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9화 하늘엔 검은 구름이 끼고
* * *
앞을 가로막던 이들과 푸닥거리를 하던 서준모 경무관과 최후배 경정은 갑작스런 후폭풍에 함께 아웅다웅하던 대원길드 소속 경계병들과 그대로 날아가 처박혔다.
“아우, 이게 뭐야?”
“괘, 괜찮으십니까?”
“어서 일어들 나시게.”
서로를 걱정해 주던 둘의 귓가로 정중부의 음성이 들려왔다.
“어…….”
“와…….”
서 경무관은 놀란 음성을 그리고 최 경정은 감탄에 가까운 음 성을 흘렸다.
이 와중에도 정중부는 그 자리에 서서 뒤를 돌아보고 있었다.
“염병 기어이 터졌나?”
잠시 정중부를 보고 놀랐던 서 경무관은 마치 기둥처럼 하늘에서부터 땅까지 내리꽂혀 있는 섬광을 바라보며 씁쓸한 음성을 내뱉었다.
저게 뭔지 설명할 수는 없어도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예상할 수 있었던 것이다.
최 경정은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이거 농사는 지을 수 있을라나.”
세상이 어두컴컴했다. 마치 짙은 구름이 끼어 태양을 완전히 차단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단지 이곳뿐만이 아니었다. 시선이 닿는 곳까지 모두가 짙은 검보라빛 구름으로 뒤덮여 있었던 것이다.
가볍게 던진 말이었지만, 결코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다.
“뭐, 이건 다행인가?”
그때 서 경무관이 주변을 둘러보니 그들을 향해 달려오던 경비 병력들은 아직도 사방에 날려가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가세나.”
그때 정중부가 먼저 움직였다.
그가 흩날리는 빛무리를 따라 서 경무관과 최 경정이 따라 달렸다.
다행이랄까.
그들이 넘어왔던 담장은 반쯤 무너져 있었다.
그들이 담장을 넘을 때 즈음 땅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지진?”
그때 최 경정이 약간 당황한 얼굴을 하며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어쩌면 이게 당연한 반응일지 몰랐다. 하지만 정중부는 뒤를 돌아보고 있었다.
“설마 이게?”
그런 정중부의 시선을 따라 시선을 돌린 서 경무관이 얼떨떨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정중부의 시선이 향하는 방향에는 바로 빛의 기둥이 세워져 있었다.
“대군이군.”
잠시 무릎을 꿇고 앉아 바닥을 짚은 정중부가 한 말에 서 경무
관은 물론이고 최 경정까지도 놀라 버렸다.
“대체 땅까지 흔들릴 정도면 얼마나…….”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그동안 을지부루 일행을 따라 다니며 수많은 마물의 무리를 보았던 그들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의 울림을 만들어내는 적이라는 건 상상도 못해 보았다.
그저 영화에서나 적들의 숫자가 많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한 장치로만 보았던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그 영화적 장치를 현실에서 볼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
타앙!
그때 어디선가부터 총소리가 울려왔다.
피잉!
그들이 있던 근처의 땅이 패이는 소리가 이어졌다.
“젠장!”
누구라 할 것 없이 그들은 다시 뛰기 시작했다.
그들의 앞에 무너진 방어선 비슷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총성은 그쪽에서부터 울려왔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상황에서 뒤로 달릴 수는 없기에 그들은 정중부를 믿고 달려나갔다.
한 발의 총성이 신호가 되었는지 중구난방이지만 연이어 총성이 울려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비명이 이어졌다.
창대가 이리저리 휘둘러지며 총을 쏘았던 경비대원들이 이리저리 날아갔다.
“역시!”
그가 누구인지는 오래 지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천유화였다.
“굼벵이 삶아 먹었냐!”
“와하하하!”
천유화의 외침에 서 경무관과 최 경정이 함성을 지르며 그를 향해 내달려갔다.
그 뒤를 마치 보호하듯 정중부가 뒷걸음질을 치며 합류했다.
“어떻게 딱 맞춰서 여길 오셨답니까?”
최 경정이 묻자 천유화가 시선을 정중부에게로 향했다. 그러자 둘은 이해가 되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두 강림자 덕에 그들은 빠르게 몸을 빼낼 수 있었다. 하지만, 시내로 접어들면서 생각보다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
사방에 있는 물건들이 부서지고 무너져 있었다.
유리로 된 창이란 창들은 모두 깨어져 있었고, 그 파편에 상처 입은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전쟁터가 따로 없네.”
최 경정의 중얼거림에 서 경무관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때 서 경무관이 얼굴을 굳히며 입을 열었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니잖아!”
“아!”
그의 외침에 최 경정이 화들짝 놀랐다.
“일단 내가 이미 알렸다.”
천유화의 말에 서 경무관이 다행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바이크 한 대가 미끄러지듯 그들 앞으로 달려와 멈추었다.
“어? 창진이냐?”
“괜찮으십니까?”
그를 걱정하며 던진 질문에 서 경무관은 얼굴을 굳히며 대답했다.
“지금 내가 괜찮은 게 문제가 아니다.”
서준모 경무관의 심상치 않은 표정에 김창진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항상 심각한 순간에도 농담던지기를 즐겨하는 그를 보며 사람들은 헐리우드 형사물이 사람을 망쳤다며 말을 하곤 했다.
그랬던 서준모였기에 지금의 심각한 표정은 더욱 어색하게 느껴졌다.
반대로 생각하면 그만큼 지금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일단 이쪽 지역에 문이 열린 것 같다는 보고는 올려 놨습니다.”
“그거. 오기원이 연 거다.”
그 말에 창진이 멈칫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마치 귀를 의심하는 듯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놈이 마족, 아니 군주와 손을 잡았어.”
그 말에 창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군주와 손을 잡았다는 말이 대번에 이해가 되었던 것이다.
을지부루의 은총을 받으며 그에게 귀의한 마족들에게 설명을 받았다.
군주와의 계약을 통해 충성을 받치는 형식이 있기도 한다는 말. 하지만, 대부분 마족들은 그쪽을 택하지는 않는다.
그건 단순 충성이 아니라는 의미였기 때문이었다.
일순 얻는 힘은 강하지만, 결과적으로 꼭두각시나 마찬가지인 것이기에 일반적으로 선택하는 상황이 아니었다.
바로 노예를 만드는 과정에 가까웠다.
“미친…….”
이어서 그들이 본 것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카메라를 빼앗기기는 했지만, 뭐 지금은 그게 큰 의미가 있을 거 같네.”
서 경무관의 말에 창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뒤로 이동하시지요.”
“마물인지 마족인지 어찌 되었든 적들이 밀려오고 있어.”
“알고 있습니다. 일단 군부대에 알리기는 했습니다.”
“군부대?”
군부대라는 말에 반문하듯 물었다.
“시간이라도 끌어야 대피를 시키잖습니까. 여긴 남쪽이 아닙니다.”
“하긴…….”
아직 이쪽은 남쪽과 같은 일사불란한 움직임을 기대하지는 못 했다.
최대한으로 행동하기는 하지만, 시설 등 여러 인프라가 갖추어지지 않은 탓에 한계가 있었다.
“그래도 트럭 등이나 사람을 태울 수 있는 모든 수단이 준비되어 있으니 소개 작업을 하면 되긴 하지만…….”
창진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끝을 흐리자 그제야 이 지역의 분위기를 읽은 것이다.
“빌어먹을. 오기원 이 개새끼 무슨 짓을 한 거야.”
서 경무관이 욕설을 내 뱉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주변을 돌아보니 이쪽을 바라보는 시선이 서늘했다.
“뭘 했겠습니까. 구원자 행세를 했겠지요.”
“시파, 세금은 다 어쩌고! 복구 예산 어마어마하게 들였잖아!”
서 경무관의 외침에 창진이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어마어마해도 여기까지 그게 다 닿기는 힘들죠. 거기에 이곳에 몰려든 이들의 상당수는 강제 퇴역당한 군인들이고.”
“미치겠네.”
“일단 가능한 숫자만이라도 후퇴시키는 것이 최선입니다.”
그때였다.
쉬쉬쉬쉭!
무언가 바람소리 같은 게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검을 연기를 꼬리처럼 매달고 날아오르는 불덩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문제는 그게 향하는 것이 그들이 있는 방향이라는 것이었다.
“젠장!”
그 불덩이들이 사방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아까 들이닥쳤던 충격파의 후폭풍이 채 지나기도 전에 이어진 적의 공세였다.
* * *
[그동안 받았던 훈련에 충실하게 대응할 것을 국민 여러분들에게 부탁드리며…….]
사방에서 같은 방송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도심에 있던 차량들이 좌우로 이동해 멈추어 있었다.
군인들이 통제하는 와중에 비워진 도로로 전차와 병력을 태운 보병장갑차들이 이동하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소와 말들을 태운 트럭과 수를 헤아릴 수 없는 경운기들이 커다란 트레일러 차량 위에 실려 움직이고 있었다.
전자기기를 최대한 줄이고 줄인 탈것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상점의 상인들은 불안한 시선으로 가게 문을 내리고 있었다.
일부는 조금의 식료품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나온 사람들의 행렬로 붐비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의 시선은 이따금씩 하늘과 북쪽을 번갈아 향하고 있었다.
검은 구름. 그리고 이 먼 남쪽에서도 선명하게 보이는 불길한 빛의 기둥.
마치 종말을 고하는 전쟁의 전주곡과 같은 풍경이었던 것이다.
“가자, 빨리.”
아이들의 엄마로 보이는 여인이 양손으로 고사리 같은 손들을 잡아끌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 * *
“대원길드장이?”
양현재 대통령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 상황을 만들어 낸 이가 바로 대원길드장인 오기원이라는 말에 놀란 것이다.
“빌어먹을!”
콰앙!
이내 그의 주먹이 탁자를 후려쳤다.
제법 탁자가 단단했는지 이내 양 대통령의 손에서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지금 차준우 사령관은?”
“일단 제7 기동군단과 협력해서 진군을 준비 중에 있습니다.”
대한민국 군단 최강의 세력인 제7 기동군단.
전쟁 시 오로지 북진을 위해 만들어진 7군단은 갑작스러운 북한의 붕괴 때 처음으로 만들어진 그 목적을 다 할 수 있었다.
비록 그 과정에서 마물은 현대전의 힘만으로 어찌 할 수 없는 상대라는 것을 확인하기는 했다.
그 덕에 오히려 제 7기동군단은 새로운 변신을 꽤했다.
소위 말하는 민간으로 예편한 군인들인 기동대 병력이 유사시 합류하면서 대마물 군단으로 제편된 것이었다.
“미사일 사령부는?”
“그쪽도 이미 준비가 되었습니다.”
“양강도 방면은?”
“예하 직할 부대가 일단 주민소개를 위해 지연전을 펼치겠다고 합니다.”
“후우.”
백 번 천 번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훈련을 했지만, 실전은 또 다른 이야기였다.
“양강도에 피해가 크다고 들었습니다.”
“화염등이 아닌 충격파에 의한 타격이긴 하지만 꽤 많은 건물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다쳤다고 합니다.”
“지금부터 총리는 별도의 장소로 이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양 대통령의 부탁에 박용우 총리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에게 양 대통령이 단단히 손을 잡아 주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런 소리 마십시오.”
박 총리의 말에 양 대통령이 살풋 미소를 머금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대통령과 총리 등 최고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이들을 따로 이동하는 것이다.
그래야 대통령 유고시에도 정상적으로 명령 체계가 돌아가기 때문이었다.
“그럼 우리도 이동합시다.”
양 대통령의 말에 따라 다들 벙커로 이동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양 대통령이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검은 구름에 하늘이 뒤덮여 있었다.
양 대통령은 이것이 대한민국 아니 이 땅에 살아가는 이들의 미래가 아니기를 빌고 또 빌었다.
“가시지요.”
경호관의 재촉에 양 대통령이 굳은 얼굴로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