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0화 아픈 곳이 있습니다
* * *
콰콰콰콰콰!
대침식때도 살아남았던 프랑스의 상징인 에펠탑이 굉음을 울리며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수많은 역사의 산증인이었던 개선문 역시 함께 무너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그나마 나았다.
미국의 경우에는 9.11 테러의 아픔을 딛고 솟아오른 프리덤타워가 다시 무너져 내린 것이다.
거기에 자유의 여신상도 아랍의 버즈 두바이도 무너졌다.
중국이라 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동방명주가 무너지고, 대침식의 부침을 딛고 버텨왔던 세계 최고층 건물을 자랑하던 창사시의 스카이 시티가 무너졌다.
그리고 대한민국 최고층을 자랑하는 롯데타워 역시 피해갈 수 없었다.
“…….”
구조대원들은 멍하니 폐허가 된 시가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늘을 뚫고 올라서듯 솟구쳐 올라가 있던 롯데타워는 삼분지 일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 뿐이 아니었다.
주변의 쇼핑몰등 건물들은 쏟아져 내린 잔해들로 인해 연쇄적으로 그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붕괴되어 있었다.
“정신차려! 구경만 할거야!”
누군가의 외침에 구조대원들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주변 사람들부터 안전하게 끌어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구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악몽이 시작되었다.
“크르륵.”
한쪽에 천으로 덮여있던 시신들 사이에서 기괴한 소리가 울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죽은자가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아…….”
“쏴. 뭐해.”
이런 상황을 대비해서 출동한 군인들은 상관의 명령에 몸을 일으키는 사망자……였던, 언데드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투투퉁!
“기동대 투입해서 구조대원을 호위한다.”
현장 지휘관의 판단아래에 기동대원들이 구조대원들과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울부짖는 소리 신을 찾는 외침이 연이었다.
그 가운데에서 기동대원과 구조대원들은 한껏 얼굴을 굳힌 채 살아남은 이들을 찾아 해매였다.
* * *
양현재 대통령의 얼굴은 한번에 수십 년은 늙은 것 같이 변해 있었다.
상황실도 침묵속에 빠져 있었다. 마른세수를 하듯 얼굴을 비빈 양 대통령이 질문을 던졌다.
“피해자 유추가 가능하겠는가.”
“다행히 전쟁 이후 대형 몰은 영업을 중단한 상황이기는 했지만…….”
영업을 중단했다고 해서 그 안에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관리를 위한 일반인들 뿐 아니라 해당 지역의 예비군들이 옥상 등에 진지를 꾸려서 점령하고 있었다.
심지어 무너진 롯데타워의 경우 상층부는 주거지역이었다.
그곳이 무너져 내렸으니 생존자는 없다고 봐야 했다.
그나마 희망을 걸어 보는 것은 전쟁이 일어나면서 고층건물은 위험할 수 있다는 소문이 돌아 집을 비운이들이 꽤나 된다는 점이 위안이겠지만…….
단지 그뿐이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이들이 죽어 나갈 상황이 상당히 많은 이들이 죽어나간 것으로 바뀌었을 뿐이니까.
“우리나라가 선전하고 있던 것이 독이 된 모양입니다. 일부 입주 업체들의 경우는 순번을 정해서 업무가 이어지게끔 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무너트린 놈들은…… 잡았나?”
양 대통령이 서늘한 눈동자를 던지며 질문을 던졌다.
“일부는 잡고 일부는 놓쳤다 합니다.”
상징적인 건물들이 무너진 건 문제가 아니었다.
꽤 고층 아파트가 밀집된 곳에서 비슷한 참사는 벌어졌다.
여러개 동이 불에 타고 무너졌다. 그리고 그곳에선 어김없이 언데드가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적은 뻔했다.
“개자식들.”
누군가가 분노에 찬 음성을 내뱉었다.
그때 마족마법사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전에도 이러한 형태의 공격은 없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분노에 찬 얼굴을 하고 있는 이들이 입을 열었다.
-이쪽에선 이러한 형태의 전쟁을 어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쪽에서는 무의미하다고 판단합니다. 약자들의 전쟁 방식이라고 하기도 하고 말입니다.
“…….”
약자들의 전쟁방식.
어쩌면 이건 이쪽에서도 마찬가지다.
테러라는 것은 정규전이 불가능한 전력을 가진 이들이 활용하는 최후의 수단이니까.
“그게 무슨 의미가 있소?”
-마족이라면……. 우리 기준으로 이런 행동을 선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말에 다들 누군가를 떠올렸다.
“몸뚱이를 전부 찢어죽일 놈.”
눈이 붉어진 양 대통령의 입에서 튀어나온 욕설이다.
현대인의 관점에서 내뱉을 만한 말은 아니었지만, 지금 순간만큼은 아무도 그것을 지적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비슷한 마음인 듯한 표정들이었다.
“오기원 이 개새끼…….”
마족들의 판단이 아니라면 오기원밖에 더 있겠는가.
그리고 무너진 것들을 보면 하나같이 마족들이 아니라 인간의 관점에서 중요하다 싶은 것들이었다.
이런 테러를 직간접적으로 관여를 한 건 분명해 보였다.
“그럼 앞으로도 이런 전쟁을 해 나가야만 하나…….”
차라리 전면적으로 밀고 내려오는 게 나았다.
어쩌면 현대인의 관점에서 가장 아픈 약점을 찌른 행동이었다.
“대책을 세워야…….”
“…….”
누군가가 대책을 언급했지만,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지금 어떤 느낌이냐면 예를 들면 미국과 전쟁을 하는데 그쪽이 테러를 무차별적으로 벌이는 기분과 같았다.
안 그래도 강한 상대가 마치 상대를 가지고 노는 듯한 느낌.
“대체 왜 이런 짓을…….”
알 수가 없었다.
* * *
-재미있긴 하군.
게르하이오 폰 기오르그가 흥미롭다는 시선으로 영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텔레비전에서는 울부짖는 이들과 분노에 찬 눈물을 흘리며 성토하는 아나운서의 모습들이 연이어 나오고 있었다.
그때 오기원이 미소를 입에 머금으며 나섰다.
“어차피 이대로만 가면 스스로 무너질 것입니다.”
그의 자신감 어린 말에 기오르그와 마켈그로이언이 시선을 던졌다.
하지만, 그들의 표정은 흥미로웠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뭔가 느낌이 이상한 마음에 오기원은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왠지 지금은 나설 때가 아니라 느꼈던 것이다.
-네놈 말대로 인지 궁금해서 해 보았을 뿐. 딱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
“쉬, 쉬운 승리를 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그 순간 기오르그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크하하하핫!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웃음을 터트리는 그에게 마켈그로이언은 약간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사죄드리옵니다.
-아니. 굳이 그럴 것 까지야. 충분히 재미는 있었으니까.
자신의 군주인 마켈그로이언이 사과를 하는 모습에 오기원은 잔뜩 긴장했다.
대체 자신이 한 말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감을 잡지 못한 얼굴이었다.
-우리가 그리 허약해 보였나 보군.
-죄송합니다.
-뭐 이해는 하지. 지금까지 있었던 전쟁 중에 이런 식으로 손해를 본 적은 없었으니까.
기오르그의 말에 마켈그로이언은 난감한 얼굴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와 눈이 마주친 오기원이 몸을 부르르 떨며 시선을 떨구었다.
-이곳은 안중에도 없었던 곳이다. 대군주께서 대업을 이루기 위한 발판이었을 뿐.
“죄, 죄송합니다. 어떻게든 공을 세우고 싶었을 뿐입니다.”
오기원이 고개를 숙인 채 크게 외쳤다.
기오르그는 마수의 군주가 쓰러지는 것을 보며 마계의 왕이 되는 기회로 여겼던 것이다.
반면에 관심에서 멀어져 있던 탓에 이들의 힘이 만만하다 느꼈을 수도 있었다.
물론 을지부루의 존재가 유별나기는 했다.
그 덕분에 기오르그가 기회를 잡은 것도 맞았다.
그렇기에 지금은 한껏 좋은 기분인 기오르그의 유희에 가까운 것이다.
하지만, 기원은 자신이 잡은 줄이 잘못 되는 않을까 두려운 마음이 앞섰던 것이다.
어쩌면 그렇기에 매국을 한 이들이 더욱 독하게 동족에게 채찍질을 가하는지도 몰랐다.
-이거 하나는 같군. 원래 배반을 택한 이들이 동족의 가장 아픈 곳에 칼을 들이대는 데에는 서슴치 않는다는 것.
기오르그의 웃음기 섞인 말에 오기원은 참담함을 느끼며 한참을 고개를 들지 못했다.
-내가 관심이 있는 건 바로 마수의 군주일 뿐이지. 나머지는 의미없다.
기오르그의 말에 기원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이려다가 멈칫했다.
얼굴을 굳힌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리며 입을 열었다.
“사죄의 의미로 마수의 군주가 꽤나 분노해서 달려올 만한 일을 말씀 드려도 되겠는지요.”
-응? 그런게 있나?
기오르그의 질문에 기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있습니다. 애지중지하는 인간들이. 아마도 당장에라도 달려올지 모릅니다. 이런 곳에서 시간이 끌릴 이유도 없지 않겠습니까?”
기원의 말에 마켈그로이언이 물었다.
-말해보도록.
허락이 떨어지자 기원의 입가가 쭈욱 찢어졌다.
* * *
“대체 왜 이런 일까지…….”
판도라 멤버들은 다들 어두운 안색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다행히 이중 삼중으로 보호를 받고 있지만, 세상은 그러지 못했다.
물론 이 보호는 녀들이 원했다기보단 을지부루의 요청 때문이기는 했다.
그때였다.
쿠구구궁!
지축이 흔들리는 느낌이 들었다.
“뭐, 뭐야!”
이어서 기지 전체로 경계음이 울려퍼졌다.
이어 발소리들이 연달아 들려왔다. 그녀들이 있는 곳으로 발소리들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무슨 일이 벌어졌다는 것 쯤은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이리로!”
그녀들 앞에 나타난 것은 광호와 이승배였다.
그들의 강림자들 역시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오빠 습격이에요?”
세인의 질문에 승배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인근에 건물이 무너지면서 언데드들이 갑자기 쏟아져 나왔어. 큰 문제는 없겠지만, 일단 피하자.”
승배의 말에 그녀들이 바로 몸을 일으켰다.
지금은 질문보다 움직일 때라는 것을 가장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들이 밖으로 나오자 사방에서 불이 솟구쳤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안쪽으로 몰려오는 마물들은 없었다.
그때였다.
-응? 이것들인가?
체구가 한 사미터는 되어 보이는 마족 하나가 모습을 드러내며 그녀들을 바라보았다.
그의 손에는 그녀들의 모습이 담긴 브로마이드가 들려 있었다.
그것을 본 승배와 광호는 긴장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야 우연일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마족의 손에 들린 사진을 보니 왠지 의도한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동시에 사방에서 아군이 그녀들을 보호하듯 모여들었다.
그 중에는 마족 마법사들도 있었다.
-헛!
그때 마족 마법사들이 하나같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것만으로도 상대가 강한 놈일 거 같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당장 이탈해야 합니다!!
“뭐하는 놈이에요?”
승배가 빠르게 묻자 마족 마법사들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외쳤다.
-사령마법으로 유명한 고위 마족입니다.
-나를 아는구나? 마수의 군주의 종자가 된 이들이여.
그들의 말에 브로마이드를 든 마족이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그들을 보며 물었다.
하지만 그들은 대답대신 그를 향해 마법을 쏘아 올렸다.
보랏빛 구체들이 그의 온몸을 강타했다. 하지만, 그의 몸에는 먼지 한톨의 상처도 없었다.
-나를 알면서도 덤빈단 말이지? 이거 참, 재미없는 일이군.
그가 얼굴을 굳히며 한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그의 손에서 검은 소용돌이가 만들어지더니 점점 몸집을 키워 나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