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7화 분란만 커진다
기자들이 날뛰니 인터넷도 들끓었다.
[님들 이제 강림자 필요 없어도 되지 않나? 마물 잡는 무기도 나왔고, 워리어 플랫폼인가 뭐 비슷한 것도 있다며?]
└토사구팽이냐?
└님 뜻은 암?
└뇌절 쩌네.
└그럼 니가 그거 입고 총 들고 마물 잡든가. 그거 숫자 모자란 거는 아니?
└미친 거냐? 안 그래도 군인들 피해 커진다고 들고 일어나는데. 멀쩡한 총알받이는 왜 건드려?
└조상님들이 보우하사 어쩌고 할 때는 언제고. 망해야 정신 차리지.
└미친. 망하다니. 그게 할 소리냐?
그 와중에 국회의 대립은 점점 커져만 가고 있었다.
입법 찬반 논란을 더욱 키워가고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입법에 대한 논의만 오가고 제대로 된 의견이 모아지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동안 당대 당으로 펼쳐졌던 논란거리가 이제는 당 내부에서도 불협화음이 생겨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당연히 국민들은 오랜만에 보여진 국회의 모습에 그간 쌓였던 욕을 쏟아내는데 바빴다.
* * *
“대체 왜 그러는 거지.”
야당의 3선 국회의원인 유정현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동안 야당답지 않은 모습을 보이던 당대표가 이번에 제대로 목소리를 낸 것에 고무되어 유정현이 선두에서 여당과 현 정부에 대해 질타를 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내부에도 동조하는 인원들도 있었고 일부 야당에서도 뜻을 같이했다.
물론 일부는 자신과 같은 상황의 의원들임을 알 수 있었다.
바로 대원그룹의 후원을 받은 이들 말이다.
물론 유정현은 단순 후원만을 받은 건 아니었다.
유정현은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길드장님.”
-무슨 일입니까.
“아직 당내의 의견이 갈려 있습니다.”
-의견이 꽤 모인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당대표도 그렇고 말입니다. 뉴스를 보면 여당의 일부도 동조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말입니다.
“그렇긴 합니다만, 우리 내부의 뜻도 갈리고 그야말로 당을 떠나 의견이 사방으로 다 갈리고 있습니다. 국민들 눈치를 과하게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소신정치.
좋게 말하면 소신정치지만 나쁘게 말하면 사방에 다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국민의 뜻을 받든다고 하면서 여론에 따라 발빠르게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는 의원들의 숫자가 늘었던 것이다.
그걸 일부는 국민의 뜻을 받드는 소신정치라고 하는 것이고 말이다.
문제는 그게 이전에는 하나의 흐름처럼 인식이 되었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독이 되었다.
도무지 의견이 모이지 않는 것이다.
거기에 웃기는 건 처음에는 엄청난 화력으로 일방적이게끔 쏟아지는 듯 하던 기사들의 논조가 국회처럼 갈라지기 시작했다.
각자 하고픈 말을 쏟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 일부 개인방송을 하는 이들이 유튜브를 통해 기자들의 비위사실까지 폭로하는 대환장 파티가 벌어지며 기자들 역시 바짝 긴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형 언론사까지 날아갔던 기억은 기자들 뇌리에 선명했다.
심지어 일부 기자들은 기레기앱이라는 것에 박제되는 것을 두려워 했다.
일부는 개의치 않았지만, 제대로 된 언론사에 적을 둔 이들에게는 이 앱에 올라가는 것을 극도로 꺼려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대원에서 지원을 받은 기자들은 아랑곳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래도, 이정도면 나쁜 성과는 아니니 더 노력하십시오.
“예. 더 노력하겠습니다. 군주께도 모자란 모습을 보여 죄송하다고 좀…….”
극도로 조심스럽게 말을 뱉는 유정현에게 대원길드장 오기원은 짧게 답변을 보내왔다.
-알겠습니다.
“가, 감사합니다.”
그렇게 눈앞에 아무도 없음에도 허리를 숙인 유정현이 천천히 눈을 떴다. 누가 보면 전화기를 든 것도 아닌데 혼자 떠들었다고 미친놈 아니냐고 할 수 있었다.
헨즈프리 비슷한 게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다만, 눈을 뜨는 유정현의 눈가 위가 검보랏빛이 잠시 맴돌 뿐이었다.
* * *
“흠.”
방금 유정현의 보고를 받았지만, 국가부처에도 심어져 있는 이들에게도 비슷한 내용의 보고 뿐이었다.
심지어 검찰 쪽은 너무 조용했다. 이유는 관련 법안이 없다는 것 때문이었다.
사실 이쯤 되면 강림자는 아니더라도 주변인들에 대한 압박이 있을 법도 한데 말이다.
오히려 몸을 사리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검찰 개혁과 대침식 이후 무소불위의 권력은 없었지만, 이렇게까지 눈치를 보는 집단과는 거리가 멀었던 검찰의 행동으로 보기에는 좀 어려웠다.
“흐음. 아직 대통령의 영향력이 남아서인가?”
기원은 콧잔등을 찌푸리며 뭔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중얼거렸다.
“뭐, 그래도 불은 붙였으니 당분간 조심하겠지.”
기원이 이렇게 생각한 이유는 바로 특수 연구동과 훈련원이 거의 폐쇄되다시피 병력으로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 외부를 완전 격리한 것이다.
아예 논란을 차단하기라도 하겠다는 듯 말이다.
거기에 빈번하던 고빈의 방송 역시 최근에는 빈도가 많이 줄었다.
그 또한 안쪽의 정보를 훔쳐 볼 수 있는 정보였으니까 자주 챙겨 보긴 했었다.
“상관은 없겠지.”
기원이 한쪽 입가를 끌어올리며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창 밖을 바라보았다.
그의 영지나 마찬가지인 곳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것도 나쁘진 않지.”
기원은 궁금했다.
그 옛날 식민지를 지배했던 총독의 기분은 어떠했을까 하고 말이다.
“곧 알 수 있겠지.”
기대감 때문인지 기원의 입가에 매달렸던 미소가 점점 진해져 갔다.
* * *
“조용하니 좋네.”
서준모가 평안한 얼굴로 중얼거리자 고빈이 퉁명스런 얼굴로 대꾸했다.
“주변에 깔린 병력이 얼만대요.”
“그렇지?”
“오늘 교대 병력 온답니다.”
“뭐 쉬질 않는구나.”
“그런데 이번 오는 인원들이 거의 마지막일 거랍니다.”
“아쉽네.”
서준모의 표정에 아쉬움이 감돌았다.
부루의 은총을 받은 인원이 늘어난다는 것은 전력이 그만큼 늘어난다는 걸 의미했으니까.
그런데 그게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후두려 패는 만큼 계속 은총을 받는 인원이 무한대로 늘어가는 것이 아니었다.
여기서 더 늘어나게 되면 오히려 부루의 힘이 낮아지게 된다고 했다.
물론 보충이 되는 힘이기는 했다.
은총을 받은 인원들이 충성을 다하며 능력을 끌어올리면, 그 힘들의 일부가 은총을 내렸던 군주에게로 다시 흘러간다.
은총이라는 행위가 일방적인 나눔이 아니라는 의미다.
힘을 내려주는 행위이면서 군주 자신의 능력을 늘려 나갈 수 있는 수단이기도 했다.
다만 그렇게 일부의 힘을 회수하지 않은 상황에서 계속 은총을 내리다 보면 힘 자체가 바닥이 난다는 것이다.
한계가 있는 힘이라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실제로 군주들은 은총을 쉽게 내리지 않는다.
충실하고 강력한 힘을 피드백 받을 수 있는 대상만을 선정하여 나누어 주기 때문이었다.
충성의 크기에 따라 다시 쌓이는 힘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광신할수록 이득인 것이다.
그런데 부루는 자신에게 충성을 다하는 것을 목적으로 은총을 내리는 것이 아니었다.
전력을 올리자는 의도로 은총을 내린 것이다.
물론 이것 자체도 아예 손해는 아니었다.
충성과는 조금 다르지만, 믿음이라는 형태로 힘을 나누어 받은 군인들이 부루를 향해 조금씩 힘을 전달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
“시간이 더 있었으면 좋았을걸…….”
“뭐 그렇긴 한데. 실제 군주들은 은총이란 걸 몇몇에게 제대로 내린다며?”
“그렇다데요. 저번에 다른 마족들이 복속할 때는 다 자연스럽게 은총을 나누어 받았다는데, 그것도 일반적인 건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필요한 일부에게만 충성 서약을 받으며 힘을 나누어 준다더라고요. 그 아래는 그렇게 은총을 받은 마족들의 통제를 따르고요.”
“만약 우리 장군님도 그렇게 힘 조절을 하실 수 있었으면 좋았을걸.”
“그럼 세인이 누나가 펄펄 나는 것을 볼 수 있었을 겁니다.”
“아…… 돼지 목에 진주…….”
빈의 말에 준모는 쓴 웃음을 머금으며 말을 줄였다.
그렇게 강해져봐야 위험하다고 전장에 안 내보낼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얼추 해외가 천오백 정도에 국내가 삼천오백 정도랬죠?”
“전부 국내로 채웠으면 좋았을걸.”
“동시 다발적으로 준동할 거라잖아요. 어차피 우리나라만 막는다고 살아남는 건 아니잖아요.”
빈의 말에 준모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건 그렇지.”
“뭐, 일단 훈련이나 가죠?”
빈의 말에 준모가 한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켰다.
“오늘은 대련같은 거 하지 않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있다.”
“때론 소망은 소망일 때 아름다운 거에요.”
“누가 그런 개소릴 하디?”
“그냥 경험담?”
“…….”
빈의 대답에 준모는 똥씹은 얼굴을 했다.
방금전 대답을 하던 빈의 눈동자에서 살기를 읽었기 때문이었다.
“별로 경험하고 싶진 않은데.”
“이 또한 지나가리라.”
“아…… 씨파.”
빈의 말에 준모는 자신도 모르게 욕설을 흘렸다.
“왜 욕을 해요. 좋은 말인데.”
“내가 애들 그런 말 할 때는 좋은 의미였는데 막상 듣는 입장이 되니까 쌍욕이 나온다.”
준모의 대답에 빈이 히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인정.”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살살?”
“훈련 때 흘린 땀 한 방울이 실전에선 피 한바가지.”
“그 말이 맞다면 난 전투에 나가면 피 한 방울 흘릴 일 없겠다?”
준모가 비아냥거리자 빈이 히죽 웃어주었다.
“좋겠네요.”
“웃지마!”
준모가 울상을 하고 버럭 소릴 내질렀다.
연병장에 나가자 수많은 병사들이 사방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 사이로 강림자들과 가우리 병사들이 오가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마족 마법사들이 치료 마법을 뿌리며 오가고 있었다.
-내 마족인생에서 요즘처럼 치료 마법을 쏟아본 건 처음이다.
-빌어먹을, 이러다가 신관이나 성자 되겠다.
마족 마법사들은 치료 마법을 시전하면서도 저마다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치료마법이 꽤 늘었어.
-좋냐 그래서?
-아니 죽겠어. 찝찝해서 말이야.
파괴의 본능을 가진 마족이기에 치료마법은 상극과 같았다.
그런 이들이 치료능력이 늘었다는 건 일대의 사건이었다.
그때 헤게루이안이 퀭한 눈으로 햇볕을 쏘이고 있었다.
-여기 하늘도 짙은 보랏빛이구나.
헤게루이안의 중얼거림에 마족 마법사들이 그를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에는 하늘이 아직 푸르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마력 고갈이 심하다고 하시더니.
-물건 찍어내는 일만 하시니 당연히 허해지셨을 거다.
헤게루이안 뿐 아니라 중고위 마족 마법사들은 전부 동원되어 마갑주 생산에 갈려 나가고 있었다.
물론 이도 얼마 남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간 한 번에 각국에서 군인들과 함께 받은 혈액이 거의 다 떨어져 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점점 마물들의 불특정 침략이 잦아지고 있어, 헌혈 필요량 때문에 피의 공급이 끊어진 것이다.
그때 멍하니 휴식을 취하던 헤게루이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방향은 특수연구동의 입구쪽이었다. 마치 홀린 듯 그렇게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