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열제 부루강림기-190화 (190/305)

제190화 대국민 담화

문이라는 말에 장웨이는 잠시 입을 닫았다.

답은 알 수 없다였지만, 예상 가는 곳은 있었다.

“글쎄. 중요한 건 그때가 되면 정말로 쉴 수가 없어진다는 것만 알아 둬.”

장웨이의 말에 주변에 이야기를 듣던 소환자들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런데 한국 쪽은 여전히 문제 없나 봅니다?”

“뭐?”

“정말로 그쪽은 마물들이 발생하면 도시가 싹 다 비워집니까? 너튜브에서 보면 영 거짓 영상만 올리는 것 같은데.”

너튜브의 흔한 한국인의 대처라는 영상을 말하는 것 같았다.

마물이 등장하는 싸이렌과 동시에 길거리를 오가던 사람들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거리를 싹 비우는 영상.

어디든 그런 광경은 없었다.

미친 듯이 공포에 질려 뛰는 모습도 없음에도 빠른 시간에 일소되는 거리의 모습은 짜고 하는 거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한국을 경험했던 장웨이는 고개를 흔들며 입을 열었다.

“진짜일걸?”

“정말입니까?”

“원래 그쪽은 대침식 이전부터 지독했던 인간들이니까. 머리 위에 핵 쏜다고 맨날 떠드는 놈이 있어도 멀쩡하게 돌아다니던 국민들이니까.”

“하긴. 그건 그렇습니다. 미사일이 날라 다녀도 출퇴근을 할 인간들이라는 말도 있죠.”

“뭐, 비슷하겠지.”

무장 배달원까지 본 기억이 있던 장웨이는 그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 * *

“일본?”

“아무래도 일본쪽이 침식당한 영역이 크기에 그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만.”

양현재 대통령은 구은태 박사등과 함께 논의를 이어 가고 있었다.

“그런 거라면 뉴질랜드 쪽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렇긴 합니다만…….”

국가가 무너진 곳은 아직도 많았기에 예상되는 지역은 많았다. 그러나 세 번째 탑이 만들어지는 지역을 특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다.

지구 주변을 떠다니는 세계의 정찰 위성들이 전부 수색에 동원된 상황이었다.

역사 이래로 이런 대비는 처음이었다.

반대로 말하면 흔히 영화에서나 보던 전 지구적 위기임은 틀림없었다.

“차라리 우리 쪽이라면 나을 것을.”

양 대통령이 힘없는 미소를 머금으며 자신의 희망을 내뱉었다.

차리리 이쪽에 세 번째 탑이 생긴다면 적어도 문이 열리는 곳은 아니라는 의미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들 말은 안 하고 있었지만 문이 열리는 곳은 이쪽일 것 같다는 예감은 하고 있었다.

저들이 굳이 에너지원으로 삼키지 않고 식민지화 하겠다는 것은 노리는 바가 명확하다는 의미다.

그건 바로 을지부루.

은연중에 이곳이 새로운 군주의 영역으로 받아들여진 것이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그렇다고 을지부루의 존재를 원망할 수 없는 것이 그가 아니었다면 미국에 세워진 탑이 이곳에 더 빨리 만들어졌을 것이고, 그렇게 되었다면 지금 이렇게 대책을 논의할 수 있는 상황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전 국토가 침식이 되어 이미 마족들의 먹잇감이 되었을 테니까.

“너무 잘 막아도 탈이군요.”

“그렇기에 전력도 이쪽이 최고일 수 있는 것입니다.”

강문호 중령의 말에 양 대통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박용우 총리가 얼굴을 굳히고 있었다.

상황실에서 연락을 받은 모양이었다.

“뭡니까?”

“일본은 아니라고 합니다.”

“아…….”

차라리 일본이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는데 그게 아니라는 보고였다. 러시아와 중국 미국의 정찰위성이 총동원되어 뒤졌으니만큼 오차가 생길 이유는 없었다.

“그럼?”

“호주나 뉴질랜드 쪽이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큰 삼각형이 만들어지고 이론대로라면 그 안쪽에 문이 열리겠지요.”

북미쪽의 탑과 북아프리카쪽의 탑. 마지막으로 남반부의 호주나 뉴질랜드 쪽에 탑이 생성되면 셋을 연결하면 큰 삼각형이 만들어진다.

그렇게 되면 문이 열릴 예상지역은 동아시아 전역이다.

“문이 일본에 열릴 가능성도 있잖습니까?”

“놈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섬쪽에 문을 열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유는요? 전초를 만들기에는 오히려 좋지 않습니까?”

그때 한쪽에 있던 마용족 군단장인 카르탈마니어가 입을 열었다.

-머릿수는 줄었지만 그 힘만큼은 역대 최강의 군주가 이끄는 군대다. 식민지화 하겠다는 건 이곳이 가치가 높아서가 아니라 직접 군주의 힘을 취하기 위함일 것이다. 그런데 굳이?

“…….”

그의 말에 다들 입을 다물었다.

다시 카르탈마니어가 입을 열었다.

-강자의 사냥법은 그런 게 아니다. 대비하는 게 좋을 거다. 인간의 군주여.

카르탈마니어의 경고에 양 대통령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 국민을 어디로 대피라도 시키면 좋겠습니다.”

“하, 하하하.”

불가능한 희망을 이야기하는 그의 발언에 다들 쓴 웃음을 머금을 뿐이었다.

그때 양 대통령이 입을 열었다.

“이렇게 된 이상 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순간 다들 얼어붙었다.

“다른 국가에게 말입니까?”

박 총리가 조심스럽게 묻자 양 대통령이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요.”

“설마?”

“국민들에게 말입니다.”

양 대통령의 폭탄발언에 다들 놀라 외쳤다.

“하지만, 아직 정해진 일이 아닙니다!”

“맞습니다! 혼란만 초래할 뿐입니다!”

“저 일단 재고하심이…….”

국무위원들이 전부 들고 일어섰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차라리 그게 나을 수 있습니다.”

그때 강문호 중령이 끼어들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아닙니다. 강 중령의 말이 맞습니다.”

“차 사령관님!”

여태 침묵을 지키던 차준우 사령관이 강 중령의 발언에 힘을 실어주자 박 총리가 비명과 같은 음성으로 그를 불렀다.

“대침식 때에도 군의 희생이 컸지만, 그 당시 이겨 낼 수 있었던 것은 국민들의 힘입니다.”

“그야…….”

틀린 말은 아니다.

괜히 위기에 강한 민족성이라는 말이 있는 건 아니다.

“예상할 수 있는 상황에서 비밀로 한다는 건 오히려 직무유기라 봅니다.”

그렇게 말을 하며 차 사령관이 양 대통령을 바라보았다.

양 대통령은 국무위원들의 불안한 시선들을 받으며 입을 열었다.

“지금 최대한 빠른 시간에 각 당의 대표들을 불러 주십시오. 그리고 오늘 저녁 대국민 담화를 하겠습니다.”

양 대통령의 의지에 다들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이해할 수가 없군.”

닉 레너드 대통령은 전화를 끊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는 방금 대한민국의 양현재 대통령으로부터 위기사실을 공표하겠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동맹으로서 사전에 알린 것이다.

“이건 양 대통령이 독단적으로 발표해서 될 일이 아닙니다! 혼란이 찾아올 겁니다!”

“당장 압력을 가해야 합니다!”

“미친 거 아닙니까!”

미국의 국무위원들이 들고 일어섰다. 하지만 한쪽에 있던 케인 스미스 정보국장은 고개를 내저었다.

“무슨 압력이요? 무슨 힘으로 말입니까? 핵이라도 쏜다고 협박합니까? 이 와중에 경재제제라도 하겠다고 합니까?”

“스미스 국장 지금 자네의 발언은 위험하네!”

“아직도 현실을 모르는 당신들의 발언이 더 위험하니까 제가 끼어든 것입니다. 버튼의 일을 잊으신 겁니까?”

스미스 국장의 발언에 다들 입을 닫았다.

“우리도 미리 대비해야 할 것입니다. 세계대전 이상의 위기임을 다들 모르는 것은 아닐 겁니다.”

말을 내뱉은 스미스 국장이 고개를 돌려 레너드 대통령을 바라 보았다.

“우리는 문이 열리는 곳은 아니니 그나마 다행이지 않겠소?”

레너드 대통령이 쓴 웃음을 머금으며 반문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의 말에 위안을 삼는 이는 없었다.

그리고 대한민국발 폭탄은 전세계로 알려져 나갔다.

* * *

“갑자기 뭔 대국민 담화랍니까?”

“글쎄?”

최후배 경정의 걱정 어린 질문에 서준모 경무관이 머리를 긁적거리며 답했다.

“이거 참. 갑갑하네요.”

“뭐, 보면 알겠지.”

잠시 후, 삼삼오오 모여든 로비의 텔레비전에 양현재 대통령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 * *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말문을 뗀 양현재 대통령이 카메라를 응시하며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이 순간에도 그의 마음이 복잡함을 보여 주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으며 입을 열어갔다.

사감이라고는 없는 건조한 브리핑을 그의 입으로 직접 이어나갔다. 상황이 어떠한지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담화문이 이어질수록 주변은 점점 고요해져 갔다.

뭔가를 끼적이기 마련인 기자들도 불빛을 발하는 카메라 스트로보의 빛도 보이지 않았다.

툭 데구르르.

누군가 힘없이 떨구어낸 볼펜이 바닥을 치고 구르는 소리가 천둥처럼 크게 느껴질 정도의 적막이 흘렀다.

“……물론 그 문이라는 것이 이 땅에 반드시 열린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하지만, 허무하게 준비만 하다가 아무 일 없이 끝이 난다 하더라도 이는 결코 의미 없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국가는 국민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지금 국가라는 존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이렇게 미리 국민 여러분들께 상황을 설명 드리고 준비케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것이 최선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무능한 정부를 대신해 사죄드립니다.”

그렇게 말을 흘려낸 양현재 대통령이 단상 옆으로 한걸음 비켜 서서 천천히 허리를 숙였다.

허옇게 피어오른 정수리와 원형 탈모라도 왔는지 듬성듬성 비어 있는 두피가 채 가려지지 않은 채 카메라에 노출되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숙이고 있던 대통령이 천천히 허리를 피며 말을 이었다.

“지금 이 시간 부로 대한민국은 전시체제로 전환함과 동시에 상황에 대한 상시 보고를 전 국민 여러분께 1시간 간격으로 해 나갈 것입니다. 이상입니다.”

그제야 깨어난 듯 기자들이 화들짝 놀라며 서로의 얼굴을 바라 보았다.

지금까지의 침공은 서막에 불과했고, 진짜는 이제 시작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이곳 대한민국이 될 것이다라는 말.

아무리 그동안 침식균열을 최초로 막아 내고 또 미국원정까지 성공적으로 이루어내며 전 세계적인 국뽕 짤이 만들어지는 역사적 시기였지만, 이건 의미가 달랐다.

순간 침묵에서 깨어난 기자들이 일시에 수많은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마치 양 대통령이 자리를 비우기 전에 하나라도 더 알아내야겠다는 듯 말이다.

어쩌면 기자의 사명이 아닐 수도 있었다.

이 땅을 살아가는 구성원 중 하나로서 던지는 질문일 수도 있었다. 생존이라는 본능은 그 어떤 것보다도 앞서는 것이니 말이다.

“어, 언제 문이 열리는 것입니까?”

“바, 방어 계획은 명확한 것입니까?”

“만약 그렇다면 다른 국가에도 지원을 요청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정확하지 않은 사실을 이렇게 공포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세간의 정치적 혼란을 덮기 위한 것은 아닙니까?”

질문들이 쏟아졌다.

하지만, 그중에는 정치적인 공작으로 유도……아니 차라리 그쪽이기를 바라는 질문도 있었다.

그때 한쪽에서 몰려나온 이들이 단상에 있던 것을 치우고 그 자리에 간이 책상과 의자를 가져다 두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양 대통령이 차분하게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시간은 충분히 할애하겠습니다. 한 가지만 당부 드린다면, 이 자리의 기자님들은 언론인으로써 오신 것이기도 하지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이기도 합니다. 국민을 대표하여 대신 질문을 해 주신다는 생각을 가져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양 대통령은 이 자릴 피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자리를 잡았다.

기자들의 질문 속에서 국민들이 필요로 하는 답을 하겠다는 의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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