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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열제 부루강림기-209화 (209/305)

제209화 모든 책임은 내가 집니다

* * *

상황실의 한쪽에선 수많은 모니터가 돌아가고 있었다.

그곳의 광경은 전투 상황이나 각 군의 이동현황을 실시간으로 전달하고 있는 모니터들과는 사뭇 다른 것들을 보여 주고 있었다.

인터넷 기사들이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것들이 모두 출력 되고 있었는데 이건 국내뿐 아니라 해외의 온라인 기사들도 모니터에 띄워져 있었다.

그뿐 아니라 각 방송국의 방송들과 너튜버나 파프리카 티비 등의 영상도 있었다.

그걸을 모니터링 하던 요원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하다 보면 말이야.”

“예.”

“킬을 연속으로 올리다 보면 뜨는 말이 있잖아.”

“아!”

“누구누구가 미쳐 날뛰고 있다고.”

모니터에선 눈을 떼지 않고 조곤조곤 내뱉는 선임의 말에 후임 역시 마찬가지로 시선을 고정한 채 대답했다.

“알죠.”

“딱 그거 떠오르지 않냐?”

“그러네요.”

사방에 수만 가지 기사들이 따끈따끈하게 올라오고 있었다.

출국장에서의 장면부터 시작해서 강 남부로 대피를 시작하는 국민들의 모습.

기삿거리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멧 중장 저 양반 스타 됐네.”

선임이 보는 모니터에 멧 할러데이 중장이 공항에서 펀치를 날리는 장면이 올라가고 있었다.

“어우. 저거 공항경비대가 저렇게 해도 됩니까? 그냥 피가 살짝 맺힌 정돈데?”

“맞잖아. 어쨌든 폭력이고 폭력 교사지. 그리고 저 양반이 미국 시민권자라 해도 지금 미국이 누구 편을 들겠냐.”

상황실에 있는 만큼 지금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가장 잘 알고 있기도 했다.

“저 사람 전 국회의원이죠?”

“4선인가 했지?”

“그런데 잘도 해외로 기어나가네요? 그래도 소설 속 이야기처럼 국회의원들은 아직 자리를 지키던데.”

신기하다는 듯 말하는 후임에게 선임이 나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 양반은 어차피 더 정치 못 하지. 4선을 해도 팽 당한 거라. 대침식 때 이미 혼자 숨어 있다가 표 다 떨어져서 그 다음에 공천도 못 받았었어.”

“어째 잘 아십니다?”

“우리 지역구거든.”

“아…….”

선임의 답변에 후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후임을 바라보지도 않고 그는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남아 있는 사람들은 현역이잖아. 그리고 얼마 전에 선동하던 양반들은 배후가 다 까발려져서 지금 전부 잡혀 가고 있고.”

“그랬죠. 그런데, 그게 됩니까? 원래 국회의원은 불체포특권 있잖습니까.”

“남은 국회의원들이 알아서 잡아가라고 일부러 국회 문 닫았잖아. 다 잡혀간 다음에 회기 시작하겠다고. 거기다가 국가 내란죄인데 잡혀가는 애들 빼고는 전부 이번은 예외로 둬야 한다고 하니까 빼박이지.”

“살면서 여야가 한 목소리 내는 건 처음이네요.”

“여든 야든 살아남아야 있는 거니까.”

선임의 담담한 답변에 후임은 잠시 침묵했다. 생존이 걸린 전쟁이란 게 이럴 때 다시금 와닿는 모양이었다.

그때 선임의 나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거 짤로 만들어서 뿌리라고 해.”

“멧 중장요?”

“응.”

선임의 말에 멧 중장이 한방 갈기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캡쳐해 보냈다.

이들은 모니터링뿐 아니라 여론을 만드는 일도 하고 있었다. 예전이라면 댓글부대니 뭐니 욕을 먹을 짓이겠지만, 웃기게도 지금은 대놓고 하고 있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두려워 말자고, 다들 이렇게 노력하겠다고 그런 분위기를 계속 띄우기 위해서였다.

내부에서의 붕괴가 가장 두렵기 때문이었다.

실제 대침식 때도 무너진 국가들의 상당수가 내부서부터 붕괴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때 시끌거리는 목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상황실로 들어왔다.

“고생했습니다.”

그때 피곤이 묻은 양현재 대통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상황실 안쪽에서 직접 마중 나온 듯했다.

그제야 모니터에서 눈을 뗀 둘은 상황실에 들어온 이가 누구인가 바라보았다.

“서준모 씨네요?”

“탈출했다더니 다행히 복귀했나 보다.”

그때 누군가가 그들이 건네준 메모리칩을 한쪽에 있는 모니터에 연결했다.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관심이 그곳으로 쏟아졌다.

시끌거리던 목소리도 조금씩 줄어들었다.

여전히 통화는 이어지고 있었지만, 영상을 훔쳐보면서 다들 목소리를 줄인 것이다.

묵직한 감정이 자리잡았다.

-정말 좋은 날이로다! 마음껏 거리낌 없이 검을 휘두르기에 좋은 날이로다아!

전장의 잡음에 섞여 있지만 선명한 정중부의 호탕한 외침이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왔다.

마지막 마족군단이 그를 뒤덮고, 그 사이로 솟구쳐 나온 빛 무리가 하늘로 향하는 장면까지 기다리고 있던 서준모 경무관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 모습을 새롭게 기억해 달라 했습니다. 한번 씌여졌던 자신의 역사에 이어서 말입니다.”

“기억해 달라…….”

양현재 대통령이 중얼거렸다. 마치 머리에 새기듯.

“이번에야말로 백성을 위해 원 없이 싸웠다고 말입니다.”

“그렇군.”

먹먹해짐이 그대로 전달되었다.

“방송사 연결되지?”

“예.”

“각 방송사에 이 영상 사본 돌려서 온국민, 아니 전 세계가 기억하도록 좀 만들어 주게.”

“하, 하지만 적의 규모가 너무 커서…….”

“어차피 세계의 생존이 경각에 달린 건 다 아는 사실 아닌가?”

양 대통령의 말에 우려의 목소리를 내었던 장관 중 하나가 입을 다물었다.

“지금은 싸워야 할 때라고 모두에게 알려야 하네. 마치 이 행동이 독재자들이나 써먹던 거라 욕해도 어쩔 수 없네. 우린 이 모든 것을 이용해 모두가 이 싸움에서 한마음이 되도록 해야 하네.”

그의 말에 더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방금 이 말도 찍었지?”

양 대통령이 한쪽에서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던 직원에게 확인하듯 물었다.

“예.”

“그래. 다 찍어. 정확히 하자고. 이 모든 짓거리는 내가 시킨 거니까. 나중에 죄를 묻든 뭘 하든 다 내가 총대 매는 거네.”

지금 그는 무리를 하고 있었다.

영화라면 멋진 장면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현 세상의 민주국가에서는 우려될 만한 행동을 지금 양 대통령은 가리지 않고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결정에 대한 피해를 이곳의 그 누구에게도 주지 않기 위해서 하나하나 빠짐없이 증거를 남기고 있는 것이다.

“고생했네. 다른 내용은 먼저 보고를 받았으니 바로 연구소로 가십시오. 다들 눈 빠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리한 부탁해서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그냥 원래 하던 수사 활동 중 하나였을 뿐입니다.”

양 대통령의 말에 서 경무관이 차려자세를 갖추며 답했다.

“미안합니다.”

그런 서 경무관에게 양 대통령은 다시금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왔던 길로 되돌아 나갔다.

그들이 빠져 나가고 상황실은 다시 목소리가 높아졌다.

하지만, 아까와 달리 목소리들에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물러서지 않겠다는 그런 의지였다.

* * *

연구소에서는 마족 마법사인 헤게루이안이 맥이 풀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모습을 드러낸 것을 봤을 때도 이미 예상했지만, 이 정도라면 군주급도 충분히 오갈 수 있는 통로입니다.

그의 말에 연구원들이 탄식을 흘렸다.

군주급까지 오갈 수 있는 문을 만들기에는 준비와 시간이 많이 필요하기에 혹시나 하고 걸어보았던 희망이 사라진 것이다.

“마물들의 사체에서 뽑아내는 에너지만으로는 쉽지 않을 것이라 하지 않았소?”

-그렇긴 합니다만…… 비슷한 대체 에너지를 뽑을 수는 있습니다.

“그 방법이 뭐요?”

방법을 묻는 구은태 박사에게 헤게루이안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을 했다.

-모든 생물체는 일정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말에 구 박사는 물론이고 이곳에 있던 모든 이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때 한 연구원이 사진들을 가지고 들어왔다.

“여기 현장 사진입니다.”

당시 서준모 경무관과 최후배 경정이 카메라를 빼앗겼지만, 일부 필름을 숨겼었다.

다행히 다 잡은 고기라 생각해서인지 몸수색을 철저히 안했기에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을 구출하며 알게 된 사실인데 마법적인 위장을 통해 위성에서는 변조된 영상만을 취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서준모 경무관이 가져온 필름 한 롤이 유일한 현장증거였다.

“비위 상하는군.”

“사람의 시체는 안 보이는 듯한데…….”

헤게루이안의 말을 들은 그들은 혹시나 싶어 인간의 흔적을 찾아 보았다. 하지만, 딱히 인간의 흔적은 없었다.

껍데기가 벗겨진 마물의 사체들이 전부라 할 만했다. 하지만, 연구원 중 하나의 표정은 달랐다.

마치 사색이 된 듯한 얼굴을 했다.

“뭔가.”

그 표정변화를 읽은 구 박사가 조심스럽게 묻자 그가 창백한 얼굴로 사진을 받아들었다.

그리고는 자세히 들여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형태만으로는 장담하긴 어렵지만……, 포유류의 장기와 유사합니다. 크기만 보면…….”

주변을 둘러보며 잘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열었다.

“인간의 것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이건 좀 더 확대해서 봐야 하겠습니다만.”

그때 한쪽에서 잠자코 있던 서 경무관이 작게 욕설을 뱉었다.

“……젠장.”

작은 욕설소리였지만, 다른 이들의 이목을 끌기에는 충분했다.

뭔가 풀리지 않던 문제의 답을 의도하지 않게 알아 버린 사람의 탄식처럼 들렸기 때문이었다.

서 경무관이 주변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워낙 많은 북 주민들이 몰렸던 곳이라고 합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제대로 거주자 확인이 불가능했다고 합니다.”

“그건 무슨 소린가.”

되묻는 구 박사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그러자 최후배 경정이 고개를 떨어트린 채 입을 열었다.

“그 이유로 대원길드가 방벽작업을 하기 위해 들인 인원이 많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었는데…… 들어간 인원은 많고 그에 대한 거주자 기재는 대원길드에서 별도로 하겠다고 해서 넘어갔답니다.”

최 경정의 말에 모두가 희망의 끈이 풀리는 느낌을 받았다.

“다만 그것을 달리 의심할 수 없는게 워낙 그 주변에서 대원길드의 이미지가 좋아서……. 현지에서도 단지 대원길드가 사람들을 매수하는 그런 식으로만 생각 했답니다.”

“그게 가능합니까? 실종신고라도 했을 거 아닙니까.”

연구원 중 하나가 물었지만 최 경정이 고개를 내저으며 대답했다.

“실종 신고도 없었고……, 가족들에게 급여가 지급되고 있었으니까요. 우리도 그런가 보다 했죠. 관심은 그쪽이 아니었고, 현지에서 협력해 주는 형사분도 그저 군사력으로 활용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예상했으니까요.”

결국 상상하기 싫은 예상이 왠지 맞을 것 같다는 결론이 모두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래도 모르니 일단 정밀분석 요청하게.”

구 박사가 사진을 건네었다.

그때 연구원 하나가 들어오며 보고를 올렸다.

“해당 지역 영상이 잠깐이지만 찍혔었다고 합니다. 탄도미사일이 요격되고 나서 잠시지만 빛의 기둥이 있던 지역을 위성이 포착했다고 합니다.”

“미국쪽인가?”

“이건 러시아에서 온 겁니다.”

연구원이 넘겨준 테블릿을 받아 든 구 박사가 헤게루이안에게 넘겨주었다.

“우리가 보기엔 다 비슷해 보여서. 아는 얼굴이 있소?”

-불행하게도 있습니다.

그곳에는 해상도가 좀 떨어지지만 마족들의 군단이 늘어서 있고 누군가가 그 사이를 걸어 나오고 있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헤게루이안이 한손가락으로 한쪽을 찍으며 대답했다.

-게르하이오 폰 기오르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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