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1화 변질되는 집회?
“지, 지금 뭘 하는…….”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인지 한 사람이 나서며 목소리를 높이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빈이 그에게 고개를 돌렸다.
당연히 화면에는 그의 뒤통수만 비춰졌다.
빈의 입이 움직였다.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지만, 정확히 알아볼 수 있는 단어가 나열되고 있었다.
‘아저씨 그러다 죽을 수도 있어요.’
살기 띈 미소를 보이며 입을 움직이는 빈을 보며 그는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땅바닥으로 깔았다.
그런 시위자들을 향해 빈이 사악한 미소를 머금으며 입을 열었다.
“왜요? 강림자가 구원자라면서요? 갑자기 입들을 왜 닫는데요?”
일부 집회자들이 눈을 피하는 사이 순수한(?) 교인들은 강림자들을 보고는 함성을 질렀다.
“와아아아아!”
그들 입장에서야 각자의 지도자들이 가르침을 주는 대로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었다.
그 사이사이에 끼어있던 전문 집회꾼들은 지금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을 눈치채고 당황한 것이고 말이다.
당황한 것은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지?”
“그, 글쎄요?”
집회를 주도하던 각 종교단체의 지도자들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혹시 대원에서 지원나온 거 아닐까요?”
“저 강림자가 대원 출신으로 보이나?”
그들의 시선에는 을지부루와 그 특유의 갑주를 입은 가우리의 병력이 비추어졌다.
그뿐 아니었다.
훈련소에서 함께 뛰쳐나온 듯한 강림자들과 소환자들이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것이 아무리 봐도 대원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저 이런 집회를 하라는 요청에 따라 했을 뿐이었고 자세한 내막이나 의도는 모르기에 당황한 것이었다.
물론 대충 느끼기로는 저들에게 호의적인 이유로 이런 집회를 여는 건 아니라는 것쯤은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 혼란스러운 것이다.
자신들의 집회에 당황해야 할 이들이 오히려 끼어들었으니 말이다.
심지어 폭력집회로 번지도록 유도하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지금 경찰병력과 그들 사이에는 강림자와 소환자들이 에워싸고 있었다. 지금도 그 숫자가 불어나고 있었다.
그래봐야 그리 두텁지 않은 인간띠 정도였지만, 그 정도만으로도 외부에 무력을 투사하기에는 불가능했다.
포위된 상황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거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대체 저건 또 뭐야!”
사방에서 사람들이 하나둘씩 몰려들고 있었다.
행색을 봐서는 동원된 인원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마치 옛날 여러 이유로 시작되었던 촛불집회처럼 자발적으로 모여드는 것이다.
질서유지를 위해 출동했던 경찰들과 만에 하나 있을 강경시위를 대비해 도착해 있던 이들은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서 있었다.
“저……. 이거 어떻게 합니까?”
“그, 그러게.”
집회의 규모가 순식간에 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심지어 일반인들도 속속들이 도착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모여들지 감이 안 잡혔다.
게다가 또다른 특징 하나.
“만에하나 거친행동들 나오지 않게 조심해.”
선임으로 보이는 이의 말에 곁에 있던 경찰이 허탈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우리 애들이 바봅니까. 저거 딱 봐도 전부 인방 같은데요.”
집회 인원들 사이사이에 마치 가로수처럼 솟아올라 있는 셀카 봉에 메달린 스마트 폰들.
그게 뭘 의미하는지 모를 이들은 없었다.
보나마나 라이브 방송을 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이젠 폰 하나만 있어도 방송이 가능한 시대이기에 집회 관련해서 어떠한 소요사태가 있던지 증거조작이 불가능해진 시대다.
그때 위에서 연락을 받고 온 지휘관이 헛웃음을 흘리며 다가왔다.
“뭐랍니까?”
“뭐 질서 유지만 신경 쓰란다.”
“문제 없는 겁니까?”
“문제 있어 보이냐?”
“아뇨. 평범한 촛불집회같은데요.”
“그래. 아까랑 다르지.”
“그럼?”
순간 처음 도착해 집회인원을 에워싼 강림자와 소환자들을 기억한 경찰이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그래. 어차피 안쪽에 가둬져서 힘으로 뭘 하려 해도 안 될 거다. 그러니 질서 유지랑 차량 통제에만 신경쓰면 된다.”
지휘관의 설명에 다들 이해했는지 얼굴들이 한결 편해졌다.
갑자기 모여든 강림자들로 인해 분위기가 서늘해졌었는데 위에서 내려온 연락으로 인해 모종의 해결책임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살다 살다 이런 지능적 안티 집회도 처음이고, 그걸 이용하는 것도 처음이네.”
어느새 중앙에 모여있던 이들의 과격한 외침은 점점 파묻히고 있었다.
게다가 그뿐만이 아니었다.
급조되었다고 하기에는 짱짱한 무대가 한쪽에 세워졌다. 이게 가능한가 싶어 바라보았더니 강림자들이 무대시설물인 철골등을 번쩍 번쩍 들고 가볍게 내려다놓고 있었다.
인간 중장비가 따로 없었다.
그리고 완성된 무대에 설치된 음향설비는 집회에 동원된 것들을 가볍게 씹어먹고 있었다.
그런 음향설비가 사방에 설치되어 있었다.
마치 콘서트장을 연상하게 만들 듯 말이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와! 판도라다!”
순간 경찰들의 이목까지 빼앗는 판도라 멤버들이 무대위에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오늘 함께 이 땅을 위해 싸우는 분들을 위해 축제를 열어 봅시다!
“세인아! 삼촌이 있다!”
“제이야! 지금이라도 이혼해! 내가 더 잘 해줄께!”
누군가 장난스럽게 외침 말에 제이가 답했다.
-닥쳐! 잘 살고 있는데 누가 이혼을 부추기냐! 그럼 삼촌이 우리 남편 대신 밥하고 빨래하고 할 거야!
“헐? 그런 거였어?”
제이의 남편이자 국민터프가이의 현실이 알려지는 순간이었다.
“난 그래도 좋아!”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들의 입담에 다들 빠져들기 시작했다.
“예? 뭐라고요? 잘 안 들립니다!”
[밀고 나가라고!]
“못해요! 주변이 완전 꽉 막혔다고요!”
전화기속에서 거친 음성이 들려왔지만, 전화를 받는 이는 억울한 표정으로 항변했다.
[당장 제대로 안하면 종교인허가 없다고 알려! 알았어?]
“아, 알겠습니다.”
울상을 지으며 통화를 끊은 사내는 안간힘을 쓰며 교인들을 통제하는 각 집단의 지도자들이 있는 무대쪽으로 다가갔다.
* * *
“…….”
오기원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원래 동원하기로 했던 인원의 서너배가 모여 있는 장면을 보며 웃을 수가 없었다.
“어이가 없군.”
기원은 웃음을 흘렸다.
물론 좋아서 웃는 건 아니다. 하도 화가 나다 보니 이젠 어이없어서 웃음이 흘러나온 것 뿐이다.
그때 한쪽에 화면에 누군가가 잡혔다. 긴급투입된 방송사 인터뷰어가 누군가에게 다가간 것이다.
[고빈씨! 고빈씨는 왜 이 집회에 참가하신 겁니까?]
기자의 질문에 고빈이 방긋 웃으며 화면에 얼굴을 비추었다.
[소환자와 강림자들이 결코 적이 아니라는 걸 알리고 싶어서 왔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는 모든 소환자 강림자 그리고 군인들을 위해 모두가 응원해 주세요! 쏴리질러!]
[와아아아아!]
빈의 외침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함성을 내질렀다.
그때 빈이 다시 마이크를 잡더니 외쳤다.
[기원이형! 형도 와! 고기 윗동네에서 고생 많잖아!]
콰앙!
순간 화면의 한 가운데에 뻥하고 구멍이 뚫렸다.
머리통만 한 구멍과 함께 연기를 피어올리는 텔레비전 앞에서 기원이 보랏빛 기운이 맴도는 손바닥을 뻗고 있었다.
“또, 너냐?”
그저 강림자 하나 잘 만나 복받은 놈이라고 생각했던 게 바로 고빈이었다.
그런데 고비마다 나타나 제대로 똥물을 뿌리고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마물을 상대하는 소재개발에도 빈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같은 편일 때에도 화가 치솟는 상대였지만, 지금은 도무지 용서가 안 되었다.
“우리 세상이 되면 네놈부터 갈가리 찢어주마.”
기원의 눈자위가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 * *
“야이 견찰 새끼들아!”
누군가가 순간 돌멩이를 집어던졌다.
광장에 굴러다닐만한 돌맹이가 있을 리가 없었지만, 블록을 강제로 깨내 만들어낸 돌조각이었던 것이다.
심지어 한두개도 아니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수십여 개가 밖을 향해 던져지고 있었다.
그걸 보며 대원그룹이 심어놓은 사내가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하늘도 막을 수 있는지 보자.”
수십여개의 돌멩이들이 하늘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엇!”
평화롭게 질서를 유지시키던 경찰이 순간 놀라 외쳤다.
돌 한무더기가 투척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료영상에서나 볼 법한 과격시위의 한 장면이 지금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저게 경찰들에게까지 날아오는 게 아니라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시민들의 머리위로 떨어지게 생겼다는 것이다.
그때였다.
하늘에 보랏빛이 감도는 뿌연 막들이 만들어졌다.
터터터터텅!
“뭐, 뭐야!”
그건 마치 영화에서나 볼 법한 방어막 같아 보였다.
거기에 돌멩이들이 부딪히더니 도로 안쪽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 이게 어떻게 되는 거냐?”
순간 놀란 경찰들이 당황한 모습으로 안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퍼퍼퍽!
“어억!”
“악! 내머리!”
교단의 지도자의 부름에 집회에 참석했던 이들은 졸지에 돌벼락을 맞았다.
다행히 일부는 피했지만, 일부는 머리 등 팔이나 다리등 여기저기 돌조각에 얻어맞았던 것이다.
“저새끼가 던졌어요!”
그 순간 외부에 있던 소환자중 하나가 손가락으로 안쪽을 가리키며 외쳤다.
순간 돌에 맞아 피를 흘리던 교인들이 고개를 돌리자 다시 돌을 투척하려고 준비하던 사내들을 바라보았다.
“이런 개애새!”
피를 본 사람들이 일제히 반격에 나섰다.
“자, 잠깐! 이건 일부러 한 게…….”
피를 본 성난 군중들에게는 그들의 변명이 통하지 않았다.
이 순간만큼은 그들은 각자의 종교가 아닌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던 함무라비 법전에 충실해져 있었다.
“저거 빨리 진입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소요사태가 벌어지는 게 보이자 경찰들이 놀라 외쳤다.
그러나 지휘부는 침착한 모습이었다.
“일단 길부터 만들어. 안쪽에서 부상자랑 강경시위자들 대리고 나올 거니까.”
“예?”
이미 통화를 마친 지휘관의 말에 경찰들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아, 뭐해! 구급차 대기 시키고! 빨리 길 열라고!”
“예!”
다행히 경찰들의 요청에 시민들은 마치 바다가 갈라지듯 자발적으로 공간을 벌려 길을 만들어 주었다.
그 사이로 달려간 경찰들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안쪽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강림자들이 다친 사람들을 둘씩 양손에 들고 나오고 있었다.
어떤 강림자는 한 손에 두 명씩 멱살을 잡아 네명씩 끌고 나오고 있었다.
“아니 그렇게 거칠게 하면…….”
그때 누군가 나타나 외쳤다.
“둘은 부상자 넷은 진압대상!”
“예? 누구십니까?”
“나? 서 경위……가 아니라. 보면 몰라? 둘씩 안고 나오는 건 딱 봐도 부상자잖아!”
“아니 네 명씩 잡혀오는 사람들도 피가…….”
“저건 돌 맞은 사람들에게 쳐맞은 거고! 정당방위당한 거야!”
“아, 알겠습니다!”
“제대로 구분해! 알았어?”
서 경위였던 남자 서준모의 외침에 경찰들은 부산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와이씨! 놓으라고!”
과연 가까워져 오니 티가 확 났다. 딱 봐도 용역 일을 하는 이들이었다. 그런 이들이 멱살을 잡히고 얼굴이 벌개진 채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