다.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는 표정.
그 순간 드르륵 하고 총을 긁는 소리가 울려나왔다.
파파파팡!
어딜 향해 쏜 것인지는 굳이 확인하지 알 수 있었다.
칼마인의 몸 주변에서 반투명한 보랏빛 망점이 생겼다가 사라지며 바닥으로 뭔가가 툭툭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끄러운 새끼. 뭐 자랑질이라고 떠드나?”
기동대원 하나가 살기어린 눈동자를 그를 향해 희번덕거리며 방금 당긴 총을 내리고 있었다.
-보통 이런 상황에선 절망이 어울리지 않는가?
기동대원이 허연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마치 웃기다는 듯 말이다.
“그러면 곱게 돌아가 주니? 그럼 내가 당장이라도 눈물 콧물 빼며 절망해 줄게.”
-하하하핫! 역시 재미있는 곳이군. 그래봐야 곧 울부짖으며 자비를 외칠 것들이 말이지.
그 말과 함께 그의 손에 다시 보랏빛 원이 소용돌이치며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다들 긴장하기 시작했다. 아까 저 원에서 스팩터등 언데드 마물들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었다.
-자, 죽는 그 순간까지 내게 즐거움을 주길 바라지.
말을 마치는 순간 마치 블랙홀을 연상시키는 듯한 보랏빛 홀에서 기성이 울려 퍼졌다.
“지랄!”
그 순간 기동대원은 물론이고 군인들은 일제히 방아쇠를 당겼다.
투투투투툭! 투투툭!
동시에 괴성을 지르며 쏟아지는 스펙터와 언데드 마물들이 빠르게 소멸되었다.
-…….
순간 칼마인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그의 시선은 자신의 손 위에 형성되있던 보랏빛 홀에 가 있었다.
“개꿀이네.”
“지랄도 풍년이네. 그걸 또 당할 줄 알아?”
아깐 당황했던 것도 있었고, 저기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 줄 몰랐기 때문에 쏟아지는 마물에 반응을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저기에서 언데드들이 쏟아져 나온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
당연히 뭔가 튀어나올 기미가 보이자마자 일점사를 후려갈긴 것이다.
놈에게 대마물탄환이 안 먹히지만, 쏟아지는 하급 마물들은 달랐기 때문이었다.
-으음.
칼마인이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그가 한 손을 휘저어 내자 그의 주변으로 보랏빛 막이 점점 넓어졌다.
이어서 다시 손에서 마물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기동대원들과 군인들이 몇 발 쏘다가 방아쇠에서 손가락을 떼었다.
그 보랏빛 막은 방어막이었던 것이다.
최소한 그들이 가진 소구경 대 마물 탄으로는 뚫을 수 없는 그런 것들이었다.
-이렇게 하면 되지 않겠나?
어느 사이에 그의 주변으로 백여 마리는 되어 보이는 마물들이 득시글거렸다.
이어 보랏빛 막이 거두어지며 마물들이 일제히 쏟아져 나가기 시작했다.
투투투툭! 투투투투!
끼에에에!
캬륵!
-…….
결과는 같았다.
뭉쳐있는 적들을 대상으로 소구경 연발화기들은 최적의 결과물을 만들어 주었다.
-이런 버러지 같은 것들!
화가 났는지 그가 다른 한손으로 화염을 만들어 뿌렸다.
화염구가 날아들자 이번에는 강림자들이 나서서 막아내었다.
그러자 날아들던 마법들이 불꽃이 되어 비산했다.
서걱!
-큭!
그게 끝은 아니었다.
칼마인이 휘청이며 뒤로 물러선 것이다. 그 자리에는 임꺽정이 환도를 쥐고 서 있었다.
“다 털어주마! 목숨까지!”
동시에 꺽정이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별의 파편따위가!
분노한 그는 한손에서 뼈로 만든 창을 소환하여 그에게 휘둘렀다.
그러나 꺽정은 그 창대를 환도로 후려치고는 발길질로 자신보다 두 배는 더 큰 칼마인을 후려 찼다.
쩌억!
정확히는 칼마인의 하체였다.
확실히 강림자의 공격은 먹히는지 그의 몸뚱이가 휘청였다.
“공격!”
꺽정의 공격에 소환자들이 강림자들에게 전투에 끼어들 것을 명령하자 일제히 덤벼들었다.
-이익!
여유만만하던 칼마인이 어지럽게 창대를 휘두르며 물러서기 시작했다.
그 사이 안쪽에서 뒤늦게 튀어나온 마물들이 강림자들에게 뛰어들었지만, 뒤쪽에서 이루어진 지원사격에 비명을 내지르며 부스러졌다.
-놈들 가만 두지 않겠다!
분노한 그가 바닥에 손을 짚었다. 그 모습에 다들 긴장한 모습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마족마법사들이 없는 지금 그가 무슨 짓을 하는지 알 수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두드드드드!
그의 손에서 보랏빛 기운이 짙게 땅속으로 스며들자 땅이 마치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서 칼마인의 손모가지가 허공으로 붕 떠올렸다.
콰작!
-크아아악!
꺽정이 그대로 환도를 내리 찍어 그의 손목을 잘라낸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보던 승배가 히죽 웃으며 중얼거렸다.
“원래 변신 다할 때까지 기다려 주는 건 만화에서나 가능한 일이지.”
한쪽 손목을 잃은 칼마인을 향해 연신 맹공이 펼쳐졌다.
그러자 칼마인이 뒤로 연신 물러서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잘려나간 손목이 마치 영화 이블데드의 한 장면마냥 손가락으로 걸어가더니 아까 그가 힘을 불어넣던 곳으로 빠르게 기어가 다시 손바닥을 붙였다.
“손! 손이 움직인다!”
뒤늦게 그것을 본 이들이 연신 총탄을 날렸지만 몸뚱이에서 떨어져 나갔어도 먹히지 않는 것은 동일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몇 번 쏘기도 전에 그 손바닥은 그대로 바닥으로 녹아들 듯 스며들어 버렸다.
콰콰콰콰콰!
바닥에서 뭔가가 몸을 일으켰다.
체구가 2미터는 되어 보이는 검붉은 빛의 스켈레톤이었다.
다만 이 요란한 과정을 통해 소환된 만큼 보기에도 단단해 보였다.
-본의 아니게 내 손모가지를 제물로 삼아 뽑아내게 되었군.
그 스켈레톤을 향해 대마물총탄이 비 오듯 쏟아졌지만, 사방으로 튕겨나갔다.
“억!”
“아악!”
“쏘, 쏘지 마!”
튕겨나간 총탄이 벽을 두들기고 군인들을 상하게 만들었다.
마족들이 가지고 있다는 방어막과 달리 이건 몸뚱이 자체가 마치 강철로 만들어진 것마냥 튼튼했던 것이다.
그 존재가 칼을 휘두르기 시작하자 칼마인에게 달려들고 있던 강림자들의 몸뚱이가 마치 두부마냥 썰려나갔다.
“비, 빌어먹을!”
“막동아저씨!”
소환자들이 자신의 강림자들이 역소환되는 것을 보며 비명을 내질렀다.
역소환된다 해서 죽는 것은 아니지만, 유대감이 깊은 소환자들의 심적 충격은 옅은 게 아니었다.
그렇게 시선이 한쪽으로 쏠린 순간 여유를 찾은 칼마인이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어?”
그 손가락을 바라본 세인이 순간 얼어붙었다.
투아악!
그런 그녀를 향해 칼마인의 손가락이 쏘아져 나갔다.
마치 총알처럼.
퍼억!
둔탁한 소리와 함께 승배와 세인의 몸뚱이가 뒤로 처박혔다.
세인의 위기를 눈치챈 승배가 몸을 날렸던 것이다.
“아악! 승배오빠!”
제이의 비명과도 같은 외침이 울려 퍼졌다.
세인과 함께 바닥에 처박힌 승배의 몸뚱이에서 피가 솟구쳤기 때문이었다.
“언니!”
뒤이어 얼어붙어 있던 레이니도 비명을 내질렀다.
승배가 몸을 던졌지만, 세인도 무사하지 못했던 것이다.
승배의 어깨를 관통하고도 모자라 세인의 복부에도 그가 쏘아낸 손가락이 박혀 있었던 것이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다들 당황하는 사이 밖에서 요란한 소리를 내며 싸우던 마물들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동시에 칼마인이 쏟아내던 마물들을 향해 일점사를 하며 효율적으로 막아내던 군인들의 총구가 돌아가면서 틈이 생겨났다.
“모여! 모이라고!”
사방에서 쏟아지기 시작한 마물들을 상대하기 위해선 보호인원들을 중심으로 두고 원을 그리는 것이 효율적이다.
그러나 그게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아악!”
반쯤 먹혔었는지 갈비뼈가 드러나 보이던 개가 뛰어오르며 물러서던 군인의 목을 물어뜯었다.
“이런 썅!”
비명을 이내 옆에 있던 동료가 발로 걷어차 내었지만, 이미 개에게 물린 군인의 목에서는 꿀렁이며 피가 솟구쳐 오르고 있었다.
“이런 씨!”
서둘러 피가 솟구치는 목을 손수건으로 막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캬아악!”
보랏빛 운무가 바닥에 깔리나 싶더니 쓰러져 있던 군인이 검은 동공을 보이며 손을 뻗었다.
퍼억!
“큽!”
뻗어낸 손은 가슴팍을 뚫고 들어갔다. 믿을 수 없다는 시선을 보내던 군인은 그대로 엎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가 몸을 일으키며 괴성을 내질렀다.
“캬아아악!”
“언니! 언니 정신 차려!”
레이니가 세인의 복부에 난 상처를 누르며 울며 외치고 있었다. 그러자 세인이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흐, 흔들면 더 아파!”
“엉엉엉! 살았구나!”
“새, 생각보다 덜 박혔어. 괜찮을 거 같아.”
세인이 얼굴을 찡그리며 몸을 일으킬 때 옆에서 더 큰 외침이 울려왔다.
“눈 뜨라고! 이 인간아!”
찰싹! 찰싹! 찰싹! 찰싹!
쓰러진 승배의 멱살을 잡은 제이가 연신 손바닥을 휘두르고 있었다. 얼굴이 좌우로 맹렬하게 왕복했다.
“그, 그만……. 보, 볼따구가 더 아파…….”
“살았구나아!”
“아으으…… 지금 죽을 거 같아.”
승배의 양 볼은 시뻘건 손바닥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심지어 코에는 쌍코피까지 흐르고 있었다.
“쿨룩!”
승배가 어깨를 부여잡으며 몸을 일으켰다.
“염병. 은총 받으면 단단해진다. 더니 어떻게 한 방에 뚫리냐…….”
“좀 더 처맞아야겠다.”
“끄응.”
제이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모습으로 그를 일으켰다.
승배가 비틀거리며 그녀들을 뒤로 물리며 주변을 바라보았다.
“크윽!”
광호가 검을 휘두르다가 뒤로 물러섰다.
“빨리 뒤로 물려!”
-호오? 그걸 막아? 이제 보니 여기에 마수의 군주의 은총을 받은 존재들이 좀 보이는구나. 거기까지 능력을 쓸 줄이야.
칼마인이 재미있다는 듯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사방은 난장판이었다.
마물들이 난장을 피우고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 생전의 아군을 공격했다.
“이노오오옴!”
그때 칼마인을 향해 임꺽정이 환도를 휘둘러왔다.
그러나 그의 검을 막아낸 것은 아까 밖에서 몸을 일으킨 검붉은 빛의 스켈레톤이었다.
-크르륵!
-쯧. 원한 것은 아니었다만 손목 하나와 바꾼 친구야. 분신이나 마찬가지지. 쉽게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 마라. 별의 파편이여.
칼마인이 입꼬릴 끌어올리며 그녀들에게 다가갔다.
“이런 씨!”
그나마 몸이 성한 광호가 검을 겨누었지만, 칼마인 앞에선 한없이 작아 보였다.
그때였다.
서걱!
칼마인의 몸뚱이가 기울어졌다.
이내 다리 한 짝이 옆으로 툭 넘어갔다.
-허, 이런 빌어먹을 일이 있나.
칼마인이 인상을 찌푸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달달한 게 당기는구나.”
환도를 든 꺽정이 떨리는 손으로 막대사탕을 입에 물었다.
그의 가슴팍에는 검붉은 스켈레톤이 찔러낸 검이 비죽이 솟구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