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열제 부루강림기-172화 (172/305)

제172화 믿음이라는 족쇄

* * *

존 버튼 전 안보 보좌관은 퀭한 얼굴로 사진을 살피고 있었다.

“미친 건가?”

“그건 알 수 없습니다.”

존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가 보는 건 군인들을 구타하는 장면이었다.

“미쳐 돌아가는군. 빌어먹을…….”

안보 보좌관 자리에서 경질된 후에도 그는 계속 압박을 받아 왔다.

미국을 위해 해 왔던 일들임에도 모두 그를 탓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의 생각일 뿐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때 버튼 전 보좌관에게 사진을 건네주었던 사내가 입을 열었다.

“미스터 오가 보낸 사람이 도착했습니다.”

“그래?”

대원길드의 오기원이 보낸 인원이 도착했다는 말에 존은 밝은 표정을 지었다.

둘은 아직까지 나름 훌륭한 비즈니스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었다.

그때 지금처럼 힘든 상황에서 오기원이 연락을 해 온 것이다.

“매직아머를 구할 수 있단 말이지?”

그를 접촉해 온 목적 중 하나는 바로 매직아머라 불리는 마갑주를 생산할 수 있는 방법의 공유였다.

물론 아직 물건을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그 방법만 알게 된다면 다시 복귀하는 것은 물론이고 제 대로 입지를 다질 수 있는 반전의 계기가 될 것이다.

그때 문이 열리고 양복을 입은 사내들이 안으로 들어섰다.

“어려운 시기에 잘 왔소.”

버튼 전 보좌관의 환영에 사내들은 악수를 나누고는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주변인들을 둘러보았다.

극비를 요하는 일이기에 아는 이가 많으면 좋지 않다는 의미의 눈짓이었다.

“데니만 남고 나가 보게.”

데니라 불린 사내는 그에게 이들의 도착을 알렸던 이였다.

사진을 전달해 준 이기도 했다.

그때 대원길드에서 파견 나온 사내들은 책상 위에 올려진 사진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건 그쪽에서 보내 준 자료들이오. 대체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버튼 전 보좌관이 어깨를 으쓱이며 대꾸하자, 사내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얼차려라도 받는 모양입니다. 요즘은 구타가 없어졌다고는 하지만 모르는 일이지요.”

어느 나라든지, 군에서 발생하는 폭력사건은 존재하기 마련이었다.

심지어 대침식 이후 전 세계가 전시상황이나 마찬가지였기에 군의 규율은 이전과 비할 바가 아니었다.

다만 특이한 게 있다면 군인들을 때리는 이가을지부루라는 점일 뿐이었다.

“어쨌든 데니는 문제없으니 자료를 좀 봅시다.”

“약속하신 부분은…….”

그때 사내가 먼저 입을 열자 버튼 전 보좌관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 부분은 걱정 마시오. 아직 내게는 후원자들이 남아 있으니까.”

버튼 보좌관이 활짝 웃어 보이자 사내들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가져온 가방을 그들 사이에 있는 테이블 위에 올려 놓았다.

이어서 그들은 마치 영화에서나 볼 법한 거래장면처럼 가방을 열어 보였다.

“흐음?”

안에는 엄지손톱만 한 크기의 보랏빛이 감도는 검은 수정 같은 것들이 줄을 지어 정돈되어 있었다.

“이게 핵심입니다.”

“약간 당황스럽긴 한데…….”

무언가 초현실적인 방식임을 예상하기는 했다.

마족들은 마법을 활용해 그것을 구현했다고 했다. 결론적으로 그 형태가 어떤 것인지는 예상하기가 좀처럼 어렵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게 이런 작은 수정 형태의 돌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설명이 좀 필요한 것 같소만.”

“외형을 이루는 마물 가죽 갑옷은 그저 눈속임일 뿐입니다.”

“흐으음.”

많은 수량은 아니지만, 샘플로 보내져 왔던 물품을 구경해 볼 수 있었다.

물론 말 그대로 구경일 뿐이었다. 그나마도 먼발치에서 본 것이 전부였던 것이다.

이전이라면 그것을 놓고 함께 회의도 들어가고 했겠지만 말이다.

“사실 이곳에 지급된 형태는 일종의 다운그레이드 형이라 보면 될 것입니다.”

다운그레이드라는 말에 버튼 보좌관이 살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비록 구경 자체는 먼발치에서 겨우 했지만, 그것의 성능에 대해서는 비교적 자세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순간 탐욕이 흘렀다.

“호오. 차이가 큰 것이오?”

버튼 전 보좌관이 크게 흥미를 가지며 손을 뻗었다. 그러자 사내들이 가방을 살짝 당겼다.

“사실 이것도 꽤 희생을 치룬 덕에…….”

“이제 와서 날 못 믿겠다는 건 아니겠지?”

버튼 전 보좌관이 입꼬리를 올리며 그들을 노려보았다. 그러자 사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건 아닙니다. 다만 이것을 쥐고 깨트리는 순간 해당 마갑주는 일종의 귀속이 되기에 조심을 기하자는 의미입니다.”

“이것을 깬다?”

수정이라지만, 손으로 쥐어서 깬다는 게 쉬워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가방 안에 포장되어 있는 형태를 보니 충격에 대비한 형태임을 알 수 있었다.

마치 귀금속 가게에서 반지등의 보석류를 보관하는 것처럼 완충제와 함께 배열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흐음.”

흥미가 진해지며 버튼 보좌관이 다시 손을 가져가려 할 때 사내들이 서류 하나를 내밀었다.

“먼저 서명을 부탁드립니다.”

“음?”

내용은 일종의 계약서다.

해당 사안에 대해 절대 함구하겠다는 내용과 절대적인 믿음을 기반으로 영원히 함께하겠다는 내용이 전부였다.

“하핫! 내용이 재미있군!”

버튼 전 보좌관은 크게 웃었다. 내용은 그게 다였다.

다짐을 받는 내용이 전부였다.

“재미있다고 하시겠지만, 우리는 믿음을 중요히 합니다. 거짓 믿음이 아닌 진실 된 믿음 말입니다. 물론 이게 전부일 수는 없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우리의 약속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동양의 신비 맹세 뭐 그런 건가?”

버튼 전 보좌관이 웃으며 서명을 했다. 그때 옆의 사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서명 옆에 피를 내어 지장을 찍어 주셔야 합니다. DNA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요.”

“흐음.”

피까지 내어야 한다는 말에 버튼 전 보좌관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이건 좀…….”

옆에 있던 데니 역시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이쪽에 보시면 길드장님이 남긴 것도 있습니다.”

자세히 보니 갈색으로 변한 지문이 한쪽에 찍혀 있었다. 물론 이게 오기원의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원하신다면 DNA검사를 통해 길드장님의 것인지 먼저 확인하셔도 됩니다.”

그렇게 말을 하고 사내들은 가방 문을 닫았다.

마치 실컷 구경만 시켜 준 뒤에 물건을 거두어 가는 것처럼 말이다.

“그럼 이렇게 하지.”

버튼 전 보좌관이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먼저 이곳에 피를 내어 손가락을 찍겠네. 그리고 난 이 수정 하나를 직접 깰 거야.”

“…….”

버튼 전 보좌관의 말을 사내들은 말없이 경청했다.

“만약 효과가 없다면 이 서류는 이대로 찢어 버리겠네. 공평하지?”

버튼 전 보좌관이 서류를 한 손으로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러자 사내들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눈짓을 주고 받더니 서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상관없습니다.”

그들의 말에 데니는 물론이고 버튼 전 보좌관의 표정 위로 만족감이 스쳤다.

“그럼 먼저 찍도록 하지.”

그렇게 말을 한 버튼 전 보좌관이 자신의 서랍에서 무언가를 꺼내었다.

그것을 들어 올리며 버튼 전 보좌관이 웃었다.

“당뇨가 좀 있는 편이라서.”

그것은 혈당을 재는 키트였던 것이다.

그것으로 피를 낸 버튼 보좌관은 잠시 서류 앞에서 멈칫했다가 이내 망설임 없이 손가락을 찍었다.

“흠.”

약간 찝찝한 표정의 버튼 보좌 관은 이내 고개를 들어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대원길드에서 온 사내들은 다시 가방을 내밀었다.

“어디 보자…….”

방금 전의 찝찝함은 온데간데없는지 마치 장난감을 앞에 둔 어린아이마냥 수정을 살폈다.

생김새는 비슷비슷해 보였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하나 집어 들더니 천천히 손 가락에 힘을 주었다.

파삭!

생각보다 힘없이 부서지는 소리가 울려 왔다.

순간 버튼 전 보좌관의 옆에 서 있던 데니가 긴장을 했다.

깨어진 수정에서 흘러나온 검보라빛 연기가 버튼 보좌관의 몸으로 스며들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본 버튼 전 보좌관이 순간 긴장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저항하지 않고 그것을 받아들였다.

그리고는 잠시 눈을 감고는 은은한 미소를 머금었다.

“하아. 이거군.”

버튼 전 보좌관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의 손을 쥐었다가 폈다가 했다.

“괜찮으십니까?”

데니는 그를 보며 걱정어린 시선을 보내었다.

“이거 말로는 설명하기 어렵군. 확실히 힘이 넘쳐. 자네도 하나 주지.”

그때 버튼 보좌관이 하나를 더 꺼내었다. 그때 사내가 다시 서류 하나를 내밀었다.

“예외는 없습니다.”

“뭐, 그래야겠지.”

잠시 후 데니가 그곳에 피를 내어 손가락을 찍었다.

“자, 자네도 한번 느껴 보게. 이 힘을 말이지.”

버튼 전 보좌관이 건네 준 수정을 얼결에 받아든 데니는 조심스럽게 그것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버튼 전 보좌관과 사내들의 시선에는 은은한 보랏빛이 감돌고 있었다.

파삭!

* * *

-환영한다. 나 회유와 교언의 군주와 함께할 이들이여.

마켈그로이언은 흡족한 미소를 머금었다.

다른 이들이 지구 침공을 위해 마물들을 모으고 권능을 뿌려 마족들을 강화시키는 동안 그는 오기원을 통해 수족들을 늘리고 있었다.

그것도 지구의 존재들을 대상으로 말이다.

거짓말은 없었다.

힘을 대가로 서로 믿음을 주고 받기로 했으니까.

물론 그 믿음이 조금 다르긴 했다. 마켈그로이언은 충성이라는 형태의 믿음을 받았으니까.

-이로써 준비는 거의 끝나가는군.

마켈그로이언의 말에 오기원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렇사옵니다. 중국쪽도 그렇고 중요한 지역의 수뇌부들의 장악은 이미 끝이 났습니다.

-놈들이 마갑주를 만들어 내면서 일이 재미있게 되었어.

물론 마족들이 입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는 건 알았다.

다른 차원의 물건을 참고로 해서 조금 더 진일보한 물건인 것으로 확인이 되었으니까.

그렇다 해서 그 물건이 확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저 좀 나을 뿐이라는 정도였다.

그때 아쉬운 음성이 전달되었다.

-다만 이 나라 쪽은 아쉽게 되었습니다.

오기원의 말에 마켈그로이언이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지. 이쪽은 보는 눈이 많으니까.

마룡의 군주가 패한 뒤 탑의 연결이 끊어지고 난 뒤에 투항한 족속들을 말하는 것이었다.

마수들과 달리 그들은 마법에도 능한 마족들이었으니 말이다.

실제로 마룡의 군주가 거느린 마족들의 마법실력이 마계에서도 손에 꼽는 편이었다.

이는 드래곤 자체가 태생적으로 마법에 능한 종족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투사이면서도 마법사인 드래곤이었기에 마계에서도 그렇게 빠른 시간에 최강의 군주 자리를 넘보았던 것이다.

-지금까지도 잘 해 주었으니 욕심을 버려라. 때론 참는 게 더 큰 수확을 얻을 수 있는 법이니까.

마켈그로이언의 말에 오기원이 대답했다.

-명심하겠나이다.

* * *

케인 스미스 미 정보국장이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곧바로 돌아갔다?”

“예.”

“대체 뭘까.”

그의 신경을 건드리고 있는 이는 바로 존 버튼 전 안보 보좌관이었다.

이제는 자리에서 잘려나갔지만, 여전히 경계의 대상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물론 지금과 같은 시기에 그가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역량은 없지만, 그렇다고 감시의 눈길을 소홀히 할 수는 없었다.

그의 성정 상 지금 상황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할 리가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 최근에 한국에서 온 대원길드의 인물들과 접촉이 있었다는 보고가 들어왔던 것이다.

“대원길드 동향은?”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별다를 게 없다라. 확실히 이상하군.”

때론 별다른 행동을 보이지 않는 것이 불안의 싹을 피우기도 한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