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0화 믿쑵니까?
빠악! 털썩!
타격음과 무언가가 쓰러지는 소리가 연이어 울렸다.
신음이나 비명은 없었다.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급히 실려 나왔다.
“저, 정신 차리게.”
차준우 사령관의 말에 혼미한 정신을 겨우 다잡으며 병장 계급을 단 군인이 입을 열었다.
“제, 제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나중에 설명하겠네.”
그는 차 사령관의 답변을 끝까지 듣지 못했다.
눈알을 까무룩 뒤집고 입에 거품을 물며 다시 정신줄을 놓았던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체육관에 급조된 이백여 개의 침상에 군인 이백 명이 엉덩이를 까고 하늘로 향한 채 누워서 흐느끼고 있었다.
지금은 다들 왜 이런 구타를 당했는지 설명을 들은 후였다.
일부는 왜 처음부터 이런 과정을 설명을 해 주지 않았느냐고 따졌다. 하지만 돌아온 답변에 입을 다물었다.
‘미리 설명 들었으면 제정신이겠느냐고 하겠나?’
아무리 차준우 사령관이라지만 대부분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미쳤다.’
물론 지금도 그 생각은 비슷했지만, 이미 지난 일 아닌가.
그때 마족 마법사들이 침상에 엎어져 있는 군인들을 향해 중얼거리며 마법을 펼치는 모습이 보였다.
하나하나 무언가를 확인하듯.
그들의 설명을 전해들은 연구원들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그 표정은 전혀 밝지 못했다.
“저…….”
그들의 표정에 차준우 사령관은 아쉬움에 쓴웃음을 머금으며 입을 열었다.
“지푸라기를 잡는 행동이지만 확실히 미친 짓 소리를 들을 만했네. 책임은 내가 다 질 테니 말해 주게.”
차 사령관의 덤덤한 답변에 연구원은 한숨을 쉬며 연구 결과를 보고했다.
피잉-!
단상의 마이크가 잠시 시끄러운 소음을 내었다.
이내 조절이 끝났는지 단상위에 선 차준우 사령관이 입을 열었다.
-제군들. 이 미친 짓에 군말 없이 따라 준 것에 마음깊이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네. 이미 설명을 들었듯…….
차준우 사령관의 이야기가 시작되면서 각지에선 지방방송이 송출되기 시작했다.
“그런 설명은 맞기 전에 해 주셨어야지…….”
“사랑의 매? 그게 말이 되냔 말이야.”
군인들이 억울한 표정으로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주고받았다.
무려 사령관이 말을 하는데 말이다. 그만큼 이들의 마음에 상처가 컸던 것이다.
“난, 하체가 통으로 날아간 줄 알았어.”
“이거 일어설 순 있겠지?”
“근데 장관이다. 이백 명이 궁둥이 까고 있으니까.”
“여긴 게이 맛집?”
“소름끼친다. 그런 소리 마라.”
“야, 잠깐 중요한 대목이다.”
-해서 실험을 한 결과…….
설명을 이어나가는 차준우 사령관의 표정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살짝 굳어 있는 것이 멀리서도 보일 정도였다.
“아……사령관님 표정 안 좋다. 괜히 맞았나 보다.”
“맞아서 쎄진다는 게 처음부터 말이 되겠냐? 그렇다면 세디스트는 어마어마하게 쌔지겠다.”
“장난해? 걔들이라고 기분 좋은 정도로 맞는 걸 좋아하지 돌아가신 어르신들 만나고 오는 걸 좋아하겠냐?”
“너도 봰 거야?”
“자, 잠깐…….”
서로 말 같지 않은 대화를 나누던 군인들 중 하나가 갑자기 대화를 중단시켰다.
순간 자신들이 떠들던 게 들켰다는 생각에 순간 긴장된 얼굴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
다행히 차 사령관의 시선은 그들을 향하고 있었다.
천장 방향으로 시선을 들어 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무언가를 피하듯 말이다.
이내 그들은 주변이 지나치게 조용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조심스럽게 주변을 돌아봤다.
조곤거리며 불만을 흘리던 이들도 조용히 경청하던 이들도 모두 고개를 배게에 묻고 있었다.
“방금 못 들어서 그런데…… 무슨 일임까?”
옆에 같이 떠들던 동료 하나가 조심스럽게 옆에 있던 중사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배게에 얼굴을 묻고 있던 중사에게서 짓눌린 음성이 들려왔다.
“씨파.”
“아니, 떠든 건 잘못이지만…….”
돌아온 욕설에 화가 나면서도 멋쩍은 목소리로 항변하는 사이 중사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효과 있대요.”
“……뭐가요.”
설마 하는 음성으로 질문을 다시 던지자 그때까지 배게에 얼굴을 묻고 있던 중사가 고개를 이쪽으로 돌렸다.
울고 있었다.
“우리 맞은 거.”
“예.”
“효과 있답니다. 아저씨들이나 나나 이제 잣 됐어요.”
“……하.”
“…….”
순간 그들 역시 하늘이 무너진 얼굴을 했다.
“씨파, 이 기회에 돌아가신 어르신들 돌아가며 만나 뵐 수 있겠네.”
허탈함과 정적만이 감돌 뿐이었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고빈이 어깨를 들썩였다.
웃겨서다.
“왜?”
“아, 내 일일 땐 미칠 거 같았는데 남 일 되니까 웃겨서요.”
빈의 말에 김창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뭐 그럴 수도.”
“그런데 이거 효과가 알려졌으니 조만간 아저씨도 벽 잡고 엎드리겠네요?”
순간 빈의 얼굴이 굳어졌다.
“나, 난 사무직이라…….”
“언제 경찰로 시작해서 국정원 요원까지 올라간 입지전적인 실전파라며요?”
“빈아. 아쉽지만 나에겐 할 일이 많아.”
“흐흐. 쫄지 마요. 뭐 갑자기 떠올라서요.”
빈이 말을 돌리자, 김창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빈이 입을 열었다.
“원래 부루 아저씨가 주변 사람 잘 챙기잖아요. 그래서 함 해 본 소리죠.”
“섬뜩하니 그런 말마라. 그렇게 따지면 일 순위는 판도라들 아니냐.”
“에이 판도라는 논외고요. 부루 아저씨라도 그 정도까진 아니겠죠.”
빈의 말에 창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일에는 정도껏이란 말이 있기 마련이니까.
* * *
을지부루가 무릎을 꿇고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심지어 비장미마저 느껴지고 있었다. 그런 부루의 입에서 떨리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이 충심을 믿어 주시라요.”
부루의 애타는 말에 세인이 조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믿으니까, 이제 일어나세요.”
“기럼 허락해 주시는 겁네까?”
부루가 환히 웃으며 묻자 세인이 그를 향해 되묻듯이 말을 던졌다.
“미쳤어요?”
“…….”
세인은 진지했다.
그 광경을 옆에서 지켜보던 제이가 레이니에게 소곤거렸다.
“세인이 입에서 저런 소리 오랜만에 듣는다.”
“인정.”
“근데 지켜만 보는데 왜 이리 쫄깃하지?”
“내 말이. 세인 언니 밀당이 장난 아냐.”
순간 세인이 날카로운 시선을 그녀들에게 돌렸다.
“…….”
순간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다물었다. 다시 고개를 돌려 부루에게 세인이 말을 이었다.
“내 궁둥이를 그렇게 때리고 싶어요?”
“기, 기건 기거이 좀 그러면 죽빵으로…….”
“죽으라고요?”
“절대 아닙네다!”
“내 안전이 그렇게 걱정된다는 건 이해해요. 하지만, 그건 아닌 거 같아요. 솔직히 내가 싸워야 할 상황이 온다면 그게 더 큰일 아닌가요?”
세인의 말에 부루가 고개를 떨궜다. 그때 그녀가 다시 말을 이었다.
“제 안전에 대해서는 회사에서 보디가드를 더 붙여 달라든지 해서 할게요. 저까지 신경쓰시기에는 시간이 없잖아요.”
그녀의 조곤조곤한 설명에 부루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문 앞에서 멈추어 섰다.
천천히 돌아가는 부루의 고개.
아직 포기하지 않았나 싶었던 제이와 레이니가 자연스럽게 부루를 바라보았다.
순간 시선이 마주쳤다.
고개가 돌아가다가 잠시 눈이 마주치는 그런 우연은 아니었다. 정확히 그녀들을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아니겠지?”
레이니가 조심스럽게 읊었다.
“닥쳐. 불안하니까.”
제이가 대답했다.
부루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 * *
대원길드의 길드장 오기원은 눈앞의 길드원들을 보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하아아.”
길게 숨을 내쉬는 그들의 주변으로 검보랏빛이 감돌다 몸으로 흡수되었다.
“이거 정말 힘이 넘친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습니다.”
눈 앞에서 환희에 찬 표정으로 입을 여는 이는 바로 대원길드의 길원들이었다.
“기분 역시 째지는군요. 이런 게 힘인가?”
그들 역시 실전을 거듭하며 E급으로 분류되는 마물 정도는 상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소위 C급이라던지 B급까지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그들이 허리를 숙이자 그들이 있던 공간에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믿음과 비례하여 그대들은 강해질 것이다.]
“믿겠습니다.”
그들은 탐욕에 이글거리는 눈동자로 힘주어 대답했다.
“복귀하도록.”
오기원의 명령에 그들은 다시 그에게 인사를 건네고 되돌아 나갔다.
“이제 팀장을 비롯해 주요 길드원까지는 회유를 마쳤습니다. 나머지 팀원들까지 서서히 권능을 맛보게 하면 곧 마무리될 것입니다.”
기원이 공손하게 답변을 하자 회유와 교언의 군주인 마켈그로 이언이 흡족한 음성을 뱉었다.
[그래야지. 이제 슬슬 준비가 끝이 나 가는군.]
그때 기원이 걱정 어린 음성을 뱉었다.
“그런데 을지부루 역시 권능을 나누어 줄 수 있지 않을까요?”
조금은 걸리는지 그렇게 질문을 던지자 마켈그로이언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클클클클클!]
마치 비웃음과 같은 소리였다.
“뭔가 제가 실수라도…….”
[그런 반쪽짜리가 권능을?]
“아닙니까?”
조심스럽게 되묻자 마켈그로이언이 대답했다.
[물론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힘을 쓰는 방법을 익힐 수는 있겠지. 하지만 권능을 내린다는 것은 그리 쉬운 게 아니다.]
“그럼?”
[군주의 위를 차지하고 또 마족들을 휘하에 거두었다 해서 권능을 쉽게 내릴 수 있다고 생각 말라.]
“다행이군요. 저들의 전력이 강해지면 아무래도 왕께서 이루시려는 일에 걸림돌이 될 것 같아 모자란 생각을 했을 뿐입니다.”
[뭐, 그럴 수 있지. 하지만, 권능을 줄 수 있다 한들 그뿐. 무엇인가를 믿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 게 가능했다면 신의 의지가 이곳을 떠나가지는 않았을 것이니까.]
마켈그로이언의 말에 기원이 고개를 숙였다.
그를 받아들인 순간부터 조금씩 그에게 물들어 가던 기원이었기에 다른 의문 따위는 가지지 않았다.
더없이 충성스러운 모습을 보일 뿐이었다.
* * *
[저도 의외입니다.]
마족 마법사인 헤게루이안이 얼떨떨한 얼굴로 사랑의 매를 맞고 들어온 군인들을 바라보았다.
거칠고 무식한 방법이지만, 이게 먹히고 있었다.
“이런 미친 짓이 통하네…….”
고빈이 허탈하게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설레 설레 저었다.
[방법은 둘째치고 신에게 버림받은 세상의 믿음이 이렇게 굳건할 줄이야.]
“응?”
[권능이란 내려 주는 이도 중요하지만 받는 이의 믿음 또한 중요합니다. 우리는 그게 익숙한 존재이기에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마법사 아저씨 뭔가 잘못 아는가 본데요?”
[잘못 안다니 무슨 말씀이십니까?]
“믿음 하면 또 인간인데?”
[예?]
헤게루이안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빈이 히죽 웃으며 대답했다.
“쵸코파이 하나에도 믿을 대상을 정하는 게 바로 군인이거든요.”
[그게 그렇게 대단합니까?]
“그뿐 아니라 수많은 사이비들이 다양한 경제활동을 벌일 정도니까, 뭐 삐뚤어지는 것만 빼면 믿는 거 하난 잘하는 게 바로 인간이기도 하거든요.”
빈의 말에 헤게루이안은 그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