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6화 침투
밤 마실 준비를 하던 최 경정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거 함정은 아닐까요?”
그의 질문에 서 경무관이 잠시 멈칫했다. 그 생각을 아예 안 해 본 것은 아니었다.
그동안 대체 왜 강림자인 정중부가 이렇게 다가올까 하는 고민을 했었다.
하지만, 답은 없었다.
“오기원의 신상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는 거 아니냐고 니가 그랬잖아.”
“그야, 그렇긴 하죠.”
이쪽 지역의 분위기를 살피던 최 경정이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은 있었다.
대원 그룹 쪽의 문제로 인해 오기원의 위치가 불안해졌거나 무슨 위협을 당하고 있는 건 아니냐는 의심.
“그리고 이미 니 입으로 말했잖아. 저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우리가 이런 의심을 할 게 뻔한데 대놓고 함정을 파겠느냐고.”
“그야 그렇죠.”
최 경정이 이미 그렇게 이야기를 한 바 있었다. 그리고 이들의 협조자인 양강도 경찰서의 유지헌 경감이 조사한 내용도 이들의 판단에 꽤나 큰 역할을 했다.
‘겉도는 느낌입니다.’
소환자의 뒤를 따라다니는 강림자의 습성 덕에게임의 소환 펫 취급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정중부는 홀로 발견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이걸 유지헌 경감이 일부러 확인한 것은 아니었다.
이 지역에 가끔 놀러 오는 관광객들의 인증사진에 종종 찍히기도 할 정도로 현지에선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물론 이곳에선 그걸 두고 겉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순찰을 도는 도시의 수호자 취급을 받았다.
“그리고 뭐 함정이면 어때.”
서 경정은 슬쩍 천유화를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을 받은 유화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걱정 마. 다만 직접 해결 못하고 내 도움을 받을 일이 있으면 돌아가서 대장군과 은혜로운 시간을 더 보낼 수 있을 거야.”
유화의 말은 한마디로 살려는 줄게 였다.
“끄응. 어쨌든 가자.”
서 경무관이 고개를 끄덕이자 최 경정이 일어서서 천유화를 바라보았다.
그가 양팔을 벌렸다. 마치 안기라는 듯. 그걸 본 최 경정이 멈칫 하며 물었다.
“이 방법밖에 없을까요?”
“이 빌어먹을 후손들아, 나도 싫어!”
어둑한 밤. 두 사내는 천유화에게 매달려 건물 외벽을 이리저리 타고 움직였다.
* * *
“빌어먹을 북쪽이라 그런가? 더 추운 거 같은데.”
경비를 서던 사내가 구시렁거렸다. 그러자 함께 있던 이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원래 경계근무는 다 추워. 군대든 군대가 아니든.”
“인정. 그런데 꼭 이렇게 날밤을 까야 합니까? CCTV라든지 적외선 카메라라든지 뭐 그런 거 있잖습니까.”
“여기 전자기기 안 되는 거 알잖아.”
“여기도 말입니까? 저번 달에는 멀쩡했잖습니까.”
“안 된 지 벌써 보름이 넘어.”
“침식지 같진 않은데.”
그는 주변 땅을 둘러 보았다.
침식지 특유의 짙은 검보랏빛의 땅은 보이지 않았다.
최근 들어 모든 침식지들이 다시 회복 중이라는 뉴스를 본 기억이 있었다.
“아니라고도 하긴 하지.”
“그게 또 그렇게 볼 수도 있나…….”
침식지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런 분위기가 있기는 했다.
실제로 그들이 경계하는 장벽 안쪽에 마물들의 출몰이 잦은 곳이기도 했고 말이다.
정확히는 침식지가 아니라 반침식 지대화 된 곳이다.
이곳이 아닌 중국 쪽에서 손을 쓰지 못했던 침식지의 영역이 넓어지다가 영향을 받아 마물들이 자주 출몰하는 그런 지형이었다.
한국이나 일부 국가들처럼 대침식을 제대로 이겨 내어 침식지를 최소화 한 경우를 제외하면 흔한 상황이기도 했다.
“어서 이동이나 하자고.”
그렇게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던 이들이 걸음을 옮겨 지나갔다.
그들이 멀어지고 나서야 한쪽 수풀이 들썩였다.
“아우 쫄려.”
“쉿!”
“알았다.”
“제발 입 좀!”
“니 목소리가 더 커.”
서준모 경무관과 최후배 경정이 아웅다웅하며 장벽으로 접근했다.
“이거 전기 통하는 거 아니지?”
“그런 거 없다던데요.”
“누가?”
“창진이가요. 그쪽 관련 정보 얻어 줬거든요.”
김창진의 정보라는 말에도 서 경무관은 마뜩찮은 표정으로 반문했다.
“대원 길드 애들이 따로 설치했으면?”
“군사 시설 함부로 개변형 못 시키게 법으로 되 있잖아요.”
“이 새끼들이 법대로 사는 놈들이냐?”
“그건…… 그래도 그건 안 보이게 안 지키는 거고. 이건 덩어리가 크잖아요. 게다가 왜 법을 안 지키겠습니까. 돈 때문인데 여기에 돈을 들인다고요?”
최 경정의 설명에 서 경무관이 입을 동그랗게 말며 감탄을 터트렸다.
“오…… 설득력 쩔었어.”
그렇게 둘은 위를 올려다보더니 뭔가를 획하고 던졌다.
툭.
뭔가 부딪히는 소리가 작게 울렸다.
하지만 밤이라서 그런지 둘에게는 마치 천둥소리처럼 느껴졌다.
“고무를 덧대었는데도 소리가 크네.”
“당겨 봐요.”
서 경무관은 줄을 잡아당겨 봤다. 그러자 팽팽해지는가 싶더니 줄이 갑자기 느슨해졌다.
툭.
갈고리가 걸리지 않았는지 도로 끌려 내려온 것이다.
“염병.”
영화는 영화였다.
“다시 던져 볼까요?”
“내가 니들을 던지는 게 낫겠다.”
“헉! 깜짝이야!”
둘은 순간 철렁한 표정으로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천유화가 있었다.
“가능할까요? 한 오 미터는 되어 보이는데.”
“글쎄. 사람을 던져 본 적은 없어서. 대장군이나 우리 폐하라면 충분히 하시겠네. 아니 대무덕 같은 양반들도 할 수 있으려나?”
“강림자가 아닌데도요?”
“응.”
강림자의 능력은 생전의 것과 다르다.
만약 같았다면 강림자가 어찌 수 미터를 넘어가는 마물들과 맞짱을 뜰 수 있겠는가.
영혼의 크기니 뭐니 그런 소릴 하긴 하지만, 어찌 되었든 생전의 힘을 넘는 것이 정설이었다.
그런데 천유화의 말을 들으니 이건 괴물이 따로 없었다.
“이삼 미터만 되도 넘어 보겠는데.”
천유화의 말에 서 경무관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나름 마계 군주인 을지부루의 은총을 받아 신체적 능력이 비약적으로 늘기는 했지만, 그래도 인간이 괴물이 되는 정도는 아니었다.
제법 훈련된 사람이라면 이삼 미터는 가능한 높이겠지만 말이다.
“쯧. 그러게 애정 좀 더 받으라니까.”
천유화의 소름끼치는 조언에 서 경무관이 몸을 떨며 항변했다.
“약발 받을 만큼 받았다잖습니까. 거 뭐냐 영혼의 격인지 뭔지를 더 쌓아야 가능한 일이고.”
“이게 뭐라고. 어쨌든 내가 니들 던져 보…….”
“아니 그냥 올라가시면 되잖아요.”
“응?”
최 경정의 말에 천유화와 서 경무관이 그를 바라보았다.
최 경정은 그런 둘을 향해 방금 던졌다가 실패한 갈고리의 밧줄을 들어 보였다.
“아!”
잠시 후, 먼저 올라가 줄을 잡아 준 천유화 덕에 둘은 반대편으로 내려올 수 있었다.
“난 여기 있으마.”
“기왕이면 짱 좀 봐 주십쇼!”
“짱?”
“그 뭐냐, 경계 좀 해달란 겁니다.”
“오냐.”
그들은 그렇게 천유화를 남겨두고 안쪽으로 향했다.
산비탈 쪽이어서인지 꽤나 우거져 있었다.
“이거 좀 꼬롬한데.”
먼저 앞서던 서 경무관이 미간을 찌푸리고 중얼거렸다.
“그러게요.”
뭔가 좀 침식지까지는 아니지만 그 기분이 드는 분위기였다.
그때 서 경무관이 인상을 찌푸렸다.
“이거 뭔 냄새가…….”
그런데 등성이를 넘으면서 불쾌한 냄새가 코를 찌르기 시작했다. 마치 오래된 고기를 방치했을 때 나는 냄새처럼 비릿했다.
그때 구시렁거리던 서 경무관이 멈칫했다.
“아, 씨파. 놀랐네.”
“뭐 좀 보이십…… 깜짝이야.”
서 경무관에 이어 따라 오던 최 경정도 마찬가지로 놀라 멈추었다.
“이거 색깔이 왜 이럽니까.”
“짙어 보이지?”
밤이라도 달빛이 좀 있는 편이라 덕분에 시야가 아예 제로는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너른 땅 색깔이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침식진가요?”
“몰라. 가 보자.”
“예.”
밤이라서 땅의 색이 검게 보인다는 것을 빼면 구분하기 어려웠던 둘은 빠르게 이동해 나갔다.
서준모 경무관이 장갑을 벗어 맨손으로 흙을 만졌다.
이어서 그걸 집어 코에 가져갔다.
동시에 그는 입술을 꽉 다물었다.
“우웁!”
“그걸 왜 맡으십니까. 딱 봐도 여기서 나는 냄샌데.”
“우우웁!”
“하지 마십쇼! 오욱!”
서 경무관이 구역질을 연이어 하려 하자 최후배 경정이 그에게 타박을 하다가 전염이라도 된 듯 함께 구역질을 했다.
그렇게 둘이 마치 옛날 코미디 배우들처럼 필사적으로 위장을 달랜 뒤에야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이거 피 같죠?”
“그래. 무언지는 모르겠지만, 흙에 피를 적신 거 같다.”
“그때 연구원들이 마족 마법사들의 의견을 들어 설명해 준 그런 거 아닌가요?”
마물의 피를 이용해 일종의 사전작업을 하고 있다는 설명. 그래서 전세계적으로 하급 마물을 쏟아 붓고 있다는 것이 떠오른 것이다.
“그런 거 같긴 한데. 저건 뭐냐.”
“예?”
서 경무관이 가리킨 방향에 뭔가가 어스름하게 보였다.
산등성이 끝나는 지점에 넓게 펼쳐진 무언가가 보였다.
“그림?”
피에 젖은 땅위에 무언가 그림이 그려진 느낌이었다. 물론 단순하게 그림이라고 하기에는 그 규모가 남달랐다.
“꼭 나스카 같은데요.”
“그거? 공중 그림인가 뭔가.”
“그 정도로 크진 않지만. 오히려 거 미스터리 서클인지 뭔지 하는 거 비슷하기도 하지 않아요?”
“그렇긴 하네.”
둘은 다시 멍하니 그림을 살폈다. 뭔가 알 수 없는 문양이 연달아 이어지고 있었다.
그것을 살피던 최 경정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가 봐야 알겠죠?”
“쯧.”
그의 말에 서 경무관이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듯 혀를 한 번 차 더니 걸음을 옮겨 갔다.
다른 색으로 표현된 곳까지 도달한 두 사람은 허탈한 모습으로 멈추어 서 있었다.
두구 두구 두구 두구.
마치 작은 북소리처럼 들려오는 소음에 할 말을 잃고 서서 바라만 보던 서준모 경무관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어떻게 내 인생이 경찰 로드 무비에서 판타지 호러무비로 바뀌었냐.”
“비유가 참 찰떡 같긴 하네요.”
그렇게 둘은 멀리서 보았던 문양을 이루는 물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거 뛰는 거 맞지?”
“예. 일단은 그래 보입니다. 이런 마물이 있었나요?”
“모르지.”
물론 마물이라면 이들이 이렇게 코 앞에 두고 태연하게 농담을 던지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딱 봐도 심장 비스무리 한데.”
“그렇죠? 크기는 제각각인데 생김새가 완벽하게 비슷하지는 않아도 왠지 성능은 유사해 보이는 게 말입니다.”
“염병할, 이게 다 몇 개야?”
최 경정의 대답에 서 경무관이 사방을 둘러보았다.
멀리서 본 그림 같은 것을 이루고 있는 것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알 수 없는 것의 적출된 장기였다.
그리고 그것들은 모두 심창처럼 박동하고 있었다.
심지어 소리까지 내며 말이다.
“여기 땅에 적셔진 피가 여기서 나온 거 같네요.”
잠시 코를 잡고 쪼그리고 앉은 최 경정의 말에 서 경무관도 인상을 찌푸리며 쪼그리고 앉았다.
“그러게.”
자세히 보니 더 징그러워 보이는 장기에서는 진득한 액체가 조금씩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영락없는 혈액 같았다.
“이거 하나 가져갑니까? 증거로요?”
“아서라. 티 나잖냐. 일단 빠져나가자. 일단 카메라로 좀 찍고.”
그들은 가지고 온 필름 카메라로 주변을 찍었다.
고화소 필름이지만 아무래도 어둠이 짙기에 신중하게 찍고도 찍었다.
그때였다.
“쥐새끼들이 있었네.”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였지만 선명한 사람의 말소리였다. 그러자 서 경무관이 경직된 얼굴로 중얼거렸다.
“심장이 말도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