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4화 국민 없는 곳에선 대통령도 평범하다.
잠시 후, 한결같은 보고가 이어졌다.
“위성요격 실패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작은 탄식들이 이어졌다.
“박 총리는?”
“부산으로 이동하셨습니다.”
“그나마 다행이군. 서울시민들의 이동은?”
“아직…….”
남하하고 있는 이들이 많기는 했지만, 만약 이게 원활했다면 추석이나 설날등 명절 때 늘어선 차량행렬이 아직도 해마다 반복되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 상황실의 모니터 요원의 목소리가 살짝 높아졌다.
“탄도미사일의 방향이 틀어졌습니다!”
그간 막기 위해 날렸던 것들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었는지 방향이 틀어졌다는 보고가 들려왔다.
“수정된 방향은?”
“종말단계 이전 요격이 시작됩니다!”
대기권에서 약간 틀어졌다면 떨어져 내릴 때에는 큰 오차가 생길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 질문에 답하기도 전에 또다른 보고가 올라왔다.
마지막 기회나 마찬가지인 미사일들이 날아올랐다는 것이었다.
“수정좌표 나왔습니다. 이대로 떨어지면…… 제주 근처 혹은 일본 북부쪽입니다.”
“오차가 너무 커…….”
제주도에 떨어져도 문제고 일본에 떨어져도 문제다.
대침식 이후 일본 경제가 무너지자 그걸 또 기회라고 넘어간 한국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또 일본에 한국 국민이 없다 해도 핵이라는게 떨어지면 대한민국뿐 아니라 중국과 동남아시아까지도 영향을 받게 된다.
핵은 남의 일이 아니니까.
“하느님 부처님 알라신 제발 누구라도 계시면…….”
영화나 만화에서나 할 법한 대사가 누군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절박하고 또 절박하다 보면 이렇게 되는 모양이었다.
천천히 대기권을 향해 낙하를 시작하려는 미사일을 향해 동해상과 한국땅에서 쏘아올린 탄도 요격 미사일들이 치솟아 올랐다.
그 수는 한 둘이 아니었다.
괜히 미사일 강국이라는 게 아니라는 듯 수많은 미사일들이 날아올라 섬광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 * *
“뭐야?”
대피를 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차라리 기존대로 버티는 게 났다고 판단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데 비 소식도 없었고, 하늘도 맑은데 마치 벼락이라도 치듯 하늘이 번뜩이는 것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올려다 보는 이들이 있었다.
“번개칠 날씨는 아닌데?”
“이런게 바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지.”
“이 상황에 농담이 나오냐?”
사람들은 아직 문제의 심각성을 알지 못하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고, 일부는 이게 또 다른 마물의 침공인가 싶어 당장이라도 대피하려 하기도 했다.
“벼락 같은게 아닌 거 같은데?”
하늘은 여전히 번뜩이고 또 번뜩이고 있었다.
그렇게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늘어갈 즈음 각자 다른 채널들이 모두 한가지 뉴스를 전하기 시작했다.
“뭐지?”
하늘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대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텔레비전을 바라보았다.
[러시아에서 핵을 탑제한 탄도미사일이 발사 되었습니다…… 현장을 연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핵미사일이 서울을 향해 발사되었다는 충격적인 소식에 서울은 약속이라도 한 듯 침묵속으로 빠져 들었다.
그때 상황실 광경이 비추어지며 주먹을 휘두르는 양현재 대통령의 모습이 나타났다.
[‘씨파! 뒈지는 줄 알았잖아! 역시 미사일은 국산이야!’ 죄, 죄송합니다. 잠시 후 다시 연결을 시도 하겠습니다]
“……오빠. 방금 대통령 아냐?”
“어. 맞는 거 같아.”
사람들은 또다른 충격에 다들 얼이 빠졌다.
* * *
함성과 환호가 가득차 있었다.
그 사이에는 양현재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씨파! 뒈지는 줄 알았잖아! 역시 미사일은 국산이야!”
“대, 대통령님! 제발…….”
청와대 비서관이 난감한 표정으로 흥분한 양현재 대통령을 말렸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흥이 오른 듯 벌게진 얼굴로 함박웃음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왜? 까짓 뒤에서 나랏님 욕도 한다는데! 이럴 때 아니면…….”
“생방이 잠시 나갔었습니다.”
“……삐소리 쳤나?”
양 대통령이 떨리는 목소리로 묻자 한쪽에서 검색을 하던 비서관 하나가 어두운 표정으로 스마트폰을 그에게 내밀었다.
[씨파! 씨파! 씨파!]
주먹을 휘두르며 욕설을 내뱉는 양 대통령의 모습이 짤로 만들어져 반복되고 있었다.
“바, 박제 되셨습니다. 아니 그 뭐더라…….”
젊은 비서관 하나가 무심코 인터넷 용어를 뱉었다가 허둥대었다. 그리고 그 짤을 본 양 대통령이 얼굴을 부비며 자신없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거 대국민 사과 해야 하나?”
“아마도, 하는 편이…….”
“까짓. 하면 되지.”
양 대통령은 피식 웃으며 의자에 몸을 기대었다.
그가 보는 상황실 화면에는 인공위성에서 보내온 것으로 보이는 핵탄두 미사일의 요격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백번이고 하면 되지.”
일단의 위기는 피했으니까.
“시작을 알리는 불꽃놀이구만.”
이내 다시 그의 얼굴이 굳어졌다. 전쟁은 이제 시작이니까.
* * *
하늘에서 내려오는 빛의 기둥 앞에는 수많은 마족들이 도열해 있었다.
마치 사열이라도 하듯.
그 앞에는 대원길드장 오기원이 긴장된 표정을 하고 서 있었다.
그때 천천히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호오. 꽤나 분위기가 좋구나.
“구, 군주를 뵙습니다!”
순간 오기원은 그가 누구인지 알아 차릴 수 있었다. 허리를 깊이 숙인 그는 자신의 군주를 영접했다.
회유와 교언의 군주.
마켈그로이언이 그런 그를 향해 다가가 웃으며 말했다.
-여러가지 준비했지만 아쉽게 되었군.
“죄송합니다. 군주님을 더 빨리 영접했더라면 많은 일을 성사 시켰을 것인데…….”
-어차피 시간을 끌기 위한 것이었으니 아쉬워 말라.
그렇게 말하며 마켈그로이언이 그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옆으로 나섰다.
-이제 우리의 왕을 영접할 시간이다.
마켈그로이언 외에 또 다른 군주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제일 먼저 모습을 드러낸 것은 기오르그의 군단장 출신이었던 고위 마족.
그는 먼저 모습을 드러내었던 마켈그로이언을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고는 반대편으로 가서 섰다.
그 외에는 굴복한 군주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마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시선을 노골적으로 보낸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그 뒤를 따라 딱 봐도 정예로 보이는 마족들이 두 줄로 걸어 나오며 좌우로 펼쳐졌다.
마치 길을 만들 듯.
그리고는 한쪽 무릎을 꿇어 앉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에 맞추어 마켈그로이언과 군주들도 함께 허리를 약간 숙였다. 그 모습을 본 오기원과 대원길드의 간부들도 덩달아 긴장하며 허리를 숙였다.
쿠우웅.
빛의 기둥에서 묵직한 한 걸음이 내딛어졌다.
-이곳이로군.
짧은 음성만으로도 온몸을 위축하게 만들었다.
-이번 침공은 아쉽지만, 뭐 이런 곳도 하나 있으면 나쁠 것은 없겠지.
그렇게 말을 뱉으며 사자의 대공이었으며 이제는 사자의 마왕이라 불리는 게르하이오 폰 기오르그가 모습을 완연히 드러내었다.
-마계의 왕을 영접 하나이다!
군주들이 왕을 맞이하는 외침이 동시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외침을 따르며 수많은 마족들이 일제히 외쳤다.
-영접하나이다!
족히 수만은 넘어가는 마족들이 마치 한 목소리처럼 외치자 사방이 진동했다.
-꽤 귀찮을 법도 했을 텐데. 잘 준비 했더군.
기오르그의 말에 마켈그로이언이 미소를 띄우며 입을 열었다.
-왕이 걷는 영광의 길입니다. 어찌 준비에 소홀함이 있겠습니까.
-이쪽에 수하를 얻었다지?
기오르그의 말에 기원의 정신이 바짝 드는 것을 느꼈다.
-그러하옵니다. 적어도 왕께서 내딛는 길에 소란이 없도록 노력을 했었나이다.
-이름이?
순간 기원은 자신을 부르는 것임을 눈치 채고 입을 열었다.
“왕이시어 대원그룹과 대원길드를 이끌고 있는 오기원이라 하옵니다.”
-그룹? 이곳의 상인의 형태라 했지?
“그러하옵니다.”
그때 기오르그가 천천히 그에게 다가왔다.
비록 그 덩치가 거대마물에 비할 정도로 크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사오미터는 되어 보이는 신장인 기오르그는 충분히 위압감을 주었다.
그때 기오르그가 손가락으로 기원의 어깨를 툭 쳤다. 순간 강력한 마력이 온몸으로 솟구쳐 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 이건 군주에 비할 바가 아니다!’
마켈그로이언과 주종의 계약을 맺으며 얻은 힘은 이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당장이라도 무기를 들고 나가 싸워보고 싶을 정도였다.
그렇게 솟구치는 힘에 기원이 놀라고 있을 때 기오르그가 말을 이었다.
-공에는 그만한 포상이 있어야지.
-큰 은혜를 내리셨나이다.
마켈그로이언이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다른 군주들이 약간 질투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기오르그의 직접적인 은총은 귀한 것이다.
이곳에 그의 군단장이었다가 군주에 오른 이도 모두 그에게 직접 은총을 받은 이들이었다.
그만큼 강력하고 귀한 은총이 담긴 손길이었다.
그런 손길이 마켈그로이언의 수하에게 스쳤으니 그의 힘이 앞으로도 더 강력해질 것이 뻔했다.
질투는 당연한 것이다.
그때 하늘에서 무언가가 크게 번뜩였다.
-흐음?
-왕께서 오시는 길에 귀찮음이 없도록 제 수하가 쏘아올린 축포라 보시면 되옵니다.
-축포라. 그렇군.
마켈그로이언의 말에 기원은 잠시나마 우쭐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대원그룹을 장악하고 또 길드를 이끌면서 한 번도 느끼지 못한 것이었다.
누군가에게 칭찬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없던 그였기 때문이다.
“더욱 충성을 다하겠사옵니다!”
비록 군주들이 하는 말투를 따라하는 것에 불과했지만, 기원은 아주 오래된 수하마냥 예를 올리고 있었다.
-수하를 잘 두었군. 그대는 대군주도 가능하겠어.
기오르그의 말에 마켈그로이언이 크게 감격하며 외쳤다.
-최선을 다하겠나이다.
그러난 만큼 다른 군주들의 눈에는 질투의 감정이 뿜어져 나왔다.
대군주는 동등한 군주의 위를 아래로 받아들인 이 혹은 아래의 수하가 군주가 되는 경우에 발생한다.
따지고 보면 지금 기오르그가 대군주라고 보면 되었다.
아직 이곳에 마수의 군주를 강탈한 존재가 있기에 왕으로써 완성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그걸 언급하지 않았다.
누군도 이 전쟁에서 패배를 생각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 *
소용돌이 치는 하늘방향을 바라보던 을지부루가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더러운 기분이구만 기래.”
-대, 대군주가…….
부루가 느낀 기운을 마룡족인 카르탈마니어도 알아챈 모양이었다.
“뭐 이래 기분이 더러운 거간?”
-적대하는 군주간에는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것일겁니다. 거기에 상대방의 세력이 강력할수록 크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뭐이가 이러네? 더 강하면 기분 똥 같겠구나야.”
-…….
카르탈마니어는 부루의 반응에 얼떨떨하면서도 안도했다. 보통 이정도 세력차를 느끼면 반대편의 군주도 두려움을 느끼게 마련이었다.
군주간에는 본능적으로 힘의 격차를 느끼기 마련이다.
그래서 비교적 군주간의 전쟁은 그 힘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을 때 생겨난다.
큰 힘의 차이를 느끼는 순간 열세의 군주들은 또 다른 군주와 힘을 합쳐 균형을 맞추기 때문이었다.
그간 마계가 하나가 되지 못한 이유 중 하나였다.
그러나 이곳은 손을 잡을 군주 같은 건 찾을 수 없었다.
오로지 부루가 유일했다.
아니 지금 보니 아미 마계는 사자의 군주의 발 아래로 이미 집결이 끝난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