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1화 퇴각전
서준모 경무관이 분노하는 사이 최후배 경정이 허탈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 지역 사람들 다 먹여 살릴 줄 알았더니. 결국…….”
그때 김창진이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차라리 이게 나아.”
그때 서 경무관이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저 찢겨져 나간 팔다리를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오냐? 저 조막만 한 팔은!”
서 경무관이 버럭 소릴 내지르자 창진은 여전히 굳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최소한 저들을 우리 손으로 죽이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잖습니까.”
“뭐?”
굳어져 있던 창진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지며 목소리가 높아져 갔다.
“만약 저들이 놈들에게 세뇌되거나 혹은 이 상황에서도 저들을 구원자 비스무리하게 믿고 총 들고 달려들면요? 그때는요?”
“…….”
“저 꼴을 우리 손으로 만들어 놔야 했단 말입니다!”
창진이 벌게진 얼굴로 악쓰듯이 소리쳤다.
“아시겠어요! 차라리 이게…… 이게…….”
말을 채 이어 가지 못하는 창진을 보며 옆에 있던 최 경정이 그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서 경무관 역시 그를 다독이며 말을 이었다.
“그래. 차라리 니 말이 맞다. 최소한 복수란 걸 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그때 뒤쪽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은폐엄폐! 은폐엄폐하십시오!”
갑자기 울려온 외침에 창진은 물론이고 서 경무관과 최 경정은 놀란 눈으로 그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내 그 이유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삐이이이! 삐이이이!
바람소리가 들려오는가 싶더니 사람들이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그들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마물의 발을 조금이라도 묶기 위해 싸우던 군인들은 물론이고 살기 위해 총탄이 빗발치는 곳을 달리던 사람들도 말이다.
콰콰콰쾅!
때늦은 폭발음이 이 비현실적인 순간이 왜 일어났는지 알려 왔다.
“후퇴! 후퇴! 빨리 빠져!”
그 와중에도 바락바락 명령을 내리는 군인들의 외침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달려오다 엎어진 사람들을 부축하고 또 업고 달려 오는 군인들의 행동이 이어졌다.
그 와중에도 이들을 향해 살기를 내뿜으며 달려오는 마물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
서 경무관은 몸을 일으키며 허탈한 목소리를 내었다.
바보가 아닌 이상 방금 전의 폭발은 마물이 아닌 인간이 만들어 낸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서, 선배 모가지! 모가지!”
“아, 미안하다. 괜찮냐?”
그제야 서 경무관은 자신의 품을 두들기며 괴로워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폭발이 일어나는 순간 창진을 품에 안고 몸을 날렸던 것이다.
“쿨룩! 빌어먹을 남자 품에서 모가지 꺾여 돌아가실 뻔했네.”
“살아 있으면 대체 이거 뭔지나 알아봐 빨리!”
서 경무관의 말에 창진이 멈칫하더니 물었다.
“서, 선배는요?”
창진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지자 서 경무관이 바닥에서 소총을 주워 들었다.
누군가가 방금 전까지 쏘던 것인지 총열이 뜨듯했다. 최 경정도 마찬가지로 탄창을 뽑아 남은 탄을 확인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표정을 살핀 창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돌렸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서로 말을 하기는 했지만, 창진은 지금 그들이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은총이니 뭐니 하는 가혹행위 때에는 내가 왜 그걸 받고 있나 했는데, 지금은 더없이 고맙네.”
“제 말이요.”
멀어져가는 그의 귀로 그들이 주고받는 음성에서 살기가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콰앙!
“젠장!”
다시 낙하한 포탄에 휘청였던 창진이 입을 열었다.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그의 질문에 현장을 지휘하던 대위가 입을 열었다.
“지금 개판입니다. 군 일부가 아군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예?”
그 말에 창진이 어이없는 표정을 짓다가 품안에서 울려오는 스마트폰을 받아들었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 겁니까? 아군이 뭘 어째요?”
[어, 자넨 안 다쳤나?]
국정원장의 질문에 창진이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목 꺾여 죽을 뻔은 했습니다.”
[그래? 살았으면 다행인거지. 지금 확인을 했는데 지휘관 일부가 세뇌를 당한 듯하더군.
크게 심각한 것은 아닌데 급한 사람 발목을 잡는 정도로는 충분해 보이네.]
국정원장의 말에 창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게 크게 심각한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만. 지금 여기 지옥이나 마찬가집니다. 아까까지만 웃고 떠들던 애나 어른이다 모조리…….”
순간 울컥했던 창진이 높아지던 목소리를 애써 누르며 말을 이었다.
“여하간. 지금 여긴 빨리 철수해야 합니다. 상황이 심상치 않아요.”
[이미 명령 전달되었고 하니까 다치지 말고! 알았나!]
“예. 알겠습니다.”
도로 위에는 마치 옛날 전쟁 때나 볼 법한 풍경들이 펼쳐져 있었다.
도로 위를 달리는 차량 위에는 사람들이 다닥다닥 달라붙어 있었다.
콰쾅! 쾅!
창진은 창밖으로 폭음이 울려오는 방향을 바라보며 걱정 어린 표정을 지었다.
아까처럼 폭음이 아까처럼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릴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거의 다 제압되는 중이라고 합니다. 후방은 이미 모두 상황종료 되었다고 하니까요.”
“그렇습니까?”
같은 차량에 있던 중위가 창진의 걱정을 읽은 듯 말을 걸어왔다. 창진의 대답에 중위도 차창 밖을 바라보며 약간 한숨 섞인 말을 이었다.
“이쪽은 세뇌된 이들 외에도 일부 현 체제에 불만이 있던 이들이 있었나 봅니다.”
“그렇군요.”
그때 앞쪽에서 차량들이 멈추어 섰다.
“무슨 일이야?”
그때 앞쪽에서 무전이 왔다.
[지금 앞에 도로가 막혀 있습니다! 아까 날아오던 포격 중 하나가 떨어져 내렸던 모양입니다!]
“뚫을 순 있고? 지금 뒤쪽 교전 계속되는 거 몰라!”
[예! 일단 전차로 밀어 붙이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있으면…….]
콰콰쾅! 콰쾅!
뒤에서 울리는 폭음소리에 무전 소리가 묻혀 버렸다.
“뭐, 뭐야?”
순간 중위가 놀라 뒤를 바라보았다. 그때 다른 쪽에서 무전이 이어졌다.
[마, 막을 수 없습니다! 뒤쪽에 뒤쪽에아아악!]
“김 소위? 김민철! 야! 민철아!”
듣고 있던 중위가 무전을 날려 왔던 이를 계속 불렀지만, 되돌아 오는 대답은 없었다.
이미 차량 행렬은 멈춘 상황이었다.
그들은 비교적 뒤쪽에 있었기에 내려서서 달리기 시작했다. 비명을 내지르며 달려오는 사람들을 거쳐서 갔다.
총소리, 그리고 화약 내음과 왠지 맥 빠지는 듯한 대마물 소총 소리가 가늘게 들려오고 있었다.
“빌어먹을…….”
오기 전에 아군 자주포의 일제 사격으로 잠시 시간을 벌었었지만, 일부 소형 마물을 빼고는 저지력 정도만 발휘할 수밖에 없었다.
대열 끝의 K-4 고속유탄발사기가 불을 뿜고 있었다.
그러나 마물들도 바보는 아닌 듯했다.
거대마물이 마치 탱킹을 하듯 선두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고속유탄발사기로는 고작 한 걸음 올 것을 반걸음 정도로 줄이는 데에 그쳤다.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검붉은 불덩이가 날아들기 시작한 것이다.
“저건?”
“피하십시오!”
함께 왔던 중위가 그를 밀어내는 순간 폭음이 울려 퍼졌다.
콰콰콰쾅!
그가 밀려 넘어지면서 본 것은 하늘로 치솟는 차량들과 민간인들을 구하기 위해 뒤를 막아섰던 군인들의 몸뚱이였던 조각들이었다.
“끄응.”
창진이 머리를 붙잡고 절레절레 흔들었다.
귓가가 웅웅거리는 걸 겨우 참아내며 몸을 일으켰다.
“창진아, 괜찮냐?”
“어, 선배.”
피로 얼룩져 있는 그의 옷차림이 눈에 들어왔다.
서준모 경무관이었다.
“창진이 형. 은총 좀 받아야겠네.”
그리고 다른 팔을 잡아 주는 이.
최후배 경정이었다.
“어. 그럴 걸 그랬다.”
창진은 겨우 몸을 일으키며 뒤를 돌아보았다.
“아까 쟤들은 없었지 않아요?”
“시간이 지났으니까.”
“확실히 문이 열리긴 했구나. 저런 놈들까지 뛰쳐나오는 걸 보니까.”
“앞에는 어때?”
“길을 열고 있습니다.”
창진과 함께 온 중위가 옷에 묻은 흙을 털며 대신 대답을 해 주었다.
그때 그들의 곁으로 누군가가 다가왔다.
천유화와 정중부였다.
“오셨습니까?”
“와야지.”
“그렇지만…….”
“그럼 안 막아?”
천유화가 그 말을 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도망치는 사람들이 보였다. 이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부상자를 끌고 업고 벗어나려 애쓰는 군인들도 있었다.
“쟤들도 일단 살려야지.”
“하아.”
점입가경이었다.
“옆에는 산이고 이쪽은 강이고.”
퇴각로라고 할 만한 곳은 이쪽의 길이 전부였다. 중간에 빠질 수 있는 곳은 없었다.
그때였다.
“놈들이 오고 있소.”
정중부가 검을 뽑아 들고 나서며 말을 하자 천유화가 자신의 단창을 왼손에 들고 그 옆으로 나섰다.
“갑시다.”
두 사람이 달려가는 모습을 보며 서 경무관과 일행들은 병력들과 함께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콰콱!
정중부의 검이 마물의 몸뚱이를 통으로 갈라 버렸다. 그리고 보조를 맞추듯 천유화의 단창이 그 뒤에서 달려들던 마족병의 머리통을 꿰뚫었다.
조금 전까지 쏟아내던 화력 덕인지 잡다한 마물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렇게 둘이 도로를 막고 서서 달려드는 마물과 마족들을 족족 학살해 나갔다.
“웃차!”
그때 화염구를 날리려던 마족마법사의 머리통으로 손도끼를 날렸다.
퍼석!
빛줄기처럼 날아든 손도끼에 마족 마법사의 머리통이 쪼개지며 만들어지던 화염구가 허공에서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둘은 다시 몰려드는 적들을 차곡차곡 고깃덩어리로 만들어 나갔다.
“장비 장판교가 따로 없네.”
“그러게요.”
멀리서였지만, 그들이 싸우는 모습이 한 눈에 들어왔다. 그만큼 독보적이었다.
그런데 그때 최후배 경정이 걱정 어린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런데 저 양반 괜찮을까요?”
“글쎄.”
서준모 경무관이 걱정 어린 표정으로 중얼거리자 김창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뭐가?”
“저거요.”
최후배 경정이 손가락으로 정중부를 가리켰다.
“어?”
그제야 창진이 정중부 주변으로 점점 짙어지고 있는 빛무리를 볼 수 있었다.
“저거?”
“소환자와 강림자의 연결고리가 끊어지고 있는 거 같아.”
“그, 그런 경우는…….”
서준모 경무관이 씁쓸한 미소를 입에 머금으며 답했다.
“맞아. 없었지. 그런데 지금 그런 경우가 처음으로 벌어지고 있네.”
그때 앞쪽에서 차량들이 시동 거는 소리가 들려왔다.
“길이 열렸습니다!”
“그럼 저 양반들에게도 일단 몸을 빼내라고 해야 하지 않겠…….”
-버러지 같은 놈들이 꽤 재미있구나!
그때 귓가를 울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건 또…….”
뒤쪽에서 마족병들 사이에서 거대한 체구의 마족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괜찮아. 딱 보니 군단장급도 아닌 거 같은데. 저 양반들이면 저런 놈 하나쯤은…….”
서 경무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비슷한 체구의 마족이 몇 더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리고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 뒤에도 비슷한 덩치의 마족들이 계속해서 나타났다.
“차량 빨리 빼!”
그 모습을 보던 중위가 앞을 향해 버럭 소릴 내질렀다.
빠져나가던 차량들의 발걸음이 굼벵이 같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