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열제 부루강림기-173화 (173/305)

제173화 존중받아야 할 것

스미스 국장은 고민 끝에 요원에게 당부를 남겼다.

“버튼 그 양반을 주시해. 지금은 조용한 것이 더 이상한 거야. 둘이 무슨 접점이 있었다면 더욱 확실한 것이고.”

“알겠습니다.”

그렇게 요원을 내보낸 스미스 국장이 피곤한 얼굴로 전화를 집어 들었다.

“빌어먹을 외교관이라도 된 느낌이군.”

평시라면 외교관들이 해야 할 일들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마족이라 불리는 외계종족과의 전쟁 상황이다.

그것도 전 지구적인 전쟁.

그런데도 각국은 아직까지 자국의 이익을 논하고 있었다.

“어쩌면 놈들이 똑똑한 것일지도.”

이쯤 되니 침공하는 쪽이 똘똘 뭉치지 않을 정도로만 공세를 해 온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 보니 정작 정보교환과 조율을 정보집단에서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정보국이 타국의 정보만을 취득하는 게 일이 아니다. 때론 가진 바 정보를 가지고 주고받으며 조율을 하기도 한다.

일종의 비즈니스다.

영원한 적은 없다는 말이 정보국쪽에서는 오히려 더 잘 어울릴 정도다.

실제로 러시아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긴밀한 협조를 하고 있으니 말 다한 것이다.

물론 공공의 적이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럼 영업이나 해 볼까?”

스미스 국장이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 * *

“훔.”

전화를 끊은 김창진은 미간을 찌푸렸다.

“뭐지?”

“왜요?”

정보국 요원이 궁금한 표정으로 창진을 바라보았다.

“아, 스미스 국장.”

“그 양반은 왜 과장님한테만 전화 건답니까?”

창진의 말에 한 요원이 어이없다는 듯 말을 뱉자, 모니터를 주시하던 한 요원이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인생이 원래 다 끈이고 줄인 거다. 이 동네라고 해서 뭐 좀 다른 줄 아냐?”

“아아.”

순간 을지부루를 떠올린 요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문득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런데 국장님한테 찍히진 않았습니까?”

한국 정보국의 수장은 따로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웬만한 전화는 거의 창진에게 날아온다.

특히 미국과 중국 그리고 러시아 등. 최근에는 유럽 쪽 통화도 은근슬쩍 창진에게 걸려오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24시간을 전화에 시달리던 창진은 한숨을 팍 내쉬며 입을 열었다.

“차라리 찍혔으면 좋겠다. 그 양반 요즘 막걸리 들고 다니며 띵가띵가 하잖아.”

“이거 참. 욕심도 없으신 분을 상사로 두다 보니 이것도 고민이 됩니다.”

“야, 욕심이 왜 없으시냐? 노는 욕심이 만땅인 양반인데.”

“그건 그런데 이시국에 웬 막걸립니까?”

“웬 막걸리긴. 정보 수집한답시고 을지부루 장군에게 놀러가서 먹고 마시다 오시는 거지.”

“아…….”

그렇게 말하고는 창진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우라질 원래 그 일은 내가 할 일이었건만…….”

맞다. 원래는 창진이 그들 주변에 오가며 어울려 주기도 하고 조율도 하고 하는 게 일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시간이 쫓기다 보니 그 일을 주지환 국정원장이 도맡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뭔 일이랍니까? 또 안부 전합니까?”

“그건 아니고. 대원길드 쪽 인원 붙여 놨던 거.”

“예.”

“거기 인원들 미국 들어간 거 현지 정보 들어온 거다.”

“아!”

그제야 요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들어 이거 하난 좋아졌다.

업무제휴.

그것도 천조국이라 불리는 미국과의 업무제휴다. 특히 정보국 쪽은 미국 쪽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런데 그쪽에서 아예 나서서 제휴를 협의해 왔던 것이다.

물론 이전에도 대침식 이후 정보교류는 있었지만, 최근처럼 적극적이고 전면적인 교류는 처음이었다.

“캬, 미 정보국장이 직접 현황보고라니. 세상 참 좋아졌네.”

“좋아졌지. 그런데 그 인간들이 존 버튼 만났단다.”

“끈 떨어진 양반을요?”

“끈 떨어졌어도 아직 국무위원들이나 상원 쪽에 입김도 큰 인간이야.”

창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다만 그런 것치고는 아직 움직임이 조심스럽기에 기억의 우선 순위에서 잠시 사라졌을 뿐이었다.

“정보는 수집했고요?”

“그게 한 십 분? 그 정도 미팅만 가지고 끝났다더라.”

“십 분? 그럼 뭐 전달 같은 거만 한 거 아닙니까?”

“반출물품 확인은 했었지?”

“별거 없었는데요? 그냥 서류가방? 내용물도 그냥 일반적인 여행용품이고요.”

당시 검색대에 이쪽 요원이 파견되어 직접 확인한 것이니 틀린 건 없었을 것이다.

“저장장치도 확인했지?”

“sd카드나 여타 메모리 스틱 같은 거도 분명 없었습니다.”

“그럼 말을 전달한 건가?”

“그럴 수도 있지만…….”

생각해 볼수록 이해할 수 없는 접촉이었다.

“대원길드 쪽에는 조용하잖습니까.”

“조용하니까 문제지.”

창진의 말에 요원들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의미인지 알아들은 것이다.

“하, 이거 머리 아프네.”

* * *

창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존 레너드 대통령이 환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게 가능하다는 건가?”

“예. 그럼 일단 우리도 병력을 보내야지 않겠나?”

“일단 오백여 명 정도를 받아 주겠다고 합니다. 그쪽도 아직 줄을 서 있어서…….”

케인 스미스 국장의 말에 레너드 대통령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지. 참 이참에 직접 가서 피도 뽑고 하면 좋겠군. 신선도가 높을수록 좋다고 하잖은가.”

최근에는 마갑주를 혈액을 활용해서 만든다는 것을 전달 받아 이쪽에서도 일정량의 혈액을 빼서 보내 주고 있었다.

물론 그래 봐야 극소수다.

전시나 마찬가지인 지금은 혈액의 재고가 3일치도 간당간당할 때가 종종 오기 때문이었다.

레너드 대통령의 말에 스미스 국장이 머리를 긁적이며 태블릿을 그에게 내밀었다.

“그야 그렇긴 한데. 그 방법이 좀 유별납니다.”

“뭔가?”

잠시 후 레너드 대통령의 방 안에선 타격음에 이은 남성들의 거친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마수의 군주가 아니라 메저키스트의 군주 그런 건가?”

“그냥 아는 게 줘 패서 가르치는 것뿐이라 이런 형태로 발현이 된다는 것 같습니다.”

“…….”

스미스 국장의 말에 레너드 대통령이 잠시 침묵하더니 그를 보며 조심스럽게 입술을 떼었다.

“튼튼한 친구들을 보내야겠군.”

레너드 대통령의 말에 스미스 국장이 안타까운 음성으로 대답했다.

“최대한 엄선하겠습니다.”

* * *

“니보라. 이젠 돌아 버리갔어. 내래 언제까지 이 짓을 해야 하는 거이간?”

애정을 쏟아가며 타작질을 하는 것도 한두 번이다.

문제는 최근 들어서는 숫자가 더 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밥만 먹고 패기만 하니까, 내래 미친 거 같단 말이디.”

“그런 것치고는 열심히 패십니다만.”

“기거이 전문이니까네.”

“…….”

“제일 잘하는 게 멱따는 거이고 둘째로 잘하는 게 줘패는 게디.”

을지부루의 말에 사람들이 뭔 인간이 잘하는 게 죽이는 거랑 패는 건가 하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때 고빈이 설마하며 질문을 던졌다.

“그럼 혹시 세 번째는요?”

“잘 맞는 거.”

“…….”

“기런 거 있어야. 곁에 있다 보면 절로 늘게 되는 거이디.”

누굴 말하는 건지는 알 것 같았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상상이 안 간다.

눈앞의 괴물을 줘 패고 자시고 한다는 것 자체가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때 서 경위가 조용히 귀엣말을 했다.

“세 번째는 바뀐 거 같은데.”

“뭐가요?”

“이유 없이 맞는 거 봤냐?”

“아…….”

빈이 입으로 ‘맞을 짓…….’ 하고 벙긋거리며 고개를 끄덕일 때 부루가 인상을 찌푸렸다.

“기건 뭔 소리네?”

“그냥 그런 겁니다. 아니 뗀 굴뚝에 연기 없다 뭐 그런 거요.”

“당연한 소릴.”

다행히 부루는 그들의 대화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때 밖에서 연락이 왔다.

“도착했습니다!”

“미국 아새끼들이디?”

“예!”

오전에는 중국과 러시아 쪽이었다. 각 인원들이 삼백에 이백 명 정도다.

그런데 오후는 미국이었다.

“오백이라 했디?”

“예!”

“가 보자우.”

도끼자루를 들고 나서는 부루를 보며 빈은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이런 걸 기록 영화로 만들면 아마 장르는 블랙코미디쯤 되겠죠?”

빈의 말에 서준모 경위가 헛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팔리겠냐?”

“망하겠죠.”

“그래. 현실은 원래 똥망이야.”

서 경위의 말에 빈이 고개를 끄덕이며 키득거렸다.

“구경이나 갑시다. 오전에 맞았던 애들은 아주 똥오줌 싸지르던데.”

“미국똥 구경 가냐?”

“그냥요. 재미있잖아요.”

빈이 일어서자 서 경위 역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빈을 따르는 서 경위의 발걸음은 약간 어색했다. 마치 포경수술을 하고 난 뒤의 발걸음 마냥 말이다.

“하긴. 나만 아니면 뭐…….”

당할 땐 죽을 것 같았지만 누군가가 당한다니 왠지 보고 싶은 서 경위였다.

빈과 서 경위가 신성한 의식의 장소에 도착하니 벌써 일은 시작되어 있었다.

그런데 시시덕거리며 도착한 두 사람의 표정은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

심지어 현장에 있는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마족 마법사인 헤게루이안이 감탄을 하며 입을 열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군주님의 은총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참으로 감탄스럽습니다.]

“…….”

빈은 헤게루이안을 보며 마치 미친놈…… 아니 미친 마족 바라보듯 보았다.

[무슨 문제라도.]

“저게 어떻게 보이시는데요?”

빠악! 앗흥!

[군주님의 은총에 감화된 표정으로 보입니다.]

“……해석은 좋네요.”

빈이 고개를 내저으며 다시 현장을 바라보았다.

“와, 이것도 재능인가.”

빈의 중얼거림에 서 경위가 허탈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재능이라면. 그것보다 저런 놈들만 모아서 보낸 스미스 국장놈의 머릿속이 궁금하다 야.”

“그러게요.”

부루가 매질을 하면서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내래 이 짓하면서 감사하단 소린 들었어도 원모타임은 처음 듣는구만 기래. 충성심이 남다른 거이간?”

“플리즈으…….”

이미 다리가 풀렸음에도 한 방 더를 외치는 미군에게 부루는 아낌없이 한 방 더 날려 주었다.

풀썩.

그 미군은 쓰러지면서도 행복하다는 표정을 풀지 않고 있었다.

그런 병사들을 부축하고 나가던 병사들은 마치 못 만질 거라도 만지는 표정이었다.

* * *

존 레너드 대통령은 어색하게 웃음을 머금었다.

“다, 다행이군. 적극 수행하는 모습을 보였다니…….”

-예. 어쨌든 개인의 취향일 뿐이니까요.

케인 스미스 국장의 대답에 레너드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이곤 전화를 끊었다.

“후우, 다행이긴 한데.”

고개를 내저은 레너드 대통령이 잠시 한 손을 들어 보았다.

“흐음.”

그리고는 자신의 엉덩이를 내려쳐 보았다.

찰싹!

“Shit!”

아프기만 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이번에는 책상 위의 서류철로 자신의 엉덩이를 내리쳐 보았다.

찰싹!

동시에 문이 열렸다.

“…….”

보고할 게 있다고 했던 여 비서관이 열린 문으로 그를 바라보며 얼어붙어 있었다.

“이, 이건 오해네.”

“사적 취향은 존중합니다. 써. 그걸로 저만 치지 않는다면요.”

“오해라니까!”

레너드 대통령은 억울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