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5화 경찰의 탈을 쓴 깡패새끼
* * *
왜애애애애앵!
띠띠띠띠! 띠띠띠띠!
사이렌 소리와 동시에 길을 걷던 사람들의 품에서 경고벨소리가 동시다발적으로 울리기 시작했다.
“에이씨!”
순간적으로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꺼내 들어 연동된 보행네비를 켰다.
“신속하게 움직이시기 바랍니다!”
거의 동시에 주변으로 군인들이 전개되기 시작하고 사람들은 빠르게 네비를 따라 뛰기 시작했다.
“애들 잘 챙겨!”
군인과 경찰들은 학생들과 혹은 아이들을 동반한 엄마들을 도와 가며 이동을 보조했다.
“아니 요즘 왜 이래?”
“젠장, 주식 또 떨어지겠네.”
실제상황임을 인식하면서도 누구는 주식이 떨어질 걸 걱정하고 누구는 귀찮음을 표현했다.
“What?”
함께하던 외국인은 창백한 얼굴로 이런 한국인들의 반응에 어이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뭘 왓이야. 빨리와. 가자. 이쪽이야.”
“아, 아니…….”
그러면서 그 외국인은 자신을 이끄는 한국인 동료를 보며 혀를 찼다.
“너네들은 머리 위로 미사일이 떨어져도 아파트값 걱정할 인간들이야.”
“인정. 너도 머리 위에서 수틀리면 핵 쏜다는 놈들이랑 반세기 이상 동거하다 보면 이렇게 될 거다.”
“Shit…….”
외국인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동료들을 따라 이동했다.
그렇게 순식간에 고요해진 거리에 마물들의 괴성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 소리를 들으며 각자 자리에 배치된 군인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와, 요즘 왜 이럽니까? 일상이 오대기네.”
“몰라. 우리뿐이겠어. 다 그렇지 뭐.”
-치익!
“예.”
-폐급 하나, 그리로 간다. 대기해.
“예. 폐급 하나!”
대답과 동시에 주변으로 알리자 군인들이 일제히 긴장한 얼굴로 길을 주시했다.
다섯 명이 한 조인 듯 두 명은 정면의 길을 주시했고, 두 명은 좌우 하늘을 살폈다.
마지막 한 명은 후방을 주시하며 살피기 시작했다.
기본 포메이션이었다.
폐급이라 해도 건물을 디딤발 삼아 이리저리 뛰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전방에서 총소리가 울려왔다.
투투툭! 투투투툭!
“3분대가 먼저 본 거 같은데요?”
“조심해. 통과할 수도 있고. 또 한 마리가 아닐 수 있으니까.”
하지만 오래지 않아 바람 빠지는 듯한 총소리가 그치고 상황종료 무전이 날아왔다.
“주변정리하고, 경계이동한다.”
무전을 받은 군인들은 이동을 하면서 주변 수색을 시작했다.
만에 하나 남아 있을 마물을 대비하여 하는 행동들이었다.
그렇게 이날의 일상도 이렇게 지나갔다.
* * *
한국에 나와 있는 각국의 기자들은 서로 최근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마엘. 한국만 빈도가 유난히 높아졌어. 위험한 거 아닙니까?”
“그랬나?”
프랑스 기자인 마엘은 후배기자인 리암의 질문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생각해 보니 확실히 최근 들어 잦아진 느낌이었다.
“아직 본국에선 한국 내 국민들에 대한 소개령 같은 게 없는 겁니까?”
“푸하핫!”
리암의 질문을 들은 마엘은 크게 웃음을 흘렸다.
리암의 이야기를 들었는지 주변 몇몇 외신 기자들이 비슷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왜 웃습니까? 이 정도면 심각한 상황입니다.”
“아니, 뭐 심각한 건 맞는데. 이 상황에서 본국으로 돌아가면 좀 안전해질 거 같고?”
“예?”
“여기보다 빈도가 낮은 유럽이 지금 어떤 상황인지 몰라?”
그의 질문에 대답을 하려던 리암이 말문을 닫았다.
하루가 머다하고 죽어나간 사람들과 피해를 입은 지역 그리고 248시간이 지나도록 도시가 통제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반해 이곳은 달랐다.
비록 최근의 상황은 한두 시간 안에 클리어 되기는 했지만, 아무리 마물들의 숫자가 많고 규모가 있어도 다섯 시간을 넘지는 않았다.
비교대상이 아니었다.
“여긴 동네 노인정에 있는 노인들도 최소한 군사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야. 대침식때 어떤 나라가 가장 먼저 안정화 됐는지 기억 안 나?”
“그야…….”
“게다가 여긴 균열 때도 마트 배달을 하는 나라라고.”
“끙.”
할 말이 없어진다.
아파트나 동을 중심으로 물자배달이 이루어지는 걸 보고 처음에는 얼마나 어이없었나.
그런데 그 덕에 이 특이한 나라의 준비성에 혀를 내둘렀다.
심지어 각 동 단위마다 물자를 비축해 놓은 창고가 있었고, 또 도시 인근에 준비된 대피소에도 마찬가지로 물자가 비축되어 있었다.
마치 전국이 전쟁을 대비해 놓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옛날에 말이야. 대침식 이전에도 한국인들 사이에선 이런 농담이 있었지. 명동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모으면 한 시간 안에 완편된 대대병력을 모을 수 있다고.”
“그거 연대병력 아니었어?”
“기계화 부대 운용도 가능할걸?”
그의 말에 다른 국가의 기자들이 농담처럼 한마디씩 던졌다.
“이거 농담인 줄 알아?”
마엘의 말에 리암이 쓴웃음을 머금으며 대답했다.
“나도 루프 코리안의 전설은 압니다.”
“그래. 그런데 그게 진짜라는 거지. 게이머의 성지를 우습게 보지 말라고.”
“거기서 그게 왜 나와?”
“크크큭!”
또다시 웃음이 튀어나왔다.
하루가 멀다 하고 전국 각지에서 마물들이 튀어나오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이곳에 오래 있었던 기자들은 마치 익숙한 듯 농담 따먹기를 하고 있었다.
“위험하지만, 여기가 위험할 정도면 전 세계 어디든 위험하지 않을 곳은 없을 거야. 지금 이 전쟁은 핵이나 첨단 기술이 중요한 전쟁도 아니고 말이지. 거기에 이곳에는 그가 있잖아.”
“제너럴 을지?”
“그래.”
고개를 끄덕이며 한쪽에 작성중이던 기사를 바라보았다. 그 안에는 을지부루의 사진이 깔려 있었다.
“솔직히 가장 치열할지도 모르는 곳도 이곳이지만, 어쩌면 가장 안전할지도 모르는 곳도 이곳이란 걸 잊지 말라고.”
마엘의 말에 리암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 * *
양현재 대통령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확실히 효과가 있군요.”
각지의 대피 시간과 현황에 대해 올라온 통계자료를 살피고 있었다.
경고가 울리면서 거의 조건반사처럼 사람들이 지정된 대피소로 이동했다.
심지어 각 직장에 다니는 예비군들은 준비된 자리로 이동해 거점 점령까지 한다.
일상이 전쟁이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물론 총기류에 관한 보관은 아직도 철저히 하고 있었지만, 아직 따로 사고가 나지는 않았다.
이건 그나마 다행이었다. 만약 이런 사고까지 벌어진다면 정치적인 부담은 더욱 크니 말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해외에서 연락이 자주 들어오고 있었다.
잦아진 균열에 대해서 우려의 시선을 보내는 것이었다.
유독 한국에서만 최근에 마물의 습격이 잦아진 것에 대해 의심 반, 걱정 반인 통신들이었다.
그렇다고 그걸 곧이곧대로 말해 줄 수는 없었다.
정치적 약점을 동맹국이라고 해서 함부로 알려 줄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나마 다행인지 불행인지 각국의 침식지에 점점 이상 변화가 관측되기 시작했다.
딱히 계측을 하지 않더라도 기존 침식지들이 빠르게 옅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을 재침공이 임박했다는 증거로 연구소에서는 알려 왔다.
거기에 미국에 있는 마계의 탑이 점점 활동이 빈번해지고 있었다.
그 때문에 미국의 긴장강도는 더없이 높아지고 있었다.
“준비는 아무리 해도 모자란 거지만…… 기왕이면 좀더 오래 걸리면 좋겠군.”
그로서는 그저 적들의 침공이 더 늦어졌으면 하고 빌 뿐이었다. 시간이 주어질수록 이쪽이 조금이라도 더 준비를 할 수 있으니
다만 그걸 상대도 모르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불안할 뿐이었다.
* * *
“염병.”
약간 서늘해진 공기를 느끼며 서준모는 구시렁거리며 차에서 내렸다.
“뭔 욕부터 싸지릅니까.”
“닥쳐.”
그의 옆에는 최후배가 있었다.
“아, 이거 어색해.”
그 뒤에는 천유화가 구시렁거리며 바지가랑이를 잡아 당겨 내리고 있었다.
꽉끼는 청바지가 영 어색한 모양이었다.
“변태요? 자꾸 거기 잡아 내리게?”
“츄리닝이 좋은데. 굳이 이런 걸 줘서.”
“그렇게 튀고 싶습니까?”
“뭐 그런 건 아니고.”
준모의 타박에 유화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유화는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호위병력이었다.
강림자이면서도 일상에 아무런 문제 없는 이는 을지부루의 병력들뿐이었다.
그중에서도 천유화는 무력에서도 든든했다.
“쯧, 더 족치면 굳이 내가 안 와도 되건만.”
그의 중얼거림에 준모와 후배의 등줄기가 축축해졌다.
사람이 할 짓이 못되었다.
일렬로 늘어서서 궁뎅이가 날아갈 정도로 맞는 것도 못 할 일이었지만, 대련을 빙자해서 처맞는 것도 정말 못할 짓이었다.
다만 그들은 부루와 오래해서인지 효율이 높아 그럭저럭 이제는 낮은 등급의 마물도 상대할 수 있게 되었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영화의 히어로처럼 된 건 아니다.
“여기가 양강도라고?”
유화의 질문에 준모가 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예. 저게 백두산입니다.”
“저건 변한 거 없어 보이네.”
“그렇……습니까?”
“뭐 몇 번 와 본 적 있지.”
“저길요? 등산이라도 하셨습니까?”
후배의 질문에 유화가 씩 웃으며 대답했다.
“호랑이가 그렇게 좋다고 해서. 용돈벌이도 할 겸. 와서 한두 마리 잡고 가고 그랬지.”
“……호랑이도 잡아 보셨습니까.”
“가끔?”
유화의 대답에 후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거 호랑이가 울면 막 지린다던데. 진짭니까?”
후배의 질문에 유화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지리면서 우는 호랑이는 봤는데.”
“…….”
“…….”
유화의 대답에 둘은 할 말을 잃었다.
그는 뭘 물어도 넘사벽이었다.
“그럼, 숙소로 안내해. 드라마나 보고 있을테니까.”
겉으로 티가 안 나지만, 강림자인 덕에 걸릴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기에 인근에까지만 와서 대기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더 볼 게 있습니까? 사극은 다 보신 걸로 아는데요?”
후배의 질문에 유화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사극은 무슨. 요즘은 그거 몰아 보는 중이야.”
“뭐요?”
“사랑의 비상착륙.”
“그런 것도 봅니까?”
“이 동네 망하기 전에 찍은 거라며? 잼나드만. 여하간 빨리 가자. 보다 말아서 빨리 가서 이어서 봐야 해.”
“예, 예.”
유화의 말에 둘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경찰? 또?”
대원그룹의 경비팀장은 인상을 찌푸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동안 계속 귀찮게 굴다가 한 동안 조용하다 싶었는데 또 경찰이 왔다는 것이다.
경찰이 있는게 뭐 이상한 일인가 싶지만, 그 경찰이 서울에서 파견 나온 것이라는 게 문제다.
“목적은?”
“별일은 아니라는데. 일단 주시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좀 수상한 이들이라서 말입니다.”
수상하다는 말에 경비팀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군데?”
“아실 겁니다. 서준모라고.”
“그 경찰의 탈을 쓴 깡패새끼?”
서준모라는 이름은 여러모로 유명한 모양이었다.
이름을 듣자마자 바로 튀어나오는 것을 보니 말이다.
“예.”
“특수 연구동 근무한다고 하지 않았어?”
“저번에 연구동 앞에서 한따까리 했다던데요?”
“누구랑?”
“기자들요.”
기자들이라는 말에 경비팀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 미친개가 똥을 참지.”
“아십니까?”
“알지. 그 인간.”
경비팀장 역시 경찰 출신이기에 그를 잘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