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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열제 부루강림기-224화 (224/305)

제224화 오늘은 이겼다.

와장창!

쨍그랑!

소음 때문에 진짜로 이런 소리가 들려오지는 않았지만, 영상을 보는 차준우 사령관의 귓가에는 정말로 이런 소리가 들려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도공이 실패한 자기를 깨부수는 것 같습니다.”

“참신한 비유군.”

작전장교의 말에 차 사령관이 넋을 놓고 고개를 끄덕였다.

“참 쉬워보이는데.”

누군가가 영상을 보며 중얼거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작전과의 장교 중 하나였다.

그를 바라본 차 사령관이 씁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내가 어렸을 적에, 팔이 부러진 적이 있었지.”

“뭐 동네마다 한둘씩은 과하게 놀다 그런 적 있었지요.”

차 사령관의 말에 몇몇 장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지금도 그랬다.

가끔 가다 보면 팔이나 다리에 깁스를 하고 돌아다니는 아이들은 꼭 볼 수 있었다.

“왜 부러졌는지 아는가?”

“글쎄요.”

이 상황에서 농담을 던지진 않겠지 싶었는지 다들 심각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 전날에 슈퍼맨을 봤거든.”

“아…….”

슈퍼맨이라는 말에 나이든 장교들이 탄성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흔한 이야기일세. 슈퍼맨이 나는 걸 보고 빨간보자기 목에 두르고 뛰어내렸다가 부러진 거지.”

“가끔 뉴스도 나왔지요.”

“맞네. 그 뉴스의 항 꼭지를 장식하던 철없는 아이였지. 그런데 이 이야기를 왜 하는지 아는가?”

차 사령관의 말에 몇몇이 여전히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요.”

그들을 보며 차 사령관이 입가에 미소를 지우며 대답했다.

“쉬워보였거든.”

“예?”

“옥상에서 뛰어내리기 전에 난 하늘을 나는게 쉬워 보였단 말일세. 우리 집이 아파트가 아니어서 다행이었지.”

“…….”

차 사령관의 비유가 마음에 와닿았는지 조금전 쉬워보인다는 둥의 말을 했던 이들의 입이 조개처럼 다물어졌다.

“쉬워 보여서 따라하면 팔하나 부러지는 동심의 세계와 다르다는 것쯤은 다들 잊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야.”

차 사령관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 * *

-크워어어억!

“저런 미친!”

구구구구구!

십여미터가 훌쩍 넘어가는 거구가 비명을 내지르며 천천히 뒤로 넘어가고 있었다.

그 머리통에는 대부를 박아넣은 을지부루가 두 발을 디디고 있었다.

쿠우우웅!

미처 피하지 못한 마족병 일부가 뒤에 깔려 피떡이 되었다.

그렇게 할 일을 마친 부루가 내달려오는 퓨켈의 고삐를 잡아채며 올라탔다.

두두두! 두두두!

콰작! 콱!

-아아악!

-크어엉!

사방에는 마족들의 비명소리가 연신 들려왔다.

그럼에도 마족들은 연신 부루와 그 일행들을 향해 달려갔다.

최소한 두려움 없는 그 용기만큼은 인정해 줘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그 모습을 바라보는 오기원의 눈에는 미친 것들로밖에 안 보였다.

“제, 젠장!”

자신과 함께온 마물과 마족만으로도 충분히 서울까지는 점령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정벌군의 입장에서 서울에 발을 디디는 상상을 하며 함께 왔던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아직 마족이나 마물은 넘쳐났지만, 그보다도 발아래에 흐르는 그들의 시체와 피는 발 디딜 틈 없을 정도였다.

미련해 보였다.

심지어 마물과 마족이 많다고는 하지만, 중요한 건 숫자가 아니었다.

함께온 군단장들이 모조리 죽어 나자빠진 것이다. 즉 병력의 질이 확 떨어져 버린 거다.

이게 문제였다.

그런데 상대는 아직도 부족하다는 듯 물러서지 않고 전투를 이어가고 있었다.

어쩌면 자신이라도 그랬을 것이다. 군단장을 잃은 마족들은 마치 이성을 잃은 짐승마냥 마물처럼 덤벼들기 일수였으니까.

“이대로는 안됩니다. 잠시 병력을 물려야 하옵니다.”

오기원은 정신을 집중해서 자신의 군주인 마켈그로이언에게 목소리를 날렸다.

-쯧. 이미 알고 있네.

“그럼?”

-병력을 물리게. 그정도 권한은 자네에게 줄 테니까.

“아, 알겠습니다.”

대답을 하는 순간 그의 몸에 보랏빛 기운이 진하게 감돌다가 흡수되었다.

“흡!”

그 순간 몸에 힘이 넘치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수많은 상념들이 일제히 그의 머릿속을 뒤집듯이 돌아다녔다.

“우웁!”

기원은 이 불쾌한 기운을 버티지 못하고 욕지기를 뱉어 내었다. 이것들이 바로 그가 지휘하는 마족들의 감정임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내 적응이 된 듯 오기원은 몸을 바로 할 수 있었다.

“퉤. 꼴사나운 꼴을…….”

좀 괜찮아 졌는지 기원은 잠시 자신이 보인 추태가 창피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물들은 그대로 전진하고, 모든 각 군단병들은 서서히 후퇴한다.”

육성으로 뱉어진 기원의 명령.

그리 높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한마디에 전체적인 진형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뒤쪽에 흉성을 보이고 있던 마물들이 일제히 앞으로 달려나갔다.

반대로 앞에서 악다구니를 쓰며 부나방마냥 달려들던 마족병들이 이를 악물고 씩씩거리면서도 천천히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그때 기원은 모골이 송연한 느낌을 받았다.

고개를 돌리지 부루의 얼굴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정확히 그를 알아본 듯 노려보는 부루의 시선.

기원은 순간 피부에 살이 오돌도돌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빌어먹을.”

부루가 그를 보며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마치 조롱하듯 말이다.

그래서인지 물러서기 시작하는 기원의 표정위에는 불쾌함만이 남아 있었다.

“무, 물러선다?”

“적들이 물러간다!”

끊어진 괘도 때문에 멈추어 서서, 남아있는 공기압축탄을 쏘아 대며 버티던 이들이 함성을 내질렀다.

두 발로 달려봐야 도주는 불가능하다 싶었기에 가는 데까지 가자는 심정으로 치열하게 싸우던 그들이었다.

그런데 적들이 물러가는 모습을 보니 그동안 쌓여왔던 긴장이 이제야 한번에 풀렸다.

“하아.”

“아씨…….”

그제야 다들 자리에 주저 앉았다. 전차장은 땀을 훑어 내리더니 군장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며 입을 열었다.

“담배 일발 장전.”

맥이 탁 풀린 음성이었지만, 못 알아들은 이들이 없었는지 다들 그를 바라보았다.

“정말입니까?”

전차 위에서 담배를 배어문 전차장의 행동에 다들 조심스럽게 행동을 하며 질문을 했다.

그러자 전차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래. 죽다 살았는데 담배 폈다고 영창 보내겠냐?”

“하기사.”

“뭐 보내면 나름 그것도 땡큐…….”

“킥!”

여기서 영창가면 바로 전선에서 제외되는 거다. 한동안은 이짓을 안 해도 된다는 말이다.

약간 비겁하다는 생각에 포수가 말 끝을 흐렸지만, 탄약수와 운전병은 나름 재미있는지 실소를 흘렸다.

“저도 하나 주십시오.”

운전병이 포수에게 말을 걸자 그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너 냄새도 싫다며?”

“지금은 차라리 담배냄새가 나을 거 같습니다.”

그의 말에 포수는 담배에 불을 붙여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긴.”

매케하고 비린 냄새가 사방을 뒤흔들었다.

마물들의 피비린내와 아직도 불타고 있는 아군 차량들의 기름 타는 냄새.

그리고 그 속에 묘하게 고기굽는 듯한…….

아군의 냄새.

매케한 연기가 차량위에서 폴폴 피어 올랐다. 운전수가 이따금씩 기침을 하긴 했지만, 한번 물은 담배를 끊지는 않았다.

“넌 향긋하다?”

“전자담뱁니다.”

“그래. 그나저나 이 영상은 편집 되겠다 야.”

누군가가 허공에 떠있는 드론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렇지말입니다. 드라마나 텔레비전에선 담배 안 나오니까 말입니다.”

“그러니까.”

“시끄러 새끼들아. 우린 영상에 안 나가는 게 나아.”

“왭니까?”

전차장의 말에 다들 의아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전차장이 그들을 어이없다는 눈으로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가랑이 사이에 그건 땀이 모였다고 변명할래?”

“예?”

그의 말에 다들 약속이라도 한 듯 가랑이 사이를 내려다보았다.

“아…….”

“왜 몰랐지?”

“어째 따듯 하더라.”

전차장의 말에 다들 이제야 자신의 바지춤들을 보며 실소를 흘렸다.

하나같이 가랑이가 젖어 있었다.

바지 가랑이를 타고 축축하게 젖어 있는게 땀이라고 보기에는 좀 어려운 모습이었다.

모양도 모양이지만 진한 지린내도 나는데 이걸 뭐라고 변명 하겠는가.

“새끼들아 지렸다고 광고하냐? 고개 들어. 나처럼.”

“……큭큭큭!”

“폼은 쥑입니다.”

“흐흐흐.”

입에 담배를 꼬나 문 전차장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전차에 팔 하나를 턱 하니 걸치고 먼산 바라보듯 전장을 향해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조금전까지 약간의 미소를 머금었던 그의 눈동자에 서글픔이 젖어들었다.

불타오르고 있던 차량들 중 하나가 그의 눈에 유독 아프게 다가왔다.

차량 한쪽에 반쯤 타고 있는 깃발 하나가 걸려 있었다.

그 깃발은 마치 걸그룹의 싸인이 그려진 수건이었다.

“하아. 새끼 잘 좀 피하지.”

전차장의 동기가 행운의 상징이라며 평소 덕질하던 걸그룹의 싸인이 든 수건을 깃발처럼 걸어 두었던 것이다.

그래서 저렇게 망가지고 타고 있었어도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이다.

못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걸 멍하니 바라보던 전차장이 반쯤 타던 담배를 그 방향을 향해 차틈에 세웠다.

그리고는 새 담배를 입에 물었다.

“너도 한 대 펴라.”

마치 친구에게 보내는 향처럼 반쯤 타던 담배가 연기를 피워 올리고 있었다.

* * *

콰콰콰콰쾅!

“사격 중지!”

“사격 중지!”

사방에서 사격을 멈추라는 외침이 터져나왔다.

그럼에도 일부 포들은 연신 탄을 쏘아올리고 있었다.

“멈추라고! 귀떼기 처먹었냐!”

“예?”

“귀떼기…… 씨팔. 처먹었구나.”

명령을 내리던 장교가 귀에서 피를 흘리며 되묻는 병사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일일이 돌아다니며 명령을 내린 덕인지 미친 듯 불을 뿜던 포들이 점차 줄어들었다.

“조심해! 화상 입는다!”

일부는 과열된 포신에 화상이라도 입을까 봐 걱정하는 말들이 오가기도 했다.

아직은 다들 멍한 얼굴로 지휘관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떤 병사들은 소모된 탄을 나르러 움직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지휘관이 입을 열었다.

“이겼단다.”

“예?”

“이겼다고! 이 새끼들아!”

버럭 소리를 지르고 나서야 군인들이 환호를 내지르기 시작했다.

“우와아아아!”

“으야아아!”

하도 포를 쏘아대서인지 다들 귀가 멍멍했는지 마치 한 박자씩 늦게 환호를 터트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걸 보며 지휘관들은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담배 필 놈들은 포에서 50미터씩 떨어져 펴라. 탄 관리 똑바로 하고.”

그 말에 일부 병사들이 절룩이며 이동했다.

비흡연자들이 압도적으로 많아서인지 아니면 담배조차 싫은 것인지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않는 이들이 절반 이상이었다.

“후우.”

지휘관들은 여기 저기 듬성듬성 빈 자리를 바라보았다.

일부 포가 있던 자리는 움푹 패이거나 잔해만이 남아 있었다.

그 주변에는 어김없이 의무대가 와서 서성이고 있었다.

부상자를 나르던 시체를 나르던…….

혹은 군번줄이라도 찾으려는 듯 분주했다.

“오늘은 이겼네. 오늘은.”

그 모습을 보며 지휘관은 피곤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더니 털썩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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