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1화 재미있는 일
콰아앙!
굉음과 함께 연구소 벽 한쪽이 터져나갔다.
동시에 사람들의 비명소리와 함께 다급한 발소리가 이어졌다.
하지만, 사람들의 다급한 발걸음 소리는 이어서 들려오는 소름 끼칠 정도로 괴상하게 울려오는 소리에 묻혀 버렸다.
끼에에에에!
비명처럼 들려오는 소리였다.
판타지 소설 속에서나 나오는 만드라고라가 뽑혀져 나올 때 지른다는 비명소리가 아마도 이럴 것이다.
“히, 히이익!”
밖에서 달려가던 군인들이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마치 몸이 얼어붙은 듯 멈추었다.
일부는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으며 오줌을 지렸다.
“정신차려!”
그 와중에도 평소 강단이 있다고 알려져있던 선임병이 멈추거나 주저앉은 이들의 뺨을 두들기며 윽박질렀다.
“나, 나왔다!”
그때 누군가가 비명처럼 소리를 내지르며 방아쇠를 당겼다.
투투투투퉁!
그게 신호가 된 듯 패닉에 빠진 이들이 연이어 방아쇠를 당겼다. 그 순간 튀어나오던 물체는 마치 팝핀이라 추는 것마냥 몸을 뒤틀었다.
“멈춰! 멈추라고오오!”
압축공기를 사용하는 총이지만, 동시에 발사가 되다보니 그의 외침은 금방 묻혔다.
하지만, 이내 무너져 내렸던 벽 안쪽에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민구야!”
“야이 개새끼들아!”
안쪽에서 울부짖는 소리와 함께 욕설이 들려오자 그제야 패닉에 빠져 방아쇠를 당겼던 이들이 자신들이 무슨짓을 했는지 알아차렸다.
“멈춰! 총구 올려! 정신차리라고 개새끼들아!”
연이은 욕설과 제지에 발사는 멈추었지만, 이미 일은 벌어진 상황이었다.
“괴, 괴물인 줄 알았는데…….”
처음 방아쇠를 당겼던 군인이 털썩 주저앉으며 창백한 얼굴을 했다.
총성이 멈추자 안쪽에서 튀어나온 군인들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 이를 보며 부둥켜 울었다.
그러나 시간은 슬퍼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빨리 이동해! 어서!”
“군번줄 챙겨!”
안쪽에서 피투성이가 된 부사관이 나오며 윽박질렀다.
안쪽에선 여전히 아까의 비명과 같은 괴음과 총성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어 그는 총을 쏘았던 이들을 보더니 이를 악물었다.
“애들 챙겨 빠져나간다.”
“……예.”
분대장은 부사관의 말에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아군을 쏘았다. 이는 어떠한 변명도 할 수 없는 것이다.
방아쇠를 당겼던 군인들은 정신이 반쯤 나가서 벌벌 떨고 있었다.
대부분 마물과의 전투 경험이 있는 이들이었음에도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이다.
그때 부사관이 입을 열었다.
“저거 정신 착란을 일으키기도 한다더라. 뭐 헛것이 보이는 정도는 아니지만, 순간적인 판단을 흐리게 만드는 그런 종류라더라.”
“혹시?”
“안쪽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어. 일단 건물 밖으로 빠져나가야 된다.”
“알겠습니다.”
부사관의 말에 방금 전, 그 소름 끼치는 소리를 들은 후임병들이 순간적으로 정신을 못 차리던 모습이 떠올랐다.
이해가 된 것이다.
그럼에도 다들 표정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오인으로 인해 아군을 죽였다는 사실은 어디 가지 않으니까.
그때였다. 뒤쪽에서 다시 총을 갈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일단 어서 나가!”
“종류는 뭡니까!”
“고위 마족이 안으로 침투해 들어왔어. 사령마법을 쓰는 놈이라는데 스펙터 계열을 소환했지.”
“씨팔…….”
스펙터 계열이라는 말에 그는 이내 주변의 벽을 둘러보았다.
희끄무레한 짙은 연기형태를 보면 누구나 유령이라 생각할 것이다.
그렇기에 스펙터란 이름이 잘 어울리는 마물이었다.
사실 예전부터 가장 두려운 상대가 바로 스펙터 계열이었다.
위험도로 따지면 C급이었다.
그 어떠한 물리적인 공격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 데다가 중요한 것은 얇은 벽면 정도는 그냥 스치듯 드나들 수 있다는 점이었다.
즉 이런 실내에서는 벽면에서 튀어나올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물론 이게 C급이란 이유는 그런 것 치고는 인지도 등급이 최하에 속하는 강림자 혼자서도 스팩터 수십을 상대로 무쌍을 찍을 수 있을 정도로 약하다는 점 때문이었다.
거기에 대 마물용 탄환이 개발된 이후에는 더는 젤리베어나 스펙터 등의 마물들은 위협의 대상이 되지 않았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실내였다.
당연히 위험도는 극상승하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스펙터 계열에 저런 비명을 내지르는 놈들이 있다는 건 처음 듣습니다.”
“나도 처음 본다. 자세히 듣지는 못했어. 일단 이탈하라는 명령만 들어서.”
“알겠습니다.”
그때 갑자기 기괴한 소리가 들려왔다.
크르륵.
“어?”
뒤를 돌아보니 한쪽에 천으로 덮여져 있던 시신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사, 살아있는거 아닙니까?”
아군의 오인사격으로 인해 죽은 줄 알았던 이에게서 소리가 나오니 당연히 죽지 않았나 하는 소리가 나올 법했다.
“멈춰.”
하지만, 부사관은 다가가려는 이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그리고는 총구를 가져가서 천천히 천을 들추었다.
그 순간 천을 확 재끼며 몸을 일으켰다.
“이런 씨팔!”
그와 동시에 부사관은 몸을 뒤로 빼며 몸을 일으키며 자신을 향해 덥쳐 온 놈을 발로 밀어찼다.
콰당탕!
벽면으로 처박히며 나자빠지는 모습을 보곤, 그건 살아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크라락!
“…….”
이미 몸 자체가 손상이 된 탓인지 아니면 몸 속에 박힌 대마물 탄 때문인지 굼뜨게 몸을 일으키는 모습에 부사관은 천천히 총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방아쇠를 당겼다.
투투투투툭!
이내 괴성을 내지르며 몸을 일으키던 마물은 다시 뒤로 나자빠지며 널브러졌다.
그 순간 그의 몸뚱이에서 희끄무레한 것이 세어 나왔다.
“이런 썅!”
동시에 부사관은 그것을 놓치지 않으려고 총을 들어올렸다.
파파파!
하지만 탄이 떨어졌는지 압축공기가 뿌려지는 소리만 났다.
투투투툭!
끄에에에!
도주하는 스펙터를 맞춘 것은 분대장이었다.
안도의 표정을 지은 그가 병사들을 수습하며 입을 열었다.
“……잘 했다. 보니까 놈들은 시체도 조종하는 것 같다. 이탈하자.”
“예.”
생존 욕구가 더 높은 것인지 군인들은 정신을 차리고 밖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 * *
콰콰쾅!
한쪽 벽이 터져나가며 광호의 몸뚱이가 나동그라졌다.
그 뒤로 판도라 멤버들이 머리를 감싸쥔 채 달려나왔다.
“광호오빠 괜찮아!”
레이니가 걱정어린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지만 광호는 대답할 정신이 없는지 그녀들을 등뒤로 이끌었다.
그 다음으로 튀어나온 것은 이승배였다.
“켁!”
그를 광호가 붙잡아 주었다.
그들의 앞으로는 군인들이 연신 총을 쏘며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그들 앞에는 광호와 승배의 강림자가 막고 서 있었다.
“으하하! 나 잡아봐라!”
강림자인 임꺽정이 호탕하게 외치는 소리에 승배가 환장하겠다는 표정으로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야이 씨! 오지 말라고 해도 모자랄 판국에!”
그때 안쪽에서 폭음과 함께 마족 마법사 하나가 튕겨져 나왔다.
“아…….”
승배가 나서서 받았지만, 이내 할 말을 잊었다.
조금 전까지 최선을 다해 그들을 보호하던 마족마법사는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숯덩이가 되어 있었다.
승배는 굳은 얼굴로 시신을 옆에 두고 물러섰다.
그때 안쪽에서 느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딜?
이내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그 순간 임꺽정이 환도를 휘둘렀다.
콰아앙!
순간 뜨거운 열 폭풍이 통로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이들이 휘말리며 퉁겨져 나왔다.
“아구구!”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열기와 화염에 살짝 그을린 정도라는 점. 하지만 안쪽은 화염으로 가득했다.
그 상황에서 광호는 서둘러 임꺽정을 찾았다.
“어디있어! 어디야!”
“으하하!”
순간 웃음소리와 함께 화염을 뚫고 나오는 이를 본 광호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후아!”
다행이었다.
그때 임꺽정이 순간적으로 팔을 내밀었다.
뻐억!
동시에 뼈로 만든 화살이 그의 팔뚝에 와서 날아와 박혔다.
“괘, 괜찮냐!”
“사탕이 땅기는군.”
광호의 질문에 꺽정은 열기에 반쪽 비닐이 눌러붙은 사탕을 입에 물었다.
화그르르!
“뒤에 길을 열어!”
사방에선 길을 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헬기 소리도 울려오는 것이지 원병력이 투입된 모양이었다.
따지고 보면을지부루의 피붙이는 아니지만, 특별하게 여기는 만큼 그녀들을 보호하는 것은 대통령의 경호만큼이나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상황은 당장 나아지지 않고 있었다.
사방에 희끄무레한 것들이 여기저기 날아다니고 있었고, 해골병사들이 활과 칼들을 들고 설치고 있었다.
심지어 그 해골들은 재래식 병기에도 박살이 나는 그런 종류가 아니었다.
뼈의 색도 거무테테한 것이 일반적으로 해골형 마물을 대응할 때 쓰는 고무탄과 유탄, 거기에 총알도 퉁겨내는 내구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나마 대마물 총탄으로 머리통을 두들기다 보면 쓰러진다는 것이 위안이었다.
그런 것들이 점점 그들을 중심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일부는 백병전을 시작했다.
강림자도 있었고 군인들도 은과 마물의 뼈와 같은 부산물로 만들어진 구식 야전삽을 들고 싸우기 시작했다.
봉이 달린 야전삽은 이런 상황에서 꽤나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그때 안쪽에서 화염이 어느 한쪽으로 빨려들어가며 다시 앞에서 해골들과 스펙터들이 쏟아져 나왔다.
“씨펄 대마왕인지 뭔지 하는 놈이 치졸하게 납치나 하냐!”
승배가 바락바락 소릴 내지르자 안쪽에서 코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납치? 그런 것을 왜 하지?
“당연히 부루 아저씨를…….”
승배의 말에 안쪽에서 모습을 드러낸 고위 마족 칼마인이 반쯤 탄 브로마이드에 불을 붙이며 웃음을 머금었다.
-오해했다면 유감이군. 그리고 대마왕이 아니라 대군주시지.
“어쨌든!”
-걱정 말라. 납치 따윈 안 하니까.
“뭐?”
그녀들의 사진까지 들고 와 찾았으면서 납치따윈 안한다는 말에 다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그들의 표정이 재미있다는 듯 칼마인은 그녀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저 저들? 저 인간들을 언데드로 만들어서 전장에 던져놓으면 그 덜떨어진 마수의 군주가 미처 날뛰는 꼴을 구경할 수 있을 거라고 들었거든.
“뭐?”
순간 판도라 멤버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지금도 정신이 반쯤 나간 그녀들이었지만, 그들을 언데드로 만들어 버린다는 말에 소름이 끼친 것이다.
누구나 그 꼴이 되느니 깔끔하게 죽는 것이 났다고 생각할 것이다.
“씨펄 또 오기원이구나.”
-뭐, 그런 이름이었지.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는 존재. 어딜가나 배덕자는 환영받지 못하지만. 하지만 뭐, 회유와 교언의 군주의 수하로써는 어울릴지도.
오기원의 이름에 칼마인이 긍정하는 모습을 보이자 광호가 눈에 불을 키며 중얼거렸다.
“그 새끼 반드시 잡아 족친다.”
광호 뿐 아니라 이 자리에 있는 모든이들이 오기원의 이름을 듣자마자 살기를 뿌렸다.
-뭐 그래도 이런 재미있는 생각을 하는 것 보면 나름 신선하긴 하지.
철컥! 철컥!
그 말이 나오는 순간 사방에서 재장전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포위된 상황에 절망할 법도 하건만 눈빛이 변하는 이들을 보곤 그가 웃음을 띄우며 말을 이었다.
-봐! 이 얼마나 재미있는 반응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