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5화 고전적인 메일 발송법
* * *
매마른 대지란 말에 딱 어울리는 땅위를 밟고 있던 대원길드장 오기원에게 길드원 하나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방금 보내왔습니다.”
“그래?”
기원은 길드원이 내미는 태블릿을 들고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요즘 하루가 머다 하고 날아오는 자료들 중 하나였다.
“이걸 발견했다고?”
그의 눈이 꿈틀거렸다.
인공위성이 있기에 기존의 탑과 같은 형태는 금방 발견이 될 것이라는 그의 조언에 따라 그의 군주인 마켈그로이언도 그에 맞게 준비를 했다.
역탑.
흔한 것은 아니다.
굳이 그런 형태를 만들 이유가 없으니까.
그런 역탑을 만들고 그 위에 위장까지 했다.
물론 자세히 살핀다면 티가 날 법도 하지만, 아무리 인공위성의 성능이 좋다 한들 전 세계를 뒤져보는 상황에서 빠르게 드러나지는 않을 것이라 판단했다.
실제로 공중에서 파악을 할 수 없게 약간의 마법적인 조치까지 했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게 발견이 되었다는 것이다.
마지막 탑이 말이다.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일본 자위대가 목숨 걸고 탐색을 했다고 생각해야 하나.”
그렇게 중얼거리던 그에게 태블릿을 가지고 온 길드원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효도관광간 이들이 발견했다고 합니다.”
“효도관광? 농담이지?”
“아, 죄송합니다. 효도관광은 은업니다. 실제로는 마물 밀렵꾼들을 말하는 겁니다.”
“아아. 요즘 돈 좀 만져보겠다고 군인출신 노인네들이 밀렵을 나선다는 이야기는 들은 것 같은데…….”
사회적 문제로 기사화가 되었었고, 그것을 들은 기억이 있었다.
그걸 그렇게 기억에 담아놓지는 않았을 뿐이다.
그런 것들까지 신경을 쓸 이유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흐음. 노인네들이 운이 좋은가 봐?”
“실제 효도관광에 투입되는 이들의 경험치가 상당히 높다고 합니다. 인명 피해도 거의 드물 정도라고 하고…….”
“드물겠지. 그 지역 역탑을 만들기 위해 마물의 신체능력 등이 꽤나 많이 줄어든 상황이었으니까.”
마물의 피와 에너지를 이용해 만드는 것이 탑이다. 당연히 인근의 마물들은 약해지기 마련이었다.
“그럼에도 일단 이걸 발견해냈으니 운이 좋다고 생각해야겠군.”
그렇게 중얼거린 기원이 화면을 밀어 남은 뒷 페이지들을 확인하고 있었다.
“큭.”
그때 기원의 입가가 살짝 비틀렸다.
즉시 보고할 사안이라는 말로 시작된 내용 때문이었다.
“주변의 대지가 마치 침식이 거두어진 땅처럼 옅은 보랏빛을 띄울 가능성이 크고…….”
그렇게 말을 하며 주변에 반쯤 마른 풀들을 바라보았다.
보랏빛과는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그 풀들의 하단부를 보면 확실한 보라색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주변에는 길드원들이 바닥에 마치 살충제를 뿌리듯 녹색의 물감을 사방에 뿌리고 있었다.
그러자 은은한 보랏빛을 띠던 수풀들이 제 색을 되찾고 있었다.
“바위나 암반등의 밀도 약해져 쉬이 부서지고.”
그렇게 중얼거리며 옆의 애 머리통만 한 바위를 발로 툭 걷어찼다.
그리 큰 힘을 주고 찬 것이 아님에도 바위가 대여섯조각이 되어 굴렀다.
“지진계가 작동하지는 않지만 미미한 지진이 느껴질 수 있다.”
그렇게 다시 태블릿을 읽은 기원의 발밑에서는 마치 태블릿에 적힌 내용들을 인증이라도 하듯 진동이 느껴져 왔다.
“배반자들이 최선을 다해서 정보를 알려주고 있나 보군.”
기원이 한쪽 입가를 끌어올렸다. 태블릿에 적힌 위치는 누가 봐도 이곳이 맞았다.
세뇌를 마친 길드원들을 동원해서 주변에 물감을 뿌려가며 증거가 될 만한 지형들을 없애 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대원길드가 이쪽 지역을 맡았기에 가능했던 일이기도 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이 지역은 중국과의 국경지역 이었다.
아무리 중국과 북한이 동맹이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일국의 국경이었다.
꽤 많은 시선과 전력이 모여 있었던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그건 대침식 이전에나 통할 만한 말이었다.
지금은 전혀 달랐다.
마물과 마족이라는 공공의 적이 생긴 지금 같은 인간 나아가 국가들은 서로 적대시 하기에 무리가 있었다.
집안싸움을 할 시간이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실제로 아프리카 대륙이 속절없이 무너진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마물이라는 공공의 적이 있음에도 함께 싸워가는 것 대신에 자신의 손에 쥐여질 권력을 더 중요시 하여 서로 싸웠던 곳.
그 덕에 가장 먼저 인류의 손에서 떨어져 나간 지역이 되었다.
소환자가 왕인 곳이기도 했다.
그 덕에 국경은 차단의 상징이 아니었다.
인간이 세운 국가 자체가 살아남기 위해 버둥거리는 상황에서 국경까지 에너지를 쏟는 행위는 없었다.
아프리카를 제외하고 말이다.
“그 덕에 내가 이렇게 차근 차근 농부의 마음으로 이곳에 서 있는 것이지.”
기원의 입 꼬리가 기어 올라갔다. 이곳이 태블릿이 명확하게 언급한 곳이다.
절묘하게 국경을 걸치고 있기에 가능한 상황이었다.
거기에 대원길드가 이곳에 자리를 잡은 이후 대한민국 쪽은 감시의 눈을 지우지 않았지만, 중국 쪽은 아예 손을 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 지역에 대원길드가 있으니 안심을 하고, 그나마 있던 소환자를 비롯한 강림자와 군부대들을 모두 불러들였던 것이다.
그 덕에 중국 쪽 국경은 텅 비어져 있을 정도였다.
“뭐 제법 빠르게 파악해 내고 있지만, 그것도 이제 끝이야.”
그 말을 뱉으며 기원이 발 끝으로 땅을 긁었다.
황토빛을 띠는 흙더미가 갈라졌다. 그리고 그 사이로 보랏빛이 감도는 토양이 수줍게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렇게 드러났던 땅을 다시 발로 슬슬 내저어 황토빛으로 위장을 시킨 뒤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서울에서 파견 나온 이들의 회유는?”
“시도를 못했습니다.”
“왜? 돈이 싫대?”
“이전에 확인한 바로는 돈으로 회유될 만한 이들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그럼 무엇을 하고 다니는지는 계속 체크 중인가? 아직도 놀러 다니는 중?”
기원의 질문에 길드원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을 이었다.
“예. 마치 의도적인지는 모르지만, 말 그대로 처음 와서 며칠만 수사하는 척을 하더니 이제는 대놓고 관광객 시늉을 하고 다니고 있습니다.”
“진짜 관광을 왔을 이유는?”
기원의 질문에 길드원이 고개를 내저으며 대답했다.
“그게 파악이 안 되긴 합니다.”
“일단 계속 주시 해 봐. 이쪽이 노출되는 것은 막아야 하니까. 근처로 오지 못하게 하고. 이유는 많으니까.”
“만약 그래도 밀고 들어오면 어떻게 합니까?”
“이곳은 우리 구역이야. 치안 역시 우리 의무고 말이지.”
기원의 말에 길드원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 * *
“빌어먹을 이젠 시간이 더 없다는 이야기네.”
숙소에서 태블릿의 내용을 살펴보던 서준모 경무관이 복잡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여기서 이럴 시간 없는 거 아닙니까?”
마족의 침공이 눈앞에 다가와서인지 둘의 마음이 약간 조급했다.
그때 무언가가 그들이 있는 창문으로 날아들어왔다.
“피해!”
서 경무관이 외치는 소리보다도 먼저 최후배 경정이 몸을 날렸다.
하지만 다행히 처음부터 그들이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 하듯 그들이 있던 곳과는 거리가 먼 곳으로 화살 하나가 박혀 들었다.
“뭐지?”
최 경정이 화살로 다가가는 한편 서 경무관은 화살이 날아 들어온 창밖을 바라보았다.
“…….”
위장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곳을 똑바로 응시하는 이가 있었다.
“또…….”
느낌이라는 것이 있다.
얼굴을 알아볼 수 없기는 했지만, 느낌상 오기원의 강림자인 정중부 같았다.
“이거 좀 보셔야겠는데요.”
최 경정의 말에 서 경무관은 창밖으로 향했던 시선을 그에게로 향했다.
이미 정중부로 보이던 이는 모습을 감췄기에 미련 없이 할 수 있던 행동이었다.
“고전적이네.”
“예.”
고전적이라 말한 이유는 방금 최 경정이 보라고 한 것 때문이었다.
“요즘 세상에 화살에 쪽지를 매달아 쏘다니…….”
“사극 버전 메일 발송인가 보죠.”
최 경정의 말에 서 경무관이 피식 웃으며 화살대에서 풀어낸 쪽지를 받아 들었다.
“지도?”
지도였다.
보자마자 서 경무관이 내뱉은 말처럼 그 쪽지는 어딘가를 표시해 놓은 지도였다.
그것도 손으로 그려서 제작한 지도였다.
“이런 지도는 옛날 사극배경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것인데 말이야.”
“보물 지도 같은 걸까요?”
최 경정의 말에 서 경무관이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레알 투르로다가 한 말이냐?”
“설마요.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죠.”
“그럼 다행이고.”
둘은 미간을 찌푸리고 지도를 살폈다. 그때 최 경정은 인근 지도를 스마트폰으로 검색해 대조해 보고 있었다.
산 표시가 있고 다행히 현대식 건물 명칭이 지도에 있으니 대조해 보면 어디인지 알 것 같았다.
“뭔가 소환자에게 반하는 행동을 못 하게 되어 있지?”
“강림자 말입니까? 뭐, 그렇긴 합니다. 영웅급은 좀 낫겠지만 말입니다.”
“그래. 부루 양반이나 그 일당들이야 규격 외니까 뺀다면 이 법칙을 벗어나지는 않지.”
서 경무관이 지도를 살피며 미간을 모았다.
무언가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날려 보낸 것 같기는 했지만, 실제 표시된 지역에 관해서는 아무런 설명조차 없었다.
최 경정의 의견대로라면 뭔가 소환자의 뜻에 반하는 최대한의 행동이 담긴 것일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반대로 소환자가 시키는 대로 한 것일 수도 있고 말이다.
“얼추 이쪽 지역인 것 같기는 한데 말입니다.”
그때 최 경정이 대조가 끝났는지 항공뷰 사진을 옆에 보여주었다.
“그렇네. 비슷한거 같네.”
“그런데 여기는 작전 지역 아닙니까?”
“따지면 이쪽 동네가 다 대원 길드 작전지역이고.”
“어쩌죠?”
최 경정의 질문에 서 경무관이 입맛을 다시며 입을 열었다.
“어쩌긴. 보면 알겠지.”
“언제 말입니까?”
“일단 낮에는 미친 듯이 놀고 나서 밤에?”
밤이라는 말에 최 경정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잠은 다 잤네.”
“자, 술판이나 벌이는 거 보여 주자고 따라다니느라 고생인 애들 많아 보이던데.”
“알겠습니다. 사방 탁 트이고 뭔 짓을 하는지 쉽게 알아볼 만한 것으로 수배하겠습니다.”
“술은 먹는 척하고 버려도, 안주는 충분히 먹어야 하니까 기왕이면 맛집으로다가.”
서 경무관의 말에 최 경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 * *
서준모 경무관과 최후배 경정이 신이 난 듯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흔히 말하는 70-80 카라오케였다.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아 드문드문 앉아들 있었다. 그만큼 그들의 행동은 눈에 크게 띄었다.
그리고 둘은 비틀거리며 호텔로 사라져 갔다.
그들을 지켜보는 시선도 하나 둘씩 줄어 들었다.
그때 그들을 지켜보는 또다른 눈이 있었다.
“오늘도 세놈이 한데 모여 이쪽을 바라보고 있던데?”
천유화의 말에 서 경무관과 최 경정은 까만 침투복으로 갈아입으며 질문을 했다.
“후문쪽은요?”
“뭐 언제나 그렇듯 같은 놈이고.”
천유화의 말에 서 경무관이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