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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열제 부루강림기-171화 (171/305)

제171화 각성

그때 한쪽에서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흐흑!”

“끄응…….”

최근 들어 흔히 들리는 소리였다. 효과(?)가 입증된 후 궁둥이가 아물 때면 다시 타작을 이어 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이목을 끈 이유는 그 신음소리가 남자라고 보기에는 너무 가느다랗다는 것이다.

“응?”

“비, 빈아아아!”

“제, 제이누나?”

“아흐흐흑!”

제이가 어기적거리며 달려와 빈에게 매달렸다.

“임자있는 몸이 이러시면 됩니까.”

“돼! 임자 있는 몸이지만 내 궁둥이는 임자가 따로 있단 말이야!”

“헐?”

을지부루가 찾아갔다는 말은 들었다. 하지만 정말로 실천에 옮겼을 것이라고는 예상 못 했다.

그래도 설마 했으니까.

“와, 제대로 직진이네.”

빈이 중얼거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세인이 누님은요?”

“흑, 언니는 빠져나갔어!”

“그런데 왜 둘은…….”

세인이 빠져나갔으면 둘도 빠져나가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에 던진 질문에 레이니가 울먹이며 대답했다.

“우린 완전 무수리 취급이야!”

“아…….”

빈이 탄식을 흘렸다.

대충 어떻게 흘러갔을지 이해가 갔던 것이다. 세인에게 갔으나 차마 세인의 강력한 반대에 밀어붙이지는 못하고 대신 곁의 두 사람을 붙잡고 타작한 것이다.

“변태도 아니고! 왜 맞아야 쎄지냐고!”

제이가 울분을 터트렸다. 그러나 빈은 그녀들의 울분에 찬 외침에 별로 공감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나 맞을 땐 팝콘도 먹고 그랬으면서…….”

움찔!

순간 그녀들이 몸을 떨었다.

빈이 줘 터질 땐 마치 격투기 선수 응원하듯 응원하던 그녀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아, 재미난 구경 놓쳤네.”

“젠장, 세상 믿을 놈 하나 없다더니!”

제인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때였다.

“끄응.”

한쪽에서 또 다른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자연스럽게 그들의 시선이 돌아갔다. 여인의 음성이다.

“……아. 다들 괜찮아?”

신음의 주인공은 송가은 작가였다. 그녀가 제이와 레이니를 보며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엉거주춤한 걸음걸이만 보아도 그녀가 어떤 상황인지 이해가 갔다.

“언니도?”

레이니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묻자 송 작가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걱정해서 하시는 일이니까. 뭐…… 다들 맞았다고 하니까 그런데 세인이는? 몸이 약해서 아직 못 움직이나?”

“응. 누워있어.”

레이니의 대답에 송 작가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런. 심하니?”

“응, 심해. 우리 맞을 때 떡볶이 시켜 먹더니 식곤증으로 침대에 쓰러져 자빠져 자는 중이니까.”

“…….”

레이니의 말에 송 작가가 순간 멍한 표정을 지었다.

“우린 귀한 몸 지키라는 의미로 이렇게 된 거고. 그런데 이쪽 귀한 몸은 스스로 지키라고 했나 봐.”

제이의 말에 송 작가가 주먹을 쥐고 부르르 떨었다.

그녀들의 분노를 뒤로하고 빈은 훈련장으로 나왔다.

첫날에는 침대에 약 바르고 엉덩이 까고 엎어져 있던 군인들이 이제는 제법 적응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나마 정말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효과가 제대로 있었던 것이다.

물론 마족마법사들의 회복 마법도 이들의 빠른 회복을 도왔다.

물론 종족특성상 신성마법과 같은 은총 형태의 회복마법이 아닌 재생력을 극대화 시키는 식의 회복마법이었다.

재생을 극대화 하는 원리를 가졌기에 회복마법을 받으면 식성이 미친 듯이 당기게 된다.

신체에서 막대한 에너지를 요구하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많은 음식섭취가 필요했다.

문제는 마물이나 마족과 달리 인간의 몸으로 섭취할 수 있는 음식의 한계가 있기에 고열량 식을 항상 접해야 했다.

처음에는 장어나 스테미너에 좋다는 것을 먹였지만, 언제부터인가는 미국에서 공수해온 에너지 바를 밥 대신 먹였다.

효율을 위해서였다.

물론 원성이 자자하긴 했다. 에너지바가 맛있을 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그 덕에 제법 움직임도 기민해졌다.

마치 소환자들이 실전을 통해 강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 사이에 익숙한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강문호 중령이었다.

그의 몸놀림 역시 이전과 달라져 있었다.

원래도 실전에 단련된 사람이었지만, 다른 이들과 달리 처음부터 함께해온 인연으로 인해 을지부루의 과도한 은총을 받아 사경을 해매기도 했지만, 그만큼 받아들인 힘이 달랐다.

또 믿음의 크기가 달라서인지 함께 시작했지만, 일반 군인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결과를 보이고 있었다.

“와, 일주일 만에 이 정도라니 참…….”

빈이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그때 그를 발견한 강 중령이 다 가와 인사를 했다.

“왔냐?”

“아저씨 이제 날아다니네요?”

“뭐, 결과가 좋아서 다행이지.”

“그런데 아저씨쯤 되면 굳이 안 해도 되지 않아요?”

“모르면 몰라도 아는데 어떻게 그러냐.”

빈의 말에 강 중령이 쓴 웃음을 머금었다.

“다들 눈빛이 다르잖냐.”

다른 군인들 역시 첫날 궁둥이 까고 엎어져 있던 때와는 달랐다. 탑 시크릿에 해당되는 정보를 듣고 난 뒤부터였다.

그들이 상대할 적의 정체를 알고 난 그들은 더 이상 군말을 하지 않았다.

거기에 강문호 중령이 솔선수범하면서 강해지는 모습을 보이자 다들 적극적으로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땡땡땡!

누군가가 종을 치자 갑자기 군인들이 한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밥먹어요?”

“아니.”

그 모습을 보고 빈이 식사시간인가 싶어 던진 말에 강 중령이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급식도 아닌데 왜 저리 뛰어간대요?”

“뭐, 그만큼 자세가 바뀌었다고 봐야지?”

“예?”

“영광입니드아악!”

빠아아악!

“믿쑵니다아악!”

빠아악!

누가 봐도 미친놈들 같았다.

앞 다투어 달려간 곳은 바로 은총의 장소였던 것이다.

심지어 달려간 군인들이 부루에게 맞으며 영광이 어쩌고 믿음이 어쩌고 하는 모습은 빈도 처음 보는 광경이었던 것이다.

“저기 정신상담같은건 안 해요?”

빈의 질문에 강 중령이 웃으며 대답했다.

“안 미쳤다.”

“저게요?”

빠아악!

“쓰릉흡니드아아악!”

누군가의 외침을 들으며 빈이 다시 물었다.

“누가 봐도 미쳤는데요?”

“피할 수 없으면 즐기랬잖냐.”

강 중령의 말에 빈이 대답했다.

“저걸 즐기면 그걸 변태라고 하잖아요. 메저키스트인가?”

“크크큭!”

빈의 질문에 강 중령은 실소를 흘렸다. 이해가 안가는 질문은 아니었다.

“사실 연구를 해 보니 때리고 맞는 행위자체보다도 믿음을 표하는 것이 더 효과가 크다고 했다. 이걸 맞으면 난 강해진다. 그래서 감사해야 한다. 이런 거지.”

“뭐 대충은 들었는데 저렇게까지 해야 해요?”

“뭐 자기 세뇌 같은 거다. 너같으면 정말 좋겠냐?”

“그런가.”

“사실 이 형태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 같으면서도 되는게 실제 창칼이 오가는 전장을 누벼야 하는 병사들을 조련하는 장수들 입장에선 나가서 죽지 말라고 훈련할 때 더 다잡는 경향이 있지.”

“그건 뭐 그렇죠.”

“보면 너도 마찬가지지.”

“예?”

빈은 또 이게 무슨 의미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 훈련받을 때 말이야. 넌 모르겠지만, 곁에서 보는 입장에선 딱 보이더라. 니가 강해지길 바라는 마음 그런 거. 실전에 집어넣고서도 니가 위험할 때마다 대부를 쥐었다 놨다 엄청 하시더라.”

강 중령의 말에 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처음에는 그냥 정신없었지만, 어느 순간에서부터인가 알게 되었다. 사실 그런 말도 있잖은가.

훈련에서 흘리는 땀 한 방울이 전장에서는 피 한 방울과 맞먹는다고.

그래서인지 강 중령의 비유를 알 수 있었다.

“사실 말주변이 있는 양반도 아니고. 그러다 보니 은총이란 것이 저런 형태로 희안하게 발산되는 거지. 힘을 완전히 깨닳은 게 아닌 상황에서 저렇게라도 하는게 어디냐.”

“그건 그렇네요.”

은총을 받는데 익숙한 마족들이야 저런 형태가 필요 없지만 말이다.

그때 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중령님은 안 맞아요?”

줄서있는 군인들과 달리 함께 떠들고 있는 강 중령을 보며 빈이 질문을 했다.

“난 졸업했지.”

“예?”

“저렇게 맞지 않아도 된다는 거야. 맞는 수만큼 강해지는 게 아니라 일종의 깨달음 비슷한 형태 같더라. 마음 한 구석이 든든해지는 그런 거.”

“오호?”

“그래서 저러는 거다.”

“예?”

그때 연구원 하나가 키득거리며 입을 열었다.

“사실 저거 제일먼저 시작한 사람이 바로…….”

“커허흐으음!”

순간 강 중령의 기침소리가 연구원의 말소리를 방해했다. 그 모습을 보며 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흑역사네.”

“……효과만 있으면 되지.”

이제야 이해가 갔다.

강 중령 성격상 차라리 즐기자 그리고 정말로 강해지는 일이라 믿고 저렇게 했을 거다.

그러니 빠르게 힘이 늘었을 것이고 말이다.

“뭐 어쨌든 다들 대단하네요. 솔직히 이론적으로 안다 해도 저렇게 하는 건 쉬운 게 아니니. 음. 존경!”

빈이 고개를 끄덕이며 작게 박수를 쳤다.

하지만 그런 빈을 보며 강 중령은 오히려 쓴 웃음을 머금었다.

‘아니지. 넌 모른다. 저들이 널 어떻게 생각하는지.’

지금도 빈이 박수를 쳐주자 군인들이 이를 악물며 부루의 앞에 엎드리고 있었다.

* * *

첫날 구타가 끝난 날.

회복을 위해 엎어져 있던 군인들의 눈앞에 시청각 자료가 펼쳐졌다.

그 영상은 바로 고빈의 모습이었다.

지금의 빈은 인기인이다.

물론 다 좋아하는 건 아니다. 운 좋은 놈 취급도 당한다. 솔직히 상당수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영상이 이어지면서 다들 하나둘씩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서 지워지고 있었다.

떨어지고 터지고…….

절벽을 오르고 부루에게 맞아서 날아가고 깨지고.

한계의 한계까지.

이것이 한계인가 싶을때에도 일어서 줘터지는 모습.

죽는다 죽는다 소리를 지르면서도 무기를 놓지 않는 모습에 다들 할 말을 잃은 것이다.

첫 번째 마물사냥을 마치고 나서 나름 자랑질을 하는 빈의 다리가 미친 듯이 떨리는 모습도 보였다.

좀 익숙해졌다 싶으면 더 많은 마물들과 뒤섞여 도끼를 휘두르는 모습.

누가 강림자인지 소환자인지 구분이 안가는 모습으로 뒤섞여 싸우는 모습.

그간 영상에서 봐왔던 것은 마치 잘 꾸며진 것들 뿐이었다.

피를 게워내고 뒹굴며 뼈가 어긋나도 악다구니를 쓰며 달려드는 모습은 다 잘라내고 없는.

어떤 전투에선 기동대원이 죽음을 피하지 못했을 때 눈이 뒤집혀 싸우고 또 싸우다가 부루에게 뺨이 터지도록 맞고 울부짖으며 끌려가는 모습도 보였다.

다들 빈의 겉 모습에 속고 있었던 것이다.

인기 BJ비니에 포장된 모습 말이다.

실제로는 전장의 선두에서 싸워 온 고빈이라는 전사라는 걸 아무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연구 영상과 자료 영상을 편집해 만든 것들이었지만, 고빈이 얼마나 치열하게 싸워왔는지 처음으로 알게 된 군인들의 반응은 그때부터 바뀌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과 같이 새로운 수단이 생기기도 전부터 싸워왔던 기동대원들의 분투 역시 함께 볼 수 있었다.

안 통하는 무기를 가지고 미친 듯이 날파리마냥 훼방 놓으며 전장을 활보하는 모습들.

물론 기동대의 실제 의미를 아는 이들은 많았다.

그러나 그들이 진짜 이렇게 처절하게 싸우는 건 처음 보았던 것이다.

그날 이후로 군인들의 정신적인 각성이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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