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7화 분노?
* * *
사방에 마물의 시체가 넘쳐났다.
더는 움직이는 마물을 찾아 볼 수 없었다.
승리의 증거이지만, 별다른 환호는 없었다.
부상자를 옮기고 주변을 정리하는 사이 현장 상황을 살피고 있던 이들의 표정은 어둡기만 했다.
“니보라 왜케 죽상이네?”
“아닙니다.”
을지부루의 말에 지휘를 맡았던 이원철 소장이 어색하게 웃음을 머금었다.
전신길드와 신컨 길드등의 대형 길드들이 맡았던 곳이 아니었지만, 이원철 소장은 중소길드의 전력과 군 병력의 힘만으로도 최소한의 피해로 막아내었다.
마물들의 전력이 큰 곳 위주로 돌다가 뒤늦게 도착한 을지부루 일행들이 딱히 손을 쓰지 않았어도 충분했을 정도로 훌륭하게 막아낸 것이다.
그러나 그 역시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전달 받았던 것이다.
마물들은 그저 던져주는 먹이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안 것이다. 그렇다고 죽이지 않고 제압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이겨도 찝찝할 수밖에 없는 그런 전투였던 것이다.
그때 부루가 입을 열었다.
“죽상 말라우. 놈들 처리하면서 피해가 컸으면 기거이 더 큰 문제가 되었을 거니까네.”
부루의 말에 이원철 소장이 애써 밝은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쉬지도 못하고 이동하셨을 건데 좀 쉬시지요.”
“일없으니 걱정말라.”
“일없긴요. 당장 뒈지것구만요.”
부루의 말에 옆에 있던 고빈이 초를 쳤다.
그의 눈 밑에는 다크서클이 턱 밑까지 내려와 있는 게 마물 시체가 옆에 있더라도 누우면 바로 잠에 빠져들 수 있어 보였다.
“약해 빠져서리.”
“예. 약한 저는 좀 쉬어야겠습니다.”
빈이 투덜거렸지만, 부루는 그런 빈을 향해 무어라 하지는 않았다. 빈 역시 많은 고생을 한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어느 정도 휴식을 취한 고빈과 일행들은 각자 태블릿을 가지고 검색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이유는 다른 나라의 상황을 살피기 위함이었다.
물론 상황실로 들어오는 정보들이 더 정확하겠지만, 나름 테블릿에 올라오는 각국의 뉴스만 해도 쉽게 상황을 살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다들 정신승리 하느라 바쁘네.”
고빈의 투덜거림에 한쪽에서 휴식을 취하던 전신길드장 임병화가 피식 웃으며 답했다.
“놔둬라. 솔직히 말해서 우리도 균열을 완전히 막아낼 수 있었던 건 얼마 되지도 않잖아.”
“그때랑 지금이랑 같나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 한국이 최고라는 식의 반응을 보이던 각국의 논조가 뒤바뀌기 시작했다.
선구자는 한국일지언정 이제는 각자 자신들이 최강의 전력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자화자찬이 벌어지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거이 아이간?”
그때 부루가 툭하니 말을 던졌다.
“뭐가요?”
“기럼. 군대가 개똥같으니 짐 싸라고 해야 하는 거간?”
“아니 뭐…….”
부루의 말에 빈이 할 말을 잃은 표정으로 말을 얼버무렸다.
“어차피 전쟁 난 세상에선 선동이 난무하는 법이야. 우린 우리 피값만 줄일 생각만 하면 되는 거이디.”
부루의 말에 빈이 입을 다물었다.
피 값.
틀린 말은 아니었다.
강림자가 아닌 군인들도 상대를 할 수 있게 되자 역설적으로 인명피해가 급격히 늘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굳이 위험지역에 들일 이유가 없던 병력이었지만, 상대할 수단이 생기고 난 뒤에는 이야기가 달라졌다.
순환근무 형식으로 전부 투입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사상자 가족들의 목소리가 커졌다.
“이쪽도 포장하는 거이 피 값 떨구려 그러는 거디.”
부루의 말에 빈이 씁쓰레한 미소를 머금으며 대답했다.
“그렇네요.”
물론 억울한 건 있다.
그 전에는 피 값 대부분이 기동대원들과 소환자들의 몫이었으니까.
어쩌면 당연할 군인들의 희생에 대한 목소리가 커진다는 건 다시 소환자나 기동대원들이 피를 흘리라는 말과 같았다.
“입맛이 쓴대요. 우리 피 값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이.”
“남 일이 아닌 내 일이 되니까.”
빈의 씁쓸한 답변에 전신길드장인 병화가 대신 대답했다.
“그리고 우린 많이 받잖아. 군인들과 달리.”
“뭐, 목숨 값 따지면……. 할말은 없긴 한데, 위험도가 다르잖아요.”
전투에 투입되는 수준을 말하자면 이것도 불만일 수 있다. 그러자 병화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너 나오기 전엔 거의가 후방에서 명령만 내리고 있었거든? 정작 죽어나가는 건 기동대고.”
그 말에 기동대원들이 피식 웃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오죽했으면 민간군사조직 형태로 변형시켜 기동대를 창설했을까.
심지어 그것을 입안하고 밀어붙인 결과로 당시 전쟁 영웅인 차준우 소장은 불명예 제대를 택했다.
그 일로 국회에서 난리가 났었으니까.
싼값으로 부릴 수 있는 군인들을 빼내서 비싼 국방비용을 지출하게 만들었다는 이유로 말이다.
전시체제였고, 당시 다수당이었던 여당이 소위 날치기로 처리한 법안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흉탄은 차준우 소장이 당시에 모두 맞았다.
물론 지금에야 이유를 다들 알게 되었지만, 말이다.
그러니 차준우 소장이 훈련소장에 잠깐 복귀했다가 지금 전면적으로 복귀할 수 있었던 것이고 말이다.
대신 얼마 전에 이계급 특진으로 인해 그의 직위는 소장이 아니라 대장이다.
별 몇 개 차이가 뭔 대수일까 할 수도 있지만, 오명을 스스로 자처한 노장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다.
“안 그래도 우리 사령관님 요즘도 홀로 몸빵 중이시잖습니까.”
“그건 그렇지요.”
이원철 소장의 말에 창진이 썩은 미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거이 뭔소리네?”
차준우라는 이의 얼굴은 몇 번 본 적이 있었지만, 그게 전부였기에 지금 오가는 이야기가 궁금했던 부루였다.
“뭐긴요. 좀 전에 한 이야기요. 남의 집 자식 사지로 밀어 넣는다고 책임지라고 대모 하잖아요.”
그때 한쪽에 차량 하나가 도착해 멈추어 섰다. 군인들의 경례소리가 연이어 울려퍼졌다.
“어억!”
순간 놀란 이원철 소장이 바로 달려갔다.
“와, 호랑이다!”
그쪽을 바라본 빈이 마치 발연기자가 대사를 던지듯 말했다.
그런 빈을 보며 병화가 피식 웃음을 머금었다.
“와, 나이도 얼마 안 처먹은 놈이 개그감은 완전 아재네.”
“호랑이가 어케 웃기는 소리가 되는 거이간?”
맥락을 이해 못하는 부루의 질문에 병화가 설명했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는 속담이 있어서요.”
“기래? 됴캈구나야. 가죽도 날로 챙길 수 있고 말이디.”
“…….”
무언가 대화의 중심이 어그러지는 것은 부루도 마찬가지였다.
곧바로 걸어온 차준우 사령관이 부루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이쪽도 다들 차 사령관을 향해 인사를 건넸다. 군인이 아닌 관계로 목례정도였지만 말이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우리 걱정 말라우.”
그때 뒤따라온 이 소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갑자기 여긴 어떻게…… 연락이라도 주셨으면 좋잖습니까.”
“그랬으면 이제 좀 쉬려던 애들 닦달해서 쓸고 닦고 하라 했겠지.”
“에이 쌍팔년도 군댑니까. 요즘 전선에선 그렇게까진 안 합니다. 그런 분위기 만드신 분께서 그런 말씀을…….”
이 소장이 웃으며 말하자, 차 사령관이 어깨를 툭 치며 말을 이었다.
“알잖아. 요즘 귀찮아 죽겠어.”
“하아. 정말이지, 고생많으십니다.”
차 사령관의 말에 이 소장이 이해한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였다.
“저기다!”
무언가 보물이라도 발견한 사람들처럼 높아진 목소리에 이 소장이 얼굴을 구겼다.
“죽겠네.”
그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보지 않았지만 차 사령관은 이내 얼굴을 구겼다.
“차 사령관님! 몇 가지 질문 좀 하겠습니다!”
“이번 전투로 인해 많은 장병들이 죽거나 부상을 입었는데, 언제까지 이런 무리한 전투 투입을 이어가실 것입니까?”
차 사령관의 허락은 없었지만, 이미 기자들의 입에서 질문은 쏘아져 나갔다.
삽시간에 달려온 기자들 사이에 둘러싸인 차 사령관을 보며 고개를 젓던 병화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가 흠칫했다.
“너, 뭐하냐.”
“야방 라이브요.”
“…….”
언제 켰는지 자신의 방송용 태블릿을 향해 방긋 웃음을 날리는 빈이었다.
마물과의 전투 상황은 언제나 이목을 집중했다.
특히 보도에 목숨을 건 기자들에게는 이보다 더 핫한 건 없었다.
그렇기에 전투가 끝난 상황에는 응급차보다 기자들이 더 빨리 도착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전투에 무리함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차준우 사령관의 담담한 답변에 기자들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이번 투입된 병력의 절반 정도는 실전을 격어 보지 못한 이들로 알고 있습니다. 이건 사령관님의 지시사항이라고 들었는데요?”
“맞습니다. 제 지시입니다. 제 책임이고 말입니다.”
“왜 이렇게 무리한 투입을 계속하시는지요.”
“무기는 쓰라고 있는 겁니다. 군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충 표적지에 사격연습이나 주기적으로 하다가 사회로 복귀하라고 징집하는게 아니라는 겁니다.”
“하지만, 피해를 줄일 수 있지 않을까요? 문제를 제기하는 건 왜 전투 경험이 없는…….”
“그렇게 따지면 투입할 수 있는 병력이 없습니다. 지금 말씀하시는 무리한 투입이라는 건 처음부터 잘못된 전제니까요.”
“기동대가 있잖습니까.”
기동대라는 말에 한쪽에 있던 기동대원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차 사령관의 얼굴 역시 굳어졌다.
“기동대원들은 대침식이 끝난 이후부터 지금까지 항상 최일선에 있었습니다. 거기에 지금과 같은 상황은 기동대원으로 모두 해결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닙니다.”
“최일선에 있는 것만큼 그들은 받아가는 게 있습니다. 비유가 조금 문제가 있지 않겠습니까?”
“아이 씨바.”
순간 한쪽에 있던 기동대원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그 소리가 작지 않았는지 기자들이 고개를 돌렸다.
물론 불쾌한 시선이었다.
“뭡니까?”
“누군 목숨이 두 갠 줄 아나.”
“댓가를 받고 싸우는 것이 바로 민간군사기업 아니에요? 어이없네.”
방금 문제의 소지가 다분한 질문을 던진 기자가 기동대원을 향해 삐딱한 자세로 말을 뱉었다.
순간 욱한 기동대원이 튀어나가는 순간 동료들이 그를 붙잡아 말렸다.
그러나 그 광경을 일부 기자들이 찍고 있었다.
“하아. 정말 때려 치고 싶네.”
최근 들어 기동대원들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해 있었다.
이전에 비해 생존율이 높아지기는 했다. 제대로 싸울 수 있는 병기들이 하나 둘씩 주어지기 시작했으니까.
그나마도 다 부루가 온 이후에 찾아온 변화였다.
그러나 그만큼 더 열을 올리며 전투에 뛰어드는 이들이 바로 기동대원들이었다.
사명이 있는 이들도 있었고, 친한 이들을 마물들에 잃어 복수심으로 악착같이 싸우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유를 차치하고 소환자와 강림자들의 주변에는 항상 기동대원들이 있었다.
즉, 가장 위험한 곳이라는 의미였다.
그런데 최근에는 소환자와 강림자들의 호위 속에 안전하게 위험 수당을 챙긴다는 개소리까지 사설로 등장했다.
일종의 어그로지만 의외로 그 의견에 동조하는 이들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실제 최근 전사한 군인들의 유족들이 유독 그 최전선에 서 있었다.
그것에 불을 지핀 것은 일부 몰지각한 기자들이었고 말이다.
“차준우 사령관님께서 기동대 창설에 큰 역할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시에는 논란이 있었지만, 필요한 시스템으로 이후에 인정받기도 했고 말입니다. 그러나 방금 저 문제의 발언에서 느껴지시는 건 없습니까?”
때려 치고 싶다는 말에 오히려 먹잇감을 물었다는 듯 해당 기자가 질문을 차 사령관에게 돌렸다.
“분노?”
차 사령관이 굳은 얼굴로 짧게 대답했다.
“예?”
순간 질문을 던진 기자의 얼굴이 멍해졌다.
그러자 차 사령관이 재차 대답했다.
“때론 개소릴 질문이라고 던지는 이들에 대한 분노 아닐까 싶소만.”
순간 정적이 흘렀다.