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0화 혼돈의 시작
* * *
어디서 문이 발견될지 모르는 상황이기에 항시 기동 가능한 상태에서 대기하던 전군 병력은 마 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먼저 제7 기동군단이 밀고 올라가고 있었고, 그 외에 군부대들은 거점 방어를 위한 이동을 시작했다. 인간을 상대로 한 전쟁과는 다르기에 방어선의 배치부터 시작해서 모든 면에서 약간 다른 모습이기는 했다.
거기에 기존에 활용하던 화약 무기들은 보조로 쓰이고 또 전자 전에 활용되던 무기들은 일단 선발 부대의 확인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침식지에서는 전자전기의 활용이 극도로 제한되기에 문이 열린 뒤에 또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몰랐던 것이다.
“야! 도로차단 나가야 해!”
“예? 우린 거점방어 아닙니까?”
“사단장님 명령이야!”
“아니 벌써 마물들이 근처로 왔다는 겁니까?”
“몰라! 어서 명령대로 움직여! 빨리!”
군에서 명령이라는 말보다도 더 우선시 되는 것은 없었다.
사단장이 직접 내린 명령이라는 말에 군인들은 바삐 움직였다.
그들이 맡고 있는 구역에 있는 도로를 차단하는 일이었다.
그건 간단했다.
도로 좌우에 준비되어있는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을 무너트려 길을 막는 것이다.
원래는 북한군의 이동을 차단하거나 지연시키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중대장의 명령에 소대장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걸 깔면 마물이 못 옵니까?”
“그건 저도 잘…….”
“잘 알아보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부소대장의 질문에 소대장은 곤란한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그때 행보관이 지나가다가 질문을 던졌다.
“아니 지금 뭣들 하는 거야?”
“아니 행보관님 지금 거점 점령 전에 도로 차단부터 하라시던데요?”
“그게 무슨 소리야? 중국 애들이라도 밀고 내려온대? 뭔 말도 안되는 소릴 해!”
“행보관님 방금 중대장님이 직접 명령 전달하고 가셨습니다. 사단장님 명령이라고…….”
“이건 또 무슨 소립니까?”
소대장의 설명에 행보관은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이전 대침식 때도 일선에서 전투를 겪었던 경험자였기에 지금 이 명령이 얼마나 황당한지 너무 잘 알았다.
두 발 혹은 네 발로 뛰어다닌 마물이기에 도로를 차단한다 해도 의미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이쪽의 이동에 장애가 되어 문제가 발생하기 쉬웠다.
“혹 북쪽 군대가 무슨 일이라도…….”
“이 와중에 그게 무슨…….”
소대장이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지자 행보관은 답을 하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재빠르게 중대장이 갔다는 방향을 물어 뛰어갔다.
“혹시 모르니 본부의 동기에게 전화 좀 해 보겠습니다.”
소대장 역시 의아한 얼굴로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안 받는데.”
“못 받을 수도 있겠죠. 그런데 어디 계신답니까?”
“작전과.”
“그럼 더 바쁠 수도 있지요.”
한참 후 행보관이 굳은 얼굴로 되돌아왔다.
“지금 문제가 생겼다더군.”
“예?”
“북쪽 문제가 맞아.”
행보관의 대답에 다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북쪽의 군대가 해산되고 일부만이 남아 흡수된 지가 오래였기에 문제가 생겼다는 말이 이해가 안 갔던 것이다.
“지금 양강도 쪽에 맡고 있던 대원그룹과 대원길드가 이번 일에 연관이 있고 또 그들이 평소 지원하던 퇴역 북한군들을 주축으로 남하를 시도하고 있다는 소식이야.”
“예에?”
“아직은 외부로 알려진 사실은 아니라고 하는데.”
소대장이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다시 확인하듯 되물었다.
“그게 진짭니까?”
“방금 전 기동군단에 소속되어 있는 후배에게 확인한 겁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뭐해! 행보관님! 시간 없습니다!”
“아, 예.”
다시 나타난 중대장의 외침에 행보관은 고개를 끄덕이곤 그의 뒤를 따랐다.
“후. 일단 명령부터 따르자.”
한숨을 내쉰 소대장은 병력을 이끌고 움직였다.
* * *
콰콰콰쾅!
도로를 달리고 있던 차량들의 선두에 있던 지휘관이 전방에서 울리는 굉음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전부 대기! 하차시켜!”
의아함은 잠깐이고 굉음을 듣자마자 그는 행렬을 멈추었다.
대령 계급장을 달고 있는 그는 차에서 내리면서 뒤의 병사에게 명령을 내렸다.
“드론 전방으로 날려. 그리고 계곡 위랑 아래쪽으로도 날리고. 전부 사주경계해!”
연대장의 명령이 순식간에 전 부대로 전달되었다.
그때 모니터를 든 병사가 그의 앞에 달려왔다.
모니터에는 분할된 영상이 실시 간으로 나오고 있었다.
드론을 활용한 경계는 시간적으로나 인적 소모를 줄이는 쪽으로도 유리했다.
다만 침식지에서는 전파가 문제가 되기에 운용을 못하는 것이 한계였다.
“이건 또 뭐야?”
잠시 뒤 드론이 보내져 오던 영상을 확인하던 연대장의 얼굴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저게 왜 막혔어!”
“아까 폭음도 그렇고 저거 일부러 떨궈놓은 거 같습니다.”
그사이에 달려온 작전장교가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비쳤다.
“그러니까 왜! 바빠 죽겠는데!”
그 순간이었다.
삐이이이.
피리소리 비슷한 낙하음이 들려왔다. 그 순간 연대장은 물론이고 작전장교까지 모두 당황한 얼굴로 외쳤다.
“은폐해! 은폐엄폐!”
거의 동시에 멈추어져 있던 차량 하나가 허공으로 떠오르며 화염과 함께 폭음이 터져 나왔다.
“박격포다!”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포탄이 연달아 떨어져 내렸다.
쾅! 콰쾅! 쾅! 쾅!
* * *
KM187 81mm 구형 박격포에 쉴 새 없이 탄을 집어넣던 화기 중대 소속 군인들의 얼굴에는 긴장이 어려 있었다.
“마물들이 후방에서 갑자기 나타나기라도 한 거야? 왜 갑자기 쏘라는 거야?”
“모르겠습니다. 도로도 차단해 놨다고 합니다!”
“에이씨. 박격포도 GPS 달린 것도 나오는 세상에 이걸로 쏘려니 영 답답하네. 맞았는지도 확인 못 하지.”
“본부에선 계속 쏘라고만 하는지라…….”
화기중대장은 이해할 수 없는 명령에 일단 긴급점령한 포진지에서 연신 박격포탄을 날려대고 있었다.
그때였다.
삐이이이!
“이런 씨팔!”
곡사포탄 특유의 낙하음이 들려오자 의문을 표하던 그는 이내 몸을 웅크리며 외쳤다.
“모두 은폐해!”
그의 외침은 곧 폭음에 묻혀 버렸다.
콰콰콰쾅!
* * *
뒤에서 따라오던 타이곤 120mm 자주박격포가 대응사격을 시작했다.
차량 탑제형인 덕에 비교적 빠른 대응이 가능했다. 초반에 날렸던 드론이 다행히 비교적 빠른 시간에 발견했기에 대포병 사격이 가능했던 것이다.
“연대장님 이거 이상합니다! 아군 같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어떤 미친놈이 아군 머리위에 포탄을 날리냐고! 그리고 329사단(가상의 사단명칭)에는 연락 닿았어?”
“연락을 안 받습니다!”
“일단 병력 뒤로 물려! 빨리!”
다행히 초탄 확인 후에 수정탄을 날리는 식이 아닌 것 같았기에 명중탄은 적은 편이었다.
처음 운이 나쁜 차량 한 대가 날아갔을 뿐 대부분은 도로 밖으로 떨어졌을 뿐이다.
그렇게 신속하게 이탈을 하기 시작했다.
* * *
생각보다 빠르게 대응사격을 당한 화기중대는 적지 않은 피해를 입고 이동하고 있었다.
다들 혼이 반쯤은 달아났는지 일부는 군장까지 버리고 이동해 왔을 정도였다.
그나마 총과 박격포를 놓고 오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빌어먹을 위생병!”
근처에 폭발에 휘말려 나자빠져 있던 병사 하나를 그대로 엎고 뛰던 화기중대장이 위생병을 찾았다.
“일단 이거부터!”
그때 분대장 하나가 달려와 응급키트를 내밀었다.
“애들 많이 상했냐?”
“아직, 잘…….”
“니네 소대장은?”
중대장이 말년 분대장에게 질문을 던졌지만, 그는 어두운 얼굴로 짧게 답했다.
“낙오되신 것 같습니다.”
“……그래. 뒤쫓아 오겠지.”
그 와중에서 병력을 인솔해야 할 소대장이 이차 집결지로 쫓아 오지 못하고 낙오했다는 말은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
부상이나 전사했을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까 그거 120mm 아니냐?”
“120mm 같기는 합니다. 그런데 우리 애들이 드론을 본 것 같다고 합니다.”
“드론?”
북쪽의 퇴역군인으로 이루어진 군부대라 해도 드론을 활용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점점 더 혼란스러웠던 것이다.
그때 그의 스마트폰이 품안에서 진동했다.
눈에 익숙한 번호였다.
한가하게 전화를 받고 자시고 할 상황은 아니었지만, 왠지 받아야 할 것 같았다.
“어, 지금 내가 전화를 받을 상황이…….”
[야! 대체 니네 사단은 왜 연락도 안 받고 지랄이냐!]
갑작스런 욕설에 화기중대장은 분노가 치밀었다.
“씨팔 우리 애들 지금 몇이나 죽어 나자빠졌는지도 모르겠는데 왜 이 지랄이야!”
[설마? 방금 우리한테 포탄 날린 게 너네 중대냐?]
순간 화기중대장의 머릿속이 일순 텅 비는 느낌을 받았다.
* * *
차준우 사령관이 불같이 노했다.
“이게 무슨 개소린가!”
전방으로 이동하던 부대 몇몇이 기습을 당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아군의 공격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일부 도로가 차단되었다는 소식도 이어졌다.
그나마 산 쪽에 이어진 도로 같은 경우에는 낙석지대를 치우면 이동할 수 있었지만, 일부 끊어진 다리의 경우는 크게 돌아가야 할 판이었다.
공병대를 이용해서 교량을 놓는 것보다는 그게 더 빠른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문제는 왜 아군이 공격을 했느냐는 것이다.
“그, 그게 하나같이…….”
연이은 보고는 대동소이했다.
양강도에서 퇴역북한군이 주축으로 해서 밀고 내려오고 있다는 말과 함께 위쪽에서 내려온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는 것이다.
다행인 것은, 중간에 이상함을 느낀 장교들이 명령을 내린 사단장 혹은 연대장을 제압하여 지금은 아군 간의 교전이 거의 멈춘 상태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세뇌에 의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연구소의 연락이 왔습니다.”
“연구소에서?”
“예. 그래서 우선적으로 마족 마법사들이 이동해서 확인하기로 했습니다.”
“잡아끌고 와서 확인하면 되지 왜?”
차 사령관의 질문에 참모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혹시 세뇌가 맞다면, 또 다른 이도 당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참모의 대답에 차 사령관은 한숨을 내쉬었다.
한시가 급한 지금 벌써부터 발목을 잡히는 일이 발생했으니 한숨이 안 나오는 것이 이상했다.
“당분간은 아군을 상대로도 정찰해 가며 이동을 해야 하는 상황이군.”
차 사령관이 인상을 구기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 * *
양강도는 지옥이 되어 있었다.
한때 의심의 눈초리 혹은 적대감 섞인 시선을 보내던 양강도의 주민들은 지금 반쯤 정신이 날아간 채 차량에 올라타고 있었다.
타타! 타타타! 퍼펑! 퍼엉!
사방에서 울리는 총소리와 폭음은 이곳이 전장이나 다름없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토록 주거지역에서 대피하라고 외쳐도 요지부동하던 이들이 지금은 알아서 빗발치는 상황에서도 필사적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지금 몰려오는 마물들에 의해 찢겨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사방에는 벌집이 된 마물과 함께 뒤섞인 사람들의 시신으로 가득했다.
애 어른 구분도 하기 힘들어 보였다.
그저 굴러다니는 팔다리 중에 작은 건 아이였을 것이고 긴 것은 어른의 것이었을 거라 짐작될 뿐이었다.
그 광경을 서준모 경무관이 벌게진 눈으로 바라보며 이를 악물고 욕설을 흘렸다.
“오기원 이 개새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