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열제 부루강림기-176화 (176/305)

제176화 불이 활활 타오른다

양 대통령의 말에 각 정당 대표들은 이렇다 할 대꾸가 없었다.

그저 서류 넘기는 소리만 사각거리며 이어질 뿐이었다.

그런 그들이 듣거나 말거나 양 대통령은 한 십 년은 늙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대원길드가 대단하긴 한가 봅니다. 아니 그룹이라고 해야 하나? 이렇게까지 걱정해 주는 분들이 많을 줄은 몰랐습니다.”

양 대통령의 말에 당 대표들은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양 대통령은 머리를 긁으며 중얼거렸다.

“하긴. 이런 말하기엔 누워서 침 뱉기나 마찬가지겠죠.”

옛날처럼 비자금 챙겨가며 재계와 손잡던 시기는 지나긴 했지만, 그래도 대한민국을 떠나 전 세계를 봐도 재계의 도움 없이 정치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기업 즉 재계의 도움이 없이 경제 계획을 짜기도 어려운 건 당연한 일이고, 대침식 이후로는 관련 사업을 쥐고 있는 대원그룹의 도움을 받지 않고 운영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나마 합법적인 룰 안의 일이었기에 양 대통령이 대원 그룹과 길드를 찍어 누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해도 암묵적으로 그들의 도움에 이런 저런 국가적인 지원을 안 해 준 것은 아니니 어쩌면 합법의 탈을 쓴 거래라 봐도 무방했다.

“검찰도 알고 있습니까?”

“모르겠죠. 직보로 제게 온 서류들이니까. 그런데 이쪽에서 파악하기로는 그쪽도 만만치 않습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요?”

양 대통령의 말에 다들 한숨을 내쉬었다.

연관되어있는 중진들의 숫자가 두 자리 수를 훌쩍 넘어갔다. 정치권이 이런데 검찰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거 공개해야 합니다. 관련된 의원들 역시 모두 거론해야 하고 말입니다.”

의외로 제1 야당의 대표가 먼저 의견을 제시하고 나왔다. 어쩌면 숫자가 여당에 비해 적어서일지도 몰랐다.

“공감합니다. 이 상황에서는 그게 맞는 듯합니다.”

충격이 커서인지 여당의 대표 역시 같은 의견을 내비쳤다.

“빌어먹을 꼴랑 일곱 중에 둘이나 있다니…….”

그중에 군소 야당의 대표가 허탈한 듯 중얼거렸다.

여당 대표가 굳은 얼굴로 의견을 제시했다.

“이건 그냥 검찰 가지고 될 일도 아닙니다. 군을 동원해서라도 대원길드를 해산시켜야 합니다.”

대침식 이후 세상이 뒤바뀌었다 해도 유신시대 소리가 나올 법한 소리가 튀어나왔다.

“후우. 이건 뭐라고 반대도 못 하겠습니다.”

심지어 제1 야당 대표의 입에서도 비슷한 소리가 튀어나왔다.

물론 일부 군소 야당은 일을 크게 벌이지 말고, 일단 해당 지역 담당에서 대원길드를 빼고 난 뒤에 검찰에게 맡기자는 의견까지 나왔다.

그들의 반응에 양 대통령은 긴장이 살짝 풀어진 미소를 입에 머금었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이 자리에 앉은 후 처음으로 각 정당의 대표님들의 의견이 하나로 모아지는 것 같군요.”

그제야 당 대표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 또한 대침식이 만들어 놓은 위기시의 결집이었다.

물론 역사를 보면 위기 시에도 사분오열하기도 하고, 또 최근에 그런 양상이 없잖아 있었긴 했다.

그러나 그들도 다 생각이 있다.

대침식 당시 사분오열을 했던 정치인들이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전부 대침식 이후 벌어진 총선에서 갈려 나갔다.

그것도 처참하게.

매국노 낙인까지 찍힌 거다. 물론 이전에도 친일이니 친미니 친중이니 하는 소리로 매국 프레임이 찍힌 정치인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때와는 여파가 어마무시하게 달랐다.

언론도 그들을 받아 주지 못했다.

실제 한 대형 언론사가 그런 이들을 받아주며 그들의 글을 올려 주다가 미친 듯한 불매운동으로 인해 그대로 무너져 내린 건 유명한 사건이었다.

흔한 사건이었다.

언론을 불매하고 광고 올리는 기업을 불매하고.

문제는 전 방위적으로 행해졌다는 점이다.

대침식 이후 경제위기의 상황에서 벌어진 불매운동이라는 점에서 운도 좋지 못했지만, 망한 건 망한 거다.

그 이후 정치인들은 낄끼빠빠라는 말을 금과옥조로 삼았었다.

양 대통령은 굳은 얼굴로 또 다른 서류를 내밀었다.

“이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나가시기 전에 파기하셔야 합니다.”

“후우. 이건 또 뭐기에.”

“자꾸 이런 거 내미시면 제 명에 못 살 겁니다.”

긴장을 지우지 못한 당 대표들이 너스레를 떨어 보았다. 그들의 반응에 쓴웃음을 지은 양 대통령이 말을 이었다.

“최근 연구소 분석 글입니다. 이건 각국에서도 VIP들과 군 관계자 일부만이 공유하고 있는 내용이라고 아시면 됩니다.”

“으음.”

그들은 조용히 서류를 넘겼다.

하지만 그들의 얼굴이 굳어지는 대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일부는 손을 떨고 있었다.

“이, 이게 진짭니까?”

“미친!”

“허어…….”

내용은 단순했다. 하지만 그 파급력은 단순하지 않았다.

침공을 하고 있는 이들이 다 다르다는 건 최근에 밝혀진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로 뭉치고 또 지금 기존의 침략방식과 다르게 아예 이곳을 식민지로 만들기 위한 준비를 해 나가고 있다는 건 또 다른 충격이었다.

물론 에너지를 전부 뽑아가고 껍데기만 남는 것보다는 차라리 식민지가 낫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살아도 산 것이 아니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그리고 일제강점기라는 뼛속까지 새겨진 공통적인 아픔이 대한민국 사람들에게는 존재했다.

“씨팔!”

“정말 그 새로운 대군주란 자가 우리나라를 노린다는 게 맞답니까?”

“확률은요?”

“미, 미국이 아니라요? 그쪽은 탑도 있잖습니까! 최근에 다시 가동을 시작했다면서요!”

믿기 어렵다는 듯 그들이 쏟아 내는 말에 양 대통령이 힘없이 웃으며 대답했다.

“최대한 예상 범위를 좁히긴 했지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행위는 이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그자 때문…….”

“전장에서 이긴 장수를 팔아먹는 왕조시대의 얼간이들이 어떤 최후를 맞이했는지 기억 못 하시는 겁니까?”

“후우.”

“만약 그때 막지 못했으면 이미 우리나라는 사방에 손을 뻗고 있었을 겁니다. 제발 구원해 달라며 말입니다. 그리고…….”

양 대통령은 어두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대침식 때와 마찬가지로…… 아니 그때보다 더한 외면을 받았겠지요.”

“설마 그렇게까지…….”

“아프리카는요. 일부 동유럽 국가와 북유럽 국가는 지금 어떻지요? 아니 멀리 가지 않아도 되겠군요. 곁에 일본의 경우도 있으니까요.”

“…….”

모두 할 말을 잃었다.

“그래서 지금은 이 빌어먹을 인간들이 한곳이라도 막아 주는 것을 감지덕지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최소한 몰려오는 적은 막을 테니까요.”

양 대통령의 솔직한 발언에 다들 손바닥으로 얼굴을 비비며 마른세수를 했다.

이렇게라도 정신을 차리고 싶다는 듯.

그때 양 대통령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서 말씀드린 겁니다. 대차게 한판 하시자고요.”

“아까부터 말씀하시는데 대체 무슨 의도로 그런 말씀을 하신 겁니까.”

양 대통령의 말에 제1야당 대표가 피로한 얼굴로 질문을 했다.

“우리가 제일 잘하는 게 뭡니까.”

양 대통령의 말에 다들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음. 몸싸움?”

“큼.”

“후우. 이 와중에 무슨 소리십니까.”

제1 야당대표의 말에 다들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콧방귀 뀌며 입을 열었다.

“그럼 국회 이미지가 뭐가 있겠습니까. 단상에서 패싸움 하는 거 빼면 반대를 위한 반대. 거기에 꼬투리 물고 늘어지기. 솔직히 이거 우리만 그랬습니까?”

제1 야당 대표의 말에 여당 대표 역시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뭐, 이 시국에 농담 같은 소리지만 반론은 못하겠습니다. 대 침식 이후 그런 일들이 많이 없어지긴 했지만, 이미지까지 사라진 건 아니니까요.”

“솔직히 양 대통령님도 의원시절 청문회 때 책상 위로 뛰어 올라간 전적도 있잖습니까. 그때 날아 차다가 허공에서 들려서 끌려 나가셨잖습니까.”

“……혈기가 좀 넘치던 때라.”

“솔직히 백번 잘하다가 한번 못해도 쌍욕 먹는 게 정칩니다. 그런 걸 우린 매번 먹는 게 일이니 정치 잘한다는 소린 없을 거고. 이중에 답이 있을 거 같단 생각이 듭니다.”

길고긴 제1 야당대표의 말에 양 대통령이 입꼬리를 올렸다.

“뭐, 잘 보셨습니다. 비슷한 생각을 하신 것 같은데.”

“뭐 때론 정치란 쑈라고도 하는 법이니까요.”

둘의 대화를 듣던 각 당대표들의 얼굴들이 시시각각으로 굳어지기 시작했다.

* * *

100인치짜리 액정 티비 앞에 서 있던 을지부루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저거이 그 느와르라 부르는 거간?”

부루의 질문에 감탄사를 흘리며 보고 있던 고빈이 시선을 떼지 못한 채 대답했다.

“그 비슷하긴 하네요. 저걸 정치물로 보긴 좀 그러니…….”

“응?”

빈의 대답에 부루가 더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상식선에서 나라의 국정을 논하는 국회라는 곳에서 훅과 어퍼컷 그리고 엎어치기가 나오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예전에 다큐로나 보던 건데, 더 진화했네.”

빈의 말에 옆에 있던 경찰 때려친 서준모가 입을 열었다.

“그러냐? 난 추억 돋는데. 세대차이가 이런 데서 나는구나.”

“굳이 이거 아니어도 세대차는 많은 부분에서 찾아 볼 수 있어요.”

“그런가? 하긴 네놈 하는 짓만 봐도 세대차 느껴진다.”

“왜요?”

빈이 묻자 서준모가 한쪽 입꼬릴 올리며 대답했다.

“옛날엔 너 같은 애들이 그렇게 말하면 어른한테 쳐맞았거든.”

준모의 말에 잠시 입을 다물고 있던 빈이 다시 영상으로 시선을 돌리며 건조한 음성으로 한 가지 제의를 했다.

“이거 끝나고 대련이라도 하실래요?”

“확실히 이것만 봐도 세대차.”

“세 대만 때릴게요.”

“말장난도 세대차.”

“라임이죠. 이건. 같은 말 다른 표현 세대차.”

그들의 대화를 듣던 부루가 조용히 대부를 들어올렸다.

빠박!

굉장한 소리가 난 뒤에 밖에 있던 군인이 당황한 얼굴로 들어왔다.

“무, 무슨 일이심까!”

“일 없어야. 주접떨다 쳐맞은 거이니까네. 일 보라우.”

열린 문으로 발걸음을 내딛는 부루의 말에 군인은 사이좋게 엎어져 있는 빈과 준모의 뒤통수에 난 커다란 혹을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알겠슴다.”

마치 이런 건 익숙하다는 듯 그대로 문을 닫고 나갔다.

“아씨. 말은 우리끼리 주고받았는데…….”

준모의 투덜거림에 옆에 엎어져 있던 빈이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이거야말로 천 년을 넘나드는 세대차.”

“그만해라. 그거 하다 맞았잖냐…….”

준모의 말에 빈은 더 이상 말을 말았다.

뒤늦게 고통이 밀려오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 * *

“지금 영화 찍는 거야! 007이야? 왜 살인병기가 돌아 다니냔 거야! 재갈을 물려야지!”

“말 함부로 하지 마세요!”

오늘도 국회는 고성이 오가고 있었다. 전날에 보인 화려한 대격돌 퍼포먼스는 아니었지만, 서로를 향해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샤우팅을 내뱉고 있었다.

“고빈 씨가 문제에요! 지금 매번 방송이니 라방이니 하는데! 1인 미디어에도 제한이 있어야 한단 말입니다!”

“때가 어느 땐데 함부로 개인의 자유를 침해합니까!”

“고빈 씨에 대한 제제에 대한 의견에 일리가 있습니다!”

“당신이 야당이야! 언제부터 야당이었어! 지금 뭐하자는 거야!”

“소신발언입니다!”

대환장파티라는 말도 잘 어울렸다. 그러다 보니 기자들 역시 함께 날뛰었다.

[되살아난 동물 국회]

[라방이 계약 조건?]

[강림자. 구원자인가 파멸자인가.]

[강림자의 존재가 적을 불러오는 것인지 모른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수많은 기사들이 마치 기회라도 잡은 듯 연일 새로운 꼭지와 상상력으로 인터넷을 수놓았다.

심지어 공중파 종편 케이블까지 끼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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