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7화 웃기는 짬뽕? 아니다. 짬뽕은 훌륭하다.
유지현 경감이 풀어놓는 썰을 듣던 서준모 경무관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상하네요.”
“그렇죠? 단순하게 이미지를 좋게 한다는 것을 넘어서는 행동이지요. 물론 이렇게 하면 주변에는 대원길드에 호의적인 이들만 있겠지만…….”
유 경감이 지금 의아하게 생각 하는 부분은 바로 이것이었다.
대원그룹 즉 대원길드가 이 지역에서 필요 이상으로 퍼주고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이전에 한 행동으로 인해 대원그룹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은 것은 사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 환원활동을 열심히 해서 이미지를 살리는 행동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것 치고는 이 지역에서 하고 있는 그런 활동들이 너무 호구에 가까울 정도라는 점이었다.
단순하게 이미지를 좋게 만드는 것 이상이라는 점이다.
심지어 그 이야기를 들으며 서 경무관은 이런 착한 일들을 하면서 왜 언론플레이를 안하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최후배 경정도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의아함을 지우지 못한 얼굴로 한마디 거들었다.
“이쯤 되면 동네방네 나 잘하고 있다고 떠들어 대도 될 거 같은데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런데 저놈들도 바보도 아니고. 이렇게 하면 착한짓도 의심 받는 거 알지 않나?”
“그런데 지나치게 사회사업 했다고 조사 들어갈 수도 없잖습니까.”
“욕먹지.”
“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그 말에 다들 입을 다물었다.
딱히 예상이 가는 상황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유 경감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일종의 왕국을 구축하려는 걸까요?”
그의 말에 서 경무관과 최 경정은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굳이 이렇게까지 안 해도 지역 경제를 장악하면 저절로 될 일을 이렇게까지 한다는 건 말이 안 되죠.”
“막말로 아프리카나 그쪽 군벌처럼 하기에는 우리나라가 멀쩡하게 돌아간다는 것도 다른 점이고 말입니다.”
“그건 그렇네요. 하지만 분위기는 사실상 왕국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유 경감의 말에 최 경정이 의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렇게까지요? 아무리 퍼준다고 해도 사람들이 그렇게 쉽게 넘어갈 리가…….”
“지금 여기가 어디라고 생각하십니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유 경감의 질문이 날아왔다.
“하아. 그렇네요.”
유 경감의 질문에 서 경무관이 한숨을 쏟았다.
지금은 대한민국의 북단이라고 하지만, 대침식 이전까지만 해도 핵을 쏘니 마니 하며 대립하던 곳이다.
북한이라 불리던 곳.
대침식 당시 마물에 의한 통일 이라는 희대의 사건이 벌어졌던 곳이다.
당시에 대침식과 마물 때문에 묻히긴 했지만, 북한의 경제는 최악중에서도 최악이었다.
상상 그이상.
티비나 수치로만 보던 정도가 아니었다. 그랬던 곳에 마물까지 나타났으니 나라가 결판이 나버린 것이다.
그나마 아래에 있는 나라가 반백년간 대립하면서 진군계획을 항상 세워놓고 있던 대한민국이었기에 수습이 가능했다.
마물과의 전쟁을 수행하면서도 제7기동군단이 곧바로 치고 올라가 북한을 관통했다.
그 뒤로는 보급이 뒤따르며 당장 굶어죽기 직전인 사람들을 구했다.
이곳의 문제는 대침식을 성공적으로 방어해 냈다고 해도 나아지지 않았다.
대침식이 벌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평화 통일을 했다고 해도 수만 가지 어려움이 산적해 있었을 건데 마물이 한차례 휩쓸고 지나가 버린 상황.
다른 국가들의 인도적인 도움조차 바랄 수 없는 상황에서 이곳은 그야말로 나아지는 것보다는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상황이었다.
그나마 침식균열이 열리기 전에는 차츰 활기를 얻어가고 있다는 것이 위안이었다.
그런데 이런 곳에 호구에 가까운 천사짓을 하는 기업체가 자리를 잡은 것이다.
그야말로 눈이 돌아갈 만했다.
심지어 반백년을 독제자들에 의해 지배당하던 곳이다.
그게 몇 년이 지났다고 해서 쉽게 그 성향이 바뀌는 건 아니다. 누군가 한 명을 추앙하는 것에는 나름 지구상에서 최고의 전문가들이다.
그러니 유 경감의 말대로 변하는 건 이상한 게 아니다.
같은 언어를 쓴다고 해도 생각 자체가 다른 사람들인 것이다.
아니 멀쩡한 생각이 박혀 있어도 내일이 어두웠던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그야말로 미친 듯이 뿌려주고 있으니 충성하는 건 당연했다.
“이거 쉽지 않겠는데요?”
최 경감의 말에 서 경무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아래쪽에서…… 여기서는 남쪽에서 올라온 사람들을 그렇게 지칭합니다. 아래쪽에서 파견온 경찰들의 탐문에 적대적으로 반응하는게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래요? 그런데 보고들은 하나같이 다 찬양하듯 써놨던데요?”
“저도 그게 좀 이상하긴 합니다. 뭐 여기선 제대로 받아먹었나 싶긴 했지만…….”
“음.”
유 경감의 말에 서 경무관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놔, 뭐가 항상 이리 힘드냐.”
“뭐 팔자려니 해야죠.”
“젠장. 어쨌든. 유 경감님 잘좀 부탁합니다.”
“아, 예 뭐. 사실 저도 갑갑한 차에 다행입니다. 의심하는 내가 미친 건가 또 나만 나쁜놈인가 싶던 차였거든요.”
“흐흐흐. 그 기분 충분히 이해합니다.”
유 경감의 말에 서 경무관이 동류를 만나 즐겁다는 손을 마주 잡았다.
* * *
을지부루는 눈 앞에 늘어서 있는 병력을 바라보며 묘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기괴하구만.”
“뭐가요?”
고빈이 묻자 부루가 턱짓으로 도열해 있는 병사들을 가리켰다.
“저거이 말이디.”
앞 열은 천유화가 빠진 가우리군이 든든한 모습으로 늘어서 있었다.
그 뒤편으로는 그동안 부루에게 맞아가며 훈련받은 소환자들과 강림자들이 있었다.
하나같이 마갑을 입고 있어 뭔가 현대와 과거가 공존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뒤편으로는 부루의 은총(?)으로 재탄생된 부루표 마 수의 군단이 서 있었다.
누구는 SD군단이라고 했지만, 어쨌든 부루의 모진 매질을 이겨 내며 이 자리에 선 이들이었다.
기동군단과 각 특수부대에서 지원해온 이들.
그 숫자만 해도 도합 천여명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들 좌우로는 마족병과 마족 마법사들이 늘어서 있었다.
“기괴하다기 보단 좋게 말해 퓨전이고 나쁘게 말해 짬뽕이네요.”
“짬뽕? 기건 좋은 거디 않네?”
“뭐 맛은 좋은데 이거저거 뒤섞어 놨다는 말이에요.”
“아, 길쿠만. 됴은데?”
“예? 짬뽕이요?”
빈은 의아한 시선으로 부루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부루가 양쪽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대답했다.
“기래. 뭘 집어넣던 간에 맛만 좋으면 최고디. 군대가 강하면 그만이야.”
“아…….”
부루의 말에 빈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항상 보면 부루는 본질을 바라본다. 방금 전만 해도 빈은 아무 생각없이 외형에 관한 비유를 내어 놓았지만 부루는 바라보는 시각이 달랐다.
“옛날 생각이 나는구만 기래.”
“옛날 생각이요? 여기 처음 왔을때요?”
“아니. 우리가 처음 모였을 때.”
“우리요? 저랑 전신길드 아저씨들…….”
말을 이어가던 빈은 입을 다물었다.
부루의 시선이 현재가 아닌 과거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아련하다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시선이었다.
부루의 입이 열렸다.
“고향이 사라져서. 혹은 유랑 걸식 하다가. 누군가는 가문에 밀려…… 누군가는 말 그대로 그냥. 그런 잡다한 이유로 모였디. 뭔가 통일된 갑주나 무장도 없었어야.”
“그래요? 잘 상상이 안 가네요.”
“기래. 기래서 니 말마따나 짬뽕이나 마찬가지였디.”
“예.”
빈은 부루의 말동무라도 되어주듯 그의 말을 받았다.
“기런데 하나는 명확했디. 적은 우릴 두려워 했고, 아군은 우리가 나타나면 환호했디.”
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부루가 천천히 나섰다.
목소리가 커졌다.
“여기서 오고 저기서 오면 뭐 어떠간? 우리는 하나만 잘 하면 되는 거이야.”
어느세 과거를 유영하던 부루의 시선은 눈앞에 도열해 있는 이들을 향하고 있었다.
“덤비는 놈들 잘 쥑이는 거이디. 그거만 잘하면 되는 거이야. 길케 쥑이다 또 쥑이다 눈앞에 서있는 놈들이 없으면 이기는 거이야. 쉽디 않네?”
부루의 말에 짧고 우렁찬 답변이 뒤에서 먼저 터져나왔다.
“예!”
하지만 앞열에 있던 가우리 병사들은 나름 오랜 인연을 과시하 듯 농담으로 받았다.
“뭐, 저 양반은 만날 쉽다고 해.”
“저 양반만 그러나? 열제께서도 그랬지.”
“폐하야 워낙 사람 잡는 걸 길가의 벌레 잡듯 하는 양반이라 따라하다가 뒈지기 십상이고.”
“그렇지? 꼭 저 양반들 앞에선 적군들이 칼이나 창에다가 알아서 뛰어들어 죽는 것 같지만, 우리가 싸울 땐 안 그렇잖어.”
“내 말이.”
그들의 말에 빈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왠지 공감가는 말이다. 영화를 봐도 그렇지 않은가.
주인공이 총을 쏘면 알아서 악당이 몸을 날려 총알에 맞아 죽는다는 것처럼 말이다.
부루의 전투는 딱 그렇게 보였다. 그들의 농담에도 뒤열의 군인들은 부동자세를 풀지 않았다.
사실 오늘은 출정식이나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이날 이후에도 훈련과 실전을 계속 반복하는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나름 상징적인 날이다.
언제 어떻게 전면전으로 치달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기념할 만한 날을 미리 만든 것이다.
기념이기도 하고 마음을 다잡기도 하고 오늘의 역사를 후대에 남기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그리고 오늘이 아니면 전부가 함께 할 수도 없을 것이기 때문 이기도 했다.
전쟁은 해피엔딩이 아니니까.
아무리 잘 싸워도 누군가는 다치고 불구가 되며 한줌의 재가 되는 것이 전쟁이니까.
이 자리는 그들이 이곳에 있음을 증명하는 것임과 동시에 영정 사진을 남기는 장소인 것이다.
“대통령님 오십니다!”
부루가 고개를 돌렸다.
화려한 팡파레와 같은 음악은 없었다.
모든게 생략이었다.
대통령의 의지이기도 했다.
이곳의 주인공은 바로 군인들이기 때문이다.
양현재 대통령이 단상에 올랐다.
“간만에 보는구만 기래.”
“예. 좀 바빴습니다.”
“기럼 신경쓰다 말고 할말 하라.”
“예.”
하대로 일관하고 있었지만, 양 대통령은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이미 그가 충성하는 대상은 오직 하나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또 강림자들 대부분이 비슷했기 때문이다.
도열해 있는 이들을 내려다보며 양현재 대통령은 가슴이 먹먹해짐을 느꼈다.
사실 이들만이 위협에 노출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이유는 앞으로 언제 시작될지 모르는 전면전에서 이들은 목숨을 담보로 가장 위험한 곳에 제일 먼저 투입될 인원들이기 때문이었다.
일종의 결전병기나 마찬가지였다. 얼마나 살아올지 예상조차 할 수 없는.
“33기동여단 여러분.”
자원을 한 군인. 민간인 신분의 기동대. 그리고 소환자.
이 세 부류의 3과 강림자 마족병, 그리고 마수를 상징하는 3.
그래서 33이라는 숫자가 붙었다. 여단을 상징하는 깃발은 자연스럽게 정해졌다.
붉은 바탕의 삼족오 깃발.
그가 움직이는 곳에는 항상 그게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부대기로 정해졌다.
“귀한 시간을 뺏어서 죄송합니다.”
양현재 대통령은 그대로 허리를 숙였다.
다시 허리를 세운 그의 얼굴은 그 어느때보다도 굳어져 있었다.
“저들의 전면적인 침공이 언제일지 몰라 오늘 여러분의 귀한 시간을 제가 빌렸습니다. 이점 죄송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그의 말이 이어져 감에도 바늘 하나 떨어지는 소리 없었다.
“아마도 여러분은 아무도 가고 싶어하지 않을 곳에 최우선적으로 투입될 것입니다. 그게 33특수 여단이 가야 할 길입니다.”
말을 하던 양현재 대통령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사지로 밀어넣는 주제에 자신이 무슨 자격으로 이런 말을 하는가 자괴감이 들어서일 수도 있었다.
“여러분이 있기에 이 나라가 안전할 수 있다는 그런 흔한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저 어떠한 상황에서도 한 분이라도 더 살아서 이 자리에 다시 모였으면 합니다. 그뿐입니다.”
숙연함이 감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