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4화 마치 짠 것처럼
* * *
[지구상에 침략자의 일원이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뜬 기사의 내용이었다. 이전에도 비슷한 어조의 기사들은 있었다.
다만 그 기사들 대부분이 어그로를 끌다가 끝에선 우려가 있다거나 혹은 그럴지도 모른다는 식으로 매듭을 지었었다.
전형적인 기레기발 쓰레기다.
물론 때가 때인지라 그것을 그냥 두지는 않았다.
위기 시에는 오히려 기자들이 자정작용을 발휘했다.
평소에 기레기라 불리던 대형 언론들마저 그런 언조의 찌라시 언론들을 융단 폭격을 했다.
최소한 넘지 말아야 할 선은 있다는 의미였다.
물론 그런 것도 대침식 이후 안정을 찾으며 멀어졌지만 말이다.
문제는 제2의 대침식이 찾아오고 있다는 소리를 듣는 최근에 그런 기사가 뜬 것이다.
문제는 이전에는 관심이 필요한 어린 기레기 둥지에서 벌어진 사건이라면 이번에는 달랐다.
“미친 거 아냐?”
“헐? 대박.”
스마트폰이나 테블릿으로 뉴스를 보던 사람들이 혀를 찼다.
대형 언론이라 불리던 곳에서 이런 기사가 나온 것이다.
심지어 좌우의 성향을 가리지도 않았다.
내용은 단순했다.
그것이 가리키는 것은 바로 을지부루였으니까.
표적이 명확한 기사였다.
문제는 그 뿐만이 아니었다.
미국과 중국 쪽에서 조차 이런 논조의 기사들이 생산되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미국의 경우 생방송 도중에 멀쩡하던 진행자가 예정에 없는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키기까지 했다.
목표는 하나다.
바로 을지부루.
그가 침략자를 물리치고 그 지위를 빼앗았으며, 일부 침략자들이 투항하여 이쪽의 편에 섰다며 물고 빨고 하던 언론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중 굵직한 일부가 갑자기 음모론을 들고 일어선 것이다.
심지어 이야기도 잘 끼워 맞췄다. 그러다 보니 분위기도 순식간에 뒤숭숭해졌다.
거기에 전사자들의 가족들에게까지 음모론을 그럴싸하게 전파되었다.
그러던 차에 미국과 중국에서 나온 기사들을 원문까지 고스란히 올리며 인용해서 주장을 뒷받침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처음에는 미친 거 아닌가 혹은 관종인가 했던 이들마저 설마 이게 맞나 싶은 시선으로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 * *
“지나갈게요!”
“잠시만요! 확실한 해명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서준모 경위님은 최측근이니 뭔가 평소에 이상하다는 것을 아실 것 아닙니까!”
“뭐가 이상해요!”
연구동 안쪽의 훈련소로 향하던 서준모 경위는 끝내 화를 참지 못하고 버럭 했다.
그런 서 경위를 최후배 경감이 잡아 끌었다.
“갑시다. 서 경위님.”
“최 경감님도 이번 일에 핵심이란 말이 있는데 사실입니까?”
“아이쿠, 저 같은 쩌리가 무슨 핵심입니까.”
최 경감이 너스레를 떨며 다시 서 경위를 잡아끌 때 질문을 던진 기자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최후배 경감은 단순 가담 혹은 하수인 역할을 맡은 것으로…….”
“헐?”
순간 최 경감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의혹으로 시작된 취재경쟁이 이제는 범인으로 확정 짓고 이야기를 짜내고 있었다.
“이 씨발, 작작 좀 해라, 이 개새끼들아! 지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데 대가리에서 똥만 짜내서 기사랍시고 쳐바르고 앉았냐!”
결국 서 경위가 폭발했다.
순간 기자들이 움찔하면서도 셔터를 누르거나 동영상을 찍었다.
그중에 일부는 생방이라도 하는 듯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서준모 경위는 현직에 있을때 에도 잦은 폭력을 동반한 행위로 강등등의 조치를 받았던 것으로 확인 되었습니다. 다만 배후에 비호가 있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진급을 통해…….”
“야이 개새꺄! 배후가 있었으면 처음부터 강등 따윈 안 당했지!”
“선배 참아요!”
“현재 최후배 경감의 경우 연인 관계에 있는 이와의…….”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말리던 최후배 경감이 몸을 날렸다.
결국 사달이 났다.
최 경감이 이단 옆차기를 하는 동시에 풀려난 서 경위가 기자들 사이를 마치 양떼 사이로 뛰어든 호랑이마냥 해치고 다녔기 때문이었다.
다만 서 경위의 경우 자신의 힘이 강해진 것을 알기에 최대한 억제한 상태로 기자들을 상대할 뿐이었다.
그쯤 되자 정문을 경비하던 군인들이 나서서 그들을 말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광경마저 실시간으로 마치 이들을 비호하는 것처럼 목소리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실제로 맞은 쪽은 기자들이었기에 그렇게 보여지기도 했고 말이다.
그때였다.
문이 열리며 기자들이 눈을 빛냈다. 그들이 가장 먹잇감으로 삼고 있던 이가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다.
“왜 이리 시끄러운 거간?”
을지부루가 모습을 드러내자 정문을 경비하던 군인들은 물론이고 난동을 피우던 서 경위와 최 경감마저 당황했다.
그때 기자들이 선빵을 날렸다.
“최근 의혹에 대해 할 말 없으신지요!”
“없으니 가라우.”
기자들의 질문에 부루는 귀찮다는 듯 손짓을 했다.
그 모습에 서 경위와 최 경감 그리고 군인들은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내통하신 적이 전혀 없다는 겁니까.”
“기래.”
“그걸 누가 믿습니까?”
기자들의 집요한 질문에 부루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지금부터 믿으라우. 원래 어른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고 했어야.”
오히려 당당하게 나오자 기자들은 순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일부는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고 말이다.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은 이들은 원래부터 이들과 함께하며 얼마나 힘겹게 싸워왔는지를 봐왔던 이들이었다.
그러나 표적을 노리는 기자들에게는 그 대답이 성에 찰 리가 없었다.
“지금 판도라 멤버들과의 관계가 적절치 않다는 소문이 있는데 사실입니까?”
순간 뒤돌아서려던 부루의 몸이 멈칫했다.
“보호를 빌미로 신병을 구속하고 있다는 말이 있는데………”
질문을 이어가려던 기자의 말문이 그대로 막혀 버렸다.
천천히 뒤돌아선 부루가 대부를 집어서 머리뒤로 당기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비명도 내지르기 전에 날아든 대부가 질문을 던진 기자의 가랑이 사이로 날아가 박혔다.
콰아앙!
기자는 그대로 다리가 풀려 뒤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다시 말해보갔네?”
“어……으.”
질문을 했던 기자는 혼이라도 나간 듯 창백한 얼굴을 하고 앉아 있었다.
그때 뒤쪽에 있던 기자 하나가 질린 얼굴로 입을 열었다.
“다, 당신 지금 살인미수야! 알아!”
“군인들은 뭐해! 지금!”
몇몇 기자들이 질린 얼굴로 주변의 군인과 경찰들을 바라보며 외쳤다.
그때였다.
그나마 그렇게 떠들던 이들의 입이 전부 조개처럼 다물어졌다.
서늘한 기운이 깔리는가 싶더니 이내 온몸을 바늘로 콕콕 찌르는 듯 한 느낌이 감돌기 시작했다.
살기였다.
두 눈을 부릅뜬 부루가 천천히 좌에서 우로 시선을 돌리며 기자들을 노려 보았다.
그 속도가 너무도 느려 마치 슬로우 비디오라도 돌려 놓은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시선을 마주한 이들은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숨도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 압박감.
그때 부루가 천천히 내려와 도끼자루를 뽑아들었다. 그리고는 어깨에 턱하니 둘러매며 말을 이었다.
“니보라. 지금도 법 따지고 싶은 아새끼 있음 나와 보라우.”
아무도 나설 수 없었다.
정신이 혼미한 상황인데 어찌 나서고 자시고가 있겠는가.
“떠들라면 목숨 걸라우. 질문을 하는 건 자유니까네 말리디 않갔어. 대신 내 면전에 와서 떠들라. 알간? 여기 아새끼들 찾아오갔다고 하면 말리지 말고 통과시키라우. 알간?”
부루의 말에 마찬가지로 질린 얼굴을 하고 있던 군인들과 경찰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을 남기고 부루가 뒤돌아서서 안으로 들어갔다. 그 뒤를 최 경감과 서 경위가 따라 걸음을 옮겼다.
그때 뒤에 서 있던 고빈이 카메라를 기자들에게 내밀며 입을 열었다.
“전부 지렸고요, 이거 박제됐고요.”
그 말을 남기고 그도 따라 들어갔다.
그제야 기자들은 서로 바라보며 지금의 상황을 알 수 있었다.
너나 할 것 없이 전부 바지에 소변을 지렸음을 말이다.
* * *
콰앙!
“이런 씨부랄 놈들!”
한동안 존재감 없이 월급도둑질을 하던 주지환 정보국장이 책상을 걷어차며 쌍욕을 내뱉었다.
“뭐하는 새끼들이야 이거! 왜 이런 걸 그냥 놔뒀어!”
주 국장의 외침에 요원들이 썩은 얼굴을 했다.
“워낙 동시다발적이었고, 사전 움직임도 확인이 어려웠습니다. 거기에 언론자유 때문에…….”
“씨팔 내가 지금 언론 탄압하자고 이런 소릴 꺼낸 게 아니잖아!”
콰앙!
이번에는 한쪽의 책장을 걷어찼다. 가지런히 꽂혀있던 책들이 와르르 쏟아졌지만, 아무도 그것을 주우러 달려들지 않았다.
그저 침묵만 감돌 뿐이었다.
“내 말했지? 처음 기사 터졌을 때 제대로 파내라고. 미치지 않고선 이런 개소리 안할 거라고!”
주 국장의 말에 요원들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런데 연관도 못 찾아? 씨파 이새끼들은 텔레파시라도 쓴대? 내가 다 책임진다고 도감청 하라고 했잖아!”
주 국장이 문제의 소지가 다분한 발언임에도 버럭 내질렀다. 그의 외침에 다들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음을 모르지 않았다.
어디 인터넷에 떠도는 찌라시나 혹은 돈독오른 유튜버의 자극적인 방송과 거리가 멀었다.
비록 이런 저런 욕을 먹긴 하지만, 대형 언론사다. 그런 곳에서 이런 의혹 기사가 튀어나왔다.
믿든 안 믿든 문제가 안 될 수가 없었다.
더욱이 문제는 이런 개소리에 사람들이 지탄을 했음에도 마치 국권을 침탈당했던 시기의 독립지사들의 언론마냥 꿋꿋이 버티며 ‘닭목은 비틀어도 새벽은 와요!’라는 포지션으로 반박기사까지 쏟아낸 것이다.
이쯤 되자 설마, 혹시라는 흐름이 생겨난 것이다.
그걸 막기 위해 주 국장은 가장 민감한 민간인 사찰을 꺼내 든 것이다.
그럼에도 아무도 사전에 재발하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심지어 이렇게 약속이라도 한 듯 비슷한 논조의 기사들이 동시에 쏟아지는데도 말이다.
심지어 미국과 중국의 언론도 짜고친 듯 이러고 있었다.
가장 웃긴건 중국이었다.
언론통제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분명 첫 번째 기사가 문제가 되었을 때 책임자가 어디론가 끌려 가고 기사들이 후두둑 사라졌었다.
그런데도 이번에 다시 또 같은 일이 터진 것이다.
심지어 그걸 이쪽에선 중국에서도 목숨 걸고 기자들이 진실을 알리고 있다는 증거로 써먹는다는 점이다.
그때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 새꺄! 분위기 보면 몰라!”
성질이 날 대로 났는지 평소와 달리 거칠어진 주 국장의 외침에 문이 열리며 김창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 창진이. 뭐래?”
창진의 모습을 보며 겨우 화를 누른 주 국장이 질문을 던졌다.
“비슷합니다.”
“뭐가?”
“스미스 국장과 지금 국장님 화나신 모습이 말입니다. 그러니 일단 화 푸십시오. 천조국의 정보요원들도 눈뜨고 당한 일입니다. 중국도 마찬가지지만.”
“씨파, 그 새끼들이 돈발라서 못 찾은 걸 우리가 못 찾은게 당연하단 거냐!”
창진의 말에 주 국장이 다시 폭발하려 했다. 그러자 창진이 고개를 내저으며 입을 열었다.
“아뇨. 확실히 이상하단 겁니다.”
“뭐?”
“이쪽도 아무런 연락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사전 교류도 못 찾고 말입니다. 그런데 미국 쪽도 그렇습니다.”
“…….”
창진의 말에 주 국장이 미간을 찌푸린 채 입을 닫았다.
“그런데 다행히 교류는 없었지만 공통점은 좀 찾은 것 같습니다.”
“말해. 빨리.”
굳은 얼굴의 주 국장이 대답을 재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