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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열제 부루강림기-225화 (225/305)

제225화 양을 치는 목동처럼

* * *

-죄송합니다.

회유와 교언의 군주 마켈그로이언이 대군주인 게르하이오 폰 기오르그를 향해 머리를 숙였다.

선봉의 실패에 대한 사죄였다.

물론 그가 사죄할 일은 아니었다. 실제 전투에 임한 것은 기오르그의 군단장들이 주축이었으니까. 그럼에도 그가 사죄를 한 이유는 아마도 현지 상황에 대한 정보가 모자람을 의미하는 것일 수 있었다.

그러나 기오르그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재미있다는 표정이었다.

-그동안 우리가 점령해왔던 세상과 달리 이곳은 활발하게 반항 하던 곳 아니던가? 오히려 재미 있는 것들이 많군.

-하긴 이런 곳은 드물었습니다.

-이런 것을 기계문명이라 해야 하나?

-기계와 전자라는 것들이 어우러져 극대화 된 문명이라 하더군요.

-맞아. 신의 버림을 받은 문명이라기보다는 스스로 나아가는 데 문제가 없기에 신이 떠나간 것일 수도 있겠어.

-그럴 수도요.

마켈그로이언과의 나누는 대화가 즐겁다는 듯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들은 지금 반쯤 파괴된 거리를 둘러보고 있었다.

여타 낙후된 북쪽지역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곳이었지만, 대원 그룹의 지원 하에 짧은 시간이나마 뭔가가 바뀌었던 탓에 분위기가 많이 활성화 되었던 곳이다.

아무리 파괴되었다 해도 그 흔적은 남아있기 마련이었다.

-그나저나 섣불리 달려들지 말라 했거늘…….

기오르그가 혀를 찼다.

화를 내지도 않았다. 그래봐야 그 화를 받을 군단장들은 이미 한줌 재가 되어버린 후였기 때문이었다.

-하나 남은 군주위니까요.

-그렇겠지? 군주위라도 있어야 더 위도 노릴 수 있으니까.

기오르그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으며 마켈그로이언을 바라보았다.

-아닙니다. 왕이 도래한 세상에 더 오를 곳은 군주만이 남았기에 욕심을 부린 것일 겁니다.

마켈그로이언이 극도로 자세를 낮추며 답했다.

이미 죽어 나자빠진 군단장을 위한 변명은 아니었다. 스스로를 향한 변명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 행동이 싫지는 않았는지 기오르그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왕이라…… 하나의 조각이 이어지지 않은 이상 왕의 자격은 아직 없지. 둘을 가지던 셋을 가지던…… 여섯을 가지던 일곱이 아니면 그저 대군주일 뿐.

순간 기오르그의 눈동자가 붉게 빛났다.

두 눈 가득한 탐욕.

수천 년간 비어있던 왕의 자리에 대한 탐욕이다.

-그 역시 정해진 수순일 뿐입니다. 나의 왕이시여.

마켈그로이언의 말에 기오르그가 입가를 끌어올리며 웃음을 머금었다.

-그대의 군주명에 어울리는 말솜씨로군. 원하는 순간에 원하는 답변을 하는 것을 보니.

-바닥부터 구르며 살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일 뿐입니다.

-그건 그렇고, 생각 외로군.

-이들의 저항 말입니까?

-아니. 마수의 군주 위를 가진 자.

을지부루를 언급하자 마켈그로이언도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이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그래. 군단장들이 이리 힘없이 당할 줄은 몰랐지.

-운이 좋아서 군주위를 강탈하였다 생각하고 얕보았던 탓도 크옵니다.

-그럴 수도. 하지만 군주위는 그 세가 크던 약하던 운으로 가질 수 있는 자리는 아니지.

-그러하옵니다.

마켈그로이언이 공감했다.

당연했다.

그 역시 군주위를 강탈한 자.

하지만, 상상했던 것과 달리 미리 압도적인 군세를 이용해 상대방의 힘을 빼놓지 않았다면, 솔직히 군주의 자리를 강탈할 수 있으리라 장담 할 수 없었다.

-거기에 마수의 군주…… 아니지 이젠 마수의 군주라 부를 수 없게 되었지?

-그런 듯 하옵니다.

-마수의 군주위를 강탈하였지만, 권능은 그와 달리 변화하기 시작했더군.

기오르그의 말에 다른 고위 마족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마켈그로이언이야 오랜 기간 마계에서 권능의 기초를 닦아온 마족이었다.

비록 용병나부랭이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실제로 별칭을 권능의 행태로 구현하는 마족은 극히 드 물었다.

그런 그였기에 군주 위를 강탈하면서 기존의 군주명을 이어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별칭을 군주명으로 바꿀 수 있었던 것이다.

별칭을 따라가는 권능 또한 마찬가지.

그런데 마족도 아닌 존재가 군주위를 강탈한 것에 나아가 스스로의 이름을 만들어간다는 것은 놀랄 만한 일이었다.

다른 이들은 그것을 느낄 수 있지만, 대군주의 자리에 오른 기오르그나 군주위에 오른 마켈그로이언은 그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저 역시 느꼈나이다.

-무엇이 보이던가?

-전쟁만이 보였습니다.

-그런가? 하긴. 나 역시 본 것은 끝도 없는 전쟁이었지. 숭배의 대상이 될 수 있었던 인물이었나 보더군. 그런데 말이지…….

기오르그가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재미있다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무언가를 숭배하는 듯 그 형태가 조금은 달랐단 말이지.

-숭배 말입니까?

-그래. 끝없는 전쟁을 보았지만, 그 무언가 그자가 바라보는 커다란 그림자를 보았지.

이러한 것들은 심상에서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각자의 해석이 달라질 수 있었다.

지금 마켈그로이언이 느끼는 기오르그는 수많은 죽은자들이 뒤를 따르는 모습이었다.

그렇기에 사자의 대공이라 불리우던 것이다.

지금은 왕관위에 딛고선 모습이 연상되고 있었고 말이다.

그런데 마켈그로이언이 본 것과 그가 본 것이 다르다는 것에 의아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자의적 해석이 다를 수는 있지만 아예 자신이 보지 못한 것을 보았다는 건 처음 듣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커다란 그림자라면 생전에 따르던 신적 존재이지 않을까요? 따지면 이번에 죽은 크락셀의 경우에도 생전에 신의 그림자가 따랐다 했습니다.

-내가 직접 거둔 자였으니 알지만, 그 경우와는 달랐지. 그 경우는 잔재만 남은 신의 보호에 가까웠으니까.

-그렇습니까?

-그래. 이번은 뭐랄까. 같은 방향? 그런 느낌이었지. 그를 포함한 모두가 같은 방향 오로히 하나의 그림자를 따르는 그런 느낌. 생소하면서도 궁금하군.

-곧 아시게 될 일입니다.

마켈그로이언의 말에 기오르그가 크게 웃었다.

-크하핫! 그래 곧 알일이지. 이런 기다리는 재미라도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그럼 미리 준비한 또다른 재미를 볼까? 이번에는 이 인간들이 어떻게 울부짖는지 궁금하군.

-미리 씨앗을 뿌려 놓았으니 곧 보실 수 있으실 것이옵니다.

마켈그로이언이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 * *

해안을 경계하던 군인들이 검은 바다를 바라보며 긴장된 얼굴을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마물들이 바다도 건넌답니까?”

“모르지. 하늘도 날아 다니는데…….”

“어우, 생각만 해도 몸서리 쳐집니다. 그런데 이런게 통할까요?”

선임의 말에 질린 얼굴을 하던 후임병이 자신의 총을 바라보았다.

“소리가 작고 반동도 적어서인지 얼마나 위력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새로 지급받은 총기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런 후임병의 말에 선임병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비니티비 안 봤냐?”

“정훈시간에도 질리게 봤죠.”

“그럼 됐잖아.”

“그래봐야 커다란 놈에겐 이걸로 안 되잖습니까. 또 통한다 해도 마법인가 뭔가 쓰는 놈들에게는 또 다르고.”

“그래도 전거보단 났겠지.”

“그거야 뭐…….”

선임의 말에 후임병은 할 말을 잃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까.

그때였다.

“야투경 줘봐.”

“예?”

“빨리.”

어둠속을 바라보던 선임병이 정색하며 손을 내밀자 그제야 야간 투시경을 꺼내어 주었다.

그러자 선임병은 말없이 야투경을 눈에 가져다 대고 어둠속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의 행동에 후임병은 침만 꿀꺽 삼킨 채 숨을 죽였다.

전방에선 오늘 죽은 군인들과 부상자들이 많이 나왔다고 들었다.

경계근무를 교대하기 전에도 본 뉴스에는 계속 사망자 명단과 그것을 보고 울부짖는 유가족의 모습을 보다가 나왔다.

이런 상황이니 후방이라고 안심할 수는 없는 것이다.

“왜저리 비틀거려. 취했나?”

야투경을 바라보던 선임이 인상을 찌푸리며 투덜거렸다.

“저도 봐도 됩니까?”

선임병의 투덜거림에 후임병은 약간 긴장이 풀렸는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투시경을 받아 들었다.

“아, 진짜……. 야간통제나온 지가 언젠데.”

선임의 말마따나 비틀거리는 모습이 영 취한 사람과 같았다.

“상황실에다가 알리고…….”

“어?”

후임병에게 말을 걸던 중 그에게서 의아함이 가득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왜?”

“저거 이상합니다!”

“뭐가?”

후임병이 야투경을 씌워주며 떨리는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취, 취한 게 아닌 거 같습니다. 보십쇼. 머리가 꺽여서 비척거리잖습니까?”

“어?”

자세히 보니 그랬다.

비틀거리는 것은 맞았지만 마치 고개가 부러진 것마냥 꺽어진 모습이 부자연스러웠다.

심지어 다리를 끄는 게 뭔가 이상했다. 어딘가 다친 사람의 모습이라고 보기에는 석연찮은 부분이 있었다.

“좀비 아닐까요?”

“좀비!”

좀비란 말에 선임의 얼굴이 헤쓱해졌다. 하지만 웃어 넘길 수는 없었다.

지금 침공한 적의 대군주란 놈이 사자의 대공이라 불리는 이라는 건 다 알고 있었다.

심지어 낮에 전투 중에 죽은 마물들과 사람들을 일으키는 것을 정보장교가 틀어준 영상을 통해 보았다.

“상황실에 알려!”

“예!”

순간 후임병은 인터컴을 눌러 상황실을 호출했다.

“에이씨. 왜 안 받아.”

후임병은 긴장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 사이 선임병은 굳은 얼굴로 탄창을 확인했다.

“상황실 말고 대공에 연결해봐.”

“알겠습니다.”

인터컴은 대공초소에도 연결이 되어 있었다.

치지직!

연결음이 울리는 것 같자 후임병은 재빨리 입을 열었다.

“박 상병님! 거기…….”

[크억! 사, 상황실에…… 크르륵! 캬악!]

대화가 이루어지기도 전에 비명 섞인 외침과 괴이한 소리가 연이었다.

그리고는 아무런 소리가 이어지지 않았다.

“바, 박 상병님?”

후임병은 떨리는 목소리로 버튼을 다시 누르며 물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비명도 괴성도 없었다.

완전한 침묵.

“야. 총 챙겨.”

“예?”

선임병의 말에 후임병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총 챙기라고! 씨팔 하나가 아니야!”

그 말에 후임병은 총을 챙겨들었다.

“어, 어떻게 합니까?”

“어떻하긴! 소초로 복귀해야지! 상황실도 연결 안 된다며!”

“아, 알겠습니다!”

선임병의 결정에 후임병은 곧바로 문을 열었다.

“가자!”

선임병은 열린 문으로 먼저 튀어 나갔다. 그 뒤를 후임병이 따라 붙었다.

그 순간 뜨뜻 미지근한 물방울이 후임병의 얼굴위로 뿌려졌다.

“어?”

그는 순간 멍한 얼굴을 하였다.

앞서 가던 선임병의 등판에 삐죽하게 나온 것.

그건 허연 뼈로 만든 것 같은 칼날이었다.

그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아마도 선임병의 피였을 것이다.

다리에 힘이 풀리는 상황에서도 그는 총구를 들어올렸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그의 머리가 돌아갔다.

우두두둑!

-크크큭!

머리가 돌아간 후임병이 본 것은 마치 마법사와 같은 옷을 입고 반쯤 썩어문드러진 얼굴을 한 사내가 그를 보며 기괴하게 웃는 모습이었다.

잠시 뒤, 해안가에서 비척거리며 몰려오는 죽은자들의 대열에 방금 가슴이 뚫리고 머리가 돌아갔던 두 병사가 합류했다.

그들 역시 비척거리며 천천히 나아가기 시작했다.

마치 영화의 좀비마냥.

-가자꾸나. 사자의 군대여.

그런 그들을 목동이 양을 몰 듯 몰며 나아가는 이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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