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6화 기사단처럼
카라라라랑!
오백여대의 전차가 일제히 튀어나가는 전차의 무한괘도음이 귓가를 자극했다.
마치 옛날 창기병이 창날을 세우고 내달리는 것과 같았다.
그 중에서도 중간에 마치 일반 전차의 보호를 받으며 나아가는 듯한 특이한 포탑을 단 전차는 눈에 크게 띄었다.
물론 좋은 의미는 아니었다.
“젠장 방풍막이 있어도 먼지가 다들어오네.”
다른 전차와는 달리 그 전차는 상부가 뚫려 있었다.
아니 정확히 표현한다면 무한괘도가 장착된 전차몸체 위에 야포를 얹어놓은 것 같은 형태에 가까웠다.
그나마 빙 둘러서 철판을 깔아 덜 빈약해 보이는게 다행일 뿐이었다.
“준비!”
포수는 포의 옆에 달린 조준경에 눈을 가져갔다.
그러나 아직은 거리가 멀었는지 먼지에 눈살을 찌푸리는 전차장의 명령을 기다리며 다들 침묵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그들의 주변에 있던 전차들이 좌우로 펼쳐지며 적진에 포사격을 시작했다.
쾅! 쾅! 쾅!
제대로된 조준 사격이 덩치 큰 마물들을 직격했다.
제대로된 철갑탄이 직격하자 커다란 덩치의 마물들이 엉덩방아를 찧었다.
일부 마물은 포격이 효과가 있었는지 멀리서도 선명하게 몸뚱이가 박살이 나며 쓰러졌다.
“언데드들 외에는 거의 안 먹히는거 같은데요?”
“저 희끄무리한 건 아예 포탄이 통과됩니다.”
“예상했잖아.”
아직 사거리가 닿지 않았는지 그들의 전차는 계속 다른 전차들이 사격하는 모습을 관측만 할 뿐이었다.
그때 희끄무레하다고 한 마물들이 일제히 앞으로 튀어나오고 있었다.
“저거 물리적 타격을 입기는 한답니까?”
“연구원들 말로는 가능할 거라는데, 쏴 봐야지.”
“사거립니다!”
“일단 초탄 한번 날려보자. 소용 없으면 튀어야 하니까.”
“준비 됐습니다!”
포수의 외침에 전차장이 전방을 주시하며 외쳤다.
“날려봐. 못 맞추면 알지?”
“이 거리에서 못맞추면 여태 먹은 짬이 아깝죠.”
퍼엉!
포수의 장담이 끝나기가 무섭게 폭음이 울려 퍼졌다.
다만 그 소리가 약간은 묵직한 저음처럼 들려왔다고나 할까.
당연한 일이었다.
화약추진방식으로 포탄을 쏘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그렇지!”
“아싸!”
포수와 전차장이 동시에 환호성을 터트렸다.
그들이 날린 포탄은 희끄무레한 마물을 관통하고 뒤에 따라 달려오던 놈까지 맞췄다.
중요한 것은 포탄이 뚫고 들어가는 순간 일반 포탄을 그냥 통과시키던 마물이 괴로운 듯 몸을 뒤틀더니 그대로 공기중에 흩어졌다는 것이다.
심지어 뒤에 오던 놈도 확인은 어렵지만 적중되는 순간 피가 터져나오며 뒤로 나자빠진 것이다.
“일타 쌍핍니다!”
“그런데 이거도 킬마크 갑니까?”
“당연하지!”
전차장과 포수가 그렇게 떠드는 사이 탄약수들은 수동으로 장전을 이어가고 있었다.
한명은 원통형 원추형 탄두를 들어 밀어 넣고, 다른 한명은 이어서 캡슐을 집어넣은뒤 개패기를 닫았다.
“장전끝!”
“쏴!”
퍼어엉!
퍼엉! 퍼어엉!
공격을 시작한 것은 그들 뿐만이 아니었는지 사방에서 전차포와는 확연하게 다른 소리가 연이어 울려퍼지고 있었다.
“효과 있습니다!”
“효과가 있다니까 더 아쉽군.”
차준우 사령관이 입맛을 다셨다.
“그래도 트럭에 올린 것들은 꽤 있습니다.”
“그나마 다행이지.”
짧은 시간이지만, 가스 압축식 캡슐을 이용한 포를 만들어 올린 것이 주효했다.
물론 개조에 시간이 걸리기에 지금은 백여대가 전부지만 말이다. 그러나 동원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동원하자는 의미에서 일톤 트럭등에도 이것을 장착한 것이다. 효율면에서는 이쪽이 나을 수는 있지만, 운용지형이 한정적이라는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사실 서부전선을 주 전선으로 택한 이유중 하나가 바로 이런 부분이기도 했다.
“차라리 전차 빠지고 차륜형 투입시켜.”
“알겠습니다.”
차준우 사령관의 명령에 작전장교가 명령을 하달했다. 그러자 한쪽에 준비하던 트럭들이 일제히 달려나갔다.
군용과 민수용 할 것없이 뒤섞인 것들이 일제히 달려나갔다.
그 중에는 마치 옛날 거함 거포 시절의 주포 마냥 포를 세 개씩 신고 달리는 오톤 트럭들도 있었다.
“살다 살다 트럭을 타며 포를 쏘는 건 또 처음이네.”
운전석 위쪽에 고정된 포를 조준하는 포수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리자, 뒤에 있던 한 군인이 대답했다.
“병장 아저씨. 난 더 황당하다고요.”
“크크크.”
뒤에서 투덜거리는 목소리에 포수가 어깨를 흔들며 웃었다.
“농담 그만하고! 사거리 들어오면 전방포부터 쏴.”
“예!”
어느새 좌우로 빠져나가며 연신 사격을 하는 전차들을 대신해 그 자리를 트럭들이 차지했다.
트럭운전석 지붕위에 포신이 삐죽이 나온 게 괴상한 형태였지만, 포구 화염이 없어서 가능한 디자인이기도 했다.
퍼엉! 펑! 펑!
거의 오백여대가 넘는 차량들이 일제히 포를 쏘아내자 마물들의 전열이 무너져 내렸다.
“꽉 잡으십쇼! 우회합니다!”
운전석의 외침에 전방포를 발사했던 포수가 재빨리 자리에 앉았다.
그와 동시에 차량들이 마치 드리프트를 하듯이 방향을 꺾기 시작했다.
“우와아악!”
“꽉 잡아!”
안쪽에서는 비명들이 터져나왔다. 포와 주요 장비만 고정했지, 처음부터 사람을 위한 배려는 없는 개조였다.
그것까지 신경쓰기에는 시간이 너무 모자랐던 것이다.
“뭐해! 위치로!”
안전하게 방향을 틀자 하사관이 병사들을 다그쳤다.
물론 그의 다그침 이전에 그간의 훈련이 나쁘지 않았는지 각 병사들은 각자 위치에 자리 잡았다.
“일번포 준비끝!”
“이번포 준비끝!”
“사, 삼번포 준비끝!”
“각자 태블릿에 조준점 표시하고 섞이지 않게 쏴!”
“예!”
하사관의 명령에 다들 자신의 타겟을 테블릿에 찍고는 조준점을 맞췄다.
각기 다른 표적을 확보할 수 있도록 네트워크로 공유하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때 리시버로 무전음이 들려왔다.
[전포 일제사! 이후 자유 사격한다!]
“쏴!”
명령이 떨어지자 거의 동시에 포구가 압축공기를 뿜어내며 포탄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퍼퍼펑! 퍼펑! 퍼퍼펑!
각 차량당 한 개에서 세 개씩 포를 고정해 놓은 덕에 날아가는 포탄의 수는 천여발을 웃돌았다.
화약무기가 아닌 그저 마수의 부산물과 은합금을 이용한 코팅에 불과했기에 굉음은 없었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달려오던 마물들의 전열이 일제히 무너져 내리며 뒤따라오던 놈들까지 걸려 뒹굴었던 것이다.
* * *
마물들이 나뒹구는 모습을 본 오기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어떻게?”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었다.
포탄이 통할 마물은 극히 드문 상황이었다. 그런데 지금 마물들은 마치 원시시대의 공룡들이 현대화기들에 의해 나자빠지는 판타지 영화처럼 쓰러지고 있었던 것이다.
미사일과 포병들의 화력에도 살아남은 마물들이기에 더욱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오기원은 이내 그 이유를 알아차렸다.
“빌어먹을 저렇게도 가능해?”
화약무기 특유의 화염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걸 본 순간 이해할 수 있었다.
-무슨 상황이지?
그때 마켈그로이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약간 굳은 듯한 음성에 기원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저번에 말씀드린 대 마물병기의 크기를 키운 듯 합니다.”
-그러면 이해가 가는군.
“아무래도 마물들의 피해가 계속 누적될 것 같습니다. 저런 게 나왔다면 현대 병기와 유사한 것들이 더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 재미있군.
마켈그로이언의 목소리에는 흥미로움이 섞여 있었다.
그 목소리에 기원은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이 상황에서도 문제가 없다는 의미니까.
그때 그의 후편에 있던 마족병들이 일제히 나서기 시작했다.
마치 반지의 제왕이라는 옛 영화에 나온 것 같은 사족보행 마물 위에 기병 마냥 타고 있는 이들이었다.
* * *
“온도가 너무 떨어졌습니다! 사거리가 안 나옵니다!”
가스 압축식의 단점이었다. 쏘면 쏠수록 온도가 떨어지고. 또 그렇게 되면 사거리가 줄어든다는 점이다.
포수의 외침에 차량을 지휘하던 하사관이 외쳤다.
“빨리 흔들어!”
“예!”
착착착! 착착착착착!
한쪽에선 병사 둘이 열심히 양 팔을 위아래로 흔들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지휘관인 하사조차도 한 팔을 열심히 흔들고 있었다.
“다됐습니다!”
“약실 열고 빨리 데워!”
압축가스를 넣는 약실에 그들은 흔들던 것을 집어 넣었다.
그건 바로 핫팩이었다.
“빨리 다른 것도 흔들어!”
그때 한 병사가 열심히 팔을 흔들다가 문득 우울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아, 이거 자괴감 든다.”
“헉헉! 왜?”
땀을 뻘뻘 흘리며 흔들던 동료가 물었다.
“아니, 꼭 야동보면서 흔드는 것 같잖냐.”
“…….”
착착착착착!
순간 정적이 흘렀다. 그때 한 손으로 흔들고 있던 하사관이 나지막하게 욕설을 흘렸다.
“하, 씨파 비유를 해도.”
“큭!”
“쿡쿡쿡!”
순간 사방에서 억눌린 웃음들이 터져나왔다.
그러자 하사관이 피식 웃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새꺄! 닥치고 흔들어!”
그러나 그의 명령은 트럭 위를 웃음바다로 만들어 버렸다.
“푸하하하!”
“킬킬킬!”
전장 한가운데에서 어울리지 않는 웃음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때였다.
“응?”
민망함에 시선을 들어올렸던 하사관의 눈에 뭔가가 들어왔다.
“이런 씨팔!”
“예?”
그의 욕설에 모두가 얼어붙었다.
동시에 차량 운전석에서 경고음이 울려퍼졌다.
“모두 꽉잡으십쇼! 회피기동 들어갑니다!”
“염병!”
순간 포수들도 핫팩을 데우던 이들도 모두 양 손으로 차량에 부착된 손잡이를 붙잡았다.
그런 그들을 향해 불덩이들이 순식간에 날아들었다.
끼기기기긱!
“와악!”
차량이 급격하게 기동을 하며 모두 한쪽으로 몸이 쏠렸다.
그 순간 그들을 스쳐 지나간 불덩이가 폭발을 했다.
콰쾅!
키키키킥!
그 폭발 때문인지 차량의 바퀴 두 개가 뜨면서 한쪽으로 들려버렸다.
마치 영화에서나 보던 드리프트를 하듯이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영화가 아니었다.
콰콰콰콱!
차량은 그대로 균형을 잃고 옆으로 미끄러지며 나아갔다.
동시에 차량에서 튀어 나가지 않도록 고정고리에 끈을 묶어 몸에 연결한 군인들이 일제히 바닥에 나뒹굴며 쓸려 나갔다.
드드드득!
그렇게 이십여미터는 더 미끄러진 차량이 멈추었다.
“자, 장 차장님!”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병장 하나가 차량의 장이라고 해서 차장이라 불리던 하사관을 찾았다.
하지만, 이내 입을 틀어막았다.
방금 전까지 함께 웃고 농담을 던지던 그의 상체가 미끄러져 온 차량에 깔려 있었던 것이다.
진득한 핏물이 아래로 배어나오는 것을 보면 이미 살기는 글렀다.
“우욱!”
누군가가 입을 틀어막았다가 시원하게 토사물을 쏟았다.
비극은 그 하나뿐이 아니었다.
또 다른 한 명은 머리가 깨져 고개를 축 늘어트리고 있었다.
방탄모가 절반이나 들어간 것으로 보아 그 역시 가망 없어 보였다.
“이탈해! 빨리!”
그나마 정신을 먼저차린 그는 다른 병사들을 흔들며 외쳤다.
이내 연결고리를 해제하고 비틀거리는 동료들을 끌고 옆으로 세워진 차량을 이탈하는 순간 한숨을 내쉬었다.
“하, 젠장.”
뒤이어 날아온 뜨거운 불덩이가 그들마저 집어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