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3화 알바?
“뭐 욕이야 할 수 있지. 다만 내가 들어 버렸네?”
“죄, 죄송합니다.”
“죄송은 무슨. 내가 씨펄 생각 없이 와서 욕 처들은 건데. 안 그런가?”
경찰청장 강현중의 말에 준모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에이. 그건 그래도 일단 드셨잖습니까. 당연히 죄송해 해야지요.”
“쿨럭!”
옆에 있던 창진이 사래라도 걸린 듯 기침을 흘렸다.
동시에 경찰청장 강현중을 따라 왔던 간부들의 얼굴들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청장을 앞에 두고도 내뱉는 말에는 거침이 없었다. 그 모습에 간부들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건 당연했다.
강 청장 역시 그를 보며 감탄했다.
“대단하다. 이야…… 어떻게 경찰 생활 했는지 모르겠네.”
“먹고 살려다 보니, 버티게 되더군요.”
준모의 말에 강 청장이 한숨을 푹 내쉬며 자리에 앉았다.
“뭐, 가장이 다 그렇지. 그건 그래도 나도 면이 있는데 좀 세워 주게나.”
“예.”
준모의 대답에 강 청장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은 들어서 알겠지?”
“들어서 알기는 하지만 왜 접니까? 뭐 보고서를 떠나 실물 보니 딱 어떤 놈인지 보이잖습니까.”
“어. 그러네. 그래서 좀 더 미안하고.”
강 총장의 말에 준모가 머리를 긁었다. 차라리 쌍욕을 하며 윽박지르면 안 한다고 버티기 쉽다.
그래서 나름 막나간답시고 말을 뱉었는데 이건 뭐 능구렁이가 따로 없었다.
심지어 미안해하는 얼굴을 보니 거짓 같지는 않았다.
만약 그게 연기라면 저 사람은 청장이 아니라 배우를 해야 했다.
“홧김에 사표 던진 줄 알았는데 마음이 이미 떠났구만.”
“떠난 지는 좀 오래됐습니다. 그래도 이렇게라도 붙어 있어야 나쁜 놈들 하나라도 더 잡지 싶어 남아 있긴 했지요.”
“지금도 나쁜 놈들은 많네만.”
“예. 그리고 혼자 버둥거리는 게 한계가 있다는 것도 알아 버려서 말입니다.”
“그런가. 하긴 쉬운 일은 아니지.”
잠시 대화가 끊어졌다.
강 청장도 준모도 서로 말을 아끼는 모습이었다.
강 청장이 숙고하는 모습을 보면서 간부들은 그저 침묵할 뿐이었다.
준모는 문 입구 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 최후배가 어설픈 미소를 입에 걸고 있었다.
그 얼굴을 보며 준모는 한숨을 내쉬었다.
‘쯧, 마음 약한 놈.’
물론 이해는 간다.
하지만, 준모는 이내 표정을 굳혔다.
“일단 여러모로 어려울 것 같습니다. 청장님이야 쿨하게 넘어가시겠지만, 뒤에 계시는 분들이 그게 안 될 겁니다.”
“그건…….”
준모의 말에 강 청장이 난감한 얼굴로 입을 열려고 했다. 마치 변명이라도 대신 하려는 듯.
하지만 준모는 강 청장보다도 먼저 말을 이어나갔다.
“아니 저분들이 문제 있다는 건 아닙니다. 막말로 제가 문제죠. 제가 청장님께 막말하는 것도 들었는데 저분들이 그걸 모른 체 하는 것도 말이 안 되잖습니까. 저라도 열 받죠.”
“이해해 주니 고맙네.”
“그래서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아무리 제가 막 나가는 놈이라 해도 제 상관한테 막말하고 버틸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사실 지금도 인생의 흑역사가 진행 중인 거나 마찬가진데.”
“그런 것치고는 강심장이구먼.”
강 청장이 웃으며 대꾸했다. 그러자 준모가 머리를 긁으며 대답했다.
“때려치웠잖습니까. 그냥 객기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그리고 좀 원망 한 스푼?”
“원망은 실컷 하게. 어찌되었든 지금은 자네가 필요하네. 사실 자네처럼 강단 있고 막 나가는 친구쯤은 되어야 상황에 따라 대응할 것 같기도 하고. 지금은 더욱 자네가 적합하다는 생각만 들 뿐이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준모의 말에 강 청장이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알바 어떤가?”
“경찰도 알바로 합니까?”
강 청장의 말에 준모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러자 강 청장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지금 상황이 이것저것 가릴 만한 상황이 아니라네. 게다가 군인도 알바로 하는 세상 아닌가.”
기동대를 말하는 것이다. 물론 알바라는 말이 조금 어폐가 있었지만 들린 말은 아니었다.
“으음.”
이쯤 되자 준모도 무조건 싫다고 하기 어려웠다.
“상황이 많이 안 좋은가 봅니다.”
“뭐, 다 떠나서 지금 이 일은 경찰청 단독 작전도 아니고. 다만 자네 소속이 원래 우리 쪽이었었기에 내가 온 것뿐이라네.”
그의 말에 준모가 옆의 창진을 바라보았다.
그가 쓴웃음을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확인이라도 시켜 주듯.
“이거 거절했다간 대통령님도 오는 거 아닙니까?”
준모가 피식 웃으며 묻자 창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요? 대통령님 앞에서도 욕 한 사발 하시게요?”
“알면 내가 하겠냐? 방금 전도 사고지…….”
준모의 말에 강 청장이 대신 답했다.
“그건 그나마 위로가 되는군.”
“청장님께 제가 무슨 억하심정이 있다고 그랬겠습니까. 여하간 아까 그건 사죄드립니다.”
“이렇게 면이라도 세워 주니 고맙군. 그러면 도와주는 건가?”
“막말로 환멸을 느꼈다지만 제가 몸담았던 곳 아닙니까. 게다가 지금 충분히 대우해 주셨습니다.”
그의 말에 강 청장의 얼굴이 살짝 밝아졌다. 그때 준모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아까 말씀 드린 것처럼 가능하다면 알바 비슷하게 하는 게 좋겠습니다.”
“정말 복귀는 안 할 건가?”
“예. 지금은 생각 없습니다. 앞으로도 위엣분들과 저 같은 놈들 사이에는 우선시해야 하는 가치가 다를 거니까요. 그렇다고 제가 잘했다는 건 아니고 말입니다. 정말로 이쯤 했으면 그만할 때가 되었구나 싶어서 그만한다는 겁니다.”
준모의 말에 강 청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존중하겠네. 그럼 이렇게 하지. 특수한 상황이니 특수본 팀장급 대우를 해 주겠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명령 체계는 중간 거치지 말고 청장 직속으로 하지. 사실 청장 직속이라 해도 내 역할은 청와대로 보고하는 정도가 다일 거라네.”
“알겠습니다.”
“지원이 필요하면 지역서나 경찰 특공대까지도 마음대로 부르게나.”
“지원요청만 하면 되는 겁니까?”
“아마 그래야겠지.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이거저거 재고할 시간은 없을 테니까. 선조치 후보고라고 생각하게나.”
“너무 과한 힘을 실어 주시는 거 아닙니까?”
“그만큼 심각할 수 있다는 판단이라서 그러네. 게다가 여기 있는 일반인들 중에는 군인들을 빼고는 자네가 가장 실력이 좋지 않은가?”
“뭐, 좀 운이 나빠서…….”
준모가 썩은 얼굴로 대답하자 창진이 입을 틀어막았다.
웃음을 억지로 참는 모습이었다.
“웃지 마. 그럼 그걸 운이 좋다고 해야 하냐?”
정말이었다.
군인들 실험이 성공하자마자 을지부루가 주변인들에게 은총을 내려 주었다.
그중에서 준모와 최후배는 거의 일순위에 가까웠고 말이다.
이유는 단순했다.
몸 건사하라고. 그리고 여차하면 판도라 멤버 대신 몸으로 때우라는 의도였다.
숨겨진 의도도 아니고 실제로 그렇게 말했다.
‘여차하면 대신 맞으라우. 뒈지지만 않으면 살려 줄 거니까네.’
준모는 강 청장의 말에 머리를 벅벅 긁었다.
정말 하기 싫은데 이건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할 때 나오는 표정이었다.
“수사능력이 중요한데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위험할 수 있고. 딱 그런 상황인 듯합니다?”
“그렇네. 소환자들은 처음부터 티가 나니 적합하지 않고, 이번에 함께 줄빠따를 맞은 군인들은 신체 능력은 좋을 수 있지만 아무래도 수사능력은 떨어지지 않겠나?”
“쟤도 쓸 만합니다만?”
준모가 창진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창진은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전 아직 장군님의 애정을 받지 못했잖습니까. 지금부터 맞아 가며 사랑을 확인하기에는 시간도 모자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솔직히…… 저보다 선배가 낫고 말입니다.”
“맞기 싫어서 나 칭찬하는 거 아니냐?”
“것도 아니라고는 못하는데 제 말이 틀린 건 아니잖습니까. 안 그러냐?”
창진이 후배를 보며 묻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죠.”
“그렇다잖습니까.”
창진이 다시 준모를 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때 준모가 후배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후배도?”
“죄송합니다. 전 복귀하기로 했습니다.”
“하, 이 배신자 새끼.”
“전 욕 안했잖습니까. 안 그래도 누가 말려 주길 바랐는데 딱이죠 뭐.”
후배가 실실 웃으며 대꾸하자 준모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맘고생이 좀 있었구나.”
“속 시원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청장님 뵈니까 마음이 흔들려서…… 죄송합니다. 선배.”
후배의 말에 준모가 피식 웃음을 머금었다. 원망하지 않겠다는 표정이었다.
“부탁하겠네.”
“알겠습니다.”
결국 할 수밖에 없었다.
* * *
오기원은 서늘한 표정을 지었다.
“쓸데없는 짓을.”
대원길드가 맡고 있는 지역으로 경찰이 자주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대한민국 땅에 경찰이 있는 건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문제는 중앙에서 내려오는 인원들이 그들의 영역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이야 막연하게 정보를 캐는 정도였지만, 그것만으로도 뭔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게 안 좋군. 맹목적인 놈들이 문제야.”
정신력이 약한 인간들의 경우 그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정도가 아니라 시킨 것 이상의 행동을 한다는 것이었다.
머리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행동하고 꼬리부터 흔든다.
마치 잘했다고 칭찬을 바라는 짐승마냥 말이다.
힘을 쓰는 것에 능숙하지 못한 부작용이기도 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이 지역은 이미 그의 영역이나 마찬가지였다.
말이 안 통하는 놈들은 세뇌를 하기도 했지만, 그 외에는 돈으로 매수를 했다.
그리고 이 지역에 있는 주민들 자체가 대원길드 즉 대원그룹의 경제에 종속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북쪽의 퇴역군인들을 영입하면서 자연스럽게 그들의 가족들이 모이고 또 그들을 대상으로 한 시장이 경제의 한 축으로 들어섰다.
이곳에서 대원그룹은 한 지역의 영주나 마찬가지인 상황이기에 외부의 침입자들이 하는 이상 행동은 이쪽에서 확인하지 않아도 알아서 보고를 해 준다.
그때 기원의 머릿속으로 목소리가 울려왔다.
회유와 교언의 군주 마켈그로이언이었다.
-준비는 다 되어 가는가?
그의 질문에 기원은 공손한 음성으로 답했다.
“예. 보내 주신 대로 직접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해당 지역의 인원도 이쪽에서 컨트롤 가능합니다.”
-아마 시작이 되면 더는 숨기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오래 걸리지는 않으니 약간의 시간만 벌면 되는 일.
마켈그로이언의 말에 기원이 힘주어 답했다.
“걱정 마십시오. 위치선정부터 모든 것을 고려했으니까요.”
-그래. 이제 곧 얼굴을 마주하겠구나. 나의 충실한 신하여.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겠나이다.”
* * *
화상 회의 중인 각국의 대통령과 총리 등의 얼굴은 심각해져 있었다.
그들의 시선은 브리핑을 진행하는 대한민국 대통령인 양현재를 향하고 있었다.
“문제는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더 되느냐입니다. 솔직히 그걸 가늠하기가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