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1화 21세기 기마대전의 시작
고위급 마법사로 이루어진 마법전단이 연이은 공격에 떨어지기 시작하자 오기원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드디어 나에게 기회가 오는가?
그때 한쪽에서 전투를 관망하고 있던 마족 군단장 하나가 기분 좋은 미소를 입에 걸었다.
“뭐?”
그때 기원은 미묘한 감각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자신의 군주와 대화를 연결했을 때나 느껴지는 감각이었다.
그것이 점점 커져오는 것을 느꼈다. 방향은 대한민국 군대가 포진해 있는 방향이었다.
무너지고 불타고 있는 방어진지를 뚫고 나타난 기마들이 하나둘씩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내 그들은 하나의 대열을 이루기 시작했다.
그것만으로도 그 정체를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을지부루…….”
마수의 군주이자 고빈의 강림자. 자신을 나락에 빠트린 존재다.
“놈!”
이를 빠득 갈았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그를 발견한 군단장이 걸음을 옮겨 나갔다.
-나에게 드디어 기회가 오는군!
“경거망동하지 마라!”
기원이 소리쳐 불렀지만 이미 군단장은 기회를 얻었다는 듯 걸 음을 옮겨 나갔다.
“쳇!”
그도 알고 있었다.
마계의 종족이 군주에 오르는 길은 군주를 꺾는 것.
그렇기에 항상 최상위 마족들은 그 기회를 노린다. 물론 그게 쉽지는 않다.
군주에게는 항상 뒤를 따르는 최상위 마족들이 함께 한다.
그들을 뚫고 군주를 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만한 전력이 뒷받침 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을지부루는 좋은 먹잇감이었다.
물론 그에게도 군단장급의 최상위 마족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 외의 전력은 군단급에도 못 미치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렇기에 군단장들은 자신에게 그 기회가 생기길 바라고 또 바란다.
비록 기원이 마켈그로이언에게 충성을 바치며 종속되기는 했지만, 사실 아직 그에게는 수족이라 할 수 있는 세력이 미약했다.
대원길드가 있다지만, 여타 군단장들에 비하면 의미 없는 힘이다. 본인의 능력 또한 모자람이 있었다.
그의 강림자가 완전하게 역소환되며 연결고리가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처음 있는 경우지만, 그래도 후회하지는 않았다.
쓰지 못할 무기라면 없느니만 못한 게 사실이니까.
그런데, 지금 이런 기회 앞에서도 무력한 자신에 짜증이 솟구쳤다.
“빌어먹을.”
게르하이오 폰 기오르그 휘하의 군단장인 크락셀은 뼈만 남은 두 눈동자를 빛내며 말을 몰아 가기 시작했다.
생전에 한 행성의 영웅이었던 그는 기오르그에 대항하다가 죽음을 맞이한 뒤에 데스나이트로 되살아났다.
기오르그에게 죽음을 당했다지만, 마지막까지 대항하던 영웅이었던 만큼 그의 능력은 다른 데스나이트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 강력함을 바탕으로 수많은 마족 간 결투와 침략전쟁에서 승리를 거듭하며 군단장까지 오른 것이다.
그런 그에게 군주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저놈들이 마계를 분탕질 쳤다는 마켈그로이언의 용병대로구나.
지금은 군주의 자리에 올랐지만, 사자의 대공 휘하에 있던 군단장들은 그를 인정하지 못했다.
노예상인이었으며 전쟁에 팔려 다니던 용병상인이었던 마켈그로이언.
세치 혀로 그 자리까지 올랐다는 평가 때문에 힘을 숭상하는 마족들에게는 그리 큰 인정을 못 받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수완가이지만, 군주의 자리에는 부족하다 생각하는 마족들이 대다수였다.
그러나 그들의 대군주인 기오르그의 판단이었기에 티를 내지 않을 뿐이었다.
그런데 눈 앞에 하나 남은 군주의 자리가 열려 있었다.
당연히 탐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마켈그로이언의 용병대에서 떨어져 나간 놈들이 적으로 나타났으니 본보기로 쓸어보이고픈 마음도 있었던 것이다.
-가자 너절한 뼈다귀들아!
크락셀이 자신의 칠흑빛 검을 흔들며 외치자 그의 뒤를 따르는 데스나이트들로 구성된 직속 기사단과 휘하 마족병들인 다크나이트들이 일제히 따라 말을 달리며 음울한 함성을 내질렀다.
-우어어어어!
-우어어억!
음울한 울음소리에 고빈이 인상을 확 구겼다.
“아이씨. 기분 더럽네.”
멀리서 보아도 언데드의 일종인데 마치 삼류 공포영화에서나 들릴 법한 울음소리를 흘리며 달려오고 있었다.
그런데 울음소리 자체는 삼류같다고 생각했지만, 그걸 받아들이는 몸은 달랐나 보다.
온 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기 시작한 것이다.
무언가 울음소리에 사기를 꺾는다던지 하는 그런 기운이 담긴 모양이었다.
“그래봐야 뼈다귀지.”
하지만 빈은 코웃음을 치며 마음을 다잡았다.
영화와 달리 뼈다귀로 된 언데드는 타격에 약한 편이었다. 그래서 더 자신 있었다.
그때 지원을 하듯 포탄들이 마물들을 향해 쏟아져 나왔다.
콰콰쾅!
폭발음과 함께 사방에 움푹움푹 패여 나갔다.
바닥을 파헤친 파편과 먼지구름 등이 걷혀지자, 드러난 광경에 빈이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어?”
분명 타격을 입었으리라 상상했는데 드러난 광경은 예상과 달랐던 것이다.
바닥에 쓰러진 것들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저들은 하급마물이나 하급 마족이 아닙니다.
뒤따라 오던 마족 마법사가 의아해 하는 빈에게 조심스럽게 설명을 붙였다.
“그럼요?”
-사자의 대공 휘하의 군단장인 타락한 영웅이라 불리는 크락셀입니다.
“타락한 영웅?”
-다른 행성에서 최후까지 대항하던 영웅이었지만 기오르그의 권능으로 인해 되살아난 존재입니다.
그 말에 빈은 경시하던 마음을 버렸다.
신의 의지가 남아있는 세상에선 신탁과 함께 영웅이 난다고 한다. 물론 신이 직접 관여하는 것에 비하면 모자라지만, 그렇게 영웅이 된 이들은 별의 파편이라 불리는 강림자에 비할 수 없는 강자들이라고 했다.
당연히 얕보는 건 말도 안된다.
또 한 가지.
그랬던 존재가 저렇게 데스나이트로 되살아났다는 것에 더욱 소름이 끼쳤다.
“나도 저렇게 되는 거 아냐…….”
자신도 당하면 저렇게 다 뼈다귀만 남아 끝없는 학살을 즐길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왜 좀비영화를 보면 좀비에게 물려 죽기 전에 스스로 머리에 총을 쏴서 영원한 안식을 택하는 인물들이 항상 나오겠는가.
자신의 의지가 사라지고 괴물이 되는 것은 그 어떤 사람도 싫어하는 선택지인 것이다.
그건 빈도 마찬가지였다.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빈에게 마족 마법사가 걱정 말라는 듯 위안이 될 만한 이야기를 건내 주었다.
-그건 걱정 안하셔도 될 듯 합니다. 크락셀 군단장은 최후까지 남았던 만큼 강력한 힘을 소유했던 자이니 기오르그 대군주가 권능으로 되살렸던 것이니까요.
“응?”
-단지 언데드로 만드는 것과는 다른 선택이란 것이지요. 쌓아온 단순 은총을 내리는 게 아닌 권능을 나눠주는 것이니까요.
재차 이어진 설명에 빈이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빈을 위해 이번 전투에 합류한 전신 길드장인 임병화가 보충 설명을 해줬다.
“넌 가성비가 안 나온다는 말이다.”
“에이씨.”
병화의 팩트 폭력에 빈이 얼굴을 구겼다.
-예. 게다가 영웅출신이라던지, 별의 파편을 소환하는 자의 경우 기본적으로 신이나 별의 가호가 담겨 있어 언데드로 만드는 데에는 꽤나 많은 저항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선택하지 않는 방법이지요.
“…….”
-전신 길드장께서 말씀하신 대로 효율 문제도 있으니 사망하셔도 되살아나 걸어 다닐 경우는 없으니 안심하고 전투를…….
마음을 후벼파는 내용을 듣고만 있던 빈이 말을 잘랐다.
“마법사 아저씨 평소 눈치 없다는 소리 안 들어요?”
-예? 그냥 솔직하다는 말은 자주 듣습니다만…….
“그게 그 말이에요.”
빈의 소소한 복수에 친절한 마족 마법사는 얼굴을 구겨야만 했다.
물론 마음의 상처로만 따지면 빈이 더 크지만 말이다.
“시답잖은 소리 말고 가자우!”
그때 을지부루가 속도를 높이며 그들의 잡소리를 차단했다.
잠시 동안 오간 농담(?) 덕분인지 높아졌던 긴장감이 약간은 가라앉았다.
오랜만에 대규모 돌진을 시도하는 덕인지 부루의 얼굴은 꽤나 밝아있었다.
“그간 쭉정이만 나오다가 내가 나오니 군단장이라는 놈이 영접을 나오는구만 기래. 사람을 알아보는 거이야.”
꽤나 강한 적이라는 말에 기분이 좋아진 모양이었다.
그러자 뒤따르던 마족 마법사가 다시 그에게 입을 열었다.
-군주시여 당연한 것이옵니다. 아마도 놈은 세력도 약하고 군주가 되신 지 얼마 안 된 군주님을 손쉽게 군주의 자리를 강탈할 수 있다고 만만하게 본 것이 틀림이 없습니다.
“…….”
순간 주변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강자와 싸우기 위해 강자가 나타났다는 둥 전장의 로망을 나타내던 부루에게 제대로 찬물을 퍼부은 것이다.
잠시 입을 다물었던 부루가 물었다.
“이름이 뭐이간?”
-토글라스입니다.
“내래 기억하겠어.”
-영광입니다!
부루의 말에 마족마법사가 반색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빈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역시 눈치가 없는 거였어.”
“큭큭큭!”
옆에 있던 병화가 빈의 중얼거림에 소리죽여 웃음을 흘렸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두 집단이 더욱 가까워졌다.
부루가 말 고삐를 놓으며 활을 잡아들자, 그 뒤를 따르던 기마들도 일제히 화살을 시위에 재기 시작했다.
적들을 향해 쏘아지던 포탄도 오폭을 우려해선지 아니면 의미 없다는 것을 파악해서인지 더는 쏟아지지 않았다.
“21세기에 기마전이라니…….”
빈이 이 상황이 기가 막힌지 피식하니 웃음을 흘리며 안장에서 총을 집어들었다.
물론 대 마물용 소총이다.
군대군대 섞여있는 전신길드원들과 빈등은 활 대신 대마물 소총을 집어 들었다.
물론 말 고삐를 놓는다 던지의 묘기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나름 고삐를 손에 쥔 채 총을 받쳐드는 정도는 가능했다.
투우웅!
부루의 시위가 화살을 뱉어내는 순간 뒤따르던 이들이 일제히 화살을 날렸다.
마찬가지로 얼마 없는 소환자들도 방아쇠를 당겼다.
우우우웅!
말을 달려오던 마족 기마병들이 일제히 한 손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몸을 가리는 방패와 같은 검보랏빛 원형 막이 펼쳐졌다.
그 사이 군단장 크락셀을 향해 을지부루가 쏘아낸 화살이 날아 들었다.
따아앙!
크락셀이 화살을 퉁겨내며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호오?
찌푸린 얼굴과는 다르게 입에서는 감탄의 음성이 살짝 흘러나왔다.
-그래도 군주의 자리를 강탈한 존재란 건가?
손에서 느껴지는 반탄력이 상상 이상이었던 것이다.
투투퉁! 투퉁!
그의 뒤를 따르던 데스나이트들과 다크나이트들이 날아드는 공격을 막는 소리가 울려왔다.
일부는 막는데 실패를 했는지 와그작 소리와 함께 바닥을 뒹굴다가 온몸이 바스라지는 소리를 내었다.
그럼에도 쓰러지는 것들은 소수였다.
-창을 들어 올려라! 놈들의 육신을 꿰어 들어라!
크락셀이 자신의 대검을 들어올리며 외치자 기병들이 일제히 수 미터는 되어 보이는 기병창을 들어올렸다.
보랏빛이 감도는 기병창을 세우더니 천천히 앞으로 내밀며 돌격해오는 적들을 보며 고빈은 침을 꿀꺽 삼켰다.
“거창!”
그때 을지부루의 뒤쪽에 말을 달리던 가우리의 무장 중 하나가 삭(기병용 창)을 들어 올리며 외 쳤다.
그러자 이쪽도 4m가 넘어가는 기병용 창인 삭이 하늘을 찌르듯이 세워졌다가 천천히 정면을 향해 겨누어졌다.
일부는 삭을 안장에 고정시킨 채 양 손에 손도끼를 집어 들었다.
소수의 묵갑귀마대원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