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6화 서준모라는 인간
“그런 소문까진…….”
경비팀장의 격한 반응에 팀원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런데 잘 아시나 봅니다?”
“왜 몰라. 경찰에 하등 도움 안 되는 새끼.”
“그래도 실적은 좋았다던데요?”
나름 정보 수집을 했었는지 보고를 하던 팀원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반문하자 경비팀장이 쌍욕을 퍼붓기 시작했다.
“실적 같은 소리 하네. 그런 미친놈 하나가 얼마나 해로운데?”
“대체 어쨌기에?”
팀원이 묻자 경비팀장이 열변을 토했다.
“범인 하나 잡자고 차 안에서 오줌 똥까지 다 싸질러 가며 일주일을 버티질 않나, 탐문한답시고 주변 건달들을 전부 잡아다 감방에 처넣고 정보를 털지 않나, 썅, 족보도 없는 새끼들 다섯 조직을 삼 일 만에 다 털어서 잡아 넣은 놈들만 서른이 넘어. 그뿐인 줄 알아?”
질린다는 듯 계속 말을 이어 가는 팀장을 보며 팀원은 여전히 얼떨떨하기만 했다.
“……씨팔 그 증거 얻는다고 쓰레기 십오 톤을 뒤진 미친놈이야. 그런데, 그 짓 하고도 모자라서 다 끝낸 사건에 동료가 좀 살짝 실수해서 범인 하나 빼트렸던 거 가지고 게거품 물고 주먹질해서 개처럼 끌고 간 상도덕도 없는 새끼야!”
“지, 진정하시죠.”
“여하간 개새끼라고!”
그러더니 결국 씩씩거리며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팀원이 주변 동료들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야, 이건 영화에서나 나오는 훌륭한 형사 그런 거 아니냐? 내가 잘못 들은 거야?”
“쯧.”
동료들이 혀를 차는 모습에 그가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내가 뭘 잘못했냐?”
“옛날에 형사 시절에 거지같은 파트너 있다고 하셨잖아.”
“그러고 보니 들은 거 같은데요?”
“그 파트너가 서준모야.”
“아…….”
탄식을 흘리는 그에게 대답을 해준 이가 어깨를 두들겨 주며 다시 말을 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개처럼 끌려간 동료가 바로 우리 팀장이고. 이건 아는 사람만 아는 건데 경찰 때려친 게 아니라 뇌물수수 때문에 옷 벗은 거라더라.”
“……그건 지금도 그렇잖아.”
“뭐, 그런 거지.”
경비팀장은 여전히 선물을 좋아했다. 그리고 그는 최근 이 주변을 담당하면서 늘어가는 선물에 나날이 행복감을 느끼고 있었고 말이다.
“여하간, 악착같은 이 같으니 조심해야겠네.”
“그래야지.”
* * *
“…….”
서준모는 말없이 서류만 들추고 있었다. 그 옆에는 마찬가지로 최후배도 말없이 서류를 함께 살피고 있었다.
그들의 앞에는 양강도 경찰서장이 시립해 있었다.
“출세했어?”
서류를 살피던 준모가 한마디 툭 던지자 양강도 경찰서장인 김 영식은 조심스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하긴. 내가 병신이었던 거지.”
“아닙니다.”
“그래. 당연하지. 여기가 안이지 밖이냐? 내가 그것도 몰라 보이냐?”
“…….”
“허? 이젠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거냐?”
“죄송합니다.”
여전히 서류에 눈이 가 있는 준모였지만, 한마디 한마디에는 날이 서 있었다.
그 옆에 서류를 살피던 후배가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형님. 왜 그럽니까. 적당히 좀 괴롭히십쇼. 영식 선배 여기 있지 마시고 좀 쉬세요.”
후배의 말에 김영식 서장은 어설피 웃으며 대꾸했다.
“그, 그럴까? 그럼 나 일단 내 방에 가 있을…….”
“씨부럴, 총경 나부랭이들끼리 으쌰으쌰하는 거냐? 그래. 힘없는 관리관인 경무관이 뭔 의미 있겠냐.”
“아닙니다!”
“아 쫌!”
끝까지 트집 잡는 준모에게 후배가 버럭 소릴 질렀다.
“뭐, 임마.”
그제야 고개를 들어 올리며 살피던 서류를 한쪽에 덮어 놓았다.
그리고는 그제야 시선을 김 서장을 향해 돌렸다.
“꼽냐?”
“안 꼽습니다.”
“그럼 계속 이렇게 하자. 나도 이게 좋네.”
준모가 히죽 웃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담배를 집어 들며 물었다.
“담배 펴도 되지?”
“됩니다!”
동시에 김 서장이 라이타를 꺼내 불을 붙여 줄 준비를 하다가 눈이 마주쳤다.
“새끼 빠져 가지고. 누가 실내에서 흡연하라디. 법이 그리 시키디? 핀다고 해도 말려야 할 새끼가 불까지 붙여 주려 하네?”
“죄, 죄송합니다!”
여전히 트집이었지만 김 서장은 고양이 앞의 쥐마냥 쩔쩔매기만 했다.
“그만하십쇼. 너무한 거 아닙니까? 아무리 영식 선배가 형님이 다 잡아 놓은 연쇄살인마에게 수갑만 채우고 지가 다 한 거라고 하고 중간에 사고 친 거 형님에게 다 뒤집어 씌웠다고 해도 이건 아니죠.”
후배의 말이 이어질 때마다 김 서장의 얼굴은 점점 일그러졌다. 그리고 그 뒤에 있던 반장들의 시선이 점점 그런 서장을 향하고 있었다.
“그런가?”
“그렇죠. 뭐 영식선배는 그럴 만했잖아요. 자꾸 영식 선배 중간에 해처먹은 거 형님이 들추려고 하니까. 자기도 살려고 했던 것뿐인데 이해해야죠.”
“그렇군. 미안하다. 내가 많이 생각이 좁았다. 후배 새끼가 먹고 살기 힘들어서 그런 걸 이해 못 했네. 사과 받아 줄 거지?”
준모가 한쪽 입꼬릴 올리며 말하자 김 서장이 여전히 구겨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괘, 괜찮습니다.”
“그럼 다행이고.”
고개를 끄덕이는 준모 옆에 있는 후배가 서류를 거칠게 내려놓으며 구시렁거렸다.
“씨파, 한강변에 아파트 있는 놈이 먹고 살기 힘들면 난 굶어 뒈져야겠네.”
“야야, 얼마나 없으면 한강변에 집을 샀겠냐. 홍수 나면 위험한 곳이잖아.”
결국 후배도 한통속이었다.
그때 준모가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김 서장.”
“예.”
“조사자료 잘 봤어. 열심히 했더라.”
“감사하니…….”
“이번엔 얼마 받았니?”
그의 질문에 김 소장이 당황한 얼굴로 답했다.
“그런 거 없습니다!”
“없어? 그럴 리가? 조사자료를 이렇게 이쁘게 꾸며 놨는데. 이야! 역시 노블리스 오블리제야. 상 줘야겠다. 대원그룹이 정신 차렸나 보다.”
준모의 말에 김 서장이 쩔쩔매며 입을 열었다.
“특이사항이 정말로 없습니다. 없는 죄를 만들 수는 없잖습니까. 게다가 서울에서 안 좋은 이미지로 밀려온 거나 마찬가지라, 이곳에선 상당히 신경쓰고 있습니다. 또 이곳 주민들에게도 이미지가 좋고 말입니다.”
“그래? 하긴 없는 죄를 만들 수는 없지. 그런데 넌 항상 이게 문제야.”
준모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코앞까지 다가가 서서 눈을 맞췄다.
김 서장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조사는 말이지. 뭔가 문제가 있어 보이니까 찾아보라는 거거든. 그런데 넌 문제가 있어 보이는 곳을 유독 이쁘게 꾸미더라. 그것도 꽤나 정성들여서.”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
김 서장이 당황하여 입을 열었지만 그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투욱!
“큭!”
코앞까지 다가와 있던 준모가 그대로 그의 뒤통수를 잡아당기며 자신의 이마를 김 서장의 이마에 맞부딪혔다.
“너. 옛날에도 그러다 나한테 걸렸잖아. 그때 내 실수는 니 위에 있던 새끼도 같은 놈이라는 걸 몰랐을 뿐이고.”
“그, 그건 무혐의로…….”
“알아. 그래서 다른 걸로 당시 반장새끼 내가 처넣었잖아. 넌 다행히 다른 곳으로 전출 가서 살고.”
까드득!
점점 이마가 강하게 마찰하며 김 서장의 얼굴이 참담하게 일그러졌다.
마치 머리가 빠개질 것 같은 느낌에 김 서장이 무의식적으로 준모를 밀어내려 양손을 썼지만, 꿈쩍도 안 했다.
하지만 다행히 그의 머리통을 부술 생각이 없었는지 준모가 이마를 떼어 주며 그를 뒤로 밀어냈다.
털푸덕!
“어어쿠!”
김 서장이 비명을 내지르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 모습을 보던 뒤의 간부들이 서둘러 그를 붙잡아 일으켰다.
그중 하나는 인상을 구기고 있다.
“여기 우리 반장님들. 질문 좀 합시다. 대원그룹, 혹은 대원길드가 평판이 좋은 건 알겠는데. 그게 너무 깔끔해서 사실 더 이상하거든. 뭐 좀 생각이 다르거나 이상한 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아니다. 한 명씩 따로 봅시다. 먼저 그쪽 분부터.”
“저 말입니까?”
“예. 유지헌 경감님부터 봅시다.”
그렇게 주저앉아서 정신을 못 차리는 김 서장을 뒤로하고 준모는 서 간부들을 개인별로 따로 불러 면담을 하기 시작했다.
유지헌 경감은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아 서준모 경무관을 바라보았다.
그가 이곳에 온다고 했을 때 대충 소문은 들었다.
아니 소문이 아니라 해도 그의 행적은 전국의 경찰들이 잘 알고 있었다.
경찰 역사상 최다 진급과 최다 강등의 역사를 쓴 서준모의 이름은 이 바닥에서 레전드였다.
일부 추종자도 있을 정도였다.
“유 경감님은 저보다 선배님이시네요.”
서준모 경무관의 말에는 가시가 없었다. 정말로 공손한 어조였다.
“그렇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여기까지 나와서.”
“능력이 모자라면 몸이 힘든 법 아니겠습니까.”
유 경감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남과 북이 마물에 의한 강제적 통일을 이루고 난 뒤 끌려올라오다시피 했으니 좌천이나 마찬가지긴 했다.
물론 서장들은 험지를 돌았다는 가산점을 받기 위해 지원하기는 하지만, 실무자는 달랐기 때문이었다.
“아까는 이해하십쇼. 제가 좀 맺힌 게 있어서 갑질 좀 했나 봅니다. 뭐 이제는 꼰질러도 무서울 거 없으니…….”
서 경무관이 피식 웃는 모습에 유 경감은 따라 웃었다.
할 말 하고 내지를 때 내지르기 위해 진급한다는 인간이 바로 서준모라는 소문이 진짜라는 걸 눈으로 봐서 웃음이 나온 거다.
“괜찮습니다. 우리 서장님이 워낙 한솥밥을 좋아하셔서 왜 그런가 했더니 예전부터 그러셨었군요?”
“한솥밥? 걔가요?”
“예. 워낙 좋아하셔서 다 된 밥에 숟가락 꼽는 게 특기십니다.”
“아 씨. 그 버릇 아직도…….”
순간 서 경무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마치 아까 더할걸 하고 후회하는 얼굴이었다.
고개를 내저은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뭐, 그런데 우리끼린 대충 그런 거 있잖습니까.”
“예?”
“씨팔 할 말도 못하게 하면 속에서부터 끓어오르는 그런 거.”
서 경무관이 그의 눈동자와 마주하며 한쪽 입꼬릴 올렸다.
그런 그의 말에 유 경감이 너털웃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에이. 다르죠. 전 끓어오르기만 하고 말지만, 경무관님은 그거 터트리시는 거까지 하시잖습니까. 전 그 정도는 아니라서 경감 자리까지는 왔습니다.”
“그 참을성 존경스럽습니다. 흐흐흐.”
“뭘요. 한계를 그어 놓고 사는 것뿐이니까요.”
유 경감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뭐, 이번만큼은 그런 거 없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서 경무관의 말에 유 경감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경무관님 소문은 워낙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고, 방금 전에도 봤으니까요. 다만 대원그룹이란 게 동네 구멍가게가 아니잖습니까. 그래서 그 큰 소란을 일으키고도 여기 왔고 말입니다.”
유 경감은 현실적인 고민을 풀어내었다. 그러자, 그 고민에 서 경무관이 답변을 했다.
“걱정 마십쇼. 들이받는 건 저만 합니다. 밑에 안 시키는 게 제 신좁니다. 막말로 직위 오락가락 하는 거 단순히 일만 잘해서 할 수 있는 거 아닙니다.”
서 경무관이 히죽 웃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총대를 멜 때, 확실하게 메니까 가능한 겁니다. 적도 많지만, 그만큼 아군도 많으니까요.”
그의 말에 유 경감이 쓰게 웃으며 물었다.
“가능하겠습니까?”
“일단 지금 대통령 그 양반도 좀 막 나가는 사람이라. 그리고 제가 빽이 좋잖습니까.”
“을지부루 장군 말입니까?”
“예. 그 양반요.”
부루를 언급하자 유 경감이 진한 웃음을 머금으며 입을 열었다.
“뭐, 그럼 마음 놓고 썰 좀 풀어 보겠습니다.”
“환영합니다. 이 바닥에 오신 걸.”
서 경무관이 진한 웃음으로 양손을 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