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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열제 부루강림기-203화 (203/305)

제203화 좋은 날

시체가 쌓이고 쌓여도 두려움이란 것을 모르듯 덤벼들던 마족전사들과 마족병들은 더 이상 덤벼들지 않았다.

그저 둥그렇게 그를 둘러싸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가운데에 서 있던 정중부는 그저 한쪽 방향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기다림이 얼마 지나지 않아 대열이 갈라지며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어이가 없군.”

분노와 허탈감이 섞인 음성을 흘리며 모습을 드러낸 이는 바로 대원길드장인 오기원이었다.

그는 지금 극도로 분노한 상태였다.

그가 여는 길을 다른 누구도 아닌 그의 강림자인 정중부가 막아섰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치욕적이었던 것이다.

“미친 거냐?”

오기원의 질문에 정중부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수많은 시체들 위에 올라와 있는 그들.

“기분이 좋구나.”

오기원의 질문에 정중부가 딴소리로 답했다.

“미친 거군. 그것도 제대로.”

그런 정중부를 향해 오기원은 독설을 뱉었다. 하지만 정중부는 아랑곳 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마치 안개를 해메이는 듯했었지. 오로지 적을 베어라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을 뿐이고.”

정중부는 오기원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계속 입을 열었다.

“그 끝에는 승리는 있을지언정 영광도 희열도 없었지.”

“도구면 도구다워야 하지 않아?”

오기원이 보랏빛 눈자위를 희번뜩이며 살기가 뚝뚝 떨어지는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정중부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도 모른 체 하는 것인지 아니면 무시하는 것인지 자신의 할 말만을 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전혀 다르지 않은가? 머리는 더없이 맑고 전투의 희열은 그 어떤 때보다도 내가 아직 이 땅에 있음을 증명하고 있으니.”

정중부의 담담한 말투.

전에 없던 또렷한 의사가 오기원의 질투를 불러왔다.

왜 이전에는 이렇지 않았는지. 이제와 자신과의 연결이 다 끊어지고 나서야 이러는지.

그게 자신의 탓이라고 하는 것 같아 더욱 질투가 나고 분노가 치솟았다.

그런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중부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를 둘러싼 적들을 감상하듯 천천히 말이다.

“역사가 기억하는 나는 아마도 칼로 권력을 쥔 자로 남아 있겠지. 나 또한 다른 칼로 비루한 생을 마감하였으니.”

“그 비루한 인생을 내가 여기까지 이끌어 준 거다. 이런 상황을 개가 주인을 물었다고 한다.”

오기원은 현실을 부정하듯 외쳤다. 그때 정중부는 하늘을 손에 쥐고 있는 칼로 가리키며 목소리를 높여나갔다.

“그런 나에게 하늘이 이러한 기회를 주었으니 이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

“기회?”

기회란 말에 오기원이 입술을 짖씹으며 자신도 모르게 반문했다. 그제야 거닐던 발걸음을 멈추고 마치 그의 반문에 답하듯 정중부가 입을 열었다.

“그렇지. 기회. 이 세상에 다시 살아간 정중부는 후손의 안위를 위해 끝까지 칼을 들었음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 말이다.”

“개소리다. 누가 기억할까? 세상의 승자들이 하는 말이 있지. 역사는 승자의 것이라고.”

“그건 틀린 말은 아니지. 허나 이 순간 난 이리 기억에 남을 것이다…….”

정중부가 웃기 시작했다.

오기원은 처음 보는 미소였다.

아니 그가 이렇게 웃을 수 있다는 것 자체를 처음으로 알 수 있었다.

중년의 모습을 한 정중부의 미소는 마치 아이의 것처럼 해맑았다. 마음 한 자락이 불편해 올 정도로 맑았다.

그리 맑은 미소를 머금은 정중부가 오기원에게 잠시 멈추었던 이야기를 이어갔다.

“다시 쓰인 나라는 인간의 마지막 줄에 ‘고려의 무인 정중부 세상을 말아먹으려 한 놈을 막아섰다.’라고 말이야.”

오기원의 이성이 날아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을 조롱하듯 정중부의 온몸에서 부서지듯 뿌려지는 빛가루가 점점 더 많아졌다.

이제는 뒤편의 마족병과 마족전사들이 보일 정도로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죽여! 놈을 죽여! 도망치지 못하게! 이 끝에 비참함을 기억에 남기게! 죽이란 말이다아아!”

“으하하하! 으아하하하핫!”

오기원의 절규에 가까운 분노에 둘러싸고 있던 마족병과 마족전사들이 일제히 뭐가 좋은지 웃음을 터트리고 있는 정중부를 향해 달려들었다.

마치 몸뚱이로 탑을 쌓기라도 하려는 듯 전후좌우 그리고 머리 위까지 날아들었다.

그런 적들을 맞이해 웃으며 검을 휘두르던 정중부가 신이 나는지 신명난 목소리로 외쳤다.

“정말 좋은 날이로다! 마음껏 거리낌 없이 검을 휘두르기에 좋은 날이로다아!”

그런 정중부의 즐거움을 응원하 듯 빛가루가 그의 몸짓을 따라 은하수처럼 뿌려져 갔다.

모니터를 바라보는 이들은 모두 숙연해져 있었다.

드론이 여전히 그가 싸우는 곳을 비추고 있었다. 하지만, 그 모습은 더는 보이지 않았다.

마치 도살하기 위해 모인 마족병들만의 병장기들과 몸뚱이가 이미 그를 가렸기 때문이었다.

아직 그가 남았음을 알 수 있는 건 여전히 빛가루가 비어져 나올 때 마족병과 마족전사들의 수급이 하늘로 치솟았기 때문이었다.

그 병장기 소리와 마족들의 울부짖음을 뚫고 또렷한 웃음소리와 신명난 외침이 들려왔다.

-정말 좋은 날이로다! 마음껏 거리낌 없이 검을 휘두르기에 좋은 날이로다아!

정중부가 아직 존재함을.

그리고 이 상황을 기꺼이 맞이하고 있음을 알리는 목소리였다.

그걸 보며 천유화가 진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렇지. 좋은 날이지.”

그의 기억 속에 또렷하던 그날이 떠오른다.

사지가 멀쩡한 곳 없는 멍청이들이 자신을 따르며 적진으로 달려들던 날.

그날도 이랬다.

더없이 좋은 날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지금 그의 즐거운 외침이 더욱 기억에 남았고, 또 어떤 마음일지 알았다.

그래서 좋았다.

같은 감정을 가진 이가 전혀 다른 시간의 세상에서 와 한 곳에서 잠시나마 함께했다는 것이 말이다.

“좋지 않느냐?”

천유화가 주변을 돌아보며 이 모니터를 주시하고 있는 이들에게 물었다.

“그냥. 먹먹합니다. 그런데 저 양반 말대로 절대로 잊지는 않을 것 같네요.”

서준모 경무관의 말에 천유화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거면 어떠냐. 그것도 저 친구 원이니. 그것으로도 좋은 거지.”

천유화의 담담한 음성에 답하듯 마족들의 탑 위로 마치 굴뚝위로 피어나는 연기처럼 찬란한 빛무리가 승천했다.

마치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멀리 떠나가는 이들을 굽어보는 것처럼.

그렇게 그들은 더 빠르게 그곳을 벗어나고 있었다.

* * *

“괜찮으십니까!”

“여기 계신다!”

“빨리 의료인원을 보내!”

부산한 가운데 닉 레너드 대통령이 이마에 흐르는 피를 누르며 욕설을 뱉었다.

“갓 뎀! F**k!”

그의 입에서는 욕설이 끊이지 않았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백악관 집무실이 폭발이라도 휘말린 듯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실제로도 폭발에 휘말린 게 맞았다.

그 주변으로 조금 전까지 자신과 함께 논의하던 국무위원과 비서관들이 사지가 꺾이거나 목이 꺾여서 들것에 실려 나가고 있었다.

그나마 그들은 온전한 모습이었고 벽면에는 사방으로 터져나간 육편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그들에 비하면 레너드 대통령의 머리통이 조금 찢어지고 다리가 부러진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들것에 실려 나오는 그에게 뒤늦게 달려온 백악관 참모들이 당황을 지우지 못한 얼굴로 물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버튼에게 물어봐.”

“예?”

레너드 대통령이 뒤를 가리켰다. 그쪽을 바라보니 한쪽에 존 버튼 전 안보 보좌관이 한쪽에 널브러져 있었다.

폭발에 휘말려 한쪽 구석탱이로 날아가 있기는 했지만, 다른 이들과 다른 점이 있었다.

그의 이마빡에 구멍 하나가 또렷하게 나 있었고, 그곳에선 틀어 놓은 수돗물마냥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이, 이걸 버튼이?”

“한국에서 일부 군 장성들이 미처 날뛴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흘려듣지를 말았어야 했어.”

“설마?”

“맞아. 버튼도 미쳐서 이 짓을 벌인 거지.”

“부, 분명 수색은…….”

“돌멩이까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거지. 후우우.”

레너드 대통령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급히 알려야 할 일이 있다며, 대원길드가 자신에게 접촉이 왔었다며 달려온 그를 집무실로 들이지 말았어야 했다.

천만 다행이랄까.

그의 눈자위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경호원이 이마에 구멍을 내고, 그 바람에 버튼 전 안보 보좌관의 손에서 떨어진 돌멩이가 무슨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르는 대도 온몸을 던져 덮었던 이들이 있어 그가 살 수 있었다.

“난 괜찮으니까 자리를 지키게. 정 아프면 뽕쟁이들처럼 주사나 몇 대 맞고 헬렐레 하면서 버티면 되니까.”

“사, 사실 보고를 위해 오던 중이었습니다.”

“보고?”

보고라는 말에 레너드 대통령은 참모들을 바라보았다.

“일단 버튼 보좌관과 연관된 이들 일부가 테러를 자행하다가 제압되었습니다. 다행히 대한민국처럼 군대가 연루되지는 않았습니다만…….”

“또 다른 문제가 있나?”

“러시아 쪽에서 탄도미사일이 대한민국을 향해 발사되었습니다.”

“왓 더 헬…….”

레너드 대통령이 맥 빠진 외침을 흘렸다.

* * *

대기권을 뚫고 올라가는 미사일 하나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향해 날아오르는 미사일들이 모습을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었다.

방향은 제각각이었지만, 노리는 것은 오직 가장 먼저 대기권을 뚫고 올라갔던 미사일이었다.

마치 하나의 목표를 향해 제각각 방향에서 솟구쳤던 미사일들이 하늘을 수놓았다.

거대한 화염들이 연달아 만들어지며 대기권 밖에서 흩어졌다. 그리고 그 화염을 뚫고 목표였던 미사일이 고고하게 계속 움직여 나갔다.

그렇게 정점에 달하는 순간 또다시 뒤따라온 미사일들이 마치 먹잇감을 노린 독사마냥 덮쳤다.

“러시아의 요격미사일 모두 실패했습니다.”

“중국 쪽에서 쏜 요격미사일들도 모두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절망적인 보고임에도 다들 감정 없는 로봇마냥 상황을 이어나갔다.

“우리 쪽은?”

“아직 닿기 전입니다.”

“미국에서도 요격 미사일을 날렸습니다.”

“우리 해군도 요격미사일을 발사했습니다.”

그렇게 탄도미사일 방어체계를 만들어 놨음에도 한 발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도 대한민국뿐 아니라 아웅다웅하느라 바빴던 모두가 한마음으로 요격을 위해 미사일들을 쏘아 올렸음에도 말이다.

“역시 미사일은 러시아제인가.”

상황을 브리핑 받던 양현재 대통령의 농담 같은 말에 아무도 웃음을 흘리지 않고 있었다.

저것이 노리는 곳이 바로 이곳 한국. 그것도 서울이었기 때문이었다.

“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

이미 마물들이 북에서 밀고 내려온다고 혼란에 빠져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거기에 핵미사일이 날아온다고 알린다?

아마도 더 난리통으로 변할 것이다. 아무리 국난에 특화된 국민들이라 해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있는 것이다.

“빌어먹을 핵미사일이 무슨 장난감도 아니고…….”

국가 수반의 결정 없이는 쏘지 못하는 것이 정상이어야 할 핵미사일이 날아오른 것 자체가 난센스였다.

그나마 그게 발사되는 순간 러시아에서 알려 줬기에 지금 이렇게 주변 국가들이 일제히 대응을 할 수 있었다.

“그래도 한 발입니다. 막을 수 있습니다.”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라 막아야지. 그동안 돈 들여 쌓아 놓은 미사일들을 죄 쏘아날리더라도 막아야지.”

양현재 대통령이 이를 앙다물며 중얼거리고 또 중얼거렸다. 마치 이렇게라도 바라고 또 바라면 이루어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라도 가진 것마냥 말이다.

“위성요격 시작했답니다!”

아마도 미국이나 러시아일 것이다. 위성을 이용한 요격이라면 말이다.

실효가 있냐 실존하느냐는 말이 많았지만, 대침식 이후 그간 논란 속에 있던 수많은 병기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위성 요격 시스템도 그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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