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열제 부루강림기-198화 (198/305)

제198화 두 배신자.

그때 김창진이 고개를 들어 CCTV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저거구나. 고장난 카메라라고 한 게. 개판이네, 양강서.”

다 들으라는 듯 중얼거린 소리에 구 형사가 당황하며 물러섰다.

“아, 아니 그…….”

“하? 씨필. CCTV도 꺼 놓고 나한테 무슨 짓을 하려고 한 거냐?”

“아, 안 찍혔다고 해도 증언과 상처가 있으면…….”

변명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유지헌 경감의 주먹이 그의 주둥이를 강타했다.

푸욱!

순간 이빨 하나와 코피가 솟구쳐 올랐다.

“안 쳤다고 하면 되지. 새꺄.”

유지헌 경감이 피범벅이 된 안면을 감싸고 있는 구 형사에게 아까 미란다 원칙 때의 말을 고스란히 돌려줬다.

“씨, 씨파 피!피! 이게 그런 말로 넘어갈 수 있을 거 같…….”

그때 김창진이 퉁명스럽게 중얼거렸다.

“이 친구 갑자기 왜 혼자 자빠져 부딪히나. 영 부실하네. 유 경감님 갑시다. 좀 바쁜 일이라.”

“푸흐흐흣!”

“아…….”

웃음을 터트리는 유지헌 경감과 함께 발길을 돌리던 김창진은 잠시 멈칫하고는 억울한 시선을 보내던 구 형사에게 한마디 더 해 주었다.

“여기 해먹은 거 많던데. 감사팀도 왔으니까 잘 놀아 보시고.”

“아흐흐흑!”

당황해 하던 구 형사는 김창진의 마지막 말에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일이 잘못된 겁니까? 혹시 서 경무관님이 구금이라도 당하신 겁니까?”

창진의 뒤를 따르던 유 경감이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아무래도 그렇게 됐습니다. 뭐 상관은 없습니다.”

“예?”

“일단 경찰 고위직을 임의로 구금했다는 거, 거기에 국정원과 현재 합동작전을 펼치던 수사관이라는 것들만으로도 이쪽서 들쑤실 명분이 생긴 거니까요.”

그의 말을 들은 유 경감이 흠칫하며 입을 열었다.

“혹시 그럼 두 분은 미끼였던 겁니까?”

지금 상황을 보면 왠지 그렇게 보이기도 했다.

그가 던진 질문에 앞서 걸어가던 창진이 뭐에라도 찔린 듯 몸을 움찔거렸다.

“그런 거 아닙니다. 그랬다간 서 선배에게 저 작살나요.”

“선배?”

국정원 요원이라던 창진이 서준모 경무관에게 선배라 부르자 유 경감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왠지 연결고리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아, 제가 원래 경찰 출신입니다.”

“아!”

경찰 출신이라는 말에 기억이 났다. 최근 국정원 직원 중에 꽤나 잘 나가는 이가 원래 경찰 출신이었다는 소문이 있었다.

창진이 어차피 블랙이나 비밀요원은 아니기에 꽤나 알려진 내용이기도 했다.

그리고 최근들어 워낙 대놓고 사방을 돌아다닌 이유도 있었고 말이다.

누구는 정보국의 외교관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현 시대가 만든 특수성이라 봐야 했다.

유치장을 벗어나 업무를 보던 사무실로 들어서니 상황은 생각 했던 것처럼 개판이었다.

감사팀들이 짐을 싹 빼서 챙긴 상태였고, 동료들 중 다수는 울상을 짓고 있었다.

심지어 서장은 손에 수갑까지 채워져 있었다.

“미치겠네.”

“보시면 알겠지만, 여기 상황이 별로 좋지 못합니다. 파악하기로는 일선 파출소에도 문제가 있더군요.”

“그럴 겁니다.”

“해서 일단 지금 임시로 경찰병력이 파견되어 오고 있습니다. 다만 이곳의 상황을 잘 아는 분의 협조가 필요하니 그걸 유 경감이 맡아 주시면 좋겠습니다.”

“제가요?”

그 말은 임시로 서장직을 맡으라는 말과 같았다.

얼떨떨한 유 경감을 보며 창진은 웃음기를 지우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서 선배와 공유했던 정보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 * *

“이 새끼들은 밥도 안 주나.”

서준모 경무관이 투덜대는 소리에 최후배 경정이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지금 밥이 넘어갑니까? 막말로 뭘 타서 줄 줄 알고요.”

“뭘 타서 줘. 그럴 거면 거기서 죽여 버리고 마물 밥 만들었겠지.”

“아!”

그때 밖에서 안타깝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대원길드원인 듯했다.

“나 방금 저 탄식 듣고 소름 돋았다.”

“제발 입 좀 다뭅시다!”

서 경무관의 말에 최 경정이 울상을 지으며 윽박질렀다.

그때 밖에 분위기가 왠지 심상치 않게 분주해지는 것을 느꼈다.

“응? 뭐지?”

심지어 뭔가 부서지는 소리까지 들려왔다. 싸우는 소리임에 틀림이 없었다.

“뭐야? 그 양반 여기까지 들어온 건가?”

갇혀 있는 입장에선 그들이 의심할 만한 건 바로 천유화뿐이었다.

퍼엉!

가죽 북 터지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한쪽 구석에 쳐박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맞나 본데요?”

그때 처음 듣는 음성이 들려왔다.

“뒤로 물러들 나시게.”

“어?”

물러나라는 말에 반사적으로 행동하던 그들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목소리가 달랐던 것이다.

쩌억!

순간 철문 사이로 칼날이 쑤욱하고 나타나더니 아래로 그대로 그어졌다.

연결고리가 잘렸는지 딸그렁거리는 쇳소리가 들려왔다. 이어 문이 열렸다.

“시간이 없으니 나오시게들.”

문을 열고 모습을 드러낸 이를 본 서 경무관과 최 경정이 입을 떡 벌렸다.

“저, 정중부?”

그는 바로 대원길드장의 강림자인 정중부였던 것이다.

“대체 지금 뭐가 어떻게 된 겁니까?”

최후배 경정의 질문에 서준모 경무관은 강림자들과 칼을 맞대고 있는 정중부를 보며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아냐. 정말 대원길드장 신상에 문제가 있었던 거 아냐? 그래서 나서지 못하고 강림자인 정중부를 우리에게 보내 준 거고?”

“진짜 그게 맞을까요?”

최 경정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서 경무관의 추측에 동조해 가자 강림자 하나를 베어 넘기고 빛으로 만들어 버린 정중부가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아닐세. 이 상황을 만든 건 오히려 오기원 그 친구네.”

“예? 그런데 어떻게…….”

오기원의 강림자가 이렇게 독자적으로 움직이느냐는 질문이었다. 차마 끝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글쎄.”

그들을 이끌고 빠르게 이동하던 정중부가 묵묵히 뭔가를 생각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불쾌하더군. 무언가가 자꾸 명령을 내리려고 하는 상황 차체가.”

“명령이라니요?”

“오기원 그 친구는 마물의 무리들과 손을 잡았지.”

“컥!”

“그, 그게 무슨 말입니까?”

순간 둘은 패닉에 빠졌다.

“말 그대로. 어느 즈음부터 나와 그의 유대가 약해지는 것을 느꼈지. 그리고 뭔가 맹목적이던 나의 행동에 변화가 찾아왔고.”

“그래서?”

을지부루와 그 일행들의 경우가 있었기에 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그건 워낙 그들이 특별했던 것 때문이었다.

정중부가 하는 말은 그들에게 충격이었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오기원이 마물의 무리들과 손을 잡았다는 말이 더 충격이었다.

“빌어먹을 그럼 새벽에 본 게 마물…… 아니 마족들이 만든 게 확실하고 그걸 그놈이 도왔다는 거겠네?”

서 경무관이 입술을 짓씹으며 중얼거렸다.

“그, 그런가 본데요.”

“정확하네.”

정중부의 확인에 둘은 정신이 더욱 혼미해지는 것을 느꼈다.

잠시 후 서 경무관이 욕설을 내뱉었다.

“이런 씨부럴! 지금이 구한말도 아니고 을사오적같은 짓을 했단 말이야!”

“하, 진짜 을사오……적같은 놈이네요. 아니지, 그보다 더하죠. 스케일이 다르니까.”

최 경정이 어이없는 웃음을 흘리며 서 경무관의 말을 받았다.

그때 최 경정의 시선이 정중부를 향했다.

“어?”

빛가루 같은 것이 정중부의 몸에서 약간씩 뿌려지고 있었던 것이다.

“뭐, 뭐야? 이거 뭡니까?”

그제야 서 경무관도 발견한 듯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지금까진 상대해오던 강림자들을 역소환시킬 때 일어났던 빛가루 때문에 몰랐었는데 지금 보니 그와 유사한 빛가루가 정중부의 몸에서 조금씩 흘러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뒤집어 놓은 모래시계의 모래가 흘러내리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조금 전부터 이렇게 되더군. 별 일 아니니 걱정 말게. 어차피 한 줌 흙이었던 몸이니까.”

“하, 하지만?”

“오히려 지금 이 순간 하나씩 가려져 있던 기억들이 떠오르더군. 그리고 이곳에서 있던 기억들도 선명해지고.”

정중부의 차분한 음성에 둘은 숙연해지는 것을 느꼈다.

강림자는 인류에게 있어 최후의 무기이자 수호자다. 하지만, 실제로는 신기한 도구에 불과했다.

사람들은 옛날을 살아가던 역사적 인물을 다시 볼 수 있어 신기해 했고, 많은 학자들에게는 그들을 통해 그 당시의 일을 자세히 알 수 있을까 하는 역사의 보고였다.

을지부루와 그 일행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런 경향이 뚜렷했다.

건물 밖으로 나온 그들의 앞으로 수많은 발걸음 소리가 울려오는 것을 느꼈다.

“갈길이 멀군.”

그 말과 함께 셋은 다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 * *

“탈출?”

가둬 두었던 이들이 탈출했다는 소식에도 대원길드장인 오기원은 별다른 표정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이어진 보고에는 그의 표정이 구겨질 수밖에 없었다.

“정중부가?”

그의 강림자가 그들을 구해 내었다는 소식이었다.

“그래서였나?”

허전함.

무언가 유대감이 흐려지는 느낌이었다.

소환자가 죽을 때까지 강림자는 하나의 공동운명체라는 것이 정설이었다.

그렇기에 이 생소한 느낌이 무엇 때문에 생겨나는 것인지 알 수 없던 것이다.

“뭐, 이제는 별 의미 없나?”

하지만, 구겨졌던 표정은 잠시뿐이었다.

오히려 홀가분한 표정을 지은 오기원이 명령을 내렸다.

“어차피 잠시의 시간만 끌 필요가 있었을 뿐이지. 조금 더 시간을 끌었다면 좋았겠지만.”

기원은 창밖을 내다 보았다.

정확히는 하늘이었다. 하늘이 점점 어두워져 가고 있었다.

그리고 언뜻 언뜻 비춰지는 보랏빛 뇌전.

침식지 균열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규모가 달랐다.

“곧 문이 열리고 우리의 군주를 영접할 시간이 온다.”

기원이 허연 이빨을 드러내며 웃음을 머금었다. 그러자 보고를 올리던 길드의 참모들이 환한 얼굴을 했다.

이제 세상은 그들의 것이 된다는 것만큼 달콤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배신자를 놔두면 내가 웃음거리가 되겠지.”

어느새 미소를 지운 기원이 시선을 다시 돌려 참모들을 바라보았다.

“본보기 하나쯤은 있어야지 않겠어?”

기원의 말에 길드 참모들이 일제히 목소리를 높였다.

“알겠습니다!”

* * *

“저건 또 뭐야?”

김창진은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마치 영화에서나 볼 법한 광경이 지금 그의 눈 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하늘을 가득 메운 검은 구름이 어느새 그의 머리위까지 덮여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부는 마치 위성에서 바라보는 태풍사진 마냥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순간 세상이 보랏빛으로 번뜩였다. 보랏 빛깔을 머금은 번개가 내리친 것이다.

그리고 그 후에 찾아오는 것은 천둥소리.

아니 천둥의 울림이었다.

“이런 씨팔!”

창진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왔지만, 이내 압도적 음파에 파묻혀 버렸다.

바우우우웅!

마치 거대한 폭발이 터지며 사방으로 퍼지는 충격파와 같은 울림이 그들에게 휘몰아쳤다.

눈으로도 보였다.

투명한 무언가가 마치 일렁이며 동심원을 그리듯 밀려오는 것을 말이다.

천둥과 같은 울림은 귀가 잡아낼 수 있는 정도의 소리가 아니었다.

그저 먹먹한 것만으로도 그 소리가 컸다는 정도를 인지할 뿐.

그리고 그렇게 생각했을 때에는 밀려오는 충격파에 그의 몸이 뒤로 날리고 있었다.

차도, 사람도, 길가의 개도.

모두 비현실적으로 밀려 날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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