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열제 부루강림기-178화 (178/305)

제178화 왕이 되는 길

“지금 나가시면 안됩니다.”

밖으로 발걸음을 향하던 헤게루이안을 경계병이 막아섰다.

그의 행동을 저지하기보다는 보호하는 쪽이었다. 아직도 밖은 기자들로 가득했던 것이다.

물론 을지부루가 한 번 난동을 피운 뒤로는 일방적인 악다구니를 쓰는 저급한 기자들은 줄어들기는 했다.

그렇다 해도 아직 많은 수의 기자들이 남아 있었다.

모든 기자들이 전부 문제 있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뭔가 이상한데.

“예?”

-뭔가 다른 냄새가 희미하게 느껴지는군.

헤게루이안의 말에 그를 막아섰던 군인이 안쓰럽게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안 씻으신 지 좀 되셨죠?”

그의 말에 헤게루이안이 자신의 팔을 들어 냄새를 맡았다.

-우욱!

순간 밀려오는 구토를 참아낸 그에게 군인이 안쓰러운 시선으로 말을 이었다.

“잠들도 못 주무시며 고생하신다고 들었습니다.”

-하아. 마력고갈이 너무 심해서 몸이 허해졌나 보군.

처음에는 마족의 창백한 외형적 특성에 적응하지 못했던 군인들이었지만, 부루의 사랑을 듬뿍 받고 난 뒤에 그들의 헌신(?)적인 치료행위 덕에 이제는 그들과의 대화도 익숙했다.

심지어 고마움도 느꼈기에 지금과 같은 스스럼없는 대화도 가능했다.

“들어가 쉬십시오. 당분간은 회복에 힘쓰셔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군인의 말에 헤게루이안은 그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고맙군.

물론 그들이 이쪽 지역을 담당했던 것은 아니기에 직접적인 전투를 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얼마전까지 침략자 입장이었다.

그런데 이들은 한동안 부대꼈다고 걱정까지 해 주고 있었다.

생소한 감정이었다.

비록 미국에서 오기 전에도 나름 대우를 받았지만, 이런 감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얼마전 군인에게 받았던 파이인지 뭔지에 프린팅 되어 있던 문자를 물었던 기억이 났다.

‘그거요? 정입니다. 이게 참 설명하긴 뭐한데…….’

당시에는 설명을 들어도 뭔지 몰랐었는데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았다.

그들의 시선에서 배려에서 조금씩 단순한 호의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들이 있었다.

심지어 식당 아줌마들이라는 인간들은 혀를 차며 ‘고향도 못 가서 어떡하니? 불쌍해라.’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과민했나 보군. 고생들 하게. 어디 몸 안 좋은 곳 있으면 언제든 부탁하고.

헤게루이안의 말에 군인이 빙긋 웃음을 지어 주었다.

그를 뒤로 하고 헤게루이안이 안쪽으로 걸음을 옮겨 나갔다.

특수 연구동 입구를 지키고 있는 군인들을 보며 기자들이 툴툴거렸다.

“예전에는 그나마 얼굴이라도 볼 수 있었는데 그날 이후로 코빼기도 찾아볼 수가 없네.”

“그 난리가 났는데 얼굴을 비치겠어? 지금도 온 나라가 난린데.”

“그거야 그런데, 요즘 돌아가는 거 좀 이상하지 않아?”

“어디. 국회?”

국회라는 말에 의구심을 표했던 기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미친 듯이 싸우는데 정작 법안을 어떻게 하겠다는 건 없고 같은 당끼리도 의견들이 나뉘는 게 이상하잖아.”

“뭐……. 반대를 위한 반대 같은 게 아니라 생소하긴 하지. 각자 나름의 의견을 비치니까. 일부만 빼고.”

“이게 정상인 거 같은데 또 이상하단 말이지.”

안 그래도 최근 돌아가는 동향에 대해 다들 관심이 있어서인지 국회의 움직임이 다른 때와 다르다는 건 기자들이 가장 먼저 느끼고 있었다.

그때 한 기자가 인상을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그런데 저쪽에 고 국장이 직접 와 있는 거 봤어?”

“영우일보. 고 국장? 나도 봤지. 왜 여기에 그 양반이 왔는지 모르지만.”

“그러니까. 왜 여길 국장급이 오냐 이거지.”

기자들은 쑤근거리며 한쪽으로 시선을 힐끔거리며 던지고 있었다.

“내 말 명심하고.”

기존 대형 일간지 정도는 아니지만 거의 그에 준하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영우일보의 고연국 편집국장이 기자들에게 몇 가지 사안을 주지시키고 있었다.

“예. 그런데 저번처럼 시끄럽게 굴다가 빌미라도 주면…….”

한 영우일보의 기자가 던진 걱정 어린 질문에 고연국 편집국장이 무심한 얼굴로 대꾸했다.

“이 와중에 또 그럴까? 뭐, 그렇게 하면 그것 나름대로 재미있는 기삿거리가 되겠지?”

고 국장의 말에 기자들의 얼굴들이 잠시 굳어졌다.

마치 몸으로 때우고 기사 쓰라는 말처럼 들렸기 때문이었다.

그때 고 국장이 한쪽 입가를 끌어올리며 그들의 어깨를 하나씩 두들겨 주었다.

“농담이야. 이참에 우리 영우일보도 이름 좀 알리자는 거지.”

“그렇지만 여긴 좀…….”

“우리가 틀린 말을 하는 건 아니잖아. 사냥개를 잡으려면 주인이 있어야 하니까.”

생각보다 거친 고 국장의 말에 기자들은 입을 다물었다.

그쯤 되는 인사가 여기까지 오는 것 자체가 이례적이다.

당연히 고참 기자들도 그에게 말을 아꼈다.

“오늘도 조용할 것 같지만 잘들 지켜봐.”

고 국장은 닫힌 문을 보며 아쉬운 얼굴로 되돌아갔다. 그가 떠나가자 입을 다물고 있던 고참 기자들의 입부터 열렸다.

“갑자기 왜 저렇게 저돌적이야?”

“미치겠네. 무사 안일주의를 외치던 양반이 왜 사냥개 운운하냐고.”

그때 고참 기자 하나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뭐라도 잘못 처먹었나 보지.”

“예?”

“몰라서 물어? 대원에서 주기적으로 여물 받아 먹은 거.”

“거야 뭐…….”

“씨파. 우린 눈치껏 하자. 알았냐? 나대다가 기레기 취급 당하진 말고.”

고참 기자의 입에서 기레기 이야기가 나오자 다들 인상을 구겼다.

-분명 그곳에 가지 말라 했을 텐데.

들려오는 서늘한 음성에 고연국 편집국장은 몸을 움츠렸다.

“죄, 죄송합니다. 길드장님.”

-내 말이 우스웠었나?

“아, 아닙니다. 그저 더 잘해 보려고 애들 응원차…….”

-아직 착각 하나 본데…….

머릿속으로 들려오는 오기원의 목소리는 더없이 차가워져 있었다.

-아직도 내가 부탁하는 걸로 보이나?

“아, 아닙니다.”

-명령과 부탁을 이해 못하는 건가?

“아닙니다!”

고 국장은 마치 군기 잘 든 신병처럼 외치고 있었다.

-명심해. 하지 말란 건?

“하, 하지 않겠습니다!”

-다음에는 귀찮게 경고 따윈 하지 않을 거야.

오기원의 경고에 고 국장은 그대로 다리가 풀려 버렸다.

이전에도 기원이 부탁을 빙자한 명령을 내리기는 했었다. 그럴 때마다 고 국장은 투덜거리기 일수였다.

하지만, 같은 군주의 권속이 된 이후로는 투덜거린다는 생각 자체를 할 수 없었다.

그저 방금 머릿속에 울려 왔던 경고만이 그를 두려움에 몰아넣을 뿐이었다.

* * *

“멍청한.”

심상 연결을 끊은 오기원은 서늘한 욕설을 내뱉었다.

특수 연구동 혹은 단지라 불리는 곳에는 을지부루의 휘하로 넘어간 마족들이 있었다.

그들 중 고위의 마족이라면 영혼에 스며든 기운을 알아 낼 수 있었다.

그렇기에 엄금을 했던 것인데 그중 하나가 말을 듣지 않고 가까이 갔었던 것이다.

“지배력이 모자라군.”

기원은 쓴웃음을 머금었다.

자신과 같이 마켈그로이언의 영향을 직접 받는 경우에는 그렇지 않지만, 오기원이 조종하는 경우에는 좀 달랐다.

지배의 마족.

얼마 전 그는 처음으로 이름을 얻었다.

이름을 얻는다는 것은 그와 관련된 권능을 가진다는 걸 의미한다.

마켈그로이언이 그에게 축하의 인사를 보내올 정도였다.

권능을 가진 마족은 극히 소수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마켈그로이언이 회유와 교언의 권능을 가진 것처럼 말이다.

그는 지배의 권능을 얻은 것이다.

물론 지금은 힘이 약해 엄청나게 강력한 건 아니다.

대상의 정신력이 강하거나 자신에게 호감도가 떨어지거나 하면 통하지 않았다.

반대로 그에게 호감이 강하거나 심리적 굴복이 있거나 하면 지배력이 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

그래서 마켈그로이언의 도움을 받아 해당 개체의 생명력을 담보로 자신의 지배하에 넣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필요한 요소마다 활용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숫자가 일정 이상 되니 지금처럼 명령을 최우선하기보다는 잘 보이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자신의 판단을 우선시 하는 경우가 있다.

맹목적으로 변하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는 실수가 종종 나올 수 있기에 오기원이 더 강력한 통제력을 발휘했던 것이다.

“뭐 이 정도라도 일단 만족해야겠지.”

기원은 피식 웃으며 변화된 자신의 삶과 힘에 만족을 표했다.

* * *

사자의 대공이자 대군주인 게르하이오 폰 기오르그가 웃으며 질문을 던졌다.

-재미있는 일을 벌이던데. 잘 되어 가는가?

기오르그의 질문에 회유와 교언의 군주인 마켈그로이언이 입을 열었다.

-화끈한 것은 없지만, 보는 재미는 있사옵니다.

그런 마켈그로이언을 다른 군주들은 못마땅함과 불편함이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다고 마켈그로이언이 딱 그런 모양세였다.

그러나 그가 지금 만들어 내는 성과 자체를 무시할 순 없기에 그저 입을 다물 뿐이었다.

-그래, 일은 얼마나 진행되었지?

-약 70% 정도입니다만, 이제 선택이 좀 필요할 듯합니다.

마켈그로이언의 말에 기오르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선택?

-이대로 시간을 끌며 마물을 뿌리느냐 아니면 이쯤해서 적당히 침공을 시작하느냐입니다.

마켈그로이언의 대답에 기오르그가 흥미로운 시선을 보내며 물었다.

-왜 그런 판단을 내려야 하지?

-단순합니다. 마룡족을 주축으로 마수의 군주에게 투항한 마족들의 존재 때문입니다.

-흐음.

-그들이라면 우리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윤곽을 밝혀냈을 겁니다.

-그럴 수도. 그런데 그게 문제가 되나?

기오르그가 마치 알면 또 어떤가 하는 표정을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변수는 없으면 좋지 않겠습니까? 여기까지 온 원인 또한 변수에 있었으니까요.

마켈그로이언의 대답에 기오르그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렇군. 틀린 말은 아니야. 그리고 어차피 중요한 건 한 곳 아닌가?

-그렇습니다.

중요한 곳이라 칭한 곳은 바로 그들이 침략지로 삼고 있던 곳이었다.

-지금 복구된 연결 통로 하나를 빼면 총 네 곳에 탑을 세울 수 있는 상황이겠지?

-예.

-여섯 곳을 모두 하면 좋지만 뭐, 이 또한 나쁠 것 없지. 적에게 시간을 주는 것 또한 멍청한 짓이니까.

기오르그의 말에 다들 흠칫 놀라는 모습을 보였다.

적이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포식자 입장에서 침략하는 대상에게 적이라는 표현을 쓴 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적이라 표현하는 것 자체가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휘하 마족들의 놀란 반응에 기오르그가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큭, 그래도 군주 중 하나 아닌가? 게다가 꽤나 애를 먹였었고 말이야.

-그러하옵니다.

-거기에 도마뱀 놈의 정예전력 일부까지 흡수했으니 마수의 군주를 처단한 것과는 또 다르지. 거기에 이제는 권능을 활용하는 흔적도 보이기 시작한다고 하니…….

-그 부분은 명확하지는 않습니다.

-어쨌든 기오르가가 주변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준비가 된 각 거점을 연결하라. 이제 마지막 잔치를 벌여야 할 시간이 되었다.

기오르그의 말에 마족들이 일제히 부복하며 외쳤다.

-왕의 명을 받드옵니다.

그 모습에 기오르그가 진한 미소를 머금으며 중얼거렸다.

-그래. 이제 진정한 왕이 되어야지.

마수의 군주.

하나 남은 군주의 편린을 흡수하거나 그의 아래로 만드는 순간 그는 진정한 마계의 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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