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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열제 부루강림기-189화 (189/305)

제189화 문은 어디에

* * *

세상은 다시 아포칼립스 분위기로 나아갔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세상은 혼란 속에서도 적응해 나갔다.

콰콰콰쾅!

폭음이 울리는 가운데에서도 병 사들은 포크를 놀리는 손짓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치익! 5선이 무너졌다! 5선이 무너졌다!

방어선 하나가 무너졌다는 소리에도 식사를 하던 병사의 손길은 여전했다.

“젠장. 결국 무너졌네.”

“그래도 이번에는 오래 버티지 않았나?”

“버튼 중위님쪽은 안전하게 철수했나 모르겠습니다.”

“이미 조짐은 있었으니까. 대비했겠지. 빨리 먹어. 우리 투입 준비 해야 한다.”

“슬슬 지겨워지는데 대체 저건 언제까지 저런다고 합니까? 다른 곳은 침식균열이 더는 안 벌어지고 있다던데.”

“빌어먹을. 철거할 수 있었어야 할 때 했어야 했는데.”

그들이 바라보는 시선 끝에는 은은한 보랏빛이 감도는 탑이 어두침침한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빌어먹을 그 버튼인가 뭔가 하는 놈 만나면 대가리에 총알부터 박아 넣고 싶네.”

“내 말이.”

한동안 투덜거리던 군인들은 낯설은 구조물을 보며 말을 이었다.

“그 한국 친구들이랑 있을 때는 참 든든했는데.”

“그 도끼 든 제너럴이 특히.”

미군들은 키득거리며 웃음 주고 받았다.

빼애애애애앵! 애애애앵!

갑자기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울려퍼졌다.

“무슨 일이지?”

“글쎄?”

그때 밖에서 요란한 음성이 울려왔다.

“Hurry up!”

서두르라고 재촉하는 목소리와 함께 바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방어선이 무너졌다는 소리에도 동요하지 않던 군인들이 각자 무기를 잡아들었다.

그와 동시에 급한 목소리의 방송이 이어졌다.

-6방어선 위험하다! 지금 대기 병력은 당장 7방어선으로! 7방어선으로!

“왓? 방금 6방어선이 위험하다고?”

“7방어선으로 집결하라는 건 6방어선도 무너질 거라는 이야기잖아!”

동시에 그들은 식사를 내팽게치고 밖으로 나갔다. 그와 동시에 이미 무장을 한 대기 병력을 이끌고 오던 중위를 만났다.

“하사! 빨리 위치로 복귀해! 탑이 미쳤어!”

“대체 무슨…….”

탑이 미쳤다는 말에 반사적으로 시선을 돌린 군인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탑의 상공이 까맣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위로 마치 새와 같은 것들이 떼를 지어 날아다니고 있었다.

“젠장. 제너럴을지와 한국 기동대 친구들이 미친 듯이 그립군.”

“제군들이여! 우리가 밀려나면 안 된다!”

멧 할러데이 중장이 마갑주를 입고 달려나갔다. 그 뒤를 따라 훈련된 강림자와 소환자들이 뒤따랐다.

그들의 표정에는 지친 기색이 짙었지만, 눈동자에는 전의가 불타오르고 있었다.

* * *

“중국쪽은 아직 방어선을 유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점점 마물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어 지원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미국쪽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파병을 갔던 지역에서 웨이브가 발생하여 위급상황이라 합니다!”

“독일과 프랑스 접경지역의 방어선이 붕괴되었답니다!”

상황실에서는 거의 실시간으로 절망적인 소식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아직까지는 버티고 있다는 소리가 많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소식이 연결되고 있는 국가들에 한해서였다.

“아프리카 전선쪽에서 연락이 들어왔습니다.”

그때 아프리카라는 소리에 상황실장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프리카? 그쪽에 살아 있는 라인이 남아 있었나?”

“정부조직이 거의 무너진 것으로 파악이 되고 있었긴 했습니다만…….”

아프리카는 버려진 대륙이라 불리고 있었는데, 연락이 되었다니 놀랄 만한 일이긴 했다.

* * *

양현재 대통령이 심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나마 이건 희소식이라고 할 수 있긴 한데.”

“곧 그들이 도착하니 그때 확인이 되겠지요.”

조금 전 확인된 것은 아프리카 지역들의 침식지대가 급격하게 축소되면서 마물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는 소식이었다.

그동안 각 국가들의 침식지대가 줄어들고 있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아프리카 쪽은 확인된 바가 없었다.

“그런데 왜 그쪽은 마물들이 줄어들고 있지?”

문제는 이것이다.

한국을 비롯해서 다른 지역들은 침식지대가 줄어들면서 비록 F급 위주지만 마물들의 출현이 크게 늘었다.

그 이유를 마족 마법사들은 이곳을 식민지로 삼기 위함이라고 했었다.

그런데 이미 장악이 다된 아프리카 지역에는 반대의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마족마법사 헤게루이안이 창백한 얼굴로 모습을 드러냈다.

“아, 오셨소? 안 그래도 지금 상황에 대해서 질문이…….”

-침식지가 줄어드는 건 에너지 투사를 위해 힘을 모으는 것이라 말했었습니다.

“아, 예. 그런데 이쪽은 마물의 출현이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탑입니다.

“탑?”

-탑을 소환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헤게루이안의 말에 양현재 대통령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탑이라면 침식지를 확실하게 늘려 영향력을 높인 다음에 설치할 수 있는 것 아니었습니까?”

-그것도 가능합니다. 다만 그건 일종의 마족군단을 위한 전초군단의 역할을 하는 규모의 탑입니다.

“그럼 아프리카 지역의 위험이 아직 안 끝난 것이란 말입니까?”

양현재 대통령의 질문에 헤게루이안이 고개를 내저었다.

-문제는 그게 아닙니다.

“그럼?”

-탑을 세우는 또다른 방법은 침식지의 영향력을 모으고 또…….

“또? 마물의 피를 뿌려서 뭔가 하는 그런 것이오?”

지금 마물들이 하루가 머다하고 끊임없이 쏟아지는 이유가 바로 식민화를 위한 사전 작업인 것은 그도 알고 있었다.

-비슷합니다. 탑을 세우는 또다른 방법은 시체로 세우는 것입니다. 마물의 피에는 마력이 존재하니까.

이해할 수 없는 발언이었다.

그러나 헤게루이안은 입술을 깨물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러나 그렇게 세운 탑은 직접적인 통로로 활용하지 못합니다.

“그럼 걱정 없는 것 아닙니까?”

양 대통령의 질문에 헤게루이안이 고개를 내저으며 대답했다.

-그 탑의 용도는 전초 기지로써의 탑이 아닌 문을 열기 위한 에너지 송출용입니다.

문을 열기 위한 송출용이라는 말에 양 대통령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입을 열었다.

“문? 문이라고?”

-맞습니다. 문입니다. 마법을 통해 전송하는 형태가 아닌 두 지역을 완전히 연결하는 것.

털썩.

그의 설명에 집무실에 있던 비서관 하나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는 소리가 울려왔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헤게루이안이 입을 열었다.

-전면적인 침공의 방식은 탑이 아닌 두 세계를 잇는 문으로 시작될 것입니다.

집무실에는 침묵만이 흘렀다.

그때 밖에서 박용우 총리가 밝은 얼굴로 나타나며 외쳤다.

“아프리카 쪽에서 다시 연락이 왔는데 마물들이 무슨 일인지 알아서 떼죽음을 당했다고…….”

그가 내민 테블릿을 양 대통령이 낚아채서 바로 헤게루이안에게 보여 주었다.

-……다행이라면 저들의 목표를 명확하게 알 수 있다는 점이군요.

“빌어먹을…….”

양 대통령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뭐가 잘못된 겁니까?”

뒤늦게 분위기를 파악한 박 총리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 * *

“탑이 검은 빛으로 물들면 알려 달라는 것이오?”

양현재 대통령과 핫라인으로 통화를 하던 닉 레너드 대통령이 확인하듯 물었다.

[그렇습니다.]

“자세히 물어봐도 되겠소?”

[당연히 말씀 드려야지요. 아니 모든 곳에 알려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비를 해야 하니까.]

양 대통령의 말에 레너드 대통령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대비라는 말의 무게가 무겁게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실은…….]

양 대통령의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레너드 대통령의 얼굴은 더욱 어두워졌다.

테블릿으로 그가 보내온 사진이 떴다.

마물들의 시체가 산처럼 쌓여 있고 그것을 배경으로 밝은 얼굴로 사진을 찍은 아프리카쪽 군인의 모습.

“그럼 이게 그 통로를 만드는 탑이란 것이오?”

[그렇습니다. 지금 남아있는 탑을 마찬가지로 송출탑으로 낮춰서 활용할 것이니 남은 한 곳만 만들어지면 준비가 끝이 난다고 합니다.]

“지금이라도 폭파를…….”

[이미 생성된 시체의 탑을 무너트린다 해도 의미는 없다고 합니다. 이미 에너지원 형태로 존재하니까. 처음부터 탑의 생성을 막는 게 최선이고.]

“버튼 이 멍청한 인간!”

레너드 대통령이 욕설을 퍼부었다. 하지만, 양 대통령의 말이 이어졌다.

[이미 지나간 일입니다. 그리고 다행이라면 그 문이 열리는 곳은 미국도 아프리카도 아닐 겁니다. 송출탑에 문이 열리지는 않으니까.]

양 대통령의 말에는 온기라고는 하나도 느낄 수 없었다. 위로의 의미도 아니었다.

마치 그들이 부렸던 욕심에 일침을 가하는 것 같았다. 거기다가 통로가 미국에 열리지 않는다고 해서 위로가 되지 않았다.

실질적으로 마족이나 마물을 상대할 전력이 가장 강한 곳은 그 어디도 아닌 대한민국이었으니까.

“사실 우리 쪽 조짐이 좋지 않습니다.”

레너드 대통령은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

스피커폰을 통해 들려오는 레너드 대통령의 설명을 듣던 헤게루이안이 고개를 내저었다.

-마찬가지로 시체탑과 같은 수순입니다. 지금까지 뿌려진 마력의 양이 적지 않으니 이쪽도 이제 곧…….

그의 설명을 들었는지 레너드 대통령의 목소리가 잠시 끊어졌다. 그리고 다시 그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탑이 검은 빛을 띠기 시작했소.]

“빌어먹을. 막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양 대통령이 이빨을 앙다물었다.

-일단 남은 한 곳을 찾아봐야 합니다.

헤게루이안의 말에 양 대통령이 레너드 대통령에게 말을 전했다.

“이야기 들으셨지요.”

[러시아와 공조를 하겠습니다. 위성이란 위성은 전부 동원해 봐야겠군요.]

“부탁드리겠습니다.”

잠시 후, 하늘의 별처럼 떠 있던 위성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왕빠단!”

장웨이가 욕설을 내뱉었다.

중국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 불리우는 그였기에 정상들간의 핫라인을 통해 알려오는 정보는 그에게도 전달이 되어지고 있었다.

그의 주변에는 수많은 시체들이 쌓여 있었다.

그것들을 보며 장웨이가 이를 악물었다.

“차라리 빨리 문이나 열라고 해! 무슨 피말리는 것도 아니고!”

그의 외침에 주변에 휴식을 취하고 있던 군인들과 소환자들이 그를 피곤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무슨 일입니까?”

“빌어먹을. 이제 조금만 있으면 이렇게 찔끔찔끔 공격오는 게 아니라 아예 대문을 열어 놓고 들락거린단다.”

“그럼?”

“전면전이지. 이제 곧.”

“하아.”

전면전이라는 말에 다들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지금은 할만 하긴 한 상황이었다.

그들이 교대해서 막고는 있지만, 전방도 후방도 없던 대침식 때보다는 나았다.

하지만, 이건 대응책이 어느 정도 생겨났기에 상황이 나은 것이다.

한국에서의 훈련과 연구 덕에 소환자들의 행동반경이 늘어나며 작전이 수월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뿐 아니라 마물을 상대할 수 있는 병기도 생겨났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실제로 규모 자체로만 따지면 대침식 이상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그때 한 소환자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그런데 그 문이라는 게 어디 열린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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