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0화 강철비
* * *
긴 이름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러자 주변의 마족 마법사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사자의 군주 확인했습니다.
그의 말을 들은 구 박사가 한숨을 내쉬었다.
“카르탈마니어 군단장에게 왔을 거란 이야기는 들었지만, 여러 가지 시나리오 중에 최악의 경우만 사실로 밝혀지는구만.”
이미 타 군주의 기운을 파악한 마족 마법사들이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을 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의미 없는 마음이었을 뿐이다.
문을 드나드는 것도 어떤 군주냐에 따라 가능하고 또 불가능했다.
예를 들어 이곳에서 을지부루에게 죽은 마수의 군주만 해도 그랬다.
그는 이번 양강도의 문이 열리기 전에 최초로 이 세상에 발을 들였던 군주였다.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약해서다.
그가 군주이기는 했지만, 그 세력이 약하고 본신의 힘이 약했기에 침식균열을 통해서 강림해 오는 것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들이 이미 느낌으로 알았다고는 했지만, 눈으로 확인해야 믿을 수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만에 하나 아니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고 말이다.
솔직히 최강의 존재가 온다는데 누가 좋아하겠는가.
“빨리 이 사실을 보고 드리게.”
구 박사가 풀 죽은 목소리로 이야기하자 사진을 가지고 왔던 연구원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대침식 이상의 전력이라고는 하지만, 우리도 만반의 준비는 갖췄습니다.”
누군가의 말에 구 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야지. 해내야지.”
구 박사가 마치 스스로를 세뇌시키듯 중얼거렸다.
* * *
“게르 뭔 기오르그?”
“게르하이오 폰 기오르그입니다.”
참모가 재차 풀 네임을 말해 주자 차준우 사령관이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판타지물에나 나올 법한 이름이군. 꽤나 고상한 느낌이야.”
나름 농담이라고 던진 말이었지만, 아무도 웃어 주지 않았다. 그런 참모들의 반응이 야속했는지 차 사령관이 불만 섞인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나 때는 사령관이 농담 비스무리한 말만 던져도 손뼉치고 배를 붙잡고 웃었건만.”
“요즘 그러면 사령관님도 욕먹습니다.”
강문호 중령이 그런 차 사령관의 너스레에 보조를 맞춰 주었다.
“어쩌겠나. 내가 재미없는 인간인 걸. 그나저나 많기도 하네. 대침식 당시 웨이브보다 더한 것 같기도 하고.”
휴전선이 붕괴되면서 서부전선으로 밀려들어온 사건을 웨이브라 불렀다.
당시 북한군이 붕괴하면서 제대로 기능을 못하게 되자 수많은 이들이 남으로 탈출을 감행했다.
그때 마물들이 뭉치고 또 뭉쳐서 추격하듯 밀려 내려온 적이 있었는데 그 이후로 비슷한 현상을 웨이브라 표현했었다.
“일단 마물들 덩치들도 다르긴 한데. 그나마 그땐 민간인과 마물이 뒤섞여 남하해서 정말이지…….”
당시 전투에 차 사령관과 함께 참가했던 강문호 중령이 치가 떨린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그럼 그때보단 나은 건가?”
차 사령관이 피식 웃으며 묻자 강 중령이 고개를 갸웃 거리다가 이내 웃으며 대답했다.
“뭐 마물들의 덩치도 더 크고 숫자는 훨씬 많아 보이며, 마족병이라는 지적능력이 적당히 있는 것들이 섞이긴 했지만…… 지금이 나아 보이네요.”
그의 설명에는 전혀 나은 것 같지 않음에도 강 중령은 지금이 낫다는 말을 했다.
그걸 일부 참모들은 위안이 되라고 말한 건가 하는 생각에 그를 바라보았지만, 차 사령관이 맞장구를 치는 모습에 입을 다물었다.
“자네 생각도 그렇지?”
“예. 적어도 민간인 맞출까 봐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되고, 결국 골라 쏘다가 대를 위한 소수의 희생이라는 개소리로 포장해서 끝내 민간인들이 뒤섞인 무리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지 않아도 되니까요.”
“내 명령이 개소리처럼 들렸나?”
“아, 죄송합니다. 스스로에게 한 말을 언급한 겁니다.”
“아, 무슨 소린지 알겠군.”
차 사령관은 미묘한 어투에도 쉽게 수긍하는 듯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난 어쩔 수 없다……. 우린 어쩔 수 없다. 지금 쏘지 않으면 남쪽의 우리 식구들이 다 죽을지도 모른다.”
강 중령의 말에 다들 굳은 얼굴을 했다.
일부는 당시 전투를 기억했기 때문이고 일부는 참여했기 때문 이었다.
그래서 저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뭐 이렇게 애들에게 면죄부 좀 주고 명령을 전달하는 저도 변명거리 만들고……. 그게 또 대침식이 지나도 꿈에서 반복되고.”
강 중령이 서늘한 시선으로 적들이 온다던 방향을 바라보았다.
“최소한 이번에는 우리의 사선에서 마물보다 먼저 피를 뿌리며 쓰러지는 민간인들의 모습은 안 봐도 되는 거니. 확실히 그때보단 낫습니다.”
“맞아. 안 그런가?”
차 사령관이 주변을 둘러보며 묻자 다들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맞습니다!”
“예!”
둘의 대화를 들으며 이 전쟁을 이끌어야 하는 참모들의 표정이 달라졌다.
그들을 보며 차 사령관이 강 중령을 향해 입가를 끌어올렸다.
마치 잘했다는 듯.
“일단 병사들에게도 주지 시켜. 우리 목적은 이곳에서 승부를 보는 게 아니라 최대한 시간을 끄는 것이라는 걸 말이야.”
“알겠습니다!”
“그래. 그리고 강 중령은 사전에 논의한 대로 기동대와 함께 움직이고. 모쪼록 큰 피해가 없었으면 좋겠군.”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
이곳에 배치된 병력이 시간을 최대한 끌고 이탈할 때 기동대가 후미를 맡게 된다.
아무래도 마물과 항상 드잡이질을 했고, 또 최근에 있었던 큰 전투에서도 강림자들과 함께 합을 자주 맞춰 본 베태랑들이기에 뒤를 맡기는 선택을 한 것이다.
그만큼 위험한 자리다.
작전대로 자연스럽게 빠질 수 있다면 좋겠지만, 전쟁이란 건 항상 차선 차악 최악을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중 기동대는 차선 차악 최악의 상황 모두를 감당해야 하는 이들이다.
그렇기에 미안한 마음을 담아 한 당부를 했던 것이다.
“그럼 전 먼저 가 보겠습니다. 준비를 해야 해서.”
“믿겠네.”
차 사령관의 당부에 강 중령은 경례를 올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가 이동하는 모습을 보며 차 사령관은 시계를 보더니 참모에게 질문을 했다.
“이제 시작할 때가 되지 않았나?”
“예. 벙커에서 연락이 올 겁니다. 시작은 그쪽에서 신호를 주기로 했으니까요.”
“그래. 병사들 놀라지 않게끔 미리 다독여 두도록, 미리 전달하자고. 그리고 역사에 없을 불꽃놀이니까 다들 똑똑히 보라고 하고.”
차 사령관이 빙긋 웃으며 말하자 다들 쓴웃음을 머금었다.
* * *
양현재 대통령이 눈을 빛내며 국방부 장관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국방부 장관이 자동적으로 보고를 시작했다.
“러시아와 중국 쪽에서 좌표를 받아갔습니다.”
“그런가? 하긴 남의 땅이니 신나게 쏘겠군.”
양 대통령의 말에 국방부 장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미사일 사령부도 준비되었습니까?”
“탄도미사일 요격한 직후부터 모두 준비를 끝마쳤습니다.”
그의 답변에 양 대통령이 일어서서 주변을 바라보았다.
아직 진짜 전쟁은 시작도 안 했건만 다들 벌써 피로도가 꽤 쌓인 얼굴들이었다.
하지만, 양 대통령과 시선을 마주하는 그들의 눈동자만큼은 제대로 빛나고 있었다.
“방송은?”
“2분 전입니다.”
“시작은?”
“10분 전입니다.”
비서관의 보고에 양 대통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양 대통령이 고개를 돌렸다.
전쟁을 앞둔 상황에서 벙커에까지 방송사가 들어온 것은 이들이 처음일 것이다.
잠시 뒤, 전쟁을 알리는 대국민 담화가 짧게 나갔다. 미사여구는 없었다. 지금 이제 전쟁을 한다는 무미건조한 말.
이미 할 말은 이전에 했기 때문에 어차피 의미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방송이 끝나고 대한민국 전역에서 길고 긴 싸이렌 소리가 이어졌다.
어떻게 끝날지 모르는 전쟁의 시작음이었다.
다시 자리로 돌아온 양 대통령이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럼 제대로 싸워 봅시다.”
* * *
대한민국에 정확히 얼마나 많은 미사일이 있는지는 그간 밝혀지지는 않았었다. 다만 주변국들이 추론하기를 이천 기 이상일 것이라는 정도.
대침식 때도 많은 미사일을 소모했지만, 그러고도 남은 게 그 정도일 것이라는 의미였다.
그 추측이 완전 틀리지는 않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대한민국 전역에서 미사일들이 솟구쳐 올랐다.
“시작되었습니다.”
닉 레너드 대통령은 모니터 요원의 보고에 긴장한 얼굴로 질문을 던졌다.
“중국과 러시아도 시작했나?”
“그쪽이 먼저 발사했습니다. 중국에서 오십 기. 그리고 러시아에서 백이십사 기가 쏘아졌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에서는…….”
모니터에 셀 수 없이 많은 점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 방대한 양에 보고를 올리던 모니터 요원이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죄, 죄송합니다. 보고드리겠습니다. 칠백오십이 기, 아니 구백구십, 천백삼십…….”
보고는 자꾸만 바뀌었다. 계속해서 늘어나는 미사일 숫자들 때문 이었다.
“핵도 저 정도는 아닐 겁니다.”
누군가가 멍하니 그걸 바라보다가 중얼거렸다.
“문제는 저렇게 하고도 마물들이 다 죽지 않을 거란 거지.”
“사실 대침식 때는 민간인의 피해도 문제였고, 또 상당수 도심지가 섞여 있어 이 정도의 화력을 동원한 공격은 없었습니다.”
곧 이은 군사전문가의 보고는 봐야 알지 않겠냐는 의미였지만, 대다수는 이 경악할 숫자의 미사일들을 보고도 불안한 표정이었다.
“효과가 있었으면 우리도 탑에다가 날렸겠지.”
“천사백여 기 돌파했습니다.”
“저 작은 땅덩이에 무슨 놈의 미사일이…….”
누군가가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미국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의 말마따나 저 좁은 땅덩이에서 쏘아 올려진 미사일이라기에는 너무 많았다.
“그래도 다 쓰지는 않을 모양입니다.”
“아마도…….”
그들이 말을 나누는 사이 모니터 요원의 목소리가 다시 숫자를 카운팅했다.
“천칠백 기 돌파했습니다.”
“저 지역은 한동안 살아날 수 없는 죽음의 땅이 되겠군.”
누군가의 씁쓸한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어차피 못 막으면 다 끝이니까. 우리도 비슷한 선택을 해야 할 수 있으니…….”
레너드 대통령은 말을 채 잊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 드리워진 간절함은 그 누구보다도 진실되어 있었다.
* * *
“장관이군.”
차준우 사령관이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고 있었다.
언젠가 영화의 제목으로 쓰였던 강철비라는 단어가 지금 이 상황과 딱 어우러진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충격에 대비하셔야 합니다. 여기까지도 후폭풍이 올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조심해야지.”
그 말과 함께 차 사령관이 충격파에 대비하여 이동을 했다.
“전파관제! 전파관제!”
수많은 폭탄들로 인해 발생될 EMP충격파에 대비하기 시작했다. 최대한 뒤로 물린다고 물린 것이지만, 이론과 현실은 다른 법이니 말이다.
넋 놓고 감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모두가 미친 짓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화력투사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