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3화 역탑의 발견 그리고 꺽정과 친구들
참모진의 부름에 한달음에 달려 간 차준우 사령관의 얼굴이 굳어졌다.
중장비가 가동을 멈추고 서 있었고 그 가운데에는 묻혀있던 마물의 사체들이 파내지다 말아 있었다.
“이거?”
“아프리카에서 발견된 시체탑과 같습니다.”
“후우.”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아프리카?”
그때 뒤따라온 김판석이 의문을 표했다.
마물사체가 집단을 이루어 발견이 되는 상황을 보고하라는 말은 있었지만, 그게 어떤 연관이 있는지 명확하게는 알려지지 않았다.
굳이 알리지 않은 사실일 뿐이지만 말이다.
“아프리카에도 이런 사체들로 구성된 탑이 있습니다.”
“거기 얼마 전에 복구를 시작한다고 떠들썩 하지 않았습니까?
생존을 알리다 뭐 이런 기사들이 한창 나왔었는데.”
“대통령께서 발언한 위험의 징조 중 하납니다.”
“그거 기밀 아닙니까?”
판석이 조심스럽게 차 사령관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와는 마물들과 함께 싸웠던 전우였고, 또 이번 발견의 지분을 가지긴 했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그는 민간인이다.
민간인에게 이런 군사적 기밀을 알려줘도 되는가 하는 마음에서 던진 질문이었다.
“대통령도 다 까는 세상에 기밀이랄게 뭐 있겠습니까. 그랬다면 효도관광 가는 분들께 특정 지형이나 상황을 발견해 달라고 전달조차 안 했겠지요.”
“그야 뭐…….”
효도관광은 그야말로 공인된 마물밀렵이었다.
단속은 하지만, 그건 무자격 어중떠중이들을 걸러내기 위함이었다.
특히 대한민국 인구 절반이 군사훈련을 받았고 대침식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실전을 겪은 탓에 과도한 자신감을 가진 이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런 간덩이큰 무자격자를 걸러내기 위해 단속 운운했던 것이다.
실제로는 국가 총력전이기에 눈감아 줄 수밖에 없었다.
유리한 건 또 있었다.
국가가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었다. 거기에 민간인들이기에 국가간 문제에도 책임회피가 쉬웠다.
그래서 알면서도 최소한의 조치를 했던 것이다.
오히려 이들을 통해 일종의 탐색의 임무도 맡긴 거나 다름 없었던 것이다.
“어차피 비밀로 삼을 건 아니었습니다. 굳이 알릴 필요도 없었으니까요. 사실 좀 종교적인 종말론 같은 소란이 일기 좋은 소스잖습니까.”
차 사령관의 말에 판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저 검보랏빛이 관계가 있는 겁니까? 우리가 발견 했을 땐 저런 빛이 없었는데. 꼭 침식지 현상 비슷하네.”
존대와 반대가 어색하게 섞인 어투였지만, 차 사령관은 딱히 개의치 않았다.
짬만 따지면 판석이 차 사령관보다는 더 높았으니까.
다만 사관과 부사관의 직위 차이가 있기에 나타나는 대화 형태일 뿐이다.
“아프리카 쪽은 이미 이 빛으로 전부 뒤덮여 있었던 상황이었고 여긴 진행 도중에 발견이 된 것이 차이라면 차입니다.”
“그 차이가 뭡니까?”
“저거 같습니다.”
판석의 질문에 차 사령관이 손가락으로 한쪽 중장비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포크레인 기사로 보이는 공병인 듯한 자위대원이 포크레인의 삽날 부분을 보며 망연자실해 있었다.
“허?”
마치 삽날로 강한 암반을 억지로 파려다가 안쪽으로 휘어져 버린 듯한 모습이었다.
심지어 포크레인의 크레인 부분에서도 연기가 났다.
“웃차!”
그때 판선이 구덩이 안쪽으로 뛰어들었다.
그의 손에는 어느새 야전삽이 들려 있었다.
몇몇 군인들이 그걸 보고 반사적으로 제지하려 했지만 차 사령관이 손짓으로 그들의 행동을 막았다.
“허?”
바닥에 내려선 판석이 혀를 내둘렀다.
발밑에서 전해져오는 느낌부터가 달랐던 것이다.
발을 구르자 마치 콘크리트 바닥을 디디는 듯한 반탄력이 느껴졌다.
이어서 손에 들린 야전삽을 살짝 휘둘렀다.
“그건 위험…….”
그 광경을 보던 연구원 하나가 경고의 의미로 목소리를 내었지만 판석의 야전삽이 한발 빨랐다.
까아아앙!
“이야, 힘을 뺐는데도 그러네?”
“어떻습니까?”
판석이 야전삽을 쥔 손에서 느껴지는 반탄력을 느끼며 혀를 내둘렀다.
그는 자신에게 상태를 묻는 차 사령관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반탄력이 큽니다. 저거 저렇게 된 게 이해가 됩니다.”
옛날 대침식때도 그랬다.
이런 빛깔을 보이는 것들의 공통점은 반탄력이 크다는 것이었다.
“이전과 비교하면 어떤 듯 합니까?”
“뭐 봐야 알겠지만, 비교하기 힘들군요. 이거 어마어마 합니다. 내가 온힘을 다해 내려치면 바로 관짝으로 실려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뼈마디가 다 작살 날 거 같은데요?”
“아마 규모에 따라 정해지는 듯합니다.”
“하긴 예전에도 큰 놈들은 그만큼 더했죠.”
차 사령관의 답변에 판석은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판석이 한숨을 푹 내쉬며 물었다.
“이게 진행중이라면 뭐 좀 막을 순 있겠습니까?”
판석이 조심스럽게 던진 질문에 차 사령관이 머리를 긁으며 대답했다.
“일단은 이게 얼마나 깊이 만들어진 것인지 확인을 해봐야겠습니다.”
“쯧. 용돈벌이는 다 한 기분인데…….”
판석은 다시 자신의 발밑을 바라보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아래로 얼마나 더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불길한 기분은 항상 틀리지 않았다.
그래서 더 가슴이 답답해져왔다.
“자식놈들한테 항상 조심하라고 해야겠구먼.”
그게 그에게는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일 뿐이었다.
* * *
발견된 지역을 살피던 마족 마법사들이 어두운 기색으로 모여 들었다.
“점점 전자 장비를 쓸 수 없는 지역이 늘어나는 것을 보니 이미 상황이 끝난 것 같기는 하던데.”
구은태 박사도 이미 짐작을 한 듯 먼저 말을 꺼내었다.
헤게루이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탑을 역으로 쌓을 줄은 몰랐습니다.
“그럼 아래로 탑을 쌓았던 건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거라면 왜 아프리카 쪽에는…….”
-탑의 형태는 효율적으로 힘을 집중시키기 좋으니까 이렇게 선택하는 겁니다. 그 방향은 사실 중요하진 않지만 대신 이렇게 하려면 아무래도 좀 귀찮겠지요.
“땅도 파고 해야 하니.”
-문제는 우리도 이것을 예상 못 했다는 겁니다.
헤게루이안의 말에 구은태 박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리에게 발견이 되었으니 은밀하게 준비하기 위해서 이리 한 것 같은데. 이게 문제가 되는 건가?”
그의 질문에 헤게루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 기억으로는 이렇게 위장을 해 가면서 조심스럽게 접근한 적은 없었으니까요.
“이게 놀랄 일이오?”
구 박사가 다시 묻자, 헤게루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대에서 손꼽힐 정도로 강한 군주가 머리까지 쓴다면 당연히 놀랄 일이지요.
그의 말에 구 박사는 왈칵 인상을 찌푸렸다.
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게 달리 생각해 보면 좋지 못한 상황이 맞다는 것을 그도 알아차렸던 것이다.
“차라리 얕봐주면 좋겠거늘.”
자신의 강함에 취해 상대를 얕보는 적이 차라리 났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지금으로 봐서는 이쪽을 꽤나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 말은 이쪽이 노릴 만한 틈이 그리 많지는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래서 이거 완성된 건가?”
중요한 것은 이것이었다.
그러자 헤게루이안이 씁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거의.
“허? 그럼 당장이라도?”
당장이라도 적의 침공이 시작되느냐는 질문과 같았다.
그들의 대화를 곁에서 함께 듣고 있던 각국의 연구원들과 정보 집단에서 나온 이들의 얼굴은 동 시에 일그러져 버렸다.
지금 헤게루이안은 구 박사와 대화를 하고 있었지만, 의미를 전달하는 대화 방식이었기에 별다른 통역 없이도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이 알아듣고 있었던 것이다.
-에너지 집작이 이루어지는 시간이 있긴 하겠지만, 이젠 진짜로 문이 열릴 것입니다.
이것을 막았으면 좋았겠지만, 사실 침식당한 땅이 워낙에 많았기에 이미 예상은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예상을 하면서 막기 위해 발버둥 치던 상황과 이미 그 예상이 맞아 떨어지는 상황은 전혀 달랐다.
피부로 느껴지는 위험도 자체가 달랐던 것이다.
“후우.”
구 박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모르던 상태에서 습격을 당했던 대침식 당시보다는 나름 착실히 대응을 하고 있는 상황이기는 했다.
또 그때에는 없던 을지부루라는 존재가 있었다.
거기에 야수의 무리와 항복한 마족 정예들도 있었다.
이전보다는 나아진 현실이기는 했지만, 반대로 적도 그랬다.
그냥 마물이나 고위 사령관 위치의 마족들이 넘어오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부리는 그 위의 존재가 오는 것이다.
그것도 군주들의 힘을 흡수하며 새롭게 왕의 자리에 오를 이라는 강대한 적이 직접 부리는 군대가 말이다.
* * *
사람들은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광호에게 질문을 던졌다.
“저게 다 뭡니까?”
그들의 질문에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광호가 입을 열었다.
“……군 식구?”
그의 대답에 다들 다시 정면을 바라보았다.
“으하하하!”
임꺽정이 쭈그리고 앉아 사탕을 빨며 대소를 터트리고 있었다. 그게 끝은 아니었다.
“푸흐흐!”
“음화홧!”
다양하고 개성 넘치는 웃음을 흘리는 이들이 그의 주변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수는 약 백여명 정도.
명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일부는 그 형태가 명확하고 일부는 마치 크로마키 촬영을 위해 쫄쫄이를 입은 듯한 푸르른 형태였다.
그때 한 사람이 광호에게 축하 인사를 건냈다.
“이거 드문 경운데 이렇게 빨리 이차소환이 이루어진 것을 축하드립니다.”
“아, 예 감사합니다.”
“와. 한 번에 백여명은 기록인 거 같은데. 여포도 아직 이차 소환은 없었던 거 같은데.”
이차 소환.
강림자와 유대가 강했던 존재들이 끌려오듯 재강림하는 상황을 이차 소환이라 부른다.
물론 이 경우 재강림을 한 존재들은 소환자가 아닌 강림자의 의지와 명을 따른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강림자가 소환자의 의지를 따르므로 별다를 건 없었다.
오히려 이런 상황은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아주 흔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드문 경우도 아니었다.
그러나 꺽정이의 경우 영웅급이라 분류되는 인지도 덕인지 한번에 백에 달하는 인원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물론 그 중에 제대로 된 것은 약 스물 정도.
나머지 팔십여는 불완전 강림 상태다.
불완전 강림상태라는 것은 크로마키 촬영용 쫄쫄이를 입은 것 같은 빛깔을 내는 이들을 의미했다.
물론 불완전 강림이란 것은 이쪽의 용어일 뿐이다.
전투를 할 수 있는 이상 그리 큰 의미는 없었다.
다만 불완전 강림이라 명한 것은 그 형태가 명확하지 않아 쓰는 말이기도 했고, 또 다른 강림자의 경우 소환자가 멀쩡하다면 역소환 되더라도 일정 시간 뒤에 재 소환이 된다.
그러나 불완전 강림의 경우는 그게 되지 않는다.
이런 용어를 쓰긴 뭣 하지만, 즉 죽으면 끝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그래도 시일이 지나며 완전강림으로 이어지는 상황이 많으니 좀 지켜보시죠.”
연구원으로 보이는 이가 하는 말에 광호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 *
연구동을 지키던 군인들 중 하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요즘 판도라 얼굴을 못 보내?”
“그러게.”
“아, 세인 볼 수 있을까 해서 경비 지원했는데.”
몇몇은 아쉬움을 표했다.
이곳에 판도라 멤버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은근히 이곳 근무를 택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 그녀들이 잘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