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7화 서준모의 결단
“지금 농담이 나옵니까?”
곧바로 경계 자세를 잡으며 타박하는 최 경정에게 서 경무관이 어설피 웃으며 먼저 움직였다.
“농담이고 나발이고 영화찍냐? 뛰어 새꺄!”
“헛!”
이미 서 경무관이 멀찍이 달아나기 시작한 것을 본 최 경정이 헛바람을 집어삼키며 자신도 몸을 돌려 뒤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가, 같이 가요!”
이어 속도를 높이며 멀어져가는 서 경무관을 향해 최 경정이 울상 섞인 목소리를 뱉어 내었다.
팀원들과 근방을 돌아다니며 경계를 서던 대원길드 소속 길드원인 유건영의 얼굴에는 불만이 없었다.
내장이 널려 있는 이런 곳을 경계하라는 길드의 명령에 반발할 법도 하건만 그의 얼굴에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는 듯 불만 따위는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런 그의 눈에 검은 옷을 입은 두 명의 불청객이 보였다.
경계를 서기는 했지만, 사실 이곳으로 누가 침투해 올까 싶기도 했었다.
그런데 실제로 침투를 해 온 이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을 보곤 어이없다는 목소리를 내었다.
그 결과 둘이 뒤로 내빼기 시작했다.
사전 약속은 없었는지 하나가 먼저 뛰고 이쪽을 향해 경계태세를 갖췄던 이가 엉거주춤하며 뒤 따라 뛰었다.
“판석. 제압해!”
“알겠수다.”
고려 말기 무관인 판석은 환도를 쥐고 그의 명령에 뒤를 쫓아 달리기 시작했다.
판석뿐 아니라 팀원의 강림자 하나도 그 뒤를 따라 달렸다.
“가자!”
강림자를 먼저 보낸 그들 역시 뒤를 쫓으며 신호탄을 날렸다.
파팡! 팡!
눈에 띄는 행동이지만, 어차피 이 지역은 대원길드의 작전지역이기에 무마할 수 있는 수단은 여럿이었다.
“후아! 그래 이거지!”
소환자임에도 그들의 속도는 남달랐다.
먼저 보낸 강림자에 비해 모자람이 없었다.
“역시 사람은 줄을 잘 잡아야지 않습니까?”
그의 팀원이 곁에서 기분좋은 얼굴로 말을 걸어왔다.
“그래. 개고생하며 찔끔찔끔 신체능력이 늘어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지.”
그들 역시 최초 연구동에서 훈련을 받으며 비약적인 능력 향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처럼은 아니었다.
“이게 다 길드장님 덕이지.”
그들의 눈동자에 보랏빛 기운이 감돌았다.
그들은 대원길드장의 일차 세뇌에 이어 회유와 교언의 마족인 마켈그로이언의 은총을 받았던 것이다.
세뇌에 이은 은총이기에 그 능력의 덜한 편이었지만, 그럼에도 그들의 능력은 이전과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응?”
“거리가 줄지를 않는 것 같은데요?”
팀원의 말에 유건영은 어둑어둑한 길을 달리는 신원불상자를 바라보았다.
그의 말마따나 좁혀져야 할 거리가 줄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뭐, 뭐야? 강림자인가?”
“설마 강림자가 저렇게 행동한다고요? 아까 말투 들으셨잖습니까.”
“을지부루가 거느리는 강림자들은 달라.”
이미 겪어 본 바가 있는 유건영의 말에 팀원은 걱정어린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그럼 우리도 상대 안 되는 것 아닙니까?”
그의 말에 유건영은 입술을 깨물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들의 전투를 본 적도 있었기에 그 존재들이 얼마나 괴물집단인지는 그가 더 잘 알았다.
“괜찮아. 그래서 신호탄을 터트린 거고. 아마 못 벗어날 거다.”
신호탄이 터지는 순간 이 근방으로 경계병력이 몰려올 것이다.
그중에는 자신들과 같은 소환자와 북한 출신의 전투병력도 있었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저것들 왜 이리 빠르죠?”
“강림자니까!”
“아니 그 뒤 말입니다!”
“강림자 아냐?”
“아까 우리에게 말을 건 놈들인 것 같은데요.”
최후배 경정의 말에 서준모 경무관이 그럴 리가 없다는 얼굴로 대답했다.
“설마. 강림자겠지. 막말로 저렇게 달리는 소환자가…….”
“많아졌죠.”
“그렇구나.”
굳이 고빈을 비교할 필요는 없었다.
이미 고빈은 일반 소환자들과 비교하기 힘들었으니까.
하지만, 지속적인 담금질을 당한 전신 길드나 신건길드의 경우만 해도 은총을 받은 이들과는 큰 차이점이 있었다.
“훅! 어쩌면 저들도 연구동에서 훈련을 받았던 인원일 수 있지. 결국 방법만 알면 제대로 소환자의 능력을 육성시킬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으니까.”
“헉헉! 그, 그게 사람 잡는 정도라 문제죠.”
“어쨌든!”
입 다물고 뛸 법한데도 숨을 몰아쉬면서 만담을 나누는 둘이었다.
“이런 우라질!”
그때 서 경무관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아까 불꽃놀이 때문인가 봐요?”
“닥치고 뛰어!”
“서, 선배가 먼저 떠들어 놓고선!”
그들의 정면에 이쪽으로 몰려오는 불빛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은 그들의 위치를 파악 못 했는지 몰려들고는 있지만, 포위를 따로 구성하고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 가지 못했다.
파파팡!
“염병 가지가지 한다.”
서 경무관의 입에서 다시 욕설이 튀어 나왔다. 조명탄이 솟아오르며 사방이 밝아졌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그들의 몸을 숨겨 주던 어둠이 걷혀진 것이다.
“허…….”
순간 최 경정이 허탈한 음성을 내뱉었다.
불빛으로 파악했던 것보다 많은 인원이 깔려 있었던 것이다.
“그, 그래도 천유화 님이 있으니까 어떻게 안 될까요?”
최 경정의 말에 서 경무관이 한숨을 내쉬었다.
“글쎄다.”
희망이라면 그거 하나뿐이었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지금 그들을 구하러 오는 건 오히려 좋지 못했다.
차라리 본부에 알리는 편이 더 나았다.
갑자기 서 경무관이 최 경정에게 사과의 말을 건넸다.
“미안하다. 그래도 난 장가는 갔는데.”
“미안하다는 말 원래 안 하잖아요! 하지 마요!”
순간 불안감을 느낀 최 경정이 외쳤지만, 그보다 빨리 서 경무관이 먼저 내달려 가며 외쳤다.
“항복! 항보오오옥!”
서 경무관이 항복이라고 사방에 떠드는 순간 최 경정의 입에서 솔직한 외침이 튀어나왔다.
“염병할 새끼!”
대충 왜 미안하다 했는지 눈치를 챘던 것이다.
“이거야 원.”
한쪽에서 몸을 숨기며 여차하면 튀어나가려 하던 천유화는 항복이라 외치는 서준모와 최후배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대충 그들의 선택을 알 것 같았다. 지금 그가 해야 할 일은 본부에 알리는 것이었다.
* * *
“누구?”
“서준모 경위, 아니 경무관이랑 최후배 경정입니다.”
“이름은 들어봤는데 듣던 것보다는 출세했군.”
오기원 대원길드장은 밤사이에 기어들어온 불청객의 정체를 듣고 미간을 찌푸렸다.
“분명 사람을 붙였을 텐데.”
“죄송합니다.”
그들이 이쪽 지역에 나타났을 때부터 이미 사람을 붙여 놨었다.
굳이 안 붙여도 이 지역 자체가 그의 것이나 마찬가지였기에 사방에서 알려왔다.
최소한 이 지역은 그게 익숙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으니까.
“양강서에 협조자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쯧.”
세뇌도 한계가 있었다.
보는 사람마다 모두 할 수 있었다면 아마 세계정복도 했을 것이다.
그 한계점 아래에서 일을 진행하다 보니 이런 상황도 발생하는 것이었다.
“굳이 살려둘 필요 있나?”
오기원의 말에 길드 참모가 신중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일개 경찰 나부랭이면 모를까…… 게다가 직위도 낮지가 않습니다.”
“현장을 돌아다니던 형사들에게 어이없는 고위직 감투를 씌운 이유가 있단 건가.”
기원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이쪽 지역에서 잡혔다지만, 그들이 여기에 있었음을 저쪽서 모를 리가 없었다.
심지어 그 과정에서 조명탄이 사용되는 등 요란하지 않았는가.
클래식하게 조용히 바다에 던지던 산에 묻던 하는 처리 방안은 어렵다는 의미였다.
“마물 먹잇감이 되었다고 하면 되지 않나?”
“그게 알고 보니 슈퍼솔저 프로젝트 대상 인원들이라…….”
“반쪽짜리 군주의 은총을 받았다는 거군.”
대외적으로 알려진 슈퍼솔저 프로젝트.
물론 그 내용을 그도 알고 있었다. 그 효과는 더더욱 말이다.
자신과 길드원들도 모시는 군주는 다르지만, 군주의 은총을 받았으니 말이다.
“일단 가둬두지.”
“벌써부터 연락이 오고 있습니다만.”
“음. 일단 이쪽에게 독립적인 작전권이 있다며 시간을 끄는 걸로 하지.”
기원의 결정에 길드 참모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기원이 다시 입을 열었다.
“어차피 준비는 이미 다 끝났으니까. 더 시간 끌 필요도 없지. 그때는 우린 누구의 명령도 들을 이유가 없으니까.”
그의 말에 길드참모의 눈동자가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드디어 오시는 겁니까?”
“그래.”
기원이 미소를 머금으며 말을 이었다.
“원래 역사적으로 나라 팔아먹은 놈들이 잘못되는 경우는 없는 법이야.”
기원의 입가가 긴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 * *
“하아.”
양강도 강력반 유지헌 경감은 한숨을 내쉬며 철창을 바라보았다.
“오공시대랑 김씨 삼부자 세습 지난 지가 언젠데, 이게 무슨 개똥같은 경우냐.”
지금 그는 양강도 서 내의 철창에 갇혀있는 신세였다.
“그러게 왜 튀십니까.”
그의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밖에 있던 구 형사가 느물거리며 말을 걸어왔다.
“미란다 원칙은 어따 팔아먹었냐? 그거 안 읊으면 불법인 거 몰라?”
자신을 가둔 이였기에 유지헌 경감의 입에서는 좋은 말투가 나올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의 경고에도 철창 밖의 구 형사는 쫄리기는커녕 느물거리며 말을 이었다.
“푸흐흐. 했다고 하면 되지. 그리고 유 반장님 거기서 몸성히 나올 거 같소?”
“너 나가면 확실하게 조져준다.”
“그러시던가.”
“위에서 이걸 모를 거 같아?”
“나야 명령에 따른 게 전분데? 뭣하면 이거 때려 치지 뭐. 대원 그룹에 재취업이라도 할까나. 거기 보안팀 연봉이 꽤 좋다던데.”
“……빌어먹을.”
유지헌 경감이 힘없는 욕설을 뱉으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서준모가 도착했을 때 미친 것처럼 돌아가는 이쪽 지역의 상황이 제대로 밝혀지리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상황은 오히려 최악으로 변해 버렸다.
“대체 거긴 왜 기어들어간 거야.”
이젠 원망마저 되었다.
양강도에서 대원길드가 담당한 지역에서만큼은 독자적 군사행위까지 가능한 특수구역이었다.
그곳에서 잡혔으니 뭔가 일이 틀어져도 크게 틀어졌다고 봐야 했다.
그때 위쪽에서 우당탕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연스럽게 그의 고개가 돌아갔다.
“응?”
조금 전 그와 말을 섞던 구 형사가 창백한 얼굴로 다가와 철창 문을 열었다.
“뭐하냐?”
“이, 일단 나오십쇼.”
문이 열렸지만 그는 미간을 찌푸린 채 앉아 있을 뿐이었다.
“얼른요!”
다시 재촉하는 사이 낯설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까지. 거기 철창 안에 유 경감입니까?”
“누굽니까?”
“김창진입니다. 국정원에서 나온 수사관이라 보시면 됩니다.”
“아!”
국정원이라는 말에 유지헌이 탄성을 터트렸다.
생각보다 빨리 움직였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때 문득 철창문을 잡고 어쩔 줄 모르는 구 형사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아까 뭐랬냐?”
“예?”
아까와 달리 공손한 음성의 구 형사가 당황한 얼굴을 했다.
“내가 여기서 나가면 확실히 조져 준다고 했지?”
순간 구 형사가 한쪽을 가리키며 외쳤다.
“저, 저거! 저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