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2화 효도관광
* * *
다케시는 묘한 얼굴로 한국에서 온 단체 여행객들을 바라보았다.
젊은 축이 오십 대 중후반으로 보였고 다른 이들은 딱 봐도 육십은 넘어 보였다.
뭐, 남자들로만 구성된 것을 보니 대충 음흉한 짓거리라도 하러 왔나 싶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케시. 뭐해? 빨리 움직이지 않고.”
“히로시상. 여긴 위험하잖습니까.”
“알아.”
“접경지는 자위대가…….”
“이미 말해 놨어. 우린 통과만 하면 된다.”
선배인 히로시의 말에 신입인 다케시는 울상을 지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랬다가 마물이라도 튀어나오면 어떡합니까? 저 노인들 데리고 도망도 못 친단 말입니다!”
다케시는 답답한 마음에 히로시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그때 한쪽에서 케리어를 내리던 노인들 중 하나가 픽 하니 웃으며 입을 열었다.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거야?”
“죄송합니다. 김상.”
제법 유창한 일본어가 노인의 입에서 튀어나오자 히로시가 달려가 허리를 숙이며 사과했다.
다케시는 그들 중에 일본어에 능숙한 이가 있을 줄은 몰랐는지 당황해 하고 있었다.
그때 김상이라 불린 노인들이 입을 열었다.
“어여 장비 챙겨! 후딱 치고! 손주들 재롱 보려면 따로 떨어지거나 깊이 들어가지 말고 대열 유지합시다!”
“예!”
그때 노인들이 케리어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조립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다케시가 멍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서바이벌 동호회라도 되는 겁니까?”
“다케시 이리 와 봐.”
“예.”
얼떨떨한 얼굴의 다케시를 잡아끈 히로시가 얼빠진 이 신입에게 오늘의 가이드가 어떤 목적인지 가르쳐 주기 시작했다.
“예에?”
설명을 들은 다케시가 눈을 휘둥그렇게 뜬 채 노인들을 바라보았다.
“그게 말이 됩니까? 자위대도 잘 안 들어가는 곳입니다!”
“걔들은 직장인이고. 요즘에야 좀 나아졌지만.”
마물 사태 덕에 자위대는 직장인의 탈을 그나마 조금 벗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자위대에 대한 불신은 깊었다.
일본 국민이라면 다 그럴 것이다.
대침식 당시 부대를 이탈해서 미친 듯이 도주하던 자위대원들의 러시를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상황에서 마물들을 막아선 것은 일부 용감한 자위대와 야쿠쟈, 그리고 군 경험이 있던 한국인 출신 교포들이었다.
“한국인들은 다 군대를 다녀온다고. 그건 알지?”
“히로시 상, 그건 저도 압니다. 제 한국인 친구도 군대를 다녀왔다고 자부심 넘쳐했지요. 알고 보니 취사병이었지만.”
“취사병? 하핫! 하지만, 한국 군대 취사병이 차라리 자위대 군관보단 났다고. 어쨌든 저 양반들은 걱정 마. 월남전이나 해병대 출신들이니까.”
“그래도 노인들인데…….”
“어여 갑시다!”
그래도 노인인 것은 불안요소였다. 하지만 그 불안감은 오래 지나지도 않았다.
“허…….”
다케시는 차곡차곡 쌓인 마물들의 시체를 보며 할 말을 잃었다.
그때 입구 쪽에서 장난감처럼 생긴 소형 포크레인이 들어왔다. 그 안에는 히로시가 타 있었다.
“나와.”
“아, 히로시상 그것도 몰 수 있습니까?”
“자네도 배워두면 쏠쏠하다고.”
포크레인의 앞 부분을 집게로 바꾼 그는 마물들의 시체를 그대로 냉동 트럭으로 집어 올렸다.
“오늘은 꽤 쏠쏠한데?”
“아구구. 허리야. 이 짓도 오래 못하겠네.”
“이참에 손주 집 한 채 사 준다고 따라와 놓고선.”
사냥을 마치고 돌아오는 노인들이 다케시의 눈에 들어왔다.
비록 F나 E급에 해당하는 하급에 불과하지만, 이들은 마물을 그야말로 사냥하고 있었던 것이다.
담이 달랐다.
그제야 나이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다케시는 알 수 있었다.
“봤지?”
마물 시체를 다 옮겨 놨는지 옆에 다가온 히로시가 다케시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말을 걸어왔다.
“아, 예.”
“그냥 가이드로 무슨 돈을 벌겠어. 이 세상에서.”
히로시의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경제가 붕괴된 지금 다 무너진 여행사의 가이드라 해도 감지덕지다며 들어왔지만 이제야 이 수상한 여행사의 진짜 일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히로시 많이 늘었네?”
“감사합니다, 어르신!”
김상이라 불린 노인이 다가오며 흡족한 얼굴로 히로시에게 봉투를 건넸다.
“오늘 일당. 벌이가 좋아서 더 챙겼지.”
그때 구경하던 다케시에게도 노인은 봉투를 건넸다.
“에? 저도요?”
“그래. 신입이라 꽤 놀랐을 텐데 잘 따라오네? 적성에 맞겠어.”
“괘, 괜찮습니다!”
“어허. 어른이 주는 건 받아.”
다케시가 주는 것을 거절하려 하자 노인이 혀를 차며 돈 봉투를 다시 내밀었다.
그때 히로시가 옆구리를 쿡 찌르며 말했다.
“정이라고. 용돈이라 생각하고 받으면 돼. 앞으로 열심히 하라는 거니까.”
“아…….”
정이란 말에 다케시는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돈봉투를 받았다.
예전 코로나 이후 일본 젊은 사람들 사이에는 한국문화에 대한 광풍이 불었다.
그 세대였던 다케시 역시 당연히 정이란 것에 대한 것도 알고 있었다.
“히로시 이젠 한국사람 다 됐네?”
“아이쿠, 어르신. 말도 다 못 배웠는데요.”
“말이 중한가? 정. 그거 알면 한국 사람인 거지.”
이 생소한 장면을 보며 다케시는 봉투를 내려다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하지만 왠지 직장을 잘 택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눈앞의 노인들이 이제는 오히려 든든하게 보였다.
이 효도관광팀을 이끄는 김평석은 현지 가이드들이 얼굴이 밝아지는 모습에 흡족한 얼굴을 했다. 그들의 나이대가 막내 아들뻘이라서인지 정이 갔다.
게다가 예전과 같은 혐한은 찾아볼 수 없는 시대다.
혐한하던 이들은 이미 대침식과 함께 몰락했으니까. 젊은 세대로 교체되며 이제는 꽤나 분위기가 바뀌었다.
그걸 떠나서라도 배푸는 쪽은 여유가 생기기 마련이었다.
사실 노인이니 뭐니 했지만, 지금 시대에 나이 육순 중반을 노인이라고 부르기에는 좀 모호했다.
그렇다고 중년이라기에는 좀 그렇고. 그냥 중년과 노인 사이의 낀 세대다.
그러면서도 대침식 당시에는 동네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가 그들과 같은 연배였다.
젊은 이들은 전선으로 나아가고 후방의 시민들을 지키는 것은 그들과 같은 이들이었다.
그 경험이 지금에 와서 꽤 쏠솔한 돈벌이가 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한 무리의 노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형님! 여기 좀 와 봐야겠습니다!”
“뭔데?”
“형님네 팀원은 사주 좀 시키쇼. 이거 그때 국정원 친구들이 당부하던 거 같던데?”
국정원이라는 말에 김판석이 인상을 찌푸리며 무기를 고쳐 잡고 걸음을 옮겼다.
한참을 이동한 뒤에 멈추어 선 김판석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팀원들이 사방을 경계하며 무기를 겨누고 있었다.
그리고 중앙에는 일부 팀원들이 마물들의 사체를 살피고 있었다. 가까이 보지 않아도 죽은 지 좀 된 듯한 모습이었다.
게다가 사체의 상태도 이상했다.
“이거 위장을 해 놨더라고요. 이불처럼 나무들을 덮고 뒈졌을 리는 없고.”
적당히 말라가는 나무와 넝쿨들이 한쪽에 밀려나 있었다. 아마 이 사체들을 덮어 두었던 것임에 분명했다.
그때 김판석의 시선이 점점 앞으로 향했다.
비슷하게 위장된 곳이 꽤나 넓게 퍼져 있어 보였다.
“이거 얼마나 돼 보이냐?”
“가늠 안 되니까 불렀죠. 형님. 차 사령관이랑 연락되죠?”
“뭐, 되긴 하지.”
“정보부도 정보부지만 준우 통해서 하는 게 좀 낫지 싶은데.”
“뭐 말만 불법이지, 우리가 진짜 불법이냐?”
“그래도 말입니다. 알잖습니까. 덩어리가 커 보이니 좀 조심하자는 거지.”
그의 말에 판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일단 지역 마크하고 애들이랑 빨리 철수하자.”
“이거 못 써먹을까요?”
“이거?”
그의 말에 판석은 사체를 내려다보았다.
사실 고기를 먹는 게 아니기에 마물의 부산물에 시선이 끌리는 건 당연했다.
“뭐 가져는 가 보자. 정부 애들 보여줄 겸, 돈 되면 좋고. 돈 안 되도 따로 포상이나 달라고 하지.”
판석의 말에 다들 환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오케이! 그럼 갑시다!”
* * *
“결과 나왔습니까?”
공사다망한 차준우 사령관이 특수 연구동에 직접 방문을 했다.
최근 들어 각국에서 제보가 여럿 있기는 했지만 여태 다 허탕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촉이 좀 왔는지 연구원들보다는 차 사령관이 더 안달이었다.
“그 사령관님 옛 전우분이 제보하신 거죠? 일본에서 효도관광 갔다가…….”
연구원의 말에 차 사령관이 어색하게 웃었다.
효도관광이 지금은 마물밀렵의 은어처럼 쓰이고 있기 때문이었다.
“예. 연배는 저보다 있으시긴 하지만, 경험 많으신 분인지라.”
“마족 마법사들이 지금 확인 중이니…….”
쾅!
문이 강하게 열리는 소리와 함께 헤게루이안이 어울리지 않게 놀란 얼굴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확실하오!
“어느 샘플입니까?”
-179J!
헤게루이안의 외침에 연구원이 고개를 돌려 차준우를 바라보았다.
“차 소장님 촉이 맞으신 듯합니다.”
* * *
“김 원사님, 이거 오랜만입니다.”
“차 사령관님 늦었지만, 영전을 축하드립니다.”
김판석이 차준우 사령관이 내민 손을 잡았다.
“영전은 요 뭘. 아시면서.”
차 사령관이 피식 웃으며 하는 말을 들으며 판석은 주변을 돌아 보았다.
“제대로 잡긴 했나 봅니다.”
“예. 한 건 하셨네요.”
주변에는 한국군을 비롯해 자위대와 미군 그리고 중국 러시아 각국의 특수부대원들이 경계를 펼치고 있었다.
숟가락 하나 더 얹기 위함이 아니다.
그만큼 사안이 중요한 상황이었고 각국 다 여력이 없는 상황이 기에 정예들을 조금씩 쪼개서 투입시킨 것이다.
일종의 유엔군처럼 말이다.
거기에 지휘는 차준우 소장이 직접 맡기로 한 상황이었다.
일본은 이에 난색을 표했지만, 솔직히 미국이나 러시아 중국이 한국의 손을 들어준 이상 어쩔 수 없긴 했다.
“이거 용돈 벌이나 좀 하러 왔다가 일이 커졌네.”
판석이 히죽 웃으며 말하자, 차 사령관이 너털웃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무슨 용돈 벌이를 이렇게 거하게 합니까? 아까 보니 옛날 팀원들 다 보이던데.”
“다 늙어 가는 처지에 나라에서 해 주는 공공근로나 하고 나자빠졌을라니 영 좀이 쑤시기도 하고…….”
약간 멋쩍은 듯 대답하던 판석이 잠시 말끝을 흐리다가 다시 이어 나갔다.
“……녹슨 감도 다시 찾아야 할 거 같아서 말입니다.”
판석의 말에 차 사령관은 쓴웃음을 머금었다.
“……이제는 현역 군인들에게 맡기고 편히 쉬라고 말씀드리고 싶은데. 그게 안 되네요.”
“압니다. 그래서 정부에서 요즘 생존 키트니 뭐니 보내는 거 아닙니까. 사실 대침식 때도 물자 등의 혼란 때문에 사건 사고가 더 크기도 했으니까. 잘하고 있는 겁니다. 누군 세금 낭비 아니냐고 하지만……, 까짓 쓸 일 없으면 더 좋은 거고. 대비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예.”
크레인까지 동원된 현장이었다.
주변에선 약간의 총소리도 울려 왔다.
아무래도 마물들이 자주 출몰하는 지역이기 때문에 접근하는 수가 좀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때 앞쪽에서 누군가가 외쳤다.
“사령관님! 오셔야겠습니다!”
참모진의 외침에 차 사령관이 몸을 돌렸다.
“나도 좀 봐도 되나?”
그때 판석이 슬쩍 질문을 던졌다. 이제는 민간인이나 마찬가지인 그였기에 조심스러웠던 것이다.
“당연하죠.”
하지만, 차 사령관은 웃으며 허락했다.
함께 사선을 건넌 전우라는 게 이럴 땐 누구보다 든든한 것임을 그도 아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