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4화 가끔 웅삼이도 도움이 된다.
양현재 대통령의 말은 지금 실시간으로 전달되고 있었다.
각 영상에 있는 이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초췌했다.
그중의 일부는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는지 눈 밑이 거뭇하기까지 했다.
이후로도 심각한 대화가 이어지다가 잠시 휴식을 취하자는 말과 함께 양 대통령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동유럽 연합 쪽은 아직 연락이 안 되나?”
“아직입니다. 러시아 쪽에서도 항공정찰을 시도했다가 조금전 연락이 끊어졌다고 합니다.”
그 말에 양 대통령의 얼굴에 수심이 드리워졌다.
“일주일 만의 화상회의 이건만 또 세 곳의 연결이 끊어진 건가.”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생존한 국가들은 일주일마다 연락을 유지하며 비상시국에 관한 논의를 이어 갔다.
그런데 연결을 할 때마다 한두 곳이 줄어들고 있었다. 다발적인 균열이 다시 시작된 이후로 계속 이 모양이었다.
물론 그곳에 사는 모두가 죽은 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 화상회의에 참석이 가능한 곳은 그나마 국가의 기능이 멈추지 않은 곳이라는 증거였다. 그러나 연결이 끊어졌다는 건 그 기능이 무너졌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였다.
문제는 이렇게 한 국가가 무너지면 인근 국가들에게도 위기가 밀려온다는 것이다.
“이럴 때는 주변 국가들이 중러일이라는 게 다행입니다.”
차준우 사령관이 씁쓸한 표정으로 입을 열자 양 대통령이 허탈하게 웃었다.
“그러게 말이오.”
물론 일본은 반 토막이나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일본쯤 되니 그 정도가 되고도 버티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되살아났던 세계의 경제도 지금 곤두박질치고 있고…….”
양 대통령이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대침식 이전과 같이 미국이 기침을 하면 전 세계가 몸살을 앓을 정도는 아니었다.
각국 스스로 자급을 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 내면서 언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는 일에 대비를 했다.
그 덕에 이전과 같이 붕괴로 이어질 정도는 아니긴 했다는 게 위안일 뿐이다.
“미국쪽 언론이 심상치 않던데.”
“아직은 차단이 잘 되고는 있습니다.”
“우리가 문제인가.”
“사실 우리도 이 정도면 선방하는 것 같습니다. 워낙 신뢰도가 떨어져 있는 부분이 있어서…….”
“허허.”
청와대 비서관의 설명에 양 대통령은 헛웃음을 흘렸다.
위로 아닌 위로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정보통제를 하는 건 아니었다.
다만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순차적으로 풀어야 하는 부분이 있었다.
이젠 균열 등의 사건에 익숙해졌다지만, 대침식 당시의 기억이 아직도 선명했다.
그렇기에 적정선의 균형이 틀어지는 순간 혼란이 찾아올 수 있었다.
“각 대피소의 식량 확보는 다 끝난 것인가?”
“예. 그리고 비축 무기고도 함께 있습니다. 그런데 조금 논란이 되는 부분이…….”
“논란?”
양 대통령이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자 비서관이 미리 가져온 것을 양 대통령의 앞에 내밀었다.
작은 주머니와 신소재로 만든 듯한 새총이었다.
새총을 보는 순간 양 대통령이 혀를 차며 확인하듯 질문을 던졌다.
“이거 설마?”
“예. 맞습니다.”
주머니에는 은빛을 띄는 손톱만 한 구슬이 들어있었다.
“은과 마물의 소재로 만든 겁니다.”
“이게 은이면 상당히 비싸지 않는가?”
금에 비할 바가 아니라지만, 은은 역사 속에서 한때 세상의 기축통화나 마찬가지였던 때가 있었다.
그걸 새총에서 쓰기 위해 만들었다는 것이 아이러니했다.
“그렇긴 합니다만, 일단 중심부에는 은과 마물의 뼈의 합금은 아닙니다.”
“그럼?”
“무게를 늘리기 위해 납 같은 것을 넣은 모양입니다.”
“흐음. 굳이 이걸 왜…….”
지금 안 그래도 공기총과 같은 것들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대침식 이후 총포 관리법이 그나마 느슨해진 덕이다. 그런데 다 마물을 상대할 수 있는 방법이 알려지면서 더욱 인기를 끌었고 말이다.
“의외로 새총과 같은 것들이 사거리도 길고 파괴력이 좋습니다. 공기총의 저지력보다는 높다는 게 인기의 요인 같습니다. 거기에 공기총보다 소지하기 어렵지 않고 또 쏘기도 쉽고 말입니다.”
“폐급 마물들을 이용한 듯한데. 군에서 사용하기에도 빠듯하지 않는가?”
“그렇습니다만, 그래도 새는 게 있는 모양입니다. 북쪽에서 주로 나오기도 하고…….”
“으음.”
고심하던 양 대통령이 고개를 털더니 비서관에게 입을 열었다.
“일단 알았네. 다만, 알면서 모른척 하는 게 좋겠군. 다만 이거 가짜도 판칠 거 같은데.”
“그렇긴 합니다. 그게 더 큰 문제라.”
“그것만 철저히 단속하는 쪽으로 가야겠군. 어차피 모두 막지 못한다면 그게 낫겠지.”
또다시 회의를 할 안건이 나왔다. 양 대통령은 한숨을 내쉬며 다시 몸을 일으켰다.
잠시 휴식시간이 끝이 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참, 연구동쪽은 몇시 약속이지?”
“회의 끝나고 밤 11시에 이동하시면 됩니다.”
“알겠네.”
밤 11시라는 말에 양 대통령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눈 밑에 담긴 다크서클이 유난히 불쌍해 보였다.
* * *
“바쁘다면서 뭐하러 온 거간?”
을지부루의 질문에 양현재 대통령이 어색하게 웃었다.
처음 봤을때는 나름 공손했다.
그러나 대통령이 왕과 달리 선출직이라는 걸 안 후부터는 맘편히 대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일하라고 뽑은 거니 머슴 같은 거 아니겠냐며…….
어차피 그에게 대접받으러 온 게 아니기에 양 대통령은 여기 온 목적을 말했다.
“무언가 조짐이 따로 있는지 궁금해서 말입니다.”
어차피 조짐이 가까워진다면 연락이 왔겠지만, 그래도 직접 듣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놈들의 목적이 모호한 상황이라 아직은 감이 안 잡히는 모양이야. 기래도 걱정 말라. 어차피 시작되기 전에는 징조가 강하게 온다니까네.”
“그렇습니까.”
지금의 상황은 전조다.
그 전조만으로도 일주일 사이에도 한두 개의 국가가 마비되고 있었다.
대침식 이후 국가들의 숫자는 오히려 늘었다.
단순했다.
국경이 무너지고 또 자구책을 위해 지역마다 뭉치다 보니 그런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지금의 중국도 예전에 비하면 쪼그라든 상황이었다.
기존의 중국 외에 신생 소수민족 국가가 7개가 더 생겨났으니 말 다했다.
그토록 역사를 고쳐 가며 소수민족을 붙잡고 안 놔주던 중국이 포기했으니 말 다한 것이다.
물론 이 대침식이 끝나게 되면 언제라도 다시 흡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 덕에 새로이 생겨났던 국가들이지만, 그만큼 기반이 약했기에 최근의 연이은 균열들에 하나씩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어쩌면 새로운 국가의 탄생을 못 막은 것이 아니라 막지 않은 것일 수 있었다.
전부를 다 지킬 수 없다는 판단에 말이다.
“그런데 옛날에는 어찌 했습니까?”
갑자기 옛날을 묻는 양 대통령의 질문에 부루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옛날? 뭘 묻고 싶은 거간?”
“뭐, 갑자기 쳐들어오고 하면 백성들은 어떻게 대응했는지 궁금해서 말입니다. 아무래도 지금 이 세상보다는 좀 더 전투가 빈번했을 때 아닙니까.”
그의 시대는 고구려 말기.
오랜 전란의 시대였기에 양 대통령의 질문은 현명한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도 전쟁을 대비하기는 하지만 또 다를 터이니까.
“별거 있간? 몸에 배는 수밖에.”
“그렇습니까.”
하긴 별것 있겠는가.
사실 딱히 뭔가를 바라고 던진 질문은 아니었다.
“우리나라 대피 훈련은 세계적이잖아요.”
그때 한쪽에 있던 고빈이 조심스럽게 질문을 했다.
“그렇긴 하지만, 훈련과 실제는 다르지. 또 훈련이라는 게 자네도 알지만…….”
“그건 그렇네요. 어슬렁거리는 게 일상이니.”
“그렇지.”
누구나 그럴 것이다.
전쟁을 대비한 민방위 훈련 같은 대피 훈련에 누가 적극적이겠는가.
다만 그거라도 하면 이럴 때는 저리로 뛰면 되는 가보다 하고 잔상처럼 기억에 남으니 그걸로 족한 거다.
그 덕에 실제로 최근 마물들이 불특정 균열로 튀어나올 때 톡톡히 효과를 봤으니까.
“매일 하면 되는 거디. 그걸 왜 고민하는 거디?”
부루는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물었다. 옛날과 달리 한순간에 위험이 울려 퍼지는 세상이다.
봉화나 말을 달려 위협을 알리는 세상이 아닌 것이다.
부루는 이해하지 못한다는 듯 말했지만, 빈은 그를 타박하며 대신 답했다.
“에이, 먹고는 살아야 하는데 계속 그러면 가능하겠어요?”
“뒈지면 다 끝인 거이야.”
“못 먹어도 죽는 게 사람입니다.”
“기정도로 먹고 살기 힘든 건 아니지 않네?”
둘이 투닥거리며 말을 주고받았다. 그때 빈이 답답하다는 듯 설명을 해 나갔다.
그런 빈을 보며 양 대통령은 애써 미소를 잃지 않았다.
어차피 지금 빈이 말하는 경제 활동이니 뭐니는 부루의 말대로 살고 봐야 할 수 있는 거긴 하니
“그리고 정치적으로도 이게 복잡하거든요. 사람이 간사한 게 목숨을 부지하는 데 가장 필요하다는 걸 알기는 하지만, 그게 과하면 따진다니까요?”
“기럼 구라치면 되디. 실제로 마물이 나타났다고 말이야.”
“아우! 정말……그러네요?”
순간 답답해하던 빈이 부루를 천재 바라보듯 보았다.
“응?”
양 대통령은 왜 이 타이밍에서 저런 반응이 나오나 하는 표정을 지었다.
“어차피 최근에도 한 달에 두세 번씩 꾸준히 튀어나오는데 기왕이면 대여섯 번으로 늘려도 좋겠네요.”
“그게 무슨…….”
“훈련이라고 안 알리면 되는 거죠.”
빈의 말에 양 대통령을 따라온 박용우 총리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게 되겠나?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그야…….”
“도주하는 그 순간에도 자내 같은 친구들이 카메라부터 들이대지 않겠나? 그런데 아무것도 안 나오면?”
그의 말에 빈이 풀이 죽은 모습으로 중얼거렸다.
“나 같은 놈들 때문이구나. 그렇구나. 내가 문제였어.”
“아, 아니 꼭 그게 그렇다는 게 아니라, 세상을 속이기가 어려워졌다는 말로다가…….”
빈의 반응에 박 총리가 쩔쩔매며 그를 다독였다.
지금 빈의 가치는 그 어떤 때보다도 높았다.
실제로 양 대통령보다도 빈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하라는 명령도 내려져 있었다.
물론 전투에 필수인 인물이기에 가둬놓을 수는 없지만, 최소한 그 외적인 상황에서만큼은 빈을 최우선으로 하라는 것이다.
그때 부루가 한숨을 푹 내쉬더니 주변을 둘러보았다.
“내래. 이건 별로 말하고 싶은 건 아니었는데 말이디.”
“뭔데요?”
빈이 궁금한 듯 부루를 바라보았다.
부루는 정말로 말하기 싫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말을 하려는 걸 보니 뭔가 중요한 내용인 것 같았다.
“진짜 구라는 진실 구 할 구 푼에 일 푼의 구라를 섞을 때 완성 된다던 놈이 있었디.”
“와, 명언. 그 아저씬갑다. 칼 들고 이백 명 썰었다는 현대 최고의 살인마.”
“이백이야 뭐…….”
빈의 설명에 이백 못 죽여 본 사람 있나 하고 말을 하려던 부루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어차피 침식지 싸돌아다니는 마물들 있디 않네. 그거 좀 풀어 놓으면 되디. 허구헌날 침식지서 훈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장에서 실전을 해 볼 필요도 있고 말이야.”
“오! 그거라면 누가 찍으면 오히려 진짜 같겠네요?”
“길티!”
순간 박 총리가 당황하며 입을 열었다.
“하, 하지만, 그게 사실이 아니란 것이 드러나면 그건 대통령께서 엄청난 정치적 탄핵을…….”
“대통령짓도 살아야 하는 겁니다. 그리고 까짓 이 정도 해먹었으면 유신독재 빼고 최장기간입니다.”
“대, 대통령님!”
순간 박 총리가 그를 바라보았다. 양 대통령이 웃으며 부루를 향해 엄지를 올렸다.
“좋은 생각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