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열제 부루강림기-205화 (205/305)

제205화 그들의 DNA

-아니길 바랐건만.

카르탈마니어가 탄식을 흘렸다.

예상은 했다.

자신들의 군주가 무너지는 순간 말이다. 하지만, 마계 전체를 장악하기에는 시간적으로 너무 빨랐다.

최악은 마계일통이었고, 차악은 마계의 절반이상을 사자의 군주인 게르하이오 폰 기오르그가 장악하고 나머지 군주들이 연합하여 대략적인 균형을 만드는 것이다. 약간 힘이 기울어지기는 하지만, 그 정도만 되어도 기오르그의 뜻대로 이 세계의 식민지화를 밀어 붙일 정도는 되었으니까.

그러나 느껴지는 기운으로 보아 불길한 예감은 그대로 맞아 떨어진 것으로 보였다.

카르탈마니어가 어두운 얼굴로 부루를 바라보다가 순간 눈이 마주쳤다.

“똥씹은 표정이 줄 잘못 잡았구나, 하고 후회하는 거이구만.”

-저, 절대 아닙니다!

“얼굴에 다 써있으니까네. 헛소리 치우라우.”

-죄, 죄송합니다.

부루의 말에 카르탈마니어가 서둘러 고개를 숙였다.

“아직 싸움은 시작도 안했으니, 벌써부터 지리지 말라우.”

-아, 안지립니다!

“기래야디. 개나 고양이도 똥오줌을 가리는 세상인데…….”

-…….

부루의 막말에 가까운 비유에 반항조차 못했다. 어쨌든 그의 군주는 을지부루니까.

하지만, 그의 말대로였다.

지금까지 마계의 침공 역사를 살펴보면 이곳의 상황은 그 어떤 때보다도 좋았다.

오히려 마계침공의 역사에서 군주가 역으로 털린 것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나마 그 손에 꼽는 상황은 마계의 침공에 대항하던 세계가 모든 힘을 몰아넣은 상황에서 벌어졌던 일이다.

그러나, 부루의 경우는 달랐다.

오로지 그의 힘으로 군주를 무너트린 것이다.

이건 마계역사에서도 거의 찾아보기 힘든 경우였다.

심지어 이 세상.

아직 쌩쌩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 또한 처음 있는 일이었다.

비록 신의 잔재가 많이 남은 세계를 공략할 때에 그 시간이 수백 년이 걸리는 경우가 있기는 했었다.

그러나 이처럼 신의 잔재가 거의 희박한 상황에서 버틴 곳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별의 파편이라고 부르는 존재들이 나오는 대부분의 세계가 초반에나 조금 발버둥 치다가 급속도로 무너져 내렸다.

그러나 이 세상은 아직도 전의에 불타고 있었다.

거기에 희안하게도 전쟁이 수도 없이 벌어지고 있는 세상이며 그 수단 역시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발전해 있었다.

다만 그 수단이 마계에 크게 통하지 않기에 다행이지만 말이다.

어쩌면 신성이 사라지고 파괴본능만 남은 세상이니 당연한 것이기도 했다.

마계에 대항하는 방법은 정반대의 신성이거나 마계와 같은 구성의 전력이니까.

그 중에서도 이 땅이 제일 웃기는 곳이었다.

마룡족일 때 왜 사자의 대공이 이 작은 땅덩이를 선택했나 의문이 있었었다.

그들이 알기로 이 세상의 가장 최강의 국가는 마룡의 군주가 선택했던 곳이었으니까.

그런데 이곳에 오니 기운 자체가 달랐다.

심지어 이 좁은 땅덩이에서 무슨 놈의 전쟁의 기운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알고 보니 대침식 이전까지 오로지 전쟁 준비만 해오던 땅덩이란 것을 알고 난 뒤에야 이해할 수 있었다.

심지어 주변에는 큰 땅덩이와 힘을 가진 나라들이 수두룩한데 그곳에서 마치 건들면 다 죽는다는 태세로 군사력을 쌓아온 나라라는 것을 알고 난 뒤에는 당연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기질이라는 것은 무시 못 하는 것이니까.

역사적으로 마계에서 다른 세계를 침공할 때도 제국이니 뭐니 하는 곳보다는, 어디 척박한 곳에서 하루하루 쌈박질만 하던 구석탱이 국가나 종족들이 더 까다로운 적이 많았으니까.

“기런데 정말로 그렇게 무식하게 올 거라는 거이 맞는 말이간?”

-아, 예.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대가리에 화살이라도 맞은 거이간?”

부루가 이렇게 묻는 건 다른 게 아니었다.

만약을 대비해 전략을 세울 때 카르탈마니어가 많은 조언을 했었다.

일단 침공군의 군단장이었기에 가장 마계의 방식을 잘 알 것이라는 합리적인 판단 때문이었다.

그때 그는 답했다.

침공군은 오로지 부루가 있는 곳을 향해 직진으로 달려올 것이라고 말이다.

보통 전쟁이라면 차근차근 점령하든 어디 유리한 고지를 먼저 차지하는 방식을 찾는 할 것이지만, 이번 마계의 침공은 목적이 명확했다.

이 곳의 군주.

이건 역사가 증명했다.

운이 나쁘게 죽어나간 마계의 군주를 대신한 영웅을 처단하는 것이 역사에 남겨진 공통적인 결과였다.

이유는 단순했다.

침공군을 이끄는 사령관 입장에서 새로운 군주가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니까.

별의 힘을 양분으로 삼는 상황에서는 이곳으로 진입할 수 있는 건 세력이 약해진 군주거나 혹은 자신처럼 군단장 같은 사령관 계급의 고위 마족뿐이었으니까.

다만 지금은 상황이 좀 다르긴 했다.

양분 삼기를 포기하고 식민지화를 택했으니까.

그럼에도 군주부터 노린다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이곳의 마지막 군주를 굴복시켜야 진정한 마계의 왕이 탄생하기 때문이니까.

만약 사자의 대공 아래로 깃발이 모이지 않았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어느 한 세력이라도 이곳 군주의 힘을 취해야 압도를 하는 균형을 갖추는 할 것이었기 때문이다.

-원래 머리를 치는 것이 마계 특유의 전술이기도 합니다.

“무슨 전쟁을 그따위로…….”

말을 이어가던 부루의 목소리가 점점 잦아들었다.

그런 부루를 보며 카르탈마니어가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뭐, 나름 효율적인 전술이구만.”

-…….

카르탈마니어는 아무런 답을 할 수가 없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무식하니 대가리에 화살 맞느니 그따우로 하니 하던 부루가 효율 운운하는 말을 한 것이다.

그저 카르탈마니어는 이게 자신을 떠보는 건가 하는 고민으로 빠져들 뿐이다.

“끙.”

을지부루가 머리를 긁었다.

‘대가릴 딴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소리.

그리고 어디서 많이 해 본 행동.

그건 바로 고진천이랑 그가 제일 많이 해 본 짓 아니던가.

따지면 그리 드문 전술이 아니긴 했다.

예나 지금이나 왕을 잡는다는 건 승리의 핵심을 쥔다는 것이기에 때론 이와 유사한 전술을 펼치던 적도 많았다.

“이거이 내가 하면 노망이고 남이 하면 불륜인 건가.”

부루의 중얼거림을 듣던 고빈이 옆에서 한마디 했다.

“노망 말고 로맨스요.”

“기래. 기거. 어찌되었든 방어준비는 잘 해 나가고 있는 거갔지?”

“뭐, 그렇겠죠?”

“집결지는 정해진 거간?”

“다행히 북쪽 끝에서 내려오는 상황이라 전술 수립에는 문제 없다고 하던데요. 이쪽에선 만날 구상하던 게 밀고 내려오면 치고 올라가는 거거든요.”

빈의 말에 부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제7기동군단이 밀고 올라가고 있는 상황이라는 건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럼 우리 군단도 준비를 하겠습니다.

“기래. 천유화는 잘 오고 있다니?”

“예. 연락 받았어요. 무사하답니다.”

“기래. 기래야디.”

천유화가 무사하다는 말에 부루는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 * *

카르르르! 카라라라!

강철의 군단이 일제히 밀고 올라가고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사기도 좋았다.

같은 동족이 아닌 마물이 상대라서 더더욱 사기가 높았다.

물론 죽고 죽이는 전쟁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지만, 최소한 동족상잔의 비극이 아닌 진정한 의미의 수호 의지를 가진 진군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들의 한쪽으로 생소한 부류의 차량들이 행진을 하고 있었다.

5톤에서 15톤 작은 건 2.5톤짜리 각양각색의 화물차들이었다.

그 선두에 차를 몰고 가고 있는 장광선은 긴장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형님, 교대 할까요?”

“됐어. 무슨 벌써 교대야. 올때나 운전하고 지금은 눈 좀 붙여.”

“예. 살다살다 이런 것도 하고.”

그는 눈을 붙이면서도 어이없다는 듯 피식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러게 말이다. 파업할 때 말고 이렇게 많이 몰려서 올라가는 건 처음 같다.”

“푸흐흐. 이렇게 모여서 욕 말고 열렬히 응원받은건 이번이 처음일 거유.”

“내 말이.”

그들은 바로 화물연대였다.

물류의 이동을 위한 최소한을 뺀 나머지 모든 차량이 이번 작전에 동원되었다.

그건 바로 북쪽의 주민들을 퇴거하기 위한 대탈출 작전이었다.

새벽녘에 본 긴급속보 때문이었다. 마치 자료화면에서나 보던 것처럼 위태롭게 차 외부에 덕지덕지 매달려 피난 오는 북쪽 사람들의 영상.

그걸 본 순간 화물연대의 노조 위원장인 장광선은 자신도 모르게 홀린 듯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평소 투쟁할 때마다 연락을 취하던 정부 측 공무원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화물연대에서 가동가능한 차량을 동원해서 북쪽의 피난민들을 태우고 오겠다는 제의였다.

이어서 각지에서 지원자를 받았다. 정부는 자원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며 합당한 지원을 하겠다고 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그간 화물연대를 응원하는 이들은 관련된 직종에 종사하는 이들과 가족이 전부였다면 지금은 달랐다.

그들이 통과하는 순간 많은 사람들이 함성을 질러주었다.

이들의 행진을 각 방송사에서 실시간으로 내보내었다.

또 공차로 올라오는 와중에도 각지에서 물과 간단한 음식등을 실어주었다.

피난해올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뒤로 구급차들이 뒤따랐다.

그렇게 제7기동군단의 호위를 받으며 화물연대와 각지에서 모인 이들이 함께했다.

그들 뿐만이 아니었다. 화물연대가 아니어도 제법 큰 차량을 가진 일반인들도 이 행렬에 끼어들었다.

심지어 캠핑동호회에서도 카라반이나 캠핑카를 끌고 붙었을 정도였다.

“그래. 해보자. 씨부럴!”

왠지 이 순간만큼은 영웅이 된 듯한 마음에 뿌듯했다.

* * *

“움직여!”

“빨리!”

수많은 군인들과 민간인들이 텐트를 치고 있었다.

북에서 내려올 난민들을 위한 거처를 급히 마련하는 중이었다. 수해같은 재해상황에서 동원하던 것들 뿐만 아니라 컨테이너들까지 동원하고 있었다.

얼마가 될지는 모르지만, 북쪽의 주민을 최대한 대피시켜야 했기 때문이었다.

예비군과 군인들 그리고 인근의 민방위대원들이 합류했다.

그들 뿐 아니라 캠핑 동호회 회원들이 모여들어 빠른 속도로 피난촌을 건설했다.

거기에 농막등을 만들던 업체들이 폐컨테이너를 동원해서 공용시설을 만들었다.

폐컨테이너가 많으면 좋겠지만, 지금 세상에선 컨테이너 자체가 어마어마한 자원이었다.

장벽을 만드는데에도 들어가고 임시로 성을 축조하는 곳에도 들어갔다.

그렇기에 이렇게 최소한 필요한 곳에만 썼다.

그 뿐 아니라 유통기한이 임박한 식품과 평소에는 상품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농산물들도 한쪽에 쌓이고 있었다.

먹고 쓰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밥차왔습니다!”

“먹고 합시다!”

그때 예비군사단 조리시설에서 가져온 밥차가 식사시간을 알렸다.

그리고 이어진 식사 역시 전투 적으로 이루어졌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다.

핏줄에 흐르는 위기대응에 관한 DNA가 그렇게 이들을 만들고 있던 것이다.

* * *

“이거 참.”

양현재 대통령은 보고를 받으며 자조섞인 웃음을 흘렸다.

“전 국민이 나가서 전쟁을 준비하는데 난 여기 벙커에 앉아서…….”

“각자 자리에서 충실히 하는게 중요할 뿐입니다.”

“뭐, 그렇게 변명이라도 하려면 뭐라도 보여야겠지요.”

양 대통령은 미안한 마음을 다잡으며 눈을 빛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